#75화 김치말이 국수 (2)
맛은 익숙함이다.
가끔씩 새로운 음식을 먹으며, 새로운 맛을 느끼다가도 사람은 본래 자신에게 익숙한 맛을 찾아 돌아온다.
한국 사람이 늘 밥과 김치를 찾는 이유와 빅터가 링곤베리와 미트볼을 먹은 후 다시 힘을 얻었던 이유도 바로 익숙함 때문이다.
우리는 익숙한 걸 먹으며 안정감을 느낀다.
그런 걸 어머니의 맛, 고향의 맛이라고 한다.
윤복순 할머니의 고향은 이북의 황해도이다.
한국전쟁 당시 어지러웠던 시절, 사람들의 대열을 따라 남으로 내려왔고, 휴전 협정이 생기고 남과 북이 갈라지자 다시는 고향 땅을 밟지 못하셨다.
그리고…… 북에 두고 온 가족도 다시는 만나지 못하셨다.
그런 할머니에게 고향의 맛이라면…… 황해도식 동치미 국물에 소박하게 밥을 말아 먹던 김치말이 밥이다.
여기엔 황해도식 동치미가 없지만, 그래도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고향 땅이랑 가깝게 살기 위해 파주에 자리잡으신 할머니에게, 고향의 맛을 조금이라도 느끼게 해 드리고 싶어서.
“종훈이 너는 아직도 음식점 와서 투덜투덜거리고 다니냐?”
“에이, 할매! 무슨 말씀을…… 저 여기 단골이자 홍보대사 된 지 오래됐습니다. 할매 계실 때도 그랬어요.”
“아, 그래? 진짜 마음 잘 고쳐먹었다. 너 그거 알지?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면 네 눈에서는 피눈물 나는 거야.”
“에헤이. 제가 뭐 또 눈물까지 나게 했다고 그러세요?”
그때 어머니 고종숙 여사가 절묘하게 나섰다.
“흑흑. 할머니…… 저 그때 눈물 많이 흘렸어요. 황 씨가 하도 음식 맛으로 타박을 해서요.”
“이놈아. 이거 봐, 이거! 눈물 흘렸다잖아!”
“아니, 고 여사님. 이러기야? 그래서 내가 그 이후로는 홍보도 잘하고, 손님도 많이 보내고 그러잖아.”
“헤헤헤. 맞아요. 그래도 그때 서운했던 건 사실이지. 에휴, 이제야 나도 속풀이 좀 하네.”
“쯧쯧쯧…… 앞으로는 절대 그러지 마라. 길 가다가 벼락 맞는다.”
“할매! 나 진짜 안 그런다니까요! 아, 이 샤프. 이 샤프가 좀 야그를 혀 봐아. 나 이제 안 그런다니께!”
당황한 황종훈의 입에서 사투리까지 터져 나왔다.
나는 이 상황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저 웃고만 있었다.
그래도 아저씨가 저렇게 당황하는 표정을 보니 조금은 구제해 줘야 되지 싶었다.
어머니야 장난이지만, 할머니는 진짜 진심으로 저러시는 것 같으니까.
“할머니. 종훈 아저씨 말 진짜예요. 요즈음에는 진짜 손님도 많이 보내 주고, 매일 와서 밥도 드시고, 오실 때마다 칭찬도 해 주시고. 아주 잘하세요.”
“아, 그래? 음…… 선우 말이라면 내가 믿지. 저놈 말은 내가 못 믿어도.”
“허허 참내. 오랜만에 만나서 정말 이러깁니까, 할매.”
“이놈아. 그러니까 평소에 잘해야지. 너는 그냥 투덜이로 찍혀 있어. 내 머릿속엔. 알겠어?!”
“우와…… 알겠으니까 국수 맛있게 드시고 가소잉.”
화가 난 듯이 벌떡 일어서서 나가는 황종훈.
그는 문을 열기 전 다시 홱 뒤로 돌아 할머니를 향해 말했다.
“참기름이랑 들기름 짜 놓은 거 있으니까 가져가든가 말든가. 원래는 내가 갖다주려고 했는데, 나도 삐졌어. 흥.”
할머니에게 삐졌다면서 참기름이랑 들기름 짜 놓은 걸 가져가라니.
신종 츤데레 수법인가?
황종훈의 행동에 다들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그나저나…… 국수는 맛이 있으신가?
천천히 식사를 하고 계시는 할머니를 바라봤다.
표정만 봐서는 국수가 맛있는지 맛이 없는지 잘 가늠하기 힘들었다.
다만, 할머니의 표정은 꽤 진지해 보였다.
방금 전 황종훈과 얘기를 나눌 때의 모습과는 다르게.
가끔씩 천장을 올려다보며 뭔가를 떠올리는 듯한 할머니의 모습.
고향의 풍경을…… 떠올리시는 걸까?
김치말이 국수를 먹는 윤복순의 머릿속에 어린 시절 고향의 풍경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60년도 더 지났다.
그러니, 지금 떠올리는 그 모습도 결코 정확하다고는 말할 수 없으리라.
고향 땅은 드넓은 평야가 한껏 펼쳐져 있는 그런 곳이었다.
사실 넓어 봐야 얼마나 넓었겠느냐마는 어린 윤복순의 시야로는 끝도 없이 논과 밭이 계속되는 그런 풍경이었다.
참…… 아름다웠고…… 그리고, 가난한 삶이었다.
먹을 건 없었고, 사람은 많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뭘 먹지?’라는 고민은 같았지만, 그 무게는 완전히 달랐다.
지금은 수많은 것 중에 뭘 먹어야 하지? 라는 선택의 문제라면, 그때는 정말…… 먹을 게 없어서 뭘 먹어야 하지, 라는 생존의 문제였으니까.
고향 땅에서는 늘 신선한 무로 동치미를 담갔다.
그곳의 동치미는 이곳의 동치미와 달랐다.
황해도의 동치미는 고춧가루를 풀어 붉게 만들었으니까.
이 김치말이 국수의 국물과 흡사하다.
동치미가 잘 익으면, 장독대에서 무를 꺼내 투박하게 썰었다.
그릇에 국물을 퍼 담고, 귀한 쌀밥을 식구들의 대접에 잘 나눠서 담은 후, 썬 무를 얹으면 그게 바로 김치말이 밥이었다.
그게 그렇게 맛이 좋을 수 없었다.
잘 익은 김치에서는 환상적인 감칠맛이 났고, 쌀밥은 설탕같이 달았다.
그렇게 고춧가루 하나 남김없이 대접을 다 비우면, 잠시 동안은 세상이 내 것 같았다.
충분한 포만감이 몸에 퍼져 나갔다.
곧 다시 배고파질 거였지만, 그래도 그때만은…….
그때만은 참 행복했다.
선우가 만들어 준 김치말이 국수…… 완벽하진 않지만, 그때의 그 맛이 느껴진다.
서울의 어떤 집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그 옛날의 김치말이 국수의 맛이.
윤복순은 조용히 그 고향의 맛을 음미했다.
최대한 느리게…… 천천히.
* * *
윤복순 할머니를 지켜보던 어머니가 말한다.
“할머니가 오늘따라 더 천천히 드시네. 시골에 가시더니 마음이 여유로워지신 건가?”
“음…… 글쎄요. 뭔가를 자꾸 떠올리시는 것 같네요.”
“고향을…… 떠올리시는 건가? 우리가 만든 김치말이 국수를 드시고? 근데…… 예전의 그 고향의 맛은 나지 않을 텐데…….”
“조금은…… 그 맛이 조금은 날지도 몰라요.”
“예전의 그 맛이 난다고? 그때는 조미료도 안 넣고, 육수 같은 것도 안 섞었을 텐데…… 우리 국물에는 멸치 육수 섞었잖아.”
“할머니 국수에는 뺐어요.”
“응? 할머니 국수만?”
“네. 멸치 육수는 빼고, 동치미랑 김치 국물만 섞었어요. 김치 고명에도 양념을 안 했어요. 투박하지만, 고향의 맛을 느끼시게 하고 싶어서.”
“아…….”
“뭐, 그래도 고향의 맛을 내기에는 무리겠죠. 이곳은 그곳과는 모든 게 다르니까.”
“또 모르지. 네 그런 마음이 할머니에게 가 닿았을지도.”
그때 할머니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네, 할머니.”
할머니를 부르며 테이블로 다가가자, 그녀가 말했다.
“공기밥 좀 줄 수 있어?”
“공기밥이요? 물론이죠. 잠시만요.”
공기밥을 받아든 할머니는 그대로 뚜껑을 열어 통째로 그릇에 부었다.
숟가락을 들어 천천히 국물과 밥을 섞었다.
밥 알갱이에 김치 국물이 잘 스며들도록 천천히 오랫동안.
그 밥을 할머니는 다시 천천히 오랫동안 드셨다.
* * *
“맛있게 드셨어요?”
할머니는 천천히 입가를 닦았다.
“응. 너무너무 맛있게 먹었어…… 선우야.”
“네, 할머니.”
“고맙다.”
“…….”
“수십 년 만에 어렸을 때 먹었던 그 김치말이 밥의 맛이 느껴졌어. 처음이야. 고향을 떠난 이후로는 정말…… 처음이야.”
“그렇게 느껴 주시니 감사합니다. 많이 부족했을 텐데.”
“부족하다니. 전혀 아니야. 아니…… 부족한 게 맞는 거야. 그때는 정말 잘 익은 동치미 말고는 먹을 게 없었거든. 쌀밥도 귀했지. 김치말이 밥도 그래서 아주 가끔씩 먹을 수 있었고.”
“…….”
감히 그때의 어려움에 대해 이해한다는 말 같은 건 할 수 없었다.
먹을 걱정 없이 살았던 우리 세대의 사람들에게, 배고픔이란 그저 잠시 후면 해결할 수 있는 잠깐의 감정일 뿐이다.
아니, 배고픔이라는 건 어쩌면 즐거움일 수도 있다.
곧 맛있는 걸 먹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동반하니까.
그런 우리 세대의 사람이 감히 어떻게 굶주림과 배고픔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저 할머니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형제가 여덟 명이었어. 그때는 뭐 그것도 많은 게 아니었어. 둘째 언니는 병으로 죽고, 막내 동생은 굶어서 영양실조로 죽고, 여섯 명이 남았어. 그중에 나랑 오빠 한 명만 남으로 내려왔어. 사실 그것도 확실하지 않아. 잘 모르겠어. 중간에 헤어진 건지 어쨌는지…… 그때는 워낙 난리통이었으니까. 오빠도 십 년 전에 암으로 돌아가시고 나니 세상에 덜렁 나 혼자 남았어. 물론, 영감도 있긴 하지만.”
세상에 혼자 남은 기분.
나도 그 기분…… 알고 있다.
할머니처럼 갖은 고생을 하고, 어떻게 헤어진지도 모르게 가족과 생이별을 한 건 아니지만.
전생에 두 부모님을 순식간에 잃어 봤으니까.
가족이 없다는 그 공허함은 쉽게 메워지지 않는 구멍이다.
할머니는 더하실 거다.
북에 두고 온 가족들, 같이 남으로 피난 온 가족들이 이제 어디서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니까.
“이젠 부모님 얼굴도, 목소리도 가물가물해. 내가 이렇게까지 나이를 먹었으니 분명 진작 하늘나라로 돌아가셨겠지.”
“좋은 곳에 계실 거예요.”
“그러시려나? 아마 그 두 분도 돌아가시는 날까지 편치 않으셨을 거야. 영감을 만나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보니 알게 됐어. 나는 그저 부모님이 그리울 뿐이지만, 부모님은 나를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겠구나.”
“아…….”
부모를 잃은 자녀를 고아라고 하고, 남편을 잃은 부인은 미망인이라 한다.
부인을 잃은 남편을 홀아비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를 뜻하는 단어는 우리나라 말에 없다.
그 고통과 슬픔이 헤아릴 수 없이 깊어서……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없어서 그렇다고 한다.
할머니의 부모님은 그런 심정이었을 거다.
자식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다는 건 어쩌면 자식을 먼저 보낸 것보다 더한 고통이었을 거다.
희망이 고문이 되어 버리는…… 희망 고문.
언젠가 헤어진 자식을 만날 수도 있지 않겠냐는 그런 모진 기대.
이루어지기 힘든.
“자식이 많으니까 모든 자식에게 애정을 쏟을 수 없었던 그런 시절이었어. 그런데도 아버지는 특히 나를 아껴 주셨어. 잔칫집에 갔다가 지짐이 같은 걸 얻어오면 나만 몰래 불러다가 주시기도 했어. 그러면서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어. 우리 애기…… 참 곱다. 고와. 비단결 같다. 그리고는 나를 번쩍 안아 주셨어.”
할머니의 눈가가 촉촉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아버지의 품에 안겼던 따뜻한 기분을 떠올리신 걸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차올라 눈물로 터져 나오는 걸까.
할머니는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한 묘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
우시는 것 같기도 하고, 웃으시는 것 같기도 했다.
좋으면서도 슬프신 듯했다.
“할머니. 지짐이 좋아하세요?”
북한에서는 전을 지짐이라고 부른다.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를 위해 특별한 지짐이를 준비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