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목표를 세우다!
그 순간, 두변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이문회를 바라봤다. 사실, 이문회가 이렇게 파격적인 대우를 해줄지는 정말 몰랐다.
엄당에서 누군가를 의자(義子: 수양아들)로 삼는 것은 흔했다. 그러나 대환관이라고 해서 의자를 좀더 많이 두는 건 또 아니었다. 그들은 가장 가까이 있고 능력이 뛰어난 심복만을 의자로 삼았고, 대개 그 수는 네다섯 명 정도였다.
그런데 이문회에게는 의자가 단 한 명뿐이었다. 그는 이문회가 잘 교육해 길러낸 제자로, 지금 계왕부(桂王府)에서 부총관을 맡고 있으며 무사 2,000명을 거느렸다.
이문회는 눈이 매우 높은 사람인지라, 그의 의자가 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그가 지금 뜻밖에도 두변을 의자로 삼겠다고 한 것이다.
이문회는 환관 학원의 산장일 뿐 아니라 광서성의 거물 몇 명 중 한 명이니만큼, 잡역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생활 비서라 할 만했다. 두변은 순식간에 엄당 전체, 더 나아가서는 광서성 전체에서 권세를 휘두르는 인물이 될 것이며, 수많은 사람이 그에게 아부할 것이다.
이문회 곁에서 잡역을 하게 된다면, 군대의 천호급 장교들과 지방의 현령급 관원들이 모두 앞다투어 두변에게 은자를 찔러 넣어 줄 것이다. 부유한 상인들과 지방에 있는 암흑가의 우두머리들도 열심히 두변에게 아부할 것이다.
게다가 올해 이문회는 고작 마흔셋의 나이로, 엄당의 고위층 중에서도 매우 젊은 편이었다. 이문회는 글재주가 뛰어날 뿐 아니라 제국의 2품 무자(武者)로 문무를 겸비한 인재이기에, 10년 내에 동창의 대도독(大都督)이 되어 제국 전체에 막강한 권세를 휘두르게 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았다.
이문회의 의자가 된다면, 한평생을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 수 있으니 하루아침에 팔자가 바뀐다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두변은 즉시 침상에서 내려와 감사의 눈물을 보이며 무릎을 꿇고 ‘의부!’ 하고 외쳐야 했다. 그러고 나서 의부의 권세를 등에 업고 호의호식하며 사는 삶이 얼마나 멋질쏘냐!
그러나 두변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혼절했을 때 꿈속에서 만난 기이한 불빛이 한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만약 졸업시험에서 1등을 하지 못한다면, 그 기이한 불빛은 두변을 처참히 죽이고 말 것이다. 두변은 죽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그 말의 사실 여부를 목숨을 걸고 확인해 볼 생각도 없었다.
그래서 두변은 바로 무릎을 꿇으며 절을 하는 대신, 오히려 착잡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왜, 싫은 게냐?”
이문회가 물었다.
“물론 산장의 의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 그런데…….”
“그런데?”
두변은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저를 의자로 삼는 이유가 단순히 제가 목숨을 걸고 산장을 지키려 했기 때문이라는 게 마음에 걸립니다. 제가 마치 대가를 바라고 그런 행동을 했다고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 기회를 포기한다고? 보기보다 뚝심이 있는 녀석이군.”
이문회가 비웃듯 말하자, 두변이 고개를 아래로 떨궜다.
“유치하고 아둔하기는. 내 곁에서 잡역을 하는 것이 싫다고?”
두변이 대담하게 대답했다.
“네.”
“그러면 어떻게 하고 싶은 거냐?”
“정상적으로 시험을 보겠습니다. 시험을 보고 나서 그 결과에 따르겠습니다.”
“네 성적대로라면, 시험이 끝난 뒤엔 말똥이나 비우러 다녀야 할 것이다.”
두변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이문회는 두변을 복잡한 눈빛으로 한참을 바라보다가 탄식하며 말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두변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저는 맹세코 최병정을 겁탈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상대방은 제게 죄를 뒤집어씌워 저를 사지로 내몰았지요. 게다가 산장께선 제가 누명을 썼다는 걸 알면서도 저를 버리려고 했고요.”
이문회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지금 나를 원망하는 거로구나.”
두변은 영화배우로 빙의라도 된 듯 연기를 시작했다.
“아닙니다. 저는 이번 기회로 세상의 이치를 익히게 되었습니다. 약한 것은 죄입니다. 가족에게 버림받은 후 저는 목표와 방향을 잃어 자포자기하고, 완전히 저만의 세계에 빠져있었습니다. 꽃을 기르고 동물들을 키울 때면 속세에서 벗어난 느낌이 들었지만, 이 사건을 겪으면서 제가 아무 가치도 없는 놈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만약 제가 죽는다고 해도, 제 가족들은 안도의 숨을 내쉴 테고 부모님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으실 겁니다. 제 동생은 아마 축하 연회를 열 수도 있겠지요. 오직 제 유모만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저를 뒤따라올 것입니다. 제 죽음은 저를 아껴주는 사람에겐 상처가 되고, 저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겐 기쁨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더는 약하게 살지 않으려고 합니다. 더는 자포자기도 하지 않을 겁니다. 저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강해질 것입니다.”
이문회가 두변을 응시하며 말했다.
“좋은 말이긴 하다만 현실성이 없구나. 6개월 후면 시험인데 너는 이미 4년 반이나 뒤처져 있다. 이건 오기나 객기로 매울 수 있는 간격이 아니야. 형평성 문제가 있으니 너만 학원에서 1년 더 공부하도록 편의를 봐줄 수도 없다. 그러니 내 곁에서 지내야만 네게 미래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해.”
“한번 해보겠습니다. 제 능력으로 원하는 전부를 얻어내겠습니다. 그래야 산장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쓸모 있는 인간이 될 테니까요.”
이문회가 몸을 일으켰다.
“난 미련한 놈은 필요 없다. 그런데 네가 바로 그 미련한 놈이로구나. 하고 싶은 대로 하거라. 하지만 나는 너에게 기회를 줬고, 그걸 거절한 건 너다. 난 두 번 다시 네게 이런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 시험 결과가 나온 후에 너를 따로 챙겨주지도 않을 거다. 그때 가서 똥이나 비우든지 취사장에 가든지, 네 마음대로 하거라.”
말을 마친 이문회는 바로 자리를 떠났다. 그 이상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은 표정으로.
두변도 더는 할 말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두변도 이문회에게 기대어 그의 자제로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지 않은가! 그러면 꿈속의 경고대로 죽음을 면치 못한단 말이다!
이문회가 문을 나서자, 중년의 환관 하나가 이문회에게 다가왔다. 이 중년 환관은 바로 두변에게 기마술을 가르치던 교관, 이위였다.
“두변은 어떤 아이인가?”
이문회가 물었다.
“아주 멍청합니다.”
이문회는 탄식을 하고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희 엄당에 교활하고 간사한 자가 너무 많으니, 줏대 있는 인물이 필요하긴 합니다.”
“당장 반년 후가 졸업시험인데, 두변에게는 희망이 없다. 그 아이가 기어코 똥을 비우고자 한다면, 그렇게 하게 내버려 둬라. 하지만 그렇게 1년을 보내게 한 뒤에 다시 불러서 교육한다. 내 의자라면 반드시 그에 걸맞게 살아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이위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그의 눈빛에 안도감이 어렸다.
바로 눈앞에 있는 이문회는 이위의 상관일 뿐 아니라 그가 매우 존경하고 또 충성을 바치는 인물이었다. 이위는 이문회가 매우 잔인하며 악독한 인물이지만 자신의 마음에 든 사람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비록 두변이 머리를 땅에 조아리며 ‘의부!’라고 외치지는 않았지만, 이문회는 마음속으로 이미 두변을 의자로 받아들였다.
이위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저희가 이미 최씨 가문 사람을 수십 명이나 죽이고 몇백 명이나 잡아들였습니다. 이제 속도를 조금 늦추는 게 어떨지요. 양주 쪽에서 혹시나…….”
“계속해서 잡아들이고, 더 죽여라. 최가와 임가가 두려움에 떨도록 계속 죽여. 다시는 우리를 우습게 보지 못할 때까지.
양주 쪽은 네가 사람을 보내 야죽에게 알려라. 최암과 타협하기를 원하는 건 그쪽 일이라고. 내 뼈가 워낙 단단해서 그 누구에게든 허리는 물론, 고개도 숙일 수 없다고. 불만이 있으면 언제든 경성의 어르신들에게 가서 내가 하는 일들을 고해도 좋다고 해라.”
장야죽(張若竹)은 양주를 지키는 진수(鎭守: 군대를 주둔하여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을 지키는 일) 환관이었다. 그는 동창의 만호를 겸임하고 있으며, 이문회와 마찬가지로 엄당의 미래를 담당할 인물이었다.
대녕 왕조에서는 해상무역 때문에 양주를 매우 중요한 지역이라고 판단했고, 진수 환관을 따로 파견해 그곳을 지키도록 했다.
“알겠습니다.”
이위가 허리를 숙이며 답했다.
두변은 스스로의 목표를 세웠다. 이문회에 기대서, 그를 따라다니며 잡역을 하는 것보다, 자신의 실력으로 시험을 치르겠다는 목표 말이다.
두변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이문회는 굳세며 강인한 사람이었다. 만약 두변이 흔쾌히 그의 잡역을 수행하기로 하고 ‘의부!’라고 외쳤다면, 두변은 이문회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을 것이다. 목숨을 걸고 얻어낸 기회를 고작 잡역과 맞바꾸는 셈이었다.
그러나 두변이 그 좋은 기회를 고사한 덕에 이문회가 두변에게 관심을 두고 그를 중용할 가능성이 생겼다.
그러니 6개월 후에 있을 시험에 목숨 걸고 최선을 다해야 했다. 결과는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없겠지만.
물론 이문회의 마음에 든 이상, 시험 성적이 아무리 안 좋더라도 앞날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꿈속에서 들었던 말이 진짜라면, 만약 최종시험에서 1등을 하지 못한다면, 두변은 아마 똥을 비우러 갈 기회도 얻지 못할 것이다.
새로 얻게 된 예지몽이라는 능력이 좀 더 좋아질 가능성은 없을까. 그래야 그나마 시험에서 성공할 기회가 생기지 않으냔 말이다. 6개월의 시간 동안 꼴찌에서 1등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두피가 저릿해졌다.
유모의 극진한 간호와 이문회가 제공해주는 최고의 치료환경 덕분에 두변은 열흘 정도가 지나서 거의 완전히 건강을 되찾았다. 이문회가 이제 안락한 치료공간을 떠나야 한다고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두변은 자진해서 소박하고도 열악한 숙소로 돌아가 다섯 개 과목의 공부를 시작했다.
과목은 각각 무학(武學), 국학(國學), 산술, 기마술. 잡학으로, 이 다섯 과목의 총점이 적어도 450점은 넘어야 1등을 노려볼 만했다.
6개월 만에 400점 이상을 올려야 한다는 것은 정말 너무 기가 막힐 일이 아닐까. 하지만 정말 해낸다면 이건 그거야말로 전무후무한 기록이 될 일이었다.
대녕 왕조에는 3대 세력이 포진해 있으니, 바로 무장(武將) 당파, 문관 사대부 당파, 엄당 당파였다. 각 세력마다 각각 인재 양성 기구를 갖추고 있는데, 무인의 도장, 문인의 서원(書院), 그리고 엄당의 환관 학원이 그것이었다.
대녕 왕조의 전국 각지에 수많은 무도(武道) 문파들이 존재하는데, 이 무도 문파들은 문관의 맹우(盟友)가 아니면 무장의 맹우였으니, 엄당은 상대적으로 세력이 약한 편이었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환관 학원은 인재 양성에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했다. 어떻게 해서든 엄당 학생들의 강인한 의지력을 배양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항상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전통을 따랐기 때문에 학원 내의 여건은 상당히 열악했다.
두변의 숙소는 정말 궁핍하며 초라하다는 말이 딱 어울렸다.
한 방에 여덟 명이 함께 묵었고, 방 안에는 긴 침상만 달랑 놓여 있었다. 세숫대야 말고는 아무런 가구도 없었으며 이불은 매우 얇았기 때문에 다들 벌벌 떨면서 겨울을 나야 했다.
지금까지 두변은 괴팍한 성격 때문에 학생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게다가 약하고 무능하기까지 하니 항상 사람들이 그를 업신여기기 일쑤였다.
두변을 가장 심하게 괴롭힌 이들은 바로 숙소의 일인자인 염세(閆世)였다. 그는 자신뿐 아니라 숙소의 다른 학생 여섯 명까지 합류시켜 다 함께 두변을 따돌렸다. 누구든 두변이랑 말을 섞거나 눈만 마주쳐도 염세에게 한 소리를 듣거나 얻어맞았다.
염세는 왜 그토록 두변을 싫어하게 되었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다른 모든 이들은 그의 발을 씻겨주며 시중을 드는데, 두변만 이를 거절했기 때문이었다.
환관 학원 전체에서도 학생들의 편 가르기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다. 매해 200여 명이나 되는 새로운 기수들은 모두 뛰어난 몇 명의 학생을 중심으로 무리를 형성했다. 엄당에서 뛰어난 실력을 갖춘 학생들은 장차 동창, 어마사, 광무사, 염운사, 직조국 등으로 배정받아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므로, 어떻게든 인맥을 쌓아 나중에 덕을 보겠다는 심보였다.
엄당 학생들 간의 관계는 매우 노골적이면서 현실적이었다.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일종의 권력을 쥐게 되고, 손가락 까딱하지 않고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성적이 나쁜 학생들은 매일같이 다른 사람들의 발을 씻겨주거나 옷을 빨아야 했으며, 심지어 똥오줌까지도 치워야 했다. 학원의 관리자들은 학생들의 향상심(向上心)을 고취하기 위해 이런 악습을 방관했다.
이러한 연유로 최근 5년 동안 두변의 생활은 몹시도 괴로웠다.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했고, 매번 염세를 볼 때마다 고양이를 만난 쥐처럼 긴장했다. 겨울에는 이불이 물에 축축하게 젖고, 여름에는 이불 속에 똥이 들어가는 게 예삿일이었다.
이제, 두변은 악몽과도 같았던 숙소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