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행복 식당-98화 (98/110)

#98화 역시 가래떡은 (2)

가래떡을 이용해 만들 메뉴는 바로 ‘간장떡볶이’.

떡볶이라는 음식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다.

그렇기에 너무나 많은 변주가 있다.

즉석떡볶이, 짜장떡볶이, 기름떡볶이, 국물떡볶이, 치즈떡볶이, 라볶이 등등.

이게 다가 아니다.

떡볶이의 주재료인 ‘떡’을 뭐로 만들었냐에 대한 사람들의 취향이 크게 갈린다.

밀떡이냐, 쌀떡이냐.

이 논쟁은 때로는 빨간 떡볶이의 고춧가루색처럼 피 튀기는 설전을 낳는다.

밀떡파의 논리는 이렇다.

‘원래부터’ 떡볶이는 밀떡으로 만들었다.

떡볶이의 원류는 분식이며, 분식이란 바로 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뜻한다.

그러니 떡볶이는 밀떡이 옳다.

쫄깃쫄깃하고 탱탱한 밀떡만이 옳다.

반면, 쌀떡파의 논리는 이렇다.

한국인의 오랜 주식은 바로 쌀이다.

쌀떡은 그 주식을 갖고 만든 떡이라 밀떡보다 훨씬 건강에 좋다.

게다가 떡볶이의 원조가 밀떡이라는 말은 역사를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궁중떡볶이 모르는가?

조선 시대에 만들어 먹었던 궁중떡볶이에는 당연히 쌀떡이 들어갔다.

그때는 밀가루는 아예 있지도 않았으니까.

그러니, 쌀떡이 옳다.

쫀득쫀득하고, 부드러운 쌀떡만이 옳다.

이런 논쟁이 있긴 하지만…… 사실 나의 경우는 회색파에 가깝다.

밀떡도 먹고 쌀떡도 먹는다.

밀떡은 밀떡대로 좋아하고, 쌀떡은 쌀떡대로 좋아하고.

밀떡이 있으면, 밀떡을 먹고.

쌀떡이 있으면, 쌀떡을 먹고.

오늘은 쌀떡이 있기 때문에, ‘궁중떡볶이’라고 불리는 간장떡볶이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마침 떡볶이를 먹어 줄 사람들이 딱 간장떡볶이를 선호할 만한 사람들이다.

매운맛에 취약한 외국인 두 사람.

아무래도 순한맛을 좋아하는 어르신 두 분.

주재료인 떡을 제외한 몇 가지 재료는 가게에 가서 몰래 가지고 나왔다.

뭐, 굳이 숨길 건 없지만…… 사실 숨길 필요가 있었다.

바로 아귀에게서…… 떡볶이를 만든다는 사실을 숨겨야 했다.

아귀가 아는 순간 우리 몫의 떡볶이는 홀연히 사라지고 말 테니까.

뭐든지 고기가 들어가야 맛있듯이, 간장떡볶이에도 고기가 들어가야 그 맛이 배가된다.

여기에는 불고기용으로 얇게 썰어놓은 고기를 쓰는 게 좋다.

돼지고기도 상관없지만 이왕이면 소고기가 좋겠다.

명색이 ‘궁중’떡볶이니까 말이다.

얇게 썬 소고기 목심을 프라이팬에 먼저 볶는다.

고기가 가볍게 익기 시작하면 물, 설탕, 떡을 넣고 끓인다.

떡은 어떤 모양으로 해도 상관없지만, 이왕이면 양념이 잘 배도록 떡국떡 모양으로 잘라 넣었다.

물이 끓으면 당근, 양파, 버섯을 약간 넣고 볶아 준다.

어느 정도 채소가 익으면 이제 간을 할 차례.

몇 스푼의 진간장을 넣어 주고, 간마늘도 넣어 섞어 준다.

이제야 비로소 떡볶이에 갈색빛이 돌기 시작한다.

이때 색깔을 더 내고 싶으면 중국 간장인 노두유를 살짝 넣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단, 노두유는 짠맛보다는 고소하고 달콤한 맛을 내므로 색깔이 진해졌다고 해서 진간장의 양을 줄일 필요는 없다.

떡이 다 익으면, 색을 다채롭게 해 줄 피망과 대파를 넣어 주고, 후춧가루를 약간 뿌려 준다.

불을 끄고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무심하게 휘익 둘러 주면 간장 떡복이 완성.

완성된 떡볶이에 보기 좋게 통깨를 착착 뿌려 줘도 좋다.

“자, 떡볶이 드세요.”

“흐음…… 이게 무슨 냄시당가? 아니, 이것이 떡볶이당가?”

“네. 간장떡볶이에요. 궁중떡볶이라고도 하고요.”

“흐미…… 냄새 허벌나구마잉. 근디 무슨 떡볶이에 고기가 들어간댜? 이 채소들은 또 뭐고?”

“궁. 중. 떡볶이잖아요. 왕이 먹었던 음식. 그러니까 고급지죠, 당연히.”

“아…… 그렇구마잉. 흐으…… 냄시 좋다.”

종훈 아저씨가 말을 하고 있는 사이 빅터의 손은 이미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젓가락에 가장 먼저 잡힌 건 역시 고기.

쩝쩝.

한 움큼 고기를 씹던 빅터가 말했다.

“와…… 선우! 이거 완전 불고기 맛이야. 불고기!”

“맞아. 불고기야. 사실 간장떡볶이 양념이 거의 불고기 양념이랑 같거든.”

“아…… 역시! 음…… 이거 너무 맛있다! 떡도 완전히 쫀득쫀득해.”

리자준은 거대한 몸집을 가진 소식가이자 미식가답게 고기 한 점, 떡 하나, 채소 하나씩을 자신의 접시에 옮겨 담았다.

그는 무슨 보석세공품을 바라보듯 간장에 졸여진 떡을 유심히 살폈다.

“떡 모양이…… 얇고…… 넓어…… 가래떡이랑 식탐…… 아니, 식감이…… 완전 틀려.”

“틀려가 아니라, 달라.”

“아, 달라. 그러니까…… 이 떡은…… 쫄깃쫄깃한 껌을 씹는 것 같아…… 아주 재미있고…… 맛이 좋아. 그리고, 선우.”

“응?”

“여기에 혹시…… ‘라오처우’ 들어갔어?”

라오처우, 노추(老抽).

중국 간장인 노두유를 다르게 부르는 명칭이다.

깊고 진한 색을 내기 위해 아까 첨가했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역시…… 어디에선가 고양이의 맛이…… 느껴진다…….”

“고향. 고양이가 아니라.”

“아, 고향.”

리자준 덕분에 잠깐 고양이의 맛에 대해서 상상해 버렸다.

아직 제대로 된 이름도 붙여 주지 못한 옥상의 삼색이를 생각하니 갑자기 끔찍해졌다.

“이 샤프. 이거 완전히 별미인디? 이걸 궁중떡볶이라고 하는겨?”

만국 아저씨가 입을 쉬지 않고 움직여대며 묻는다.

“네. 입맛에 맞으시죠?”

“아주 딱인디. 아니, 어제 딸애가 무슨 떡볶이를 사왔다고 해서 한입 먹었는디…… 하이고오…… 무슨 불덩이를 먹는 줄 알았구먼. 뭔 놈의 떡볶이가 그렇게 매운지.”

“혹시…… 엽전떡볶이 드셨어요?”

“아, 맞아. 그거! 거의 사람이 먹을 게 아니던디?”

“후후. 그 떡볶이가 좀 맵긴 하죠.”

그렇게 행복한 시간이 이어지고 있는데, 갑자기 방앗간 전체가 어두워졌다.

아직 해가 질 때가 안 됐는데…… 하고 문 쪽을 보니까 웬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그 그림자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그림자가 뿜어내는 기세는 결코 사람의 그것이 아니었다.

귀신이나 악마 또는 도깨비의 느낌이었다.

악마는 스스로의 목소리로 그 정체를 밝혔다.

“오빠…… 일 도와주러 간다면서요?”

“응? 그렇지. 종훈 아저씨 일 도와주러…….”

“근데 그건 뭐예요?”

“아…….”

“내가 다 봤어요. 주방 다 털어 가는 거. 프라이팬이랑 고기랑 채소랑…… 양념장도 다 털어 가는 거…… 그게 다 혼자 떡볶이를 먹기 위해서…….”

“야, 그래도…….”

말은 바로 해야지.

우리집 건데 내가 ‘털어’ 간 건 아니지.

그럼 내가 도둑이 되잖아.

그리고, 내가 언제 ‘혼자’ 먹었냐?

그때 지원군이 등장했다.

“오! 우리 유 배우! 영진시장의 자랑스러운 보배, 유 배우 아니당가?! 얼른 여기 앉으소. 같이 떡볶이 먹게잉.”

“정말요? 저도 같이 먹어도 돼요?”

아귀 유혜승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반색을 하며 냅다 빈자리에 앉았다.

먹을 것 앞에서는 진짜 단순하기가 아메바 저리 가라인 저, 저…… 아귀…….

그나마 다행인 건…… 가래떡이 워낙 많아서 떡볶이도 그만큼 많이 했다는 것.

물론, 열심히 일한 사람들의 떡볶이를 하나도 일을 하지 않은 혜승이가 가장 많이 먹었다는 게 함정이지만.

그건 그냥 위장 크기의 차이라고 해 두자.

유혜승은 다들 부른 배를 두드리는 와중에도 빈 프라이팬을 박박 긁고 있는 중이니까.

가래떡으로 벌인 미친 탄수화물 파티가 끝났다.

종훈 아저씨에게 도움을 줬다는 뿌듯함과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배를 보니 정말이지 몸과 마음이 모두 풍성해졌다.

그리고, 역시 가래떡은…… 어떻게 먹어도 맛있다.

* * *

영진호프가 있던 자리에 새로운 간판이 달렸다.

[먹태와 여름밤]

간판 아래에는 조그맣게 이런 문구도 붙어 있었다.

- 영진동 본점

창성이 형은 흐뭇한 표정으로 간판을 올려다봤다.

“가게 이름…… 참 멋지지 않냐?”

“누가 들으면 형 혼자 지은 줄 알겠네?”

“뭘 또 그렇게 따져…… 암튼 멋있잖아. 먹태와 여름밤이라니…….”

여러 가지 이름을 두고 고심했다.

후보군에는 ‘먹죽사(먹태에 죽고 못 사는 사람들)’도 있었고, ‘먹태와 맥주’도 있었고, ‘먹먹한 밤(먹태 먹는 한여름 밤)’도 있었다.

‘먹태와 여름밤’과 마지막까지 겨룬 건 바로 ‘먹먹한 밤’이었다.

시적인 정취도 있으며, 뭔가 분위기 있는 것이 괜찮지 않냐는 여러 사람의 생각이었다.

물론, 나도 사람들의 그런 생각에는 동의했다.

하지만 결국…… 사업가로 살아왔던 전생의 비즈니스맨 기질이 ‘먹태와 여름밤’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가게 이름이라는 건 결국 ‘멋’보다는 ‘맛’이었다.

이름에서 ‘맛’이란 무엇인가.

결국 가게 간판만으로도 사람들의 입맛을 훅 잡아당길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먹먹한 밤’은 뜻은 좋지만, 지나치게 은유적이고, 은유적이라는 말은 곧 사람들이 쉽게 그 의미를 알아채지 못한다는 거였다.

대중적인 취향을 고려할 때 그 이름이 탈락할 수밖에 없던 이유였다.

오늘은 영진호프가 그 이름을 바꾸는 날이자, 스몰비어 브랜드 [먹태와 여름밤]이 새롭게 시작하는 날이다.

오픈 기념으로 맥주를 먹으면 먹태가 서비스로 나가는 날.

가게 문을 열자마자 익숙한 얼굴들이 먼저 들이닥쳤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저희 왔어요!”

밝게 인사를 하며 처음으로 들어온 사람은 바로 안대훈, 이수미 커플.

두 사람은 늘 그렇듯이 서로 떨어질 수 없다는 듯 바싹 붙어 다녔다.

두 사람의 뒤에 이초희의 모습도 보였다.

가볍게 인사를 하는 이초희에게 물었다.

“광재는 안 왔어요?”

이초희는 턱짓으로 뒤를 가리켰다.

그곳에 주광재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붙어서 주광재와 같이 오고 있는 사람은 바로, 정인태였다.

“안녕하세요. 저희 왔어요.”

저희?

이 정도면 거의 커플인데?

두 사람은 지난번 합석 이후로 완전히 서로에게 반해 버린 듯했다.

사람은 결국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음식에 대한 두 사람의 파장이 꽤 비슷했던 거다.

물론, 두 사람에게는 이렇게 와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마음뿐이다.

술집과 두 사람은 전혀 어울리지 않으니까.

물론, 정인태는 아주 가끔씩 거나하게 술에 취할 때가 있긴 하지만.

이후에도 종훈 아저씨, 만국 아저씨를 비롯한 시장 사람들과 선우네 백반의 단골인 학생들이 차례로 가게에 방문했다.

역시 장사를 처음 시작할 때는 ‘지인빨’, ‘오픈빨’이 최고이다.

물론, 그 ‘빨’만 믿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거라고 착각을 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래도 처음에는 아는 사람이나마 이렇게 손님이 몰리는 게 큰 힘이 된다.

창성이 형도 그런가 보다.

손님들을 맞이하는 그의 얼굴에 시종일관 웃음이 끊이지 않는 걸 보면.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뒤를 돌아보니 재동이가 씨익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백윤호가 서 있었다.

자식, 오랜만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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