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 45화불길의 전조
* * *
#45화
아침 9시.
“으아아암…….”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눈을 뜨고 옆을 보니 지은이 엎드린 채로 잠들어 있는 것이 보였다.
여전히 알몸이었지만 이불도 덮고 있었고 앞을 엎드린 것으로 가리니 그나마 눈을 뜰 수 있었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든가 해야지.”
나는 어제 오빠가 대신 빨래방에서 빨아준 옷을 입었다.
그리고 옷을 다 입고 햇빛 차단제를 바르고 투명 패드까지 붙여 나갈 준비를 모두 끝낸 다음 슬쩍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오빠 방이 어디였더라…….”
나는 곧바로 오빠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숙소는 모텔과 같은 구조로 되어있었기에 바로 찾으러 갈 수 있었다.
지금 내 방이 2층이고 바로 윗층이 오빠방이니까.
띵!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도착하자 맑은 소리를 내며 엘리베이터가 멈추며 문이 열렸다.
「304호」
“일단 연락부터…….”
바로 방에 들어가는 것은 실례니 전화부터 했다.
뚜루루루루루루.
뚜루루루루루루.
전화를 걸고 몇 초 지나자 누군가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응?”
하지만 연락을 받은 사람은 오빠가 아니라 여성이었다.
누군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이건 여성의 목소리였다.
‘설마 나를 내쫓은 건 남녀라서가 아니라 여자친구를 들이기 위해서였나?!’
뭔가 배신아닌 배신감이 들었다.
그냥 솔직히 말한다면 알아서 나가주었을 텐데.
“저기……. 현우 오빠 여자친구 되시는 건가요……?”
네? 아……. 네! 여자친구입니다~
“아…… 역시…….”
너무 당당한 여성의 말에 멍할 수 밖에 없었다.
하긴 그런 외모에 여자친구가 없는게 이상했다.
“그럼 다음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크큭 크흐흡…….
그렇게 연락을 끊으려 하는데 휴대폰 건너편에서 누군가 웃음을 참고 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이 목소리 어디선가 많이 들었는데…….’
곰곰이 생각하니 이 목소리를 어디서 들었는지 떠올랐다.
“아! 솜사탕!”
아? 이걸 눈치챈다고?
“진짜 여자친구……?”
당연히 구라지~
역시 예상대로 이건 솜사탕의 장난이었다.
처음에는 진짜인 줄 알았으나 중간에 웃는게 너무 이상했다.
“오빠는 지금 뭐해요?”
씻고 있어.
“아……. 저 들어갈게요.”
으, 응?
나는 망설임 없이 문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
“어? 왔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침대 위에 앉아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있는 솜사탕을 발견했다.
“그런데 솜사탕님이 오빠 방에는 왠일이에요?”
“그냥 좀 가까이에 있으니까 만나러 왔지.”
별 이유는 없는 모양이다.
하긴 친한 친구라면 그럴 수 있겠지.
“음……. 그냥 저는 먼저 가보는 게 좋겠네요.”
“왜? 오빠 안 기다려?”
“저도 그냥 얼굴만 좀 보러 온 거였거든요. 친구가 있으시니 저는 그냥 먼저 가고 다음에 보는게 좋을 것 같네요. 오빠한테는 그리 전해주세요.”
솜사탕은 ‘흠…….’거리면서 나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 알았어. 잘가.”
나는 그대로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저 사람은 왠지 모르게 불편하단 말이지…….”
왠지 내 속마음을 전부 꿰뚫어보고 있는 듯 한 불편함.
저런 부류가 가장 상대하기 까다롭다.
오빠는 어떻게 저런 인간이랑 친해진지 신기하다.
보통 저런 인간은 언제나 친근하게 대하되 어느 정도 선을 그으면서 지내기에 어색할 때가 가끔 있기 때문이다.
“이제 둘째날…….”
나는 오늘 대회 일정을 확인했다.
단 6팀만 남은 6강.
여기서 2팀은 추첨을 통해서 부전승으로 올라가고 2팀이 탈락해서 내일 4강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그래. 긴장할 건 없겠지.’
기본적으로 이곳의 수준은 낮다.
그래봤자 일반인 수준.
프로게이머가 등장하면 몰라도 지금 이곳의 유저들 정도는 괜찮을 거다.
나는 그렇게 정신을 가다듬고는 팀원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
“오빠 우리 다음 상대 누구야?”
지은이 정삼에게 물었다.
스스로 알아보진 않은 모양이다.
“그 정도는 직접 알아보라고 참……. 이번에는 미리 안 알려줬어. 추첨으로 부전승을 뽑을 거라서 안 정했거든.”
“그래?”
“야! 그런 것도 미리 안 알아봤냐?”
지은의 행동이 답답했는지 감튀가 지은에게 일침을 가했다.
“뭐? 야! 너도 솔직히 말해서 몰랐으면서!”
“뭔 소리야? 그 정도는 당연히 알아놨지. 누가 멍청하게 그런 것도 안 알아봐?”
“이이익……!”
요즘 따라 지은의 포지션이 이를 갈면서 부들대는 것으로 변한 것 같은데…….
“오늘 대회는 2시에 시작하네. 오늘은 따로 이벤트는 안하고…….”
아쉽게도 이벤트나 게임들은 첫날에만 진행되었던 모양이다.
이것 때문에 일찍 일어났는데…….
“적당히 밥이나 먹을까?”
“오. 형 좋은 생각이에요.”
“마침 배고팠는데! 나이스 초이스!”
블렛이 식사를 제안하자 감튀와 지은이 환호했다.
“그럼 내가 근처에 있는 식당 알아볼게. 잠시만 저기서 기다리고 있자.”
정삼이 먼저 식당을 알아보았다.
그렇게 이야기를 한 결과 근처에 있는 피자집에 가기로 결정했다.
“바로 옆에 있으니까 차 탈 필요도 없을 거야. 가자.”
다같이 이벤트 건물을 나가려는 순간 나는 멈칫했다.
“잠시만요. 저 차단제좀 발라야 돼서.”
“아 맞다. 미안하다. 그걸 신경 못 써줬네.”
“아니에요. 원래 제가 직접 챙겨야하는 건데.”
정삼은 어째서인지 나를 못 챙겨 줬다는 것에 미안해했다.
아마 어린 나를 최대한 챙겨주고 싶은 어른이자 팀장의 마음이겠지.
나는 장갑을 벗어서 차단제를 꼼꼼히 바른 후에 다시 장갑을 손에 꼈다.
“됐으니까 이제 가죠.”
***
“으웁 우웁 으으웁!(오오…… 이거 맛있네요!)”
감튀가 피자를 입에 한 가득 넣고 씹으면서 말했다.
나도 감튀의 반응에 한 입 베어 물자 짭짤하면서도 치즈 특유의 고소함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맛있네요.”
“다행이네. 알아보니까 여기 집이 엄청 맛있다고 하더라고.”
그렇게 수다를 떨며 식사를 하고 거의 다 먹었을 때 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블렛이 말했다.
“어. BOL 신캐 나온 다는데요?”
“신캐가? 이 시기에?”
신캐.
쉽게 말해서 BOL에서 신규 캐릭터(전설)이 등장한다는 뜻이다.
“보니까 이번 트위치 대회에 맞춰서 한 모양이네요. 대회 마지막 날에 공개할 생각이라고 하네요. 특별히 이번에 대회에 직접 온 사람들 앞에서 시연할 생각이래요,”
“정말? 이야~ 마지막 날에는 사람 엄청 몰리겠는 걸?”
BOL은 비교적 한국과 친하게 지내는 기업의 게임이다.
한국의 게임 영향력이 지대한 것도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한국에 어째서 이리 이벤트를 퍼주는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았다.
인터넷에 떠도는 소문으로는 대표가 한국 프로게이머의 광팬이라는 말이 떠돌 뿐이었다.
“이번 캐릭터에 대한 힌트가 나왔네요.”
“뭐? 어때 어때?”
허블렛이 캐릭터에 대한 설명을 하려고 하자 정삼이 가까이 붙으며 들으려 했다.
“크흠. 일단 딜탱 전설이고 검과 마법을 쓰는 전설이라고 하네요. 캐릭터 배경은…… 중세 판타지라고 하네요. 그런데 이상한 건…….”
블렛은 그리 말하며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방금까지 읽고 있던 문장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 전설의 배경은 중세 판타지(?)일겁니다.]
“일겁니다? 게다가 중세 판타지 옆에 물음표는 뭐야?”
“그러니까요.”
BOL의 캐릭터들은 특이하게도 서로 연관성이 거의 없었다.
세계관도 다르고 특징도 비슷한 게 별로 없다.
가끔 능력을 다루는 방법이나 배경이 겹치는 경우가 있었으나 서로 직접적인 연관성이 보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게이머들이 아쉽다고 했었지.’
물론 한 캐릭터마다 장대하고 흥미있는 스토리를 지니고 있기에 다행히 그리 큰 불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캐릭터 하나마다 이리 세세하게 스토리를 만든다는 게 신기할 정도.
“형. 밥도 다 먹었으니 이제 가볼까요.”
우리가 밥을 먹기 시작한 시간은 9시.
밥을 먹은지 대략 40분이 지나고 10시에 가까워 지기 시작했다.
“이제 뭐하지.”
지은이 중얼거리자 옆에서 감튀가 말했다.
“뭐하긴. 게임해야지.”
그 의견에는 나도 찬성이다.
***
“상대 팀 아직도 백도하고 있는데?”
“무시하고 그냥 밀어버려.”
“그러죠.”
대략 6판 째 게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상대팀은 멘탈이 나간 것인지 무지성으로 우리팀 탑을 밀고 있었다.
“지들 넥서스가 부서지고 있는대도 저러는 거 보면 그냥 포기한 모양인데?”
나는 그대로 넥서스를 발로 찼다.
그러자 넥서스가 화려한 임펙트를 뿜어내며 폭발했다.
[승리]
“휴……. 이번판도 무난 했네요.”
“확실히 성아가 있으니까 게임이 쉬워진다…….”
지은이 말했다.
“그럼 다행이에요.”
“키야~ 지은이 보는 눈이 있는 모양 인가봐.”
“보는 눈이요?”
감튀가 옆에서 정삼에게 무슨 말이냐고 말하는 것 같은 눈빛을 보이며 물었다.
정삼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사실 처음에 나한테 검성을 불러보자고 한 게 지은이였거든.”
“네? 왜 저는 처음 알았어요?”
“너가 성아한테 관심이 없으니까 그런 것 아니겠니~”
“뭐? 그건 갑자기 무슨 소리야?!”
또또 티격댄다.
어떻게 저 남녀는 하루도 안 빠지고 티격대지?
“그러고보니 그 녀석 뭐하고 있을려나.”
나는 어제 적으로 만났던 유진을 떠올렸다.
방금까지 초보같던 움직임을 몇분 안되어서 빠르게 성장 시켰던 기형적인 재능을 갖고 있던 유저.
“유진 닉네임이 분명히 ‘you진’이었지?”
나는 전적 사이틀 열어서 유진의 닉네임을 검색했다.
혹시나 싶어서 확인해 본거였는데 역시나 하루종일 게임을 하고 있던 모양이다.
어제 새벽 4시까지 게임을 하던 전적이 보였다.
그런데…….
“전승이네?”
랭겜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성적에 놀라며 유진의 전체 승률을 확인해보았다.
“오. 승률이 98……. 뭐?!”
나는 순간 유진의 승률에 기겁할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면 이딴 승률이 나올 수 있는거지?
게임을 한 횟수를 확인해보았는데 게임 플레이 횟수도 수백 판에 달했다.
‘그렇다는 건 적어도 100판 중에서 2판 밖에 안 졌다는 거 아니야?’
고의 트롤과 탈주를 하는 유저들까지 감안하면 가히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승률이었다.
“이 새끼. 자신감이 넘칠만한 이유가 있었구만…….”
나는 놀라운 승률에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승률이 100%지만 그저 운이 좋게 고의 트롤을 한 번도 안 만나고 탈주도 별로 없어서 그런 거였지 아마 작정하고 트롤을 하려는 유저가 있었더라면 1판 정도는 패배를 주었을 지도 모른다.
“악마의 재능이었나?”
유진의 재능에 감탄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아야 이제 가자. 이제 곧 추첨 해야해.”
게임을 6판이나 하니 어느새인가 1시가 가까워 지고 있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6판이나 했는데 2시간 밖에 안 지난 걸 보면 비정상 적으로 게임을 빨리 끝낸 것으로 볼 수 있었다.
“로그아웃.”
나는 그대로 캡슐을 나와서 대회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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