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8화 (8/648)

제8장: 의부의 바람대로 이름을 널리 알려라.

무학 기초 제1과 세근연력(洗筋煉力).

세근연력은 글자 그대로 전신의 근맥과 근육, 그리고 골격을 더 강해지도록 단련해 신체가 유연해지고 충격에 잘 견디게 만들어 고강도의 수련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두변은 밤새 꿈을 꾸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두변은 1학년 갑(甲) 반의 수업 교실에 들어왔다. 학생 오십 명이 모두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두변을 바라봤다.

두변은 이 학생들과 같이 세근연력을 배웠다.

환관 학원의 이번 신입생들은 총 260명 정도로 5개의 반으로 나뉘었다. 백천은 오십 명이 정원인 갑 반을 가르치는데 신입생들은 모두 열세 살, 열네 살 정도 돼 보였다. 먼저 기본적인 글공부를 하고 입학시험에 통과한 후에야 환관 학원에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두변의 나이는 이미 열여덟이었다. 환관 학원에서는 학년 구분이 명확하기 때문에 수업에 들어온 모든 소년들이 쭈뼛거리며 두변을 쳐다 왔다. 그들은 왜 고학년의 사형이 같은 수업을 들으러 왔는지 궁금해했다.

백천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두변을 발견했다.

“너희들이 보고 있는 이 학생은 두변이라고 한다. 6개월 후에 졸업하지. 두변은 지난 4년의 세월을 헛되이 보냈기 때문에 다시 처음부터 배우려고 한다. 그래서 너희와 같이 무학 기초 제1과를 듣기 위해 여기 왔다. 그래. 곧 졸업하는 대사형이 다시 1학년 수업을 듣는 것은 우리 환관 학원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지. 너희들은 두변을 투명인간 취급해도 좋고, 실패자이자 엄당의 수치로 생각해서 반면교사로 삼아도 좋다. 훗날 너희들도 수련을게을리한다면 두변처럼 실패자가 될 테니까 말이다. 그럼 졸업 후에 대소변이나 치우는 잡역을 하겠지.”

백천의 차가운 말에 교실 안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여기 있는 열세 살, 열네 살 소년들의 눈빛이 무시와 경멸로 변해갔다. 환관 학원은 이렇게나 현실적이고 노골적인 곳이었다.

“내가 저렇게 버러지가 됐다면 수업 들으러 오지도 못했을 텐데. 저 사람은 수치나 창피란 걸 전혀 모르나 보네.”

“두변이라. 들어 본 이름 같은데? 환관 학원의 수치라고들 말하는 거 같던데?”

“내가 듣기론 목숨을 걸고 산장을 지켜냈다는데? 대단한 사람 아니야?”

“바라는 게 따로 있었겠지. 근데 능력이 없으니 산장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거 아냐? 그냥 버러지일 뿐이야.”

1학년 학생들은 두변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말했다.

백천도 학생들이 욕하는 것을 말리지도 않고 두변에게 다가와서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4년 반의 시간을 들여 무학 기초 이론을 공부해 사람들을 놀라게 하려는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어제저녁에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실전 기초를 배우지 않는다면 그건 아무 쓸모가 없지. 무학을 수련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꾸준함과 성실함이다. 우리 반에 사람 한 명이 늘어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지만,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리는 걸 보고 있지 않겠다.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 주지 말아라.”

두변은 조금 의아했다. 어제 이론시험이 끝나고 나서 백천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좀 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오늘 차갑고 냉담한 모습을 보니 어찌 된 영문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곧이어 백천이 수업을 시작했다.

“첫 번째 수업에서는 마보(馬步: 기마 자세)를 배우겠다. 근맥의 강인함과 안정성을 단련하는 게 목적이다. 너희들은 일각 동안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를 유지해야만 두 번째 수업인 연력(煉力)에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이 마보 수업은 보름 동안만 진행한다.”

백천이 말했다.

‘역시 제일 쉬운 기초부터 시작하는구나. 마보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배워가는 거로군.’

이어서 백천이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마보를 선보였다. 양손을 곧게 뻗어 몸과 직각을 만들고, 하체는 쪼그려 앉는 자세를 취해 투명의자에 앉는 형태로 종아리와 허벅지가 서로 직각을 이루게 했다.

그는 그 자세를 유지하면서도 소나무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뒤이어 잡부 몇 명이 와서 물이 가득 담긴 그릇을 백천의 팔과 허벅지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물이 넘치기는커녕 그릇의 수면은 매우 잔잔하기만 했다.

모든 학생들이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 백천을 향해 심지어 존경의 눈빛을 보냈다.

“너희가 시험을 볼 때 나와 같은 수준을 해내길 바라지는 않겠다. 팔과 허벅지에 물이 절반 정도 담긴 그릇을 올려놓을 텐데 물이 넘치지만 않으면 합격이다.”

백천은 시범을 보여주면서 설명하느라 팔에 올려진 그릇의 물이 약간 흔들리긴 했지만,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일각의 시간이 흐른 후 백천은 마보를 풀었다.

“자 이제 모두 일렬로 줄을 서서 마보를 취한다. 양손은 곧게 펴고 허벅지와 종아리는 직각을 이루도록 만들어라. 조금이라도 잘못된 점이 있으면 바로 채찍이 날아갈 거다.”

명령이 떨어지자 반 전체 소년 오십 명은 다섯 줄로 나누어 서서 마보를 취했다. 두변은 무리에 끼지 못하고 끄트머리에 섰다.

“오늘 너희들의 임무는 마보를 일각의 1/3을 버티는 거다.”

백천이 말했다.

일각의 1/3은 5분이었다.

“아니야. 틀렸어!”

백천은 소리친 다음 손에 든 채찍을 매섭게 휘둘렀다. 조금이라도 자세가 잘못되면 어김없이 채찍이 날라왔다.

두변의 동작과 자세는 매우 정확했다. 하지만 신체 능력이 따라주지 못하니 30초 만에 온몸이 떨려왔다. 1분이 지나자 고통 때문에 온몸이 찢어질 듯 쑤시고, 2분이 흐르고 나서는 오로지 정신력 하나로 버텼다.

3분이 지났다.

극한에 달한 두변은 결국 자세가 무너져서 바닥에 쓰러졌다.

차락! 차락! 차락!

백천이 두변을 향해 매섭게 채찍질을 했다. 맞은 곳이 불에 탈 것처럼 아팠다.

“일어나서 계속해. 아니면 죽을 때까지 맞을 거다.”

백천이 호통쳤다.

두변은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나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의지력만 가지고 해결되지 않는 일은 너무도 많았다. 그의 신체 능력은 정말 최악이었다. 마보를 취하는 시간은 점점 짧아졌고 마지막에는 1분도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같이 수업을 듣는 소년들은 모두 5분을 버텼다. 비록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자세가 흐트러지긴 했지만, 적어도 두변처럼 땅에 쓰러지지는 않았다.

두변은 1학년들과 같이한 마보 수업에서도 꼴등을 한 것이다. 얼마나 창피한 꼴등인가!

백천이 두변을 가리키면서 냉소를 지었다.

“잘 봐라. 이게 곧 졸업할 대사형의 모습이다. 가장 기본적인 마보도 못 하다니. 엄당의 수치다. 모두 두변을 보고 반면교사로 삼아라.”

“네!”

1학년 학생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두변을 마음껏 비웃었다.

두변은 교실에서 쫓겨났다. 두변이 너무 무능해 1학년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는 게 그 이유였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리는 걸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수업이 끝나고 백천은 두변을 불러 차갑게 말했다.

“내일 수업에 안 와도 된다. 서로 시간 낭비하지 말자. 산장에게 일러도 좋다. 하지만 나는 너한테 포기하라고 말하고 싶구나. 잡역을 제대로 배우는 게 좋을 것이야.”

말을 마친 백천은 발길을 돌렸다.

“그럼 언제 다시 선생님을 찾아가도 되겠습니까?”

“일각의 절반을 마보로 버틸 수 있으면, 언제고 나를 찾아와도 좋다.”

“알겠습니다.”

두변은 채찍에 맞아 상처투성이가 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갔다.

“굴욕을 자초하는군.”

백천이 중얼거렸다.

두 시진 후, 백천은 환관 학원의 부산장이자 자신의 뒤를 봐주는 낭정을 만나러 갔다.

낭정이 물었다.

“두변에게 채찍질을 하고 수업에서 내쫓았다고?”

“그렇습니다.”

“산장 대인께선 별다른 움직임이 없으셨고?”

“아직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보아, 산장께서 두변을 그렇게 아끼는 것 같진 않습니다.”

“알겠다. 가보거라. 차후 일은 알아서 처리하고.”

“알겠습니다.”

백천이 대답을 마치고 물러났다.

두변은 이문회에게 이번 사건을 따로 말하지 않았다. 두변이 그렇게 유치하지도 않았고, 환관 학원이 실력으로 말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을 드러내기만 한다면 백천도 자신을 어찌하지 못할 것임을 믿었다.

저녁에 염세가 숙소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두변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두변, 듣자 하니 1학년 수업에 가서 마보를 배웠다면서? 근데 거기서도 꼴등을 했고 말이지? 너한테 용감하다고 해야 할지 낯짝이 두껍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단 말이지!”

두변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염세가 계속 말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저런 버러지들을 많이 봤는데 너 같은 애는 처음이다.”

짧디짧은 반나절의 시간 만에 두변이 1학년 수업에서 어떤 창피를 당했는지는 이미 환관 학원 전체에 퍼졌다. 또 하나의 놀림거리가 생긴 것이다. 두변이 수업에서 쫓겨났을 뿐 아니라 채찍질까지 당했으나 이문회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모두 산장 대인의 마음속에 두변의 자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염세의 태도도 완전히 바뀌었다. 물론 아직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어 말로만 갈굴 뿐, 행동을 취하진 못했다.

산장 이문회의 누각 안.

이위가 이문회에게 아뢨다.

“대인, 두변이 불공평한 대우를 받은 것 같습니다.”

“이 정도 억울함도 견디지 못하면 큰 인물이 되지 못하지. 일단 그 아이를 믿어 보지.”

“그렇지만 백천이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낭정이 누군가를 시켜 내 의중을 떠보고 싶어 했나 보군. 백천은 그의 학생이니, 그가 움직이는 게 당연해.”

“백천이 두변을 계속 못살게 굴도록 내버려 두실 겁니까?”

“당분간 그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지켜볼 생각이다. 만약 선을 넘는다면 내가 직접 처리해야겠지. 내 의자가 시련을 겪는 건 지켜볼 수 있으나, 업신여김을 당하는 건 못 참는다. 그저 안타까운 것은 두변의 신체 능력이 너무 떨어지고 또 시작이 너무 늦었다는 것이지.

그래도 일단은 두변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어라. 도저히 안 되겠다는 걸 알면, 그때 가서 포기하겠지. 문직(文職)을 맡는 게 출세하기 힘들다고 하지만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대인께서는 두변이 뭔가 기적을 만들기를 바라지 않으십니까?”

“힘들어 보여. 그리고 시간이 너무 촉박해. 두변의 신체 능력도 아니나 다를까 내가 우려했던 대로고. 기적을 바라긴 힘들지. 하늘이 내게 후하게 천재를 선물해주지도 않았을 테니까.”

이문회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저녁에 두변은 침상에 누워 오만 생각에 사로잡혔다.

이런 신체 능력이라면 반년은 고사하고 10년, 20년 세월을 무학에 쏟아부어도 실력이 늘 것 같지 않았다. 졸업시험은 절대 가망이 없었다. 유일하게 기대를 걸어볼 만한 것이 ‘꿈의 세계’라는 특수한 능력이었다.

그래서 두변은 온몸 구석구석이 쑤시는 것을 참고는 잠을 청했다.

꿈속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까 봐 몹시 걱정했다. 무학은 뇌로 공부하는 것과 다를 테니 ‘특별한 꿈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게 되고, 현실에서 죽을힘을 다해 수련하는 게 최선인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러나 그건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잠이 들자마자 그는 완전히 새로운 ‘꿈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꿈의 세계’에서 두변은 반복해서 마보를 연습했다. 열 번. 백 번 그리고 천 번.

현실에서는 몸이 너무 아파서 연습을 하면 할수록 자세가 계속 안 좋아졌다. 하지만 꿈속에서는 매번 마보를 하고 나면 기운이 완전히 회복되었고, 덕분에 연습을 할수록 실력도 늘었다.

꿈속에서의 시간은 마찬가지로 열 배나 느리게 흘렀고 몸도 전혀 지치지 않았다.

그래서 두변은 완전히 훈련에 몰입할 수 있었다. 200번째 훈련을 했을 때 마보를 5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500번째에서는 미동도 없이 10분을 버텼다.

물론 이 훈련도 효과는 있었지만 진정 놀라운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근맥과 힘의 관계에 대해 체득하게 된 것이다.

마보를 연습할 때 뇌가 전체 과정을 관여하기 때문에, 두변은 온몸의 근맥과 골격의 세밀한 장력의 변화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509번째 연습에 들어가는 순간, 두변은 마보를 취할 때 결코 움직이지 않을 수 있는 절대 진리를 불현듯 깨달았다. 근력이니 근성 같은 것은 한계가 있어서 아무리 강해도 무너질 수밖에 없게 된다. 완벽한 마보를 유지하는 것은 바로 균형이었다! 근맥과 골격, 힘 등 모든 요소의 균형을 잘 잡기만 하면, 아무 힘도 들이지 않고 일각이든 이각이든 버틸 수 있게 된다. 미동도 하지 않고 1시간을 버틸 수 있는 것은 사실 백천도 제대로 해내지못하는 경지였다.

두변은 꿈속에서 그 균형점을 찾으면서 정밀하게 계산에 들어갔다.

계속된 백여 번의 연습과 깨달음을 거치면서, 두변은 근맥과 골격, 그리고 힘의 균형 이치를 터득하게 되었다.

결국 두변의 마보는 흠잡을 데가 없을 정도로 완벽한 경지에 이르렀다.

두변은 가장 완벽한 마보 자세로 아무런 미동도 없이 몇 시간이고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적어도 마보에 한해서는 교관인 백천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은 셈이었다.

만약 환관 학원에 마보 시합이 있었다면 1등은 당연히 두변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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