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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무제-6화 (6/648)

제6장: 권력에 빌붙어 열심히 공부하자!

두변은 숙소 문 앞에 서서 생각에 잠겼다.

문 안에는 또 어떤 못된 짓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면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으려나? 어쨌든 며칠 전에 내가 산장 대인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으니까.

문을 열자, 일곱 명 모두가 각자의 침상에 질서정연하게 앉아서 두변을 바라봤다.

갑자기 염세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두변을 향해 걸어왔다. 그가 두변의 팔을 잡고 부축하면서 말했다.

“두 형, 괜찮아? 요 며칠 동안 걱정돼서 죽는지 알았잖아!”

염세의 이런 행동은 해가 서쪽에서 뜬 것 같았지만, 두변은 의외가 아니라는 듯 별로 놀라지 않았다. 환관 학원의 모든 학생이 워낙에 처세술에 능하니,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행동이었다.

“괜찮아.”

두변이 냉담하게 대답했다.

두변은 겉으로는 냉담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염세의 가족 사항을 곱씹어보기 시작했다.

누이나 여동생, 혹은 형수나 제수씨가 있던가?

두변은 학력이 좋은 것과 별개로 아량이 넓은 편은 아니었고, 아주 사소한 원한도 반드시 갚아 주는 성격이었다.

염세는 두변의 냉담한 반응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더 친근하게 말했다.

“형제가 이번에 큰 공로를 세웠으니까 산장 대인께서 큰 상을 내려주셨겠지? 산장 대인을 의부라고 부르기로 했다면서?”

염세는 두 눈을 반짝이면서 조금은 긴장한 말투로 물어봤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시선을 집중했다.

두변이 ‘맞다’고만 대답한다면 염세는 태도를 완전히 바꿔서 두변에게 매우 친절하게 대할 것이며, 두변과 같은 편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학원의 모든 결정 사안들은 부산장 세 명이 협의해 결정하지만, 학원을 졸업한 후에 임무 배정을 하는 권한은 오롯이 산장이 쥐고 있었다. 염세는 상위 열 명 안에 들고 부산장 낭정(郎廷)을 의부로 모시기 때문에, 성적만 좋다면 당연히 좋은 곳에 배치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문회에게는 그것을 거부할 권리가 있었다. 만약 이문회가 두변의 의부가 된다면, 두변의 한두 마디가 염세를 매우 곤란하게 만들 수 있었다.

물론 두변도 산장이 자신을 의자로 삼고 싶어 했지만 자신이 거절했다는 말을 쉽게 입 밖으로 꺼내진 못했다. 그것은 이문회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일 테니까.

“헤헤, 어떻게 됐을 거 같은데?”

두변은 허세 가득한 모습으로 대충 얼버무렸다.

염세와 나머지 학생들은 머리를 재빨리 굴렸다. 염세가 보기에 이문회가 두변같은 머저리를 의자로 삼을 리는 없지만, 두변의 표정을 보아하니 뭔가가 있어 보이긴 했다.

염세는 좀더 지켜보기로 했다. 나중에 의부께 물어봐도 좋을 테고. 일단 사실확인을 제대로 한 뒤에 괴롭혀도 늦지 않았다.

덕분에 두변은 숙소에서 염세를 포함한 나머지 학생들과 큰 문제 없이 지내기 시작했다.

두변은 어떻게 해야 자신의 성적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세계의 교육 시스템은 고대 중국보다 훨씬 선진적이고 합리적이었다. 환관 학원의 졸업시험은 무학, 국학, 산술, 잡학, 기마술 총 다섯 과목으로, 무학 150점, 국학 150점, 산술 100점, 잡학 50점, 기마술 50점, 총 500점 만점으로 이뤄졌다. 잡학은 단학(丹學: 연단煉丹을 만드는 것), 농학(農學), 형명(刑名) 등 9개 과목 중 하나를 선택해서 배울 수 있었다.

작년 시험에서 두변은 국학 30점, 산술 10점을 받았고 나머지는 전부 빵점이었다. 이렇게 처참한 성적을 어찌 해결하느냐 말이다.

적어도 460점 이상을 받아야 마지막 시험에서 1등을 할 가능성이 생긴다. 6개월의 시간 동안 40점에서 460점까지 올려야 하는데, 이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저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두변은 마음속으로 가늠해봤다. 어쨌든 현대 지구에서 명문대생이었던 터라 산술 과목에서는 만점을 받는 것이 크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국학도 큰 문제는 아니었다. 두변의 전공은 비록 철학이지만 국학을 완전히 놓은 것은 아니었다. 이 세계의 국학은 좀 다르지만, 어차피 큰 틀은 비슷했다. 이 세계의 동한(東漢) 이전은 원래의 지구와 같은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사서오경을 기반으로 국학을 배우기 때문에 두변은 간단히 복습 몇 번만 하면 만족할 만한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기마술은 어렵더라도 바짝 연습하면 실력향상이 가능한 과목이었다. 비록 6개월이 긴 시간은 아니지만, 합격점까지 큰 무리는 없어 보였다.

두변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무학과 잡학이었으며, 이 두 과목이 두변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그는 잡학에서 연단을 선택했다. 하지만 연단은 인기가 많은 과목이기에 잘하는 학생들도 상대적으로 많았다. 무학과 연단은 배워야 할 것이 많고 또 깊이 배워야 하므로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져 올라가야 했다. 다른 학생들은 모두 4년 반이라는 시간을 공부했는데 두변은 이제야 기초부터 시작하게 된 것이다.

더욱이 중요한 점은 무학과 연단 과목은 몇십 만자 짜리 두꺼운 책이 몇 권씩이나 기본 서적이라는 점이었다. 이 모든 것을 죽기 살기로 암기한 다음 서로 연계해 응용할 줄 알아야만 써먹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무학의 기초 이론 서적은 총 네 권으로, 전신의 근맥(筋脈), 혈위(穴位: 혈, 경혈), 기류(氣流), 그리고 현기(玄氣)의 개론서 정도 되는 책이었다.

연단학은 조금 더 복잡해서, 연약(煉藥)과 연금술이 있고 정석(晶石), 광물, 약초, 야수(野兽) 등을 소개하는 내용만 하더라도 두꺼운 책으로 무려 다섯 권이나 되었다.

졸업시험까지 6개월 남은 지금, 두변은 두 과목의 기초 이론도 제대로 외우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론 없이 실제 훈련에 들어갈 수도 없지 않은가.

게다가 졸업시험에서 무학과 연단학은 필기시험이 없고 전부 실전이었다.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두변이 처음으로 한 일은 바로 무학의 네 가지 기초 이론 서적을 모조리 외우는 것이었다.

그가 처음으로 공부하려는 책은 <근맥 혈위>로, 총 8만 자에 삽화 300장을 더해서 500쪽이 넘는 책이었다.

그로서는 완전히 0에서부터 공부를 시작하는 셈이었다.

두변은 두 시간 동안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쭉 훑어봤다. 하지만 현대에서 넘어온 두변으로서는 정말이지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었다. 만약 그전에 의학이라도 공부했더라면 한결 수월했을 테지만, 그것도 아니니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 두변은 무식하게 외우기 시작했다. 꼬박 열 시간 동안 겨우 30쪽 정도를 외웠건만, 벌써부터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게다가 뒤로 갈수록 외우기 힘들어졌고, 앞에 외웠던 부분도 점차 까먹기 시작했다. 책의 내용도 아무런 연계나 순서가 없어 보이니, 더욱 외우기 힘들었다.

이 책을 다 외우는 데만 한두 달이 걸릴 텐데, 그러면 이미 늦은 셈이었다.

원래 몸의 주인이던 두변을 탓하는 수밖에. 지난 4년 반의 시간을 허송세월로 보낸 덕에 이 고생을 하게 생겼으니까.

저녁이 되어 숙소로 돌아온 염세와 나머지 학생들의 시선에 들어온 것은, 웬일인지 책을 외우고 있는 두변이었다.

참나. 지금 와서 보살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져봤자, 뭔 소용이 있나?

염세가 냉소를 지었다.

비록 직접 말로 내뱉은 건 아니었지만, 두변은 염세의 태도가 차가워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 염세의 의부인 낭정을 통해, 이문회가 두변을 따로 챙겨주지 않았다는 소식을 이미 들은 모양이었다.

물론 염세는 상황을 더 지켜보기로 했다. 이문회가 두변을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만 하면 몇 배로 두변을 괴롭힐 생각이었다. 염세는 두변에게 미소를 짓고 비위를 맞추려고 했던 행동들이 너무나 수치스러웠다.

저녁을 먹은 후에도 두변은 세 시간을 더 공부했다. 하지만 암기 속도는 점차 더뎌졌고, 이전에 외웠던 내용도 1/4 정도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정말, 이런 학습효과는 너무 최악이지 않은가! 이대로 가면 책을 몇 권 외우지도 못하고 졸업시험이 시작될 텐데!

저녁 열 시쯤.

두변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누워 잠이 들었는데, 기적처럼 꿈속 세계가 다시 펼쳐졌다. 두변이 낮에 빠르게 훑어봤던 <근맥 혈위>의 모든 쪽이 영화 속 장면처럼 눈앞에 그대로 재현되었고, 책 속의 모든 글자와 그림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현실 세계에서 두변의 뇌 사용량은 5% 정도일 테지만, 꿈속에서는 거의 열 배인 50%를 사용할 수 있었다. 기억력과 이해력 모두 열 배를 훌쩍 넘은 것이다. 덕분에 낮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들이 꿈속에서는 매우 쉽게 느껴졌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현실 세계에서 한 시진은 그대로 한 시진이지만, 이 꿈속 세계에서는 시간이 매우 느리게 흐른다는 점이었다. 정확히 얼마나 느리게 흐르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대여섯 배? 아니, 어쩌면 열 배 정도?

덕분에 꿈속에서 두변의 두뇌는 매우 빠르게 움직였다.

여덟 시간을 잤을 뿐이지만, 꿈속에서의 시간은 열 배 느리게 흘렀고 뇌 사용량도 현실 세계의 열 배 이상이니. 하룻밤 만에 몇십일 치의 양을 공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나타났다. 단 하룻밤 만에 꿈속에서 500쪽에 달하는 <근맥 혈위>를 전부 외운 것이다!

다음날 깨어났을 때 두변은 놀라우면서도 매우 걱정스럽기도 했다. 꿈속에서의 기억이 못 미더워서 스스로 시험해 보기로 했다.

‘189쪽을 외워보자.’

그러자 두변의 머릿속에서 바로 189쪽이 펼쳐졌다. 조용히 되뇌면서 책과 대조해보니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다 맞았다.

‘그럼 359쪽의 혈위 상세도를 그려보자.’

두변은 붓을 들고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그림은 근혈(根穴)의 세부 내용을 그린 것으로, 혈위, 미세 혈관과 근맥 몇십 개의 길이와 두께 그리고 각도가 정확해야 했다.

몇십 분 만에 두변은 근혈의 세부 내용을 다 그려냈고, 책을 펴 대조했는데 틀린 곳이 하나도 없었다.

두변은 계속해서 몇십 쪽의 내용을 다시 외워보고, 또 몇십 장의 혈위와 근맥 상세도를 그려냈다. 하나도 틀림없이 모두 정확했다. 내용도 완전히 이해돼서, 무작정 외우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좋았다.

두변은 미칠 듯이 기뻤다. 시공간을 초월해 갖게 된 ‘꿈’이라는 능력이 이 정도라니! 두변은 이 능력만 있으면 반드시 기적을 만들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다음 날, 두변은 <현기 기초 이론>을 공부했다.

이 책에는 그림은 없지만, 내용은 훨씬 어려웠다. 그나마 현대 지구에서 근맥과 혈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배운 게 있었지만, 현기(玄氣)는 이 세계에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이 세계의 지구는 서기 17세기 초반 정도로 추정할 수 있는데, 수많은 무도 대사(大師)들이 현기 이론을 계속 수정하고 보완해 왔다. 현기 이론은 몇십 권이나 되는 분량에 여러 개의 계열로 세분화되었는데, 엄당은 그중에서 몇 개의 계열만 선택해 가르쳤다. 하지만 몇 개 계열이라고 해도 두꺼운 책 세 권을 공부해야 했다.

이 세계에서는 칼을 다루든 창이나 혹은 활을 다루든, 심지어 역사(力士)까지 모두 현기 이론을 기초부터 공부해야 했다.

현기 이론을 통달하지 못하면 무학 수련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었다. 만약 현기 이론을 통달하지 않고 수련에 들어간다면 주화입마에 빠져 근맥이 모두 파열돼 죽을 수 있었다.

한평생 현기 이론을 배워야 하는 게 모든 무학을 익히는 사람들의 숙명인데, 두변은 이제서야 현기 기초 이론을 배우기 시작하는 셈이었다.

‘꿈의 세계’라는 특별한 능력을 얻게 되었다는 걸 알았지만, 두변은 현실 세계에서도 열심히 공부했다. 만사를 제쳐두고 필사적으로 공부하고 이해하려 애쓰면서 침식을 잊을 지경이었다.

염세는 그 장면을 보더니 결국 한마디를 내뱉었다.

“쯧쯧, 마지막 발악을 하는구나. 하지만 어림도 없지!”

염세가 두변을 대하는 태도가 점점 달라지고 있는 걸 보니, 머지않아 두변을 괴롭히기 시작할 듯했다.

저녁 9시 즈음, 공부에 지친 두변은 다시 꿈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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