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백천을 당황하게 하다.
다음날 두변은 다시 1학년 무학 기초 수업에 들어갔다.
선생인 백천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교실에 있던 열세네 살의 소년들은 두변을 둘러싸서는 조롱하고 악독하게 비꼬았다. 그들이 뱉어대는 말을 들어보면 도저히 십대 소년들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였다.
이곳은 약육강식의 세계였고, 환관 학원 내에서도 같은 이치가 통용됐다.
“여길 다시 올 낯짝이 있는 걸 보니, 넌 고환을 거세한 게 아니라 자존심을 거세했구나?”
“내가 너였다면 똥통에 빠져 죽었을 텐데, 감히 여기에 다시 얼굴을 들이밀어?”
“어서 여기서 꺼져, 안 그러면 죽여버릴 테니까!”
몸집이 크고 건장한 몇몇 소년들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달려들 것처럼 자세를 취했다. 강한 상대에게 약하고, 약한 상대에게 강한 것은, 엄당 내에서 공공연히 통용되는 이치였으며 엄당의 문화였다. 낙오자들은 맞아야 한다는 것은 엄당 내부의 불문율이었다.
네다섯 명의 신체 건장한 소년들이 두변을 에워싸며 달려들려고 했으나, 바로 그때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백천이 들어왔다.
순식간에 모든 소년들이 줄을 맞춰 정렬했다. 이들의 모습은 새끼고양이보다 온순해 보였으며, 몇몇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백천은 두변을 보고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어제 한 말을 잊었느냐? 어서 내 눈앞에서 꺼져라. 아니면 강제로 끌어낼 테니까.”
백천이 손을 들어 올리자, 건장한 몇몇 소년들이 앞으로 나와 두변을 둘러쌌다. 그들은 명령이 떨어지면 두변을 흠씬 두들겨 패서 반쯤 죽여 놓고 끌어낼 생각이었다.
“백천 선생님, 어제 분명 마보 자세를 제대로 취할 수 있으면 찾아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럼, 마보 자세를 할 수 있다는 거냐?”
“그렇습니다.”
“나를 바보로 아는 거냐? 어제는 일각의 1/5도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지더니, 하루 만에 훈련을 끝냈다고? 정확한 자세로 마보를 일각이나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이냐? 이게 무슨 헛소리야. 나를 뭐로 보고!”
주위의 소년들도 덩달아 비웃기 시작했다.
사실 마보는 어려운 게 아니었다. 다만 적어도 보름 동안은 훈련해야 심사를 통과할 수 있을 만큼, 꾸준한 연습 말고는 다른 비결이 없었다. 이건 이론 지식처럼 미리 외워놓거나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두변이 하루 만에 훈련을 마쳤다고 하니 모두를 농락하는 게 아니면 뭐란 말인가!
백천이 한기가 가득한 눈빛으로 두변을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너를 너무 너그럽게 대했나 보다. 감히 산장 대인의 뒤에 숨어 나를 이렇게 희롱해? 네가 스스로 마보 훈련을 마쳤다고 했으니, 여기 모두가 있는 앞에서 심사하겠다. 미동도 없이 일각을 버티면 통과다. 그럼 내가 모두가 있는 이 자리에서 너에게 사과를 하지. 하지만 네가 실패한다면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라. 아 그리고, 여기 학생 오십 명이 네 얼굴에 침을 뱉도록 하는 건 어떻겠냐?”
이 말을 듣고 두변은 너무 놀랐다. 염세가 자신한테 한 행동들을 통해 엄당에 인권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이미 몸소 깨우쳤지만, 백천은 선생이니 조금은 다를 줄 알았다. 하지만 방금 그가 내뱉은 말을 보면 이건 명백한 인권 유린이 아니겠는가! 이런 자가 어떻게 타인의 모범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두변은 백천에게 다른 꿍꿍이가 있으리라 의심했다.
“지금 후회하긴 너무 늦었다. 얘들아, 침 뱉을 준비를 해 놓거라.”
백천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학생 오십 명은 두변이 실패하면 그의 얼굴에 뱉을 요량으로 전부 침을 모으기 시작했다.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정확한 마보를 유지하며 일각을 버텨야 한다. 시작!”
두변은 이들 앞에서 완벽한 마보 자세를 취했다. 양손을 곧게 뻗어 직각을 유지했고, 무릎은 구부려 종아리와 허벅지가 직각을 이루도록 했다. 이 마보는 현대 지구에서의 자세보다 훨씬 어려웠다.
백천이 모래시계를 꺼내 책상에 올려놓았다. 안에 있는 모래알들이 아래로 떨어지면서 초읽기가 시작되었다.
백천은 시큰둥한 눈빛으로 두변을 바라봤다. 소년들도 수군거리면서 두변이 일각을 버틸 수 있을지 없을지, 혹은 마지막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실패할지를 놓고 내기를 걸기 시작했다.
“나는 일각의 1/3 정도가 지나면 두변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드러눕는다는 것에 건다.”
“일각의 1/3이라니, 너무 과대평가한 거 아니야? 나는 저 버러지가 일각의 1/5도 못 버틴다는 것에 은자 반을 걸지.”
백천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무시하는 눈빛으로 두변을 바라봤다. 그는 두변이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버티다 얼마 못 가 완전히 무너지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1분, 2분, 그리고 3분이 지나갔다.
어제 두변은 이쯤에서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고 얼마 더 버티지 못해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졌다. 그런데 지금 두변은 마치 잘 만들어진 조각처럼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그렇게 5분을 버티고 7분을 버텼다.
이어서 10분이 지났고, 15분이 지났다.
소년들의 비웃음은 조금씩 사그라들었으며, 두변을 바라보는 눈빛도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백천도 가소롭다는 눈빛을 거두고,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보냈다.
마보는 지극히 일반적인 기본기로 그다지 대단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두변의 마보에는 조금도 움직임이 없었는데, 이건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선생님, 물이요!”
갑자기 소년 하나가 물이 반 정도 담긴 그릇 두 개를 가져왔다.
백천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그릇 두 개를 두변의 팔 위에 올려놓았다. 두변은 여전히 흔들림 없는 자세를 유지했고, 그릇 안의 물에는 잔잔한 물결조차 일지 않았다.
이것을 본 백천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선생님, 여기 두 그릇이 더 있습니다.”
또 다른 학생이 이번에는 물이 가득 담긴 그릇 두 개를 가져왔다. 본 시험에서도 그릇에 물을 반 정도만 담는데, 이번에 물을 가득 담아오다니 너무 뻔뻔한 행동이 아닌가.
백천은 도를 지나치는 행동을 나무라야 하는 처지건만, 결국 물이 가득 담긴 그릇 두 개를 두변의 허벅지 위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두변은 흔들림 없는 자세를 계속 유지했다. 양팔에 올려진 두 그릇에 담긴 물은 고요했고, 허벅지에 올려진 그릇에서도 물 한 방울 흘러넘치지 않은 게 물이 그대로 굳은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이게 가능한 일이냐고!
소년들은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몰랐으나, 백천은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백천도 마보를 하고 몇 시진은 버틸 수 있으니, 오래 버티는 것 그 자체가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릇 속의 물조차 흔들림이 없이 고요하다는 것, 이것은 백천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이었다.
단순히 마보의 수준만 놓고 보자면 두변이 10년 동안 무학 선생을 맡아온 백천을 훨씬 뛰어넘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마보는 기본 중의 기본으로 가장 손쉬웠다. 훈련만 한다면 누구든 쉽게 80점을 받을 수 있지만, 95점 이상을 받기는 매우 힘들며 백천 자신도 딱 그 정도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금 두변의 마보는 100점짜리였다.
백천이 마보를 취한다고 해도 그릇의 물이 넘치지 않게만 유지할 수 있지, 잔잔하게 물결이 일기도 한다. 그런데 두변의 양팔과 다리에 올려진 그릇 네 개 속의 물은 잔잔한 물결도 일으키지도 않고 얼음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백천은 너무 기가 막혔다.
네깟놈이 어떻게 이걸 해낼 수 있지? 어제는 분명 일각의 반도 못 버티고 땅에 쓰러졌었는데?
모래시계가 일각이 지났음을 알렸지만, 백천은 여전히 두변을 지켜보고 있었다. 두변의 마보는 너무 완벽했으며 흠잡을 데가 없었다.
교실도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모든 이들의 눈빛이 두변을 향한 채, 그는 완벽한 마보를 유지하고 있었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고 그렇게 20분, 30분, 40분이 지나갔다.
백천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 수업 시간이 끝나갈 즈음, 소년들은 백천의 얼굴을 쳐다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저 바닥만 응시하고 있었다. 만약 두변이 시험을 통과한다면 선생이 직접 두변에게 사과하겠노라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백천의 얼굴은 점점 붉어지더니 하얗게 질렸다가 이내 새파래졌다. 백천은 사과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백천은 선생으로서 자신이 한 말을 반드시 지켜야 했고, 환관 학원도 이를 매우 중요시했다. 하지만 백천은 학생 오십 명 앞에서 두변에게 도저히 사과할 수가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선생의 권위와 체면이 땅에 떨어지는 일이 아니겠는가.
백천이 발로 바닥을 세게 구르자, 두변의 팔과 허벅지에 올려진 그릇에서 그제야 물결이 일었다.
백천이 무섭게 소리쳤다.
“그만하면 됐다! 두변, 이제 연기는 그만해라. 저번에 본 이론시험에서는 이미 4년이나 공부해 내용을 달달 외워놓고 아닌 체하며 고득점을 받아 나를 놀라게 하더니, 이번에는 마보를 몇 년이나 연습해 높은 수준에 도달해 놓고, 어제 기초수업에 와서 몇 분만에 땅에 쓰러져? 오늘에서야 제 실력을 내보이는데, 다른 사람들은 네가 하루 만에 마보를 완벽히 터득했다고 믿을 게 아니냐. 사람들이 이걸 보고 놀라며 너를 천재라고 생각하는 게재밌더냐?”
두변의 안색이 변했다. 백천이 냉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교활하고 영악하기 그지없구나. 4년 반의 시간을 들여 이론 지식과 마보를 터득한 게 대단한 일이더냐? 이것들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고작 이 정도로 거들먹거려? 나한테 불만이 많았더냐? 만약 네가 장난치고 있는 게 아니라면 3학년 때 배우는 냉풍검법(冷風劍法)을 한 번 펼쳐 보아라. 어서 해보래도!”
두변이 천재라고 생각하고 있던 소년들은 백천의 말을 듣고는 그게 아닌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머리가 제법 똑똑하구나. 산장 대인의 눈에 들고 싶었겠지. 하지만 안타깝게 됐다. 네 그 뻔한 수작은 나한테도 다 보이니, 산장 대인은 두말할 것도 없지. 4년 반의 시간 동안 고작 마보밖에 못 배웠으니 너는 결국 잡역을 하게 될 거다. 똑똑히 들어라. 나는 너같이 거짓되고 비열한 놈을 가르칠 생각이 없다.”
백천이 바깥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내 수업에서 사라져라. 당장!”
두변은 그릇 네 개가 땅에 떨어져 깨지는지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보를 풀었다. 그리고 백천을 응시하더니 자리를 떠났다.
저자에게는 헛된 기대를 가질 필요도 없겠다, 싶었다.
두변은 곧장 산장 이문회에게 찾아가 이 사실을 알리려고 했다가, 몇 걸음 못가 다시 숙소로 돌아와 책을 펼쳤다.
반 시진이 지나고 백천이 두변을 찾아왔다.
“따라오너라. 네 일을 산장께 가서 똑똑히 말해야겠다.”
백천은 두변과 함게 산장 이문회의 서재로 갔다.
“산장, 이 일을 말씀드려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말해 보아라.”
“며칠 전 두변이 저를 찾아와 새사람이 되고 싶다며, 무학 이론을 처음부터 다시 공부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로 사나흘이 지난 시점에, 두변이 제가 낸 시험을 치고는 뜻밖에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습니다.”
두변이 받은 점수는 만점이었으나, 백천의 입에서는 ‘만점에 가까운’으로 표현되었다.
“계속 말해라.”
“어제 제가 두변에게 무학 입문 수업인 마보를 가르쳐줬습니다. 두변의 실력은 형편없었습니다. 1분도 안 돼서 몸이 떨리기 시작하더니, 2분이 돼서는 떨림을 주체할 수 없었고, 3분이 되자 땅에 쓰러졌습니다. 연습을 거듭할수록 땅에 쓰러지는 시간은 더 빨라졌고, 제대로 서지도 못했습니다.”
“두변의 신체가 허약한 걸 고려하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지.”
“그런데 오늘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두변이 제게 마보 시험을 놓고 내기를 걸었습니다. 자신이 시험을 통과하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사과하라고 말입니다. 두변은 시험을 통과했을 뿐만 아니라 거의 만점에 가까웠습니다. 마보를 이 각이나 유지하면서 조금의 미동도 없었습니다. 단지 하루 만에 마보가 뭔지도 모르는 아이가 만점을 받은 겁니다.”
“네 말은 두변이 속여왔다는 뜻이구나. 4년 반의 시간 동안 기초 이론과 마보만 연습해 놓고, 처음 배우는 척하더니 단기간에 터득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섣불리 예단하긴 이르지만, 산장께 보고해야 할 사항이라 판단했습니다.”
“네가 느끼기에 어떤지 솔직히 말해 보아라.”
산장 앞에서 선생이 학생 험담을 하는 것은 보기 좋은 그림은 아니었기에 백천은 한참을 망설였다.
고민 끝에 백천이 입을 뗐다.
“저는 두변이 아주 교활하고 영악한 아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도 그랬을 것이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두변을 향한 악랄한 비방이었다. 두변이 목숨을 걸고 이문회를 지키려 했던 행동조차 교활한 계략으로 폄훼한 것이다.
대화가 오가는 동안, 두변은 한쪽에 서서 조용히 듣고 있었다.
이문회가 두변에게 물었다.
“할 말이 있느냐?”
“없습니다.”
두변이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