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2화검성은 가상현실을 해본다
* * *
#2화
난 침대에서 시야를 벽에 향하게 한 채로 누워 있었다.
터벅터벅.
누군가의 발걸음이 점점 나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현아야. 아침… 먹을래?”
여성의 것으로 추정되는 고운 미성이 들려왔다.
‘괜히 말 하다가 정체 탄로 나는 거 아니겠지…?’
현재의 몸 주인의 말투나 행동, 그리고 지금 나에게 말을 걸고 있는 여성을 어떻게 칭하는 지도 모른다.
여기서 괜히 연기해보겠답시고 한마디 하다가 들킬 위험이 있다.
“엄마가 오늘은 가볍게 샐러드라도 만들어놨어. 현아는 몸이 약하니까 뭐라도 먹어야지….”
지금 나에게 말을 걸고 있는 여성.
그녀는 이 몸의 어머니였던 모양이다.
지금 하는 말을 들어보면 아무래도 이 몸은 상당히 약한 모양.
일단 지금은 내 몸이니까 밥은 먹어야하려나….
나는 언제나 건강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건강을 챙기지 않으면 뭣도 안 되니까.
스륵…. 스륵….
나는 천천히 이불을 걷어내며 상체를 일으켰다.
“어…?”
내가 일어서자 여성, 어머니가 나를 바라보며 눈을 크게 떴다.
그녀는 나를 보고 놀란 모양인데 나도 은근 놀랐다.
그녀의 외모에 감탄했기 때문이다.
감히 중학생 정도의 아이를 가지고 있는 여성이라 생각되기 힘든 액면가였다.
‘엄청 젊어 보여….’
대충 30대 초반 정도려나.
심지어 아름다웠다.
지금 내 몸은 예쁘면서 귀여운 것이 더더욱 강조되는 외모인데.
그녀는 무언가 매혹적이며 어른스러운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내 몸의 머리카락이 그녀에게서 물려받은 것인지 현재 나와 같은 은발이었다.
“….”
“혹시…. 먹을 거니?”
감상하는 시간이 너무 길었던 걸까 그녀가 나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끄덕.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자 그녀는 내가 밥을 먹겠다는 것이 그리도 기쁜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그래! 그럼 1층에 만들어놨으니까 내려가자.”
‘일단 지금은 어머니니까…. 어머니라고 생각할까.’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일단 그렇게 자기최면을 했다.
애초에 나는 어머니라는 존재를 가져본 적이 없었으니까.
“…일단 엄마 먼저 내려가 있을게?”
어머니가 뭔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흘겨보고는 방 밖으로 걸어 나갔다.
좋아 그러면 나도 이제 일어나볼까.
‘몸이 무거워….’
침대에서 일어나자 나온 감상이었다.
‘오러도 못 쓰고….’
몸이 무겁다는 것을 느끼자마자 마력을 돌려 신체를 강화하려 했으나 마력이라고는 한줌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마력이 없는 건 지구라서 그런 것 같고…….
아무래도 몸이 약하다는 건 진짜였던 모양이다.
***
“잘 먹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식사를 시작했다.
어머니가 해주신 음식은 싱싱해 보이는 샐러드였다.
‘풀이라….’
잠시 망설였지만 나는 드레싱이 되어있는 샐러드를 포크로 찍어서 입에 넣었다.
아삭.
오. 맛있다.
내가 원래 풀은 잘 안 먹는 타입인데 이 것만큼은 달랐다.
드레싱도 드레싱이지만 엄청 아삭한 것이 좋은 환경에서 재배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냠냠.
그렇게 몇 분간 포크로 찍고 입에 넣는 걸 반복했을까.
누군가가 부엌으로 다가오고 있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
“……?!”
누군가 싶어서 고개를 살짝 올려 보니 은발을 가진 남성이었다.
키도 크고 마치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것이 살짝 재수 없었다.
‘천마도 대충 저런 타입 이었던가….’
겉으로 보기에는 근육도 별로 없어 보이고 연약하게 생긴 게 뭐가 그리 좋다고 여자들이 꺅꺅 거리던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 오늘은 내려와서 먹네?….”
은발의 남성은 무언가 당황한 듯 말을 조금씩 더듬으면서 말했다.
뭔지 내가 뭔가 실수했나?
호, 혹시 나 방에서는 절대 나오지 않는 방콕녀였나…?
그러면 어머니가 나에게 한 태도가 이해가 되었다.
“그냥 오늘은 내려와서 먹고 싶었어.”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변명이었다.
아, 혹시 존댓말로 말해야하나?
“내려와서 먹을 줄 알았으면 오빠도 같이 먹을 걸 그랬네....”
아무래도 은발의 남성은 내 오빠였던 모양이다.
어머니를 생각해보면 설마 아버지인가 싶었는데 역시 그건 아닌 모양이다.
하긴, 저건 젊어도 너무 젊지.
그런데 뭔가 굉장히 아쉬운 것 같아 보였는데…….
“아니다. 샐러드정도는 먹어도 되겠지.”
이번에는 뭔가 들뜬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식탁위에 있는 음식 볼에 있는 샐러드를 다른 집게로 다른 작은 그릇에 옮겨 담았다.
거기에 냉장고에서 소스까지 꺼내서 샐러드에 뿌리고는 내 옆에 앉았다.
“오늘은… 기분 어때?”
뭐지 그, 그건가?
하우 알 유?
아임 파인 땡큐! 앤유?
어우…. 영어도 오랜만이라 전부 잊어버렸다.
그래도 어째서인지 이 대화만큼은 잊혀지질 않네.
“괜찮아 고마워.”
“...!”
좋아. 성공적으로 ‘아임 파인, 땡큐.’를 말했다.
내 대답에 오빠는 뭔가 놀란 듯 살짝 움찔했다.
살짝 기뻐 보이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다행이네. 오빠도 오늘은 기분이 좋다.”
“응.”
그 이후로 대화는 없었다.
“잘 먹었습니다.”
아. 그런데 조금밖에 안 먹었는데 배가 부르다.
이거 위가 너무 작은 거 아니야?
“아. 그거 오빠 줘. 오빠가 설거지할게.”
내가 다 먹은 그릇을 세면대에 둘려고 하자 오빠가 내 그릇을 받아갔다.
이거 굉장히 친절한 오빠인걸.
나도 이런 형 있었으면 참 편했을 텐데.
원래 지구에선 나 혼자였다.
고아원에서 자라 중학교 때 독립했으니까.
‘일단 정보 수집이다.’
나는 먼저 거실로 가보기로 했다.
내가 아는 지구에 한국이라면 거실에 TV가 있을 것이다.
먼저 TV를 통해서 현재 지구의 상황을 알아보는 것이다.
‘집이 꽤나…. 아니, 많이 크네.'
주방을 볼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굉장히 잘 사는 집인 것 같다.
설마 내가 죽기 전에 한 소원이 전부 이루어진 건가?
이럴 거면 그냥 몸 전부 치료시키기고 지구로 보내 달라할걸.
“리모컨이….”
역시나 소파위에 있구만.
나는 리모컨을 들어 전원버튼을 눌러 TV를 켰다.
오늘의 뉴스입니다.
오오. 딱 맞게 뉴스가 틀어졌다.
1년 전에 출시한 ‘OO회사’의 ‘다크 오브 판타지’라는 게임이 매우 화제입니다.
게임?
보통 뉴스에서 저런 식으로 게임을 언급 하는 건 흔치 않은데 얼마나 유명 한 거지?
이번에 새로 만들어진 ‘자동 신체 운동’기능을 이용하여….
“음…? 자동 신체 뭐?”
이해가 잘 안 되는 단어에 놀라 TV 화면을 보니 어떤 남성이 넓은 초원에서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재빠르게 몸을 움직이며 발로 허공을 차보기도하고 점프하며 공중에서 한바퀴 뛰어보기도 했다.
‘오오. 몸이 굉장히 좋…지는 않은데?’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 건 화면속의 남성의 움직임에 비해서 몸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자 화면이 전환되었다.
방금 영상 속에서 본 남성이 캡슐에 누워 있었다.
흔히 SF영화에서나 보던 그 캡슐이 맞다.
매일매일 발전하는 가상현실게임. 그 개발자인….
‘가상현실게임?’
오우 맙소사 설마 진짜 내 소원이 전부 이루어질 줄은 몰랐다.
그러면 설마 지금이 지구의 미래라는 거야?
“가상현실게임… 해보고 싶네.”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 한마디.
“어? 현아 게임 해보고 싶어?”
“으, 응?”
갑자기 내 뒤에서 나타난 오빠가 물었다.
“저번에 설치해준다 했는데 싫다고 해서…. 절대 안할 줄 알았는데. 역시 현아도 가상현실게임의 매력에 빠져들고 싶은 거지?!”
뭐지. 뭔가 들뜬 것처럼 보이는데.
기분 탓인가.
“그럼 오빠가 바로 캡슐 주문해줄게! 하는 방법은 오빠가 다 가르쳐 줄게.”
“어? 어….”
“근데 캡슐은 대충 일주일 정도 걸리니까 좀 기달려야 할거야. 아니면 오빠 걸로 좀 해볼래?”
음…. 이걸 바로 해봐?
아니다 일주일정도는 참을 수 있으니 그때를 기약하자.
“아니 괜찮아. 일주일 뒤에 해볼게.”
“…알았어. 일단 주문할게.”
오빠가 핸드폰을 들어 앱으로 캡슐을 주문하는 것이 보였다.
소파에 앉아서 주문하려하자 핸드폰을 슬쩍 보는데….
[OO캡슐1.9.5v]
구매 수량 : 1
제품 색상 : White
추가 세팅
1. 온도 조절 기능+
2. 공기 청정기+
3. 신체 안정 기능+
.
.
.
가격 : 13,000,000 원
‘어…?’
뭐지? 내가 판타즈마에 있는 사이에 돈의 가치가 달라진 건가?
지금 오빠가 주문하려는 게 천 삼백만원이라고...?
“그, 그렇게 많이 써도 되는 거야…?”
“음? 왜?”
게다가 저 ‘추가세팅’.
도대체 몇 개를 추가 하려는 거야!
대충 보니 세팅 하나에 몇 백만 원은 붙고 있었다.
“이 정도는 괜찮아. 용돈 좀 아끼면….”
이게 용돈으로 커버가 되는 수준인거야…?
오우 금수저라니.
여신님 감사합니다! 제 꿈이 이루어졌어요!
이제 남자로만 변하면 완벽하네요!
***
그 이후로는 매일 같은 일상이었다.
아침과 점심은 오빠와 식사를 하고 저녁에는 엄마까지 끼어서 함께 먹었다.
아침에 엄마는 왜 같이 안 먹는지 물었는데 일 때문에 일찍 나간다고한다.
아빠는… 사고 때문에 내가 어렸을 때 돌아갔다고 하셨고.
“일단 그 동안 알아낸 건….”
바로 이 몸에 걸린 병들이었다.
“시발 왜 나가려 할 때마다 생지랄을 하나했더니 뭐? 뱀파이어 증후군?”
일명, 포피리아(porphyrias)라는 이 병은 살이 태양빛에 닿으면 피부가 벗겨지고 물집이 나며 심한 고통에 휩싸인다는 것이었다.
“이 창문은 특수 제작된 유리고 내가 실수로라도 열까봐 잠가둔거고....”
그 탓에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는 상황이었던 모양이다.
“피부가 비정상적으로 하얗다 했더니 이것도 포피리아 병때문이라하고...”
나는 검지로 윗입술을 끌어올리고는 거울을 보았다.
‘송곳니라….’
이것도 포피리아 때문 이라한다.
‘왠지 진짜 뱀파이어를 보는 느낌인걸....’
판타즈마에서도 많이 본 몬스터가 바로 뱀파이어. 흡혈귀였다.
날카롭게 튀어나온 송곳니, 아름다운 은발, 거기에 새하얀 피부.
“외모까지 갖춰지니 뱀파이어 완성!”
이제 날개만 있으면 진짜 뱀파이어 그 자체다.
“그래…. 밖에 나갈 일이 없으니 속옷도 안 입어도 되니까 얼마나 좋아.”
지금은 여자지만 아무래도 이전에 남자였던 기억 때문에 속옷을 입는 것 자체가 낯설었다.
집에서도 반바지랑 반팔 티만 입고 있고.
“이제 뭐하냐.”
컴퓨터를 할려고 했으나 암호를 몰라서 그냥 내버려두고 있었다.
핸드폰은 이 몸의 주인이 그냥 사용을 안 하고.
슬슬 괴로워지는 이 심심함에 몸부림치고 있을 때 기다리고 기다리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아야. 캡슐 왔어. 문 열어도 돼?”
“으, 응!”
오빠가 문을 열자 두 명의 남성이 커다란 캡슐을 들고 들어왔다.
오 저게 문으로 들어오네?
“자. 설치 완료 했습니다. 딱히 주의 해주실 건 없네요. 기능이란 기능은 전부 들어가서....”
설치기사는 종이에 뭔가 끄적이다가 나에게 주었다.
“사용설명서입니다. 혹시나 문의 해주실 게 있다면 여기에 연락해서 이 이름으로 설치했다고 말해주세요.”
설치 기사는 그대로 방을 나갔다.
“오오! 캡슐!”
나는 쌍수를 들어 기뻐했다.
“하하. 그렇게 좋아?”
“응!”
나는 곧바로 캡슐에 누웠다.
“그대로 문을 닫고 여기 위에 있는 헬멧써. 그리고 그냥 하고 싶다는 말만하고 하면 돼. 기계가 알아서 인식해서 켜줄 거야.”
나는 옆에 있는 버튼을 눌러서 문을 닫고 헬멧을 썼다.
그리고 바로 말했다.
“시작해줘.”
[캡슐을 가동시키겠습니까?]
“응.”
[편안한 자세를 취해주세요. 10초 후에 가동됩니다.]
나는 기계음성의 말에 따라 편안한 자세로 누웠다.
그리고 10초가 지나자 시야가 암전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