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행복 식당-89화 (89/110)

#89화 혜승이의 아픔, 그리고 수제 치킨 (1)

반계탕을 팔면서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정은이와 동생들.

늘 제대로 된 밥도 못 챙겨 먹을 아이들인데, 더운 여름에 몸보신이라도 좀 시켜 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요 며칠 정은이와 동생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찾아가기로 했다.

* * *

차미란 원장을 통해 알아낸 정은이네 집은 영진동의 작은 산을 끼고 자리한 달동네에 위치하고 있었다.

아래에서 가만히 올려다보면 빽빽이 들어선 집들과 엄청난 높이로 인해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 같은 그런 동네.

언덕길을 따라 굽이굽이 굽어져 있는 골목길과 그 양옆에 불규칙하게 늘어서 있는 집들.

같이 가고 있던 혜승이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격한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헉헉…… 진짜…… 높네요.”

“그러게…… 휴우…….”

“진짜 밥 안 먹고…… 왔으면…… 큰일 날 뻔……했다.”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많이 먹을 일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혜승이는 오늘 ‘외근’을 나가야 한다는 핑계로 아침부터 평소보다 두 배 더 많은 밥을 먹은 차였다.

그렇게 헉헉거리면서 얘기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정은이네 집에 도착한 우리.

“정은아.”

낡은 초록색 대문을 두드리며 정은이를 불렀다.

여러 번 불렀는데도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안에 아무도 없는 건가?”

헛걸음을 했나 싶어 허무해하던 차에 갑자기 집 안에서 큰소리가 터져 나왔다.

“술 사오라고! 술!”

“돈 없어요. 진짜 한 푼도 없다고요!”

“뭐! 이놈의 계집애가 다 컸다고 대드네? 그래, 너 잘 대들었다. 이 기회에 아주 버릇을 고쳐 주지. 이리 와!”

“아악!”

정은이로 생각되는 여자아이의 외마디 비명과 함께 퍽- 퍽- 둔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얼굴을 마주친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담을 뛰어넘어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마주한 광경.

소리로 들으며 상상했던 그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속옷만 입은 중년의 남성이 한 손으로는 정은이의 머리채를 잡고 한 손으로는 빗자루를 쥔 채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당신들은 뭐야!”

“정은아!”

혜승이는 남자의 말은 무시한 채 정은이에게로 직진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무시무시한 속도로 정은이 아버지를 밀어낸 후 정은이를 안고 그대로 돌아왔다.

그 뒤로 울고 있던 정은이의 두 동생들이 따라붙었다.

“괜찮니, 정은아?”

혜승이는 정은이의 몸을 이리저리 살폈다.

정은이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서럽게 울고만 있었다.

“당신들 뭐냐고오! 이거 주거침입죄로 신고할 거야!”

“주거침입죄요? 그 전에 먼저 아동 학대죄로 당신이 잡혀갈 거 같은데요.”

“뭐? 학대? 뭔 개같은 소리야! 내 자식 새끼 말 좀 안 들어서 애비가 팬 거 가지고. 아동 학대? 허?”

“아저씨! 말을 안 들어서 팬다고요! 그게 애들한테 할 소리예요? 그리고, 사람이 말을 안 듣는다고 누군가를 때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오빠, 빨리 경찰 불러요! 빨리!”

혜승이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두 손 가득 들고 온 반계탕과 반찬들을 내려놓고 경찰에 신고 전화를 넣었다.

정은이 아버지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쳤지만, 술에 쩌든 주정뱅이 남자가 젊은 나를 감당하기는 어려웠다.

이내 경찰이 정은이네 집에 당도했고, 정은이 아빠는 아동 학대 현행범으로 경찰에 연행되었다.

신고를 받은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닌 듯, 출동한 경찰이 정은이 아빠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저씨. 다음에 또 그러면 진짜 잡혀가신다고 했죠?”

“아니,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애! 내 자식 내가 좀 때린 것 가지고오!”

“휴우…… 됐고요. 경찰서 가서 조사받으시죠.”

자꾸 자기 자식을 자기가 때린 게 무슨 잘못이냐고 하는 저 인간.

저런 인간들의 돼먹지 못한 인식 때문인지 아동 학대의 대부분의 가해자는 보호자이자 양육의 책임자인 친부모인 경우가 많다.

안타까운 일이다.

자식은 소유물도 아니며, 자신의 스트레스를 해소할 도구도 아닌데 말이다.

끝까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경찰의 손에 연행되어 가는 남자를 보니 휴우- 크게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다행인 건 정은이와 동생들이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오늘 우연히 반계탕을 들고 정은이네 집에 방문하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해서 몸이 부르르 떨려 온다.

* * *

영진꿈마을의 차미란 원장선생님이 당분간 정은이와 동생들을 맡아 주기로 했다.

그녀는 말했다.

친권이니 뭐니 복잡한 절차를 떠나서 정은이라는 애를 꼭 영진꿈마을로 데려오고 싶었다고.

정은이 아빠의 알콜 중독과 그로 인한 폭력적인 성향으로 인해 하루하루 불안에 떨며 살아가는 정은이를 구해 주고 싶었다고.

영진꿈마을에 들어와 어느 정도 진정이 된 아이들의 앞에 따끈하게 데운 반계탕을 내밀었다.

꿀꺽.

밥도 제대로 못 먹은 아이들의 입에서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자, 얼른 먹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이들의 수저가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누나가 맛있게 닭고기를 뜯는 도중 막냇동생인 남자아이, 정민이는 낑낑거리며 반쪽짜리 닭고기와 사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정민아. 형이 닭고기 발라 줄까?”

“네. 이거 너무 커요…….”

“그래. 조금만 기다려.”

빈 그릇을 갖다 놓고 닭고기 살을 바르기 시작했다.

먼저 닭 다리부터 뜯어내고.

예쁘게 뜯어낸 닭 다리는 정민이의 그릇에 넣어 주었다.

정민이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닭 다리 끝을 손에 쥐고, 소금을 한 번 톡 찍어 묻힌다.

크게 입을 벌려서 두툼한 닭 다리살을 크게 베어 낸다.

우적우적.

마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큰 덩치의 산적이 통뼈를 들고 뜯는 모습 같았다.

아이가 덩치가 작으니 작은 닭 다리도 산적이 든 그것처럼 크게 보이는 거다.

정민이는 살덩이 하나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 닭 다리를 아주 뼈까지 쪽쪽 빨아먹었다.

닭 날개와 잘게 찢어준 닭 가슴살 그리고 닭죽까지 야무지게 해치운 정민이는 산처럼 볼록하게 튀어나온 배를 통통 두드렸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지켜보던 사람들은 한차례 크게 웃었다.

쿨쿨.

배를 채운 아이들은 어느새 잠에 빠져들었다.

정은이는 정희와 정민이 두 동생을 양 옆에 끌어안고 잠을 자고 있었다.

혜승이는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엄마가 아이들을 바라보는 듯한 그런 표정으로.

왠지 모르게 그런 혜승이를 방해하기 싫어 조용히 방을 나왔다.

* * *

“사장님, 고생 많으셨어요.”

“아…… 저보다는 혜승이가 고생 많았어요.”

“그랬군요…….”

차미란 원장의 표정이 슬쩍 어두워진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던 그녀의 입이 다시 열린다.

“아마 정은이에게서…… 자기 모습을 봤을 거예요.”

“자기…… 모습이요?”

“네. 혜승이도 사실 태어날 때부터 고아는 아니었어요. 하긴 뭐 태어날 때부터 고아인 사람은 없겠지만 말이에요.”

“음…….”

이어지는 차미란의 얘기는 이랬다.

혜승이의 친모는 혜승이를 낳다가 죽었다.

혜승이는 여덟살 때까지 편부의 손에 자라다가 아빠가 병으로 죽고 난 후 이곳 영진꿈마을로 온 거였다.

그런데…… 그 아빠라는 작자가 하는 짓이 지금의 정은이 아빠가 하는 짓이랑 똑같았다고 했다.

틈만 나면 혜승이를 때리고, 그 어린애한테 술을 사오라고 다그치고…….

처음 영진꿈마을에 혜승이가 오던 날 그 애가 한 말이 차미란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 아줌마. 이제 저 술 사러 안 가도 돼요?

크고 맑은 눈으로 그렇게 말하더란다.

이제 안 맞아도 되냐고.

이제 술 사러 안 가도 되냐고.

이제 배고플 때 밥 먹을 수 있는 거냐고.

차미란의 얘기를 전해 들으니 평소 혜승이가 유독 정은이에게 잘해 주던 게 생각났다.

그리고, 아까 정은이 아빠란 사람에게서 정은이를 데려오던 그 과격한 움직임도 이해가 갔다.

혜승이는 정은이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이다.

그리고…… 정은이가 자신처럼 그렇게 되는 걸 막고 싶었던 거다.

그저 잘 먹고, 붙임성이 좋은 혜승이에게…… 나중에는 톱 배우가 되는 혜승이에게 그런 과거가 있었다니.

그런 아픈 모습을 숨기고 늘 웃고 있는 혜승이를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짠해졌다.

* * *

정은이 일로 정신없었던 오늘 하루도 어느새 끝에 다다랐다.

“오늘도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어머니, 아버지, 순미 이모, 민호 삼촌도 모두 퇴근한 밤 시간.

오늘따라 유독 힘들어 보이는 혜승이에게 특별 간식을 만들어 줄 생각이다.

특별 간식 메뉴는 바로…… 수제 치킨.

치킨은 혼자 먹어도 맛있고, 같이 먹어도 맛있고, 뭐에 찍어 먹어도 맛있고…… 심지어 어떤 치킨은 다음 날 식은 상태에서 먹어도 맛있다.

하지만, 가장 맛있는 치킨은 역시 방금 튀긴 치킨일 거다.

그것도 전생에 치킨집 브랜드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 내가 직접 튀겨 준 치킨.

몸과 마음이 지쳐 있는 혜승이에게는 최고의 간식이 될 것이다.

치킨에는 수많은 종류가 있지만, 오늘 밤엔 클래식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 수많은 치킨의 기본이 되고 중심이 되는 프라이드치킨.

사실 프라이드치킨이 맛있으면 양념치킨은 맛이 있을 수밖에 없다.

마늘 양념을 하든, 치즈 가루를 뿌리든, 간장 양념을 하든 다 맛있어지는 거다.

기본 중에 기본인 프라이드치킨만 맛있다면 말이다.

반계탕을 하고 남았던 닭 두 마리를 먼저 손질한다.

사실 두 마리면 혜승이 혼자 먹기에도 부족한 양이지만, 일단 닭이 좀 크기도 하고…… 그리고 간식이니까…… 적당히 먹고 가라고 해야지 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닭을 부위별로 잘라 내는 일이다.

닭 다리, 닭봉, 날개, 가슴살, 목살 등등.

서로 다른 부위가 민호 삼촌의 중식도를 만나 예쁘게 갈라진다.

아, 민호 삼촌에게는 미리 칼을 빌려 두었다.

고기를 썰 때는 모름지기 칼이 잘 들어야 한다.

안 드는 칼로 정육을 하다가 괜히 고기를 짓이겨서 모양을 망치면 안 되니까.

깨끗한 물에 씻은 닭은 우유에 재워서 잡내를 제거해 준다.

시중에 파는 치킨 튀김 가루를 그릇에 적당량 담고 찬물을 부어 준다.

거품기로 가루와 물을 잘 저어 묽은 반죽을 만들어 낸다.

가루 덩어리가 사라질 때까지 충분히 저어 줘야 한다.

묽은 반죽에 손질한 닭을 넣어 골고루 반죽물을 입혀 준다.

그렇게 반죽옷을 입은 닭을 다시 튀김 가루에 묻혀 준다.

이때 튀김 가루가 충분히 묻도록 닭을 잘 굴려 가면서 골고루 묻혀 준다.

예열된 기름에 이중으로 반죽옷을 입힌 닭고기를 넣어 1차로 튀겨 준다.

조금 큰 사이즈의 닭이므로 15분 정도 튀겨 주면 알맞다.

그렇게 튀겨 낸 닭을 체에 건져 살짝 기름을 빼 준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더 2차로 튀겨 준다.

한 번 튀겨 낸 닭과 두 번 튀겨 낸 닭은 그 튀김옷의 바삭함에서 큰 차이가 난다.

그렇게 두 번 튀겨 낸 닭을 큰 접시에 옮겨 담으면 오늘의 특별 간식 완성.

아.

한 가지 더 남았다.

바로 양배추 샐러드.

지금이야 치킨의 종류도 많아지고, 소스의 종류도 많아졌지만 예전에는 통닭을 사면 늘 따라오던 게 두 가지 있었다.

바로 소금과 양배추 샐러드.

양배추 샐러드라는 건 정말 별다를 게 없다.

채 썬 양배추를 케첩 1, 마요네즈 1의 비율로 무쳐서 만들어 낸 샐러드니까.

그야말로 가장 손쉬우면서도 의외로 맛있는 게 바로 이 양배추 샐러드이다.

치킨과의 궁합도 꽤 좋고.

오늘 하루 지치고 힘들었던 혜승이가 맛있게 먹어 줬으면 좋겠다…… 따위의 걱정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다.

이미 혜승이의 양손엔 닭 다리 하나씩이 들려 있었으니까.

그래…… 오늘은…… 아니, 오늘‘도’ 많이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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