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켄터키 할아버지의 빠, 빨간 맛 (2)
콜록. 콜록.
김흥범은 김대준의 낙지덮밥에서 풍겨 오는 냄새만으로도 연신 기침을 해댔다.
“허. 허. 허. 괜찮습니까?”
“콜록. 콜록. 네, 네.”
괜찮다고 말은 했지만, 안 괜찮다.
진짜 괜찮으면 이렇게 기침도 안 했겠지.
이건 뭐 거의 수십 년 전에 군대에서 겪었던 화생방 훈련이 생각나는 수준이었다.
도대체 저런 음식을 사람의 입으로 어떻게 먹는다는 말인가.
그것도 왠지 달고 부드러운 음식만 좋아할 것 같이 생긴 저 켄터키 할아버지가.
김흥범의 생각과는 다르게 김대준의 입 안은 고인 침으로 가득했다.
칼칼함을 넘어선 강렬한 매운 향.
그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가슴속에 쌓인 스트레스가 얼마간은 날아가는 듯했다.
김대준은 낙지덮밥을 크게 한 숟가락 떴다.
낙지, 양파, 청양고추, 깻잎 등의 채소가 골고루 들어갈 수 있도록 여러 번 숟가락질을 했다.
입에 넣을 때 흘러내리지 않도록 그릇에 꾹꾹 눌러 밥을 단단하게 뭉치는 일도 잊지 않았다.
꿀꺽.
대망의 첫입이 김대준의 입으로 들어갔다.
볶음 양념에 닿은 혀가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가히 혀가 아려올 정도의 매운맛.
‘미치도록 매운맛’이라는 직원의 엄포는 허언이 아니었다.
정말 사람을 미치게 하는 매운맛이었다.
정말 미칠 것 같았다.
너무 좋아서…….
혀를 아리는 고통은 순식간에 쾌감으로 치환됐다.
주르르.
이마에서 솟아오른 땀이 흘러내림과 동시에 기분 좋은 쾌감이 몸 안에서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순간만큼은 다른 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오직 낙지덮밥과 내가 있을 뿐.
자신들의 기득권만 생각하는 교수들도, 그 교수들과의 답답하기만 했던 회의 분위기도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김대준은 오직 숟가락을 움직여 밥을 먹는 행위, 그 행위에만 집중했다.
그 행위 속에서 김대준의 마음은 편안해졌다.
매운맛이 주는 고통으로 스트레스가 주는 고통을 부숴 버렸다.
미치도록 매운 이 맛이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고통이겠지만, 김대준에게는 어떤 것보다도 더한 치료제였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랬다.
한편, ‘일반’ 낙지볶음을 먹고 있는 김흥범은 연신 호호- 거리면서 콩나물무침을 집어 먹기에 바빴다.
‘분명히 일반이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매운 거야?’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메뉴가 적힌 칠판을 보는데…… 거기에는 떡하니 이렇게 적혀 있었다.
- ‘매콤’ 낙지덮밥
젠장.
원래가 매운 거였네.
김흥범은 낙지덮밥 한 번에 콩나물 무침 한 움큼. 계란말이 한 입, 동치미 물김치 한 숟갈을 들이켰다.
이건 뭐 낙지덮밥을 먹는 건지, 그냥 백반을 먹는 건지.
메인 메뉴인 낙지덮밥보다 매운맛을 중화시키기 위해 같이 내놓은 반찬들을 더 많이 먹는 그였다.
연신 호호- 거리면서 겨우 낙지덮밥을 먹는 그에게 맞은편의 김대준의 모습은 가히 신처럼 느껴졌다.
김대준은 아무런 말도 없이 낙지덮밥만 반복적으로 먹을 뿐, 콩나물 무침 한 번 집어 먹은 적이 없었다.
저거 냄새만 맵지 실제로는 하나도 안 매운 거 아냐?
이런 의심까지 들 정도였다.
하지만, 중간중간 풍겨 나오는 강렬한 매운 향취는 그의 의심을 사그라들게 했다.
지렇게 매운 냄새가 나는데 어떻게 안 매울 수가 있겠어?
저렇게 푸근한 인상을 하고 저렇게 매운 걸 먹는 김대준의 모습이 김흥범에게는 신기할 따름이었다.
* * *
‘손바닥’에 내기를 건 선우네 백반의 여자 셋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켄터키 할아버지의 반응이 평소와는 매우 다르기 때문이었다.
평소라면 한 입 먹은 후, 허. 허. 허. 허. 허.
두 입 먹은 후, 허. 허. 허. 허. 허.
너무나 자주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에 때로는 일부러 예의상 저러나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오늘은…….
“왜 한 번도 웃지를 않으시죠?”
“그러게 말이야…… 오늘은 허. 허. 허. 도 없으셨지?”
허. 허. 허. 는 음식의 만족도와는 관계없이 김대준이 예의상 내는 웃음소리이다.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김대준만의 소통 도구의 역할을 하는.
“네. 세 번짜리도 없었어요. 왜일까요? 역시 너무 매워서 그런 걸까요?”
“흐음…… 이렇게 되면…….”
“완전 꽝이네. 우리 재동이까지 데려가서 남자들 좀 신나게 부려 먹으려고 했는데.”
“그러게. 진민호 씨도 집사람 데려온다고 했는데…… 이거 그럼 여자들 면목이 안 서는데…….”
세 여자의 걱정과는 관계없이 김대준은 그저 묵묵히 먹는 행위만을 반복하고 있다.
확실히 평소와는 다른 모습의 그였다.
웃음소리는 제쳐 두고라도…… 평소에는 김흥범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간간히 웃기도 하면서 식사를 하는 김대준이었으니까.
탁.
낙지덮밥을 깨끗이 비운 김대준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는 티슈를 집어 조심스럽게 입 주위를 닦아 냈다.
그리고, 역시 식사를 마친 김흥범에게 말했다.
“학과장님, 대학교의 역할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네?”
갑작스러운 질문에 김흥범은 당황했다.
김대준이 이렇게 무거운 질문을 한 적이 있었던가?
김대준과 나눴던 얘기들은 보통 이랬다.
지난주에 가족들이랑 뭐 먹은 얘기.
예전에 유럽 여행 가서 뭐 먹은 얘기.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던 돈까스 얘기.
뭐, 이런 것들뿐이었는데…….
흠흠.
김흥범은 목을 한 번 가다듬고 대답했다.
왠지 김대준에게서 장난스러운 평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이건 저 질문에 장난은 요만큼도 들어있지 않다는 말이다.
“중등 교육을 마친 학생들을 고등 교육을 통해 전문 인력으로 양성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음…… 학생들을 전문 인력으로 양성하는 거라…… 그러면 학교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학교의 주인이요?”
“아, 선택형으로 문제를 바꿔야겠군요. 학교의 주인은 교수입니까, 학생입니까?”
“으음…….”
김흥범도 안다.
여기서의 모범 답안은 무조건 학교의 주인이 학생이라고 말하는 걸 테지.
하지만, 그런 뻔한 답을 들으려고 이런 걸 물어보는 건 아닐 거다.
김대준은 지금 김흥범에게 어떤 대답을 ‘요구’하고 있다.
어쩌면 그 ‘요구’는 커다란 불만에서 나온 걸 수도 있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인데, 왜 너희 교수들은 너희가 학교의 주인인 것처럼 행세하느냐.
물론, 그 ‘교수들’에 김흥범은 없다.
현재 김대준 총장에 반하는 기득권 세력들.
교수회의 때마다 김대준에게 태클을 걸어 대는 그 교수들을 얘기하는 걸 테니까.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나는 선생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나의 벗들에게서는 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나, 나의 제자들에게서는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는 그저 이 말을 늘 가슴에 새기고 학생들을 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저는 학생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그러면서 느낍니다. 여전히 제가 부족하다는 사실을요.”
김흥범의 말이 끝나고, 테이블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어느 모로 보나 백반집에서 나눌 얘기는 아니었지만, 김대준의 진중한 표정은 그깟 장소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오히려, 김대준의 그분위기가 테이블의 분위기 자체를 바꾸고 있었다.
묘하게 압박을 받는 느낌이 드는 그때, 김대준의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허. 허. 허. 우문현답이로군요. 제 쓸데없는 질문에 그렇게 완벽한 답을…… 역시 학과장님 답습니다. 허. 허. 허.”
“아, 아닙니다.”
갑작스럽게 바뀐 김대준의 분위기에 김흥범은 어찌할 줄 몰랐다.
오늘은 여러 모로 앞에 있는 김대준이 어려운, 그런 김흥범이었다.
* * *
“맛있게 드셨어요?”
계산을 하려는 손님들에게 하는 이 질문.
오늘 김대준 총장에게 질문을 하는 이 순간의 무게감은 평소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선우네 백반 식구들의 관심은 김대준에게로 쏠려 있었다.
과연 그는 웃을까?
평소처럼 너털웃음을 지을까?
이 웃음 하나에 사소하지만, 중요한 식구들의 운명이 달려 있다.
허. 허. 허.
김대준의 웃음이 슬로우비디오처럼 재생되고 있었다.
웃음소리 한 번, 한 번에 명운이 왔다갔다하는 기분이었다.
세 번의 웃음소리가 끝났을 때 손등에 운명을 건 남자들은 환호했다…… 고 생각한 순간, 빈 공백을 채우는 김대준의 목소리.
허. 허. 허. 허.
무려…… 일곱 번의 웃음.
이건 역사에 없던 일이었다.
김대준이 만족한 식사를 하고 갔을 때 늘 터뜨리는 다섯 번의 웃음.
김흥범의 얘기로는 이 다섯 번의 웃음도 흔치 않은 거라고 했다.
근데, 일곱 번?
이건 그냥 만족을 넘어선 대만족이라는 뜻이었다.
“최고였습니다. 미치도록 맵다는 게 미치도록 좋다는 뜻이더군요. 오늘의 낙지덮밥은 자주자주 생각날 것 같습니다. 허. 허. 허. 허. 허. 허. 허.”
“아…… 그러셨군요.”
일곱 번의 웃음소리를 듣고도, 나는 차마 웃지 못했다.
저쪽의 유혜승이 아주 입이 찢어질 정도로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것과는 달리…….
그나저나…… 진짜 매운 거 잘 드시네.
저 순하디 순한 얼굴로 어떻게 그렇게 매운 걸 잘 드실 수가 있는 거지?
* * *
오랜만에 게스트북에 올라온 김흥범의 칼럼을 확인했다.
[미치도록 매운 음식, 고통을 통증으로 잊는 방법]
[나는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다.
이건 외식경영학과 교수이자 음식 칼럼니스트로서는 꽤 아쉬운 일이다.
아니, 아쉬운 정도를 넘어서 아킬레스건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래서 많이 노력했다.
일부러 며칠 동안 매운 것만 먹어보기도 하고, 식탁에 늘 청양고추를 올려 보기도 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타고난 내 몸은 솔직했다.
나는 그냥 매운 걸 못 먹는 사람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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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어떤 분은 매운 걸 정말 잘 드신다.
나도 이걸 오늘에서야 알게 됐는데…… 그분은 정말이지 매운 걸 하나도 못 드시게 생겼다.
유명 치킨집의 마스코트 할아버지를 닮은…… 몸 전체가 마치 순두부처럼 생긴 그분은 매운 것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외모를 가지셨다.
그런 그분과 오늘 엄청나게 매운 음식을 같이 먹었다.
그분은 말도 안 되게 잘 드셨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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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후 단골 카페에서 그분과 얘기를 나눴다.
그분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매운 걸 잘 드시냐고.
그분이 답했다.
나도 늘 그런 건 아니라고.
하지만, 오늘은…… 매운 게 아주 입에 착착 들러붙더라고.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음식을 먹었더니 그 매운맛의 고통과 함께 스트레스도 날아가는 것 같더라고.
말 끝에 그분은 큰 웃음을 지으셨다.
허. 허.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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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꽤 높으신 자리에 있는 분이다.
그렇지만, 그분이 하는 행동은 전혀 그렇지 않다.
언제나 낮은 곳을 살피시고, 약자를 챙기신다.
그래서 그런지 백반집의 낙지덮밥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그분의 방법조차 내게는 매우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분은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낮은 곳에서 생각하는 게 몸에 밴 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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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 것이 우리 혀에 닿으면 우리 몸은 그걸 통증으로 인식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 통증을 잊게 하기 위해 엔돌핀을 분비시킨다고 한다.
엔돌핀은 통증의 완화와 함께 쾌감을 느끼게 해 주는 호르몬이다.
그러니, 매운 것을 먹으면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건 매우 일리가 있는 말이다.
오늘 그분이 엔돌핀 과다로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그분은 그럴 자격이 있는 분이니까.]
칼럼을 다 읽은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켄터키 할아버지가 오늘 미치도록 매운 걸 먹고 싶었던 이유가 대강 짐작이 갔다.
역시…… 스트레스 받을 땐 매운맛이었던 거다.
그나저나…… 김흥범은 왜 그분을 굳이 ‘그분’이라고 표현한 걸까?
어차피 이 칼럼을 읽는 누가 봐도 그분은 켄터키 할아버지인 게 너무 티가 나는 걸.
완벽해 보이는 김흥범에게도 이렇게 어설픈 구석이 있었구나.
괜히 피식- 웃음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