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2화 (2/648)

제2장: 글러 먹은 놈들끼리 붙어먹는다.

이제 두변은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확실히 깨달았다.

대녕 왕조가 세워진 지 어언 200여 년이 지난 후.

이 몸의 원래 이름은 두헌(杜憲)으로 경성의 명문가 출신이지만, 선천적인 고자인 탓에 가문을 이어나가지 못해 가문에서의 입지가 좁아졌고 부모도 그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두헌이 열다섯이 되던 해, 그가 고자라는 사실이 밖으로 퍼져나갔고 사람들은 두씨 가문에서 환관을 배출했다고 조롱하기 시작하면서 두씨 가문은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명망이 높은 집안에서 이런 조롱을 어찌 견딜 수 있겠는가? 그는 결국 부모와 가족에게 버림을 받았고 시종 둘이 그를 북쪽의 경성에서 최남단인 광서(廣西)로 데려갔다.

가문에서는 시종 둘에게 두헌을 바다 건너 무인도에 떠내려 보내 알아서 죽게 만들라고 명령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완전히 사라지도록 말이다. 그러나 시종들은 차마 그러지 못하고 몰래 그의 신분을 숨기고 두변으로 개명해 광서성의 환관 학원으로 보냈다.

경성에 있는 두씨 가문은 적장자 두헌이 몹쓸 병에 걸려 죽었다고 선포했고 이때부터 두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두헌도 명백한 명문가의 적자이지만, 미모가 빼어난 명문가의 정혼녀를 포함해서, 가문의 계승권은 모두 서출 동생에게 돌아갔다. 그는 집이 있어도 돌아갈 곳이 없는 철저히 버려진 사람이 된 셈이었다.

이때 두변의 머릿속에 몸의 전 주인인 정혼녀의 몸과 얼굴이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현재 고자여서 흥분하더라도 별 소용이 없었다.

이런 미녀가 그 서출 개자식과 혼인하게 되다니! 적자면서 이리도 가혹하게 서자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는 운명은 정말 드문 일이지 않은가!

환관 학원에서도 두변은 동네북이었다. 덕분에 학원의 지도 선생과 동학(同學)들에게 무시를 당할뿐더러, 심지어 학원의 노복과 잡부들도 그를 무시했다. 죄다 그를 업신여길 뿐이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의 성적이 최악이라는 점이었다.

환관 학원은 5년제로, 5년 동안 배우고 나면 졸업시험을 치르고 성적에 따라 임무를 부여받았다.

문과 성적이 좋으면 직조국(織造局)이나 염운사(鹽運司)로 갔고, 무과 성적이 좋으면 현지 주둔지로 가서 감군(監軍)이나 어마사(禦馬司)를 맡았다. 문무 성적 모두가 양호하다면 권세가 하늘을 찌르는 광동의 특무(特務) 기구로 들어가 총기관(總旗官)부터 시작해 점차 큰 권세를 휘두를 수 있었다.

동창(東厰), 여경사(厲鏡司), 현무위(玄武衛)는 모두 대녕 왕조의 3대 특무 기구이자 ‘폭력’ 기관이었다.

동창은 엄당이 장악하고 있고, 여경사는 내각에 속해 있으며, 현무위는 군에 속해 있었다. 3대 기구 모두 황제 직속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동창만이 진정한 ‘황제의 검’이라고 불릴 만했다.

이곳의 동창은 명청 시기의 동창과는 조금 달랐다. 대녕 왕조의 동창은 우수한 인재들의 모임이요, 고수들이 운집한 곳이었다. 백여 년 전, 엄당이 세워지고 환관 학원을 개설한 이후부터 문무를 겸비한 인재들이 끊임없이 배출되었다.

게다가 대녕 왕조에는 무림 문파로 넘쳐나기에, 동창은 황실이 무림 세력들을 제압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명청 시대와 비교해 보면, 이 세계에서의 동창의 권력은 훨씬 막강했다. 문무백관을 감시할 뿐 아니라 무림 문파를 관리, 견제하며, 정석(晶石), 무기, 비광(秘礦)의 불법 거래나 채굴을 단속하는 등의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동창에 들어가기만 하면 사람들이 미녀들을 가져다 바칠 거라 장담할 수 있는데, 동창의 환관들은 모두 삼처사첩이 기본이었다. 비록 있어야 할 게 없는 몸이긴 하지만 같이 껴안고 자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가. 그러니 그들을 진정한 인생 승리자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동창이 이처럼 대단하니, 선발 조건도 매우 까다로웠다. 환관 학원의 한 기수에서 성적이 우수한 특급 영재 열 명 정도만 동창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두변은 동창에 들어갈 가능성이 죽었다 깨어나도 없었다.

두변의 성적이 어느 정도로 안 좋은가 하면, 작년 연말 시험에서 다섯 과목 500점 만점에 고작 40점을 받았으니, 그야말로 학원의 수치였다.

물론 이런 성적으로 졸업한다고 해도 일자리를 찾을 수는 있었다. 물론 잡역 환관으로서 마당 쓸기, 물 긷기, 대소변 받아 내기 등의 일을 하며 세상에 다시는 나오지 못하지만 말이다. 당연히 두변은 큰 사고를 쳐 내일 죽을 운명에 놓였기에, 대소변을 받아내는 일조차 주어지지 않을 테지만.

며칠 전 두변은 평소처럼 사람들과 떨어져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숲속을 거닐던 중, 함정에 걸려들어 포획된 고라니를 발견했다. 천성이 착한 그는 즉시 고라니를 구해줬다. 하지만 마침 아무런 도구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급히 가서 밧줄과 석고, 그리고 연고를 산 후 다시 숲으로 가 고라니의 부러진 다리를 치료해주려 했다. 하지만, 깊은 산속에서 뜻밖에 최씨 가문의 이소저가 다른 남자와 사통하는 것을 보게 됐다.

최씨 가문은 광서성 전체에서 손에 꼽히는 부호이자 명문가로, 좋은 농토와 점포를 무수히 많이 가지고 있었다. 가문에서 관직을 얻은 사람이 족히 일곱, 여덟은 되고, 검사(劍士) 수백 명을 키웠으며 대대로 북명검파(北冥劍派)와 혼인을 맺어 세력이 매우 컸다.

최씨 가문의 이소저 최병정은 성 내에서 이름난 재녀로, 외모는 꽃처럼 아름답고 현명하고 정숙하며 북명검파의 여제자이기도 한, 문무를 겸비한 여인이었다. 또한 인품도 고결하다 알려져 모든 남자들이 선망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그녀는 이미 정혼한 상태였다. 정혼자인 임필(林弼)은 군부의 명문가 임씨 가문 출신이며, 남해 도장(道場)의 청년 고수로 혼례 후 군에 합류할 예정이었다. 그는 향후 제국 군대의 기둥이 될 인재로, 둘은 하늘이 맺어준 천생연분인 셈이었다.

헌데 뜻밖에 그 최 이소저가 숲속에서 다른 남자와 사통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두변이 그 장면을 봤을 때, 이소저의 몸에는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속옷과 비단 바지만 남아 있었다. 여자를 겪어본 적 없던 두변은 이렇게 하얗고 매끄러운 몸을 보고는 숨도 제대로 못 쉴 지경이었다.

두변은 소리를 낼 수 없었지만,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숨소리도 거칠어졌다. 이소저의 정부(情夫)는 북명검파 소속이자 그녀의 사형(師兄)으로, 무공에 조예가 깊은 터라 즉시 두변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두변이 눈이 침침해질 정도로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사이, 사내가 순식간에 다가와서 그를 기절시켰다.

깨어나 보니 두변은 여인을 덮치는 자세였고, 여인은 옷이 흐트러진 채 살려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환관이 양갓집 부녀를 덮치는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사실 최병정과 정부는 그때 두변을 죽여 입막음하려 했다. 하지만 최가의 노비들과 정혼자 가문의 무사들이 오고 있는 데다 옷을 단정하게 입을 시간이 없었다. 결국, 둘은 두변이 소저를 겁탈하려는 장면을 만들었고, 남자는 소저를 구해주는 영웅행세를 하게 된 것이다.

현장에서 두변은 최씨 가문의 가노들에게 반죽임을 당할 만큼 맞았다. 만약 두변을 죽일 기세로 때리는 가노들 사이에서, 이위(李威) 교관이 이끄는 환관 학원의 무사들이 그를 구해내지 않았더라면 그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

물론, 두변은 운 좋게 구조되긴 했지만, 극심한 부상과 심적인 두려움 때문에 며칠 버티지 못하고 감옥에서 죽어가고 있었는데, 바로 이때 다른 세계의 두변이 시공간을 초월해 그의 몸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최씨 가문과 임씨 가문은 며칠 동안 두변을 내놓으라고 환관 학원을 압박했고, 사람을 보내 학원을 포위하여 공격하기도 했다.

환관 학원은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그들에게 두변을 넘겨줄 수가 없었다. 두 명문가와 북명검파의 세력이 대단하지만, 학원은 그들의 요구사항에 응해주지 않았다. 두변이 아무리 구제불능이어도, 이것은 엄연히 학원 내의 일이니 다른 사람은 관여 말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최씨 가문의 기둥 최암(崔岩)이 고생 끝에 양주(揚州)의 지부(知府: 명청明淸 시대 부府의 장관)가 되었다. 양주는 비록 부(府)에 불과하지만, 중요성만 따지자면 광서성 절반 이상에 버금갔다. 양주의 직조국, 선박사, 염운사 등의 엄당 관련 기구는 모두 양주부의 지지와 협력이 필요한 데다 두변은 별로 쓸모도 없는 인간이기 때문에, 환관 학원은 타협을 선택하고 두변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엄당이 두변을 포기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최암이 양주 지부가 된 일은 두변과 같은 말단계급은 알 수가 없는 일이니, 두변은 그저 자신이 버려졌고, 당장 죽음의 문턱 앞에 놓이게 됐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전반적인 기억을 더듬어 본 두변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최병정, 이 못된 계집 같으니라고. 이 몸이 반드시 너를 겁탈한 후 죽여주리라!”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멀쩡한 사내도 아닌 환관이 양갓집 부녀를 겁탈했다고 누명을 씌워? 양갓집의 귀한 딸이면서, 이게 자신에게 손해일 거라는 것을 모르나?

두변은 속으로는 이를 부득부득 갈며 최병정을 욕했지만, 당장 코앞에 닥친 상황, 자신의 목숨부터 지키는 게 급선무였다.

난 아직 죽기 싫으니까, 꼭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겠어.

500점 만점에 40점이라니.

두변은 몸의 원래 주인이 이렇게 구제 불능인 것을 원망했다.

만약 500점 만점에 400점을 받는 인재였으면 학원에서도 이렇게 그를 내다 버리지 않았을 테니까.

심지어 두변을 위해 두 명문가와 대치할 수도 있었겠지. 아니, 40점은 뭘 어떻게 해야 받는 점수냐? 모든 객관식을 하나로만 찍어도 이 점수보다는 낫겠다.

두변은 머리를 쥐어 짜내며 살 궁리를 했다. 꼬박 2시간을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는 답을 찾을 수 없었고, 하늘이 무너졌는데 솟아날 구멍이 하나도 없었다.

두변은 윗사람들에게 해명하며 자신의 무죄를 밝히려는 쓸데없는 짓을 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설마 환관 학원이 진상을 모르겠나? 두변이 누명을 썼다는 것을 모르겠나? 이건 최씨와 임씨 가문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저 최병정과 북명검파의 명예를 위해서, 두 가문의 혼인성사를 위해서 두변은 반드시 희생양이 되어야 했다.

물론 기상천외한 해결 방법이 하나 있긴 했다.

그것은 바로 내일 아침에 환관 학원의 산장(山長)을 보자마자 의부! 하고 외치면서, 살려주시면 비법 하나를 알려드리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 비법을 화약 제조법으로 할지, 유리 제조법으로 할지는 그때 다시 생각해보기로 하고.

하지만 이 방법은 실행할 수 있는 가능성조차 희박했다. 우선 산장을 만난다는 보장이 없었다. 산장 대인은 광서성 동창의 만호(萬戶)를 겸임하고 있는, 학원의 진정한 수장인데, 내일 당장 죽을 목숨인 두변이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을까.

게다가 이 세계는 무공 수준이 매우 높기 때문에, 화약이나 유리를 만드는 비법에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도 있었다. 화약이나 유리가 그들이 중시하는 비적(秘籍: 진기한 서적)이나 신병이기, 심지어는 무기를 만드는 비광보다 가치가 없을 수 있었다.

이미 두변이 죽은 줄 알거나 죽기를 바라는 그의 가족들에게 걸 희망도 없었다.

두변은 더 열심히 생각했다. 머리를 벽에 찧기도 하면서.

물론 생각이 좀 트이라고 가볍게 찧는 거지, 답이 없어 죽으려고 머리를 세차게 박아대는 건 아니었다.

“두변, 자살하려고 하지 마라. 그러면 내 입장만 난처해질 테니까.”

바깥의 수위가 그 장면을 보더니 즉시 약 한 알을 손에 쥐고는 녹여서 장풍으로 만들어 두변을 향해 날려 보냈다.

특이한 향기가 코끝을 스치더니, 두변은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그대로 기절했다.

“이 멍청한 새끼야, 나는 자살하려던 게 아니라고!”

두변은 기절하기 직전, 치를 떨면서 격분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