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11화 (11/648)

제11장. 네가 무척 자랑스럽구나.

다음날 새벽 2시쯤 누군가 두변을 깨웠다.

“반 각의 시간을 줄 테니 씻고 나오거라. 밖에 있겠다. 너의 무학 기초 훈련은 내가 맡기로 했다. 낮에는 수업이 있으니 새벽에 너를 가르쳐줄 것이다.”

“알겠습니다. 이 교관님.”

두변과 백천의 사이는 이미 틀어졌다고 판단한 이문회가 이위를 보내 두변을 안심시킨 것이다. 이위는 학원 내에서 유일하게 두변에게 잘 대해주는 선생이었다. 지난번 최병정 사건에서 두변이 누명을 쓰고 죽기 일보 직전인 상황에 부닥쳤을 때도 이위가 이끄는 무사들이 그를 구해준 적도 있었다.

두변의 목소리에 숙소에 있던 사람들이 잠에서 깼다. 옆에 자고 있던 염세는 본능적으로 두변에게 욕을 퍼부을 뻔하다가 이위를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두변은 반 각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빠르게 씻고 옷을 입은 뒤 이위 앞에 섰다.

“두변, 내가 그동안 너에게 동정과 선의를 베푼 것은 모든 잡역 환관들이 온순한 양과도 같기 때문이다. 난 항상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그런데 지금 네가 늑대들의 경쟁에 끼어들겠다고 마음먹었으니, 내게 이전과 같은 온화함을 기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나는 가장 엄격하고 혹독하게 너를 훈련할 것이다. 못 견디겠으면 언제든 포기해도 좋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네가 만약 포기한다면 모든 것을 잃을 것이다. 학원에서 쫓겨날 뿐 아니라 엄당의 보호, 그리고 심지어 산장의 보살핌까지도 말이다.”

“알겠습니다.”

“네가 자신을 천재라 말했으니 그 말을 믿겠다. 하지만 한 가지 일러두고 싶다. 보름의 시간 동안 200근 무게를 들어 올린다는 건 재능으로 가능한 게 아니다. 이건 고된 훈련으로 착실히 쌓는 기본기이다. 천재가 한순간에 깨닫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지. 그러니 보름 후 백천과의 내기에서 네가 이길 승산은 매우 적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수련한다면 설령 네가 지더라도 명예는 얻을 수 있다. 곤장을 맞고 학원에서 쫓겨나더라도 우리가 너에게 상당히 괜찮은 출세의 길을 모색해 주겠다.”

이위는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 두변을 가르칠 생각이었지만, 보름 후에 있을 결과에 대해서는 비관적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시작해보자. 앞에 놓여 있는 물통 두 개가 보이느냐?”

두변은 밑바닥이 뾰족해 땅에 바로 놓지 못하고 계속 들고 있어야 하는 물통을 쳐다봤다.

“이건 밑이 뾰족한 가장 작은 크기의 물통이다. 여기에 물을 가득 채워도 25근 정도밖에 안 된다. 물을 가득 채워라.”

두변은 밑이 뾰족한 물통을 들고 가서 물을 가득 채워 손에 들었다. 한 통당 25근이니 합치면 50근이었다. 두변은 가까스로 물통을 들어 올리기는 했지만 이게 끝이었다. 손에 들고 있기만 해도 온몸이 떨려왔다.

“오늘 네 임무는 이 물통 두 개를 들고 학원 뒷산의 정상까지 오르는 것이다. 나는 계속 너를 따라다니며 네가 물통을 내려놓을 때마다 가차 없이 채찍질을 할 것이다. 물론 쉬어도 되지만 양손에 물통을 든 상태로 쉬어야 한다. 통 안의 물이 5분의 1 정도 줄어들면 다시 가득 채우도록 할 것이며 네게 채찍질을 가하겠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두변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과연 연력 수업에서는 아무런 교묘한 비법 없이 가장 원초적인 방법으로 근골을 단련시키고 있었다.

“출발!”

이위가 소리치면서 채찍으로 바닥을 세게 내리치자, 땅에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두변은 밑이 뾰족한 물통을 들고 앞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저도 모르게 노래 가사 하나가 떠올랐다.

과일 향은 싱그럽고, 산에 핀 꽃은 아름답네요.

강아지와 양들은 이리저리 뛰놀아요.

채찍을 가볍게 휘두르니 산은 노랫소리로 가득 차네요.

- ‘목양곡(牧羊曲)’.

이연걸 주연의 영화 <소림사> OST.

양치는 여인의 아름다운 자태와 수줍어하는 얼굴이 순간 머릿속에 떠올랐다.

두변의 목적지는 환관 학원 뒷산의 정상이었다. 이 산은 해발 500미터가 되지 않으니 그리 높지도 않고 험한 편도 아니었다. 하지만 거리로만 본다면 족히 5리, 그러니까 2,500미터나 된다. 게다가 모두 오르막길인 데다 닭 잡을 힘도 없는 두변에게는 정말 어려운 여정인 셈이었다.

두변은 4년 전에 이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완주하지 못하고 도중에 기절했고 그때부터 무학 수련을 완전히 포기했다.

새벽의 달빛 아래 두변은 손에 각각 25근의 물통을 들고 매우 느리게, 그리고 힘겹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처음 100미터는 꾸역꾸역 나아갔으나. 200미터부터는 몸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300미터부터는 양팔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손에 들고 있는 물통은 25근이 아니라 천 근은 넘는 것 같았다.

350미터를 갔을 때는 신체의 한계에 다다르면서, 눈앞이 흐려지고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정신이 어질어질하니 곧 기절할 지경이었다.

이위는 미간을 찌푸리며 바라만 볼 뿐 두변을 조롱하지 않았다. 이위도 이미 두변의 신체가 많이 허약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완전히 구제불능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더 무리하면 그대로 혼절해 버릴 것 같았기에 두변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두변은 멈춰 섰지만 그래도 물통은 내려놓지 않고 두 손에 든 채로 쉬었다. 이걸 휴식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그래도 조금 숨을 돌릴 수는 있었다.

족히 반 각을 쉬고 난 두변은 조금 기운을 차려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두변은 온 힘을 쥐어짰지만 겨우 200미터를 더 나아갔고, 거기서 다시 반 각 동안 휴식을 취했다.

두변은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이 그렇게 가파른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오르막길이었기에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떼기 힘들었으며 숨을 들이쉴 때마다 칼로 폐를 찌르는 고통을 느꼈다.

두변은 계속 버텼으나, 휴식 한 번에 나아갈 수 있는 거리는 100미터, 50미터, 30미터, 10미터로 점차 줄어들었다.

이위는 두변의 눈이 초점이 흐려지고 얼굴은 창백해져 핏기 하나 없으며 목에는 핏대가 섰음을 발견했다. 이런 상황에서 훈련을 강행할 경우 신체가 견디지 못해 비명횡사할 수도 있었다. 이위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포기하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마지막 500미터만 남았다.

두변은 이미 의식이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의지력 하나만으로 버티고 있었다.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금방이라고 꼬꾸라질 듯이 위태로워 보였다.

두변의 걸음은 점점 느려졌고 휘청거리는 정도도 심해졌다. 통 안에 든 물은 이미 1/4 정도가 이미 흘러넘쳤지만 이위는 채찍을 휘두르지 않았다. 이위가 중시했던 것은 태도인데, 두변은 이미 충분히 자신의 의지력을 보여줬다.

네 시간이 지났고, 해가 이미 떠오르고 있었다. 두변은 정상까지 200미터를 남겨두고 있었다.

처음 배우는 학생이어도 보통 한 시간 반이면 산의 정상에 오르는데 두변은 벌써 네 시간이나 지났다.

마지막 200미터는 지옥 그 자체로, 심지어 생명을 단축시키는 수준이었다. 이위는 이미 채찍을 내려놓고는 두변이 기절해서 산밑으로 떨어질 것을 대비해 받쳐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위는 두변이 임무를 완수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 두변은 언제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두변은 개미가 기어오르듯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산 정상까지의 거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150미터.

100미터.

80미터.

50미터.

30미터.

20미터.

10미터.

결국, 두변은 예상과 달리 임무를 완수해냈다. 25근짜리 물통을 두 손에 들고 정상에 오른 시간은 해가 뜨고 두 시간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두변은 산의 정상에 다다르기까지 장장 여섯 시간이 걸렸고, 이는 1학년 신입생이 쓰는 시간의 네 배였다.

시간으로 보자면 지나치게 오래 걸렸지만, 이위는 매우 감동했다. 초반 500미터에서 이미 신체의 한계까지 도달했기 때문에 두변이 곧 포기할 것이라고 여겼었다. 하지만 두변은 결국 해냈다.

기록은 처참했지만, 두변의 의지력은 다른 사람들을 압도하는 수준의 승리였다.

두변은 산 정상에 서서 동쪽에서 떠오른 거대한 태양을 보고는 고개를 돌려 말했다.

“이 교관님, 정상까지 올라왔습니다.”

그는 말을 마치기 무섭게 뻣뻣하게 그대로 땅으로 꼬꾸라졌다. 두변은 기절하면서도 손에서 물통을 놓지 않았다. 이미 준비하고 있던 이위는 두변에게 달려가 그를 품에 안았다.

다시 깨어났을 때, 두변은 펄펄 끓는 약초탕에 몸을 담그고 있었고, 이위는 두변의 몸에 기름을 발라주고 있었다.

인체를 극한까지 몰아붙이면 근맥과 골격 모두 크게 손상되므로 효험이 좋은 약초탕으로 목욕을 해줘야 했다. 여기에 표태유(豹胎油)를 발라주거나 표혈환(豹血丸)을 복용하면 효과가 더 좋았다.

“깨어났느냐?”

이위가 묻고는 병에 담긴 빨간색 단약을 꺼냈다.

“먹거라.”

이 표혈환은 매우 값비싼 약재로, 두변이 함부로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두변이 단약을 삼키자 갑자기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다.

“몸은 좀 어떠냐?”

“마비된 것처럼 아무 감각도 없습니다.”

이위는 미간을 찌푸렸다. 감각이 없다는 것은, 근맥이 심각한 손상을 입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하지만 표혈환을 먹은 후 몸 안에서 뜨거운 기운이 솟아나더니 마비된 감각이 점점 돌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시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온몸에서 근육이 터지고 근맥이 끊어질 것 같은 통증이 엄습해왔다.

“지금 통증이 엄청납니다. 너무 아픕니다.”

“통증이 느껴진다는 것은 근맥이 망가지지 않았다는 뜻이니 다행이다.”

이위가 한숨을 돌리며 말했다.

이위는 자신의 의자로 돌아가 앉아 긴 숨을 내쉬며 땀 범벅인 얼굴을 닦아냈다.

“네 근맥이 얼마나 손상되었는지 아느냐? 자칫하면 다 끊어질 뻔했다. 온몸의 근맥이 다 손상되어서 몇 시진이나 치료했다. 표태유 다섯 병을 다 쓰고서야 겨우 살려낸 거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나한테 고마워할 필요 없다. 산장께 고마워해라. 산장께서 어떤 수를 써서라도 너를 살려내라고 하셨으니까.”

이위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네놈은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하다. 오늘 아침에 준 임무는 사실 네가 1/3도 소화하지 못할 분량이었다. 도중에 포기하는 게 정상이었어. 그런데 의지력 하나만 가지고 버텨내다니. 신체를 극한으로 몰아붙이다가 근맥이 다 망가질 뻔하지 않았느냐. 네가 중간에 포기하더라도 내가 산장께 잘 해명해줄 생각이었다.”

“전 다른 선택지가 없습니다. 선생님.”

“하지만 난 네가 자랑스럽다. 신체는 부모님이 주신 거지만 의지력은 자신이 단련하는 것이지. 여섯 시간이나 걸려서야 연력의 첫 번째 임무를 완수했지만, 나는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너는 내가 봤던 모든 학생 중에 가장 의지력이 강한 아이다.”

이위가 진심이 담긴 눈빛으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위는 곧 심각한 표정이었다.

“그렇지만 포기하거라. 네 신체 자질은 너무 형편없다. 어쩌면 너는 매우 총명하고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으니 확실히 천재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네 신체는 무학을 수련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오늘 임무를 완수하긴 했지만, 고작 50근의 물통과 5리도 안 되는 거리였다. 앞으로의 100근, 200근, 10리, 20리, 30리는 네 의지력으로만 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이위가 수건을 들고 몸의 땀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오늘 너무 무리했기 때문에 네 근맥이 다 망가질 뻔해서, 상태를 보아하니 앞으로 7, 8일은 지나야 몸이 회복될 것이다. 앞으로 있을 훈련에서도 의지력만 가지고 무리한다면 오늘과 같은 행운이 따라주진 않을 것이다. 아마 근맥이 다 파열되거나 죽겠지.”

이건 두변을 겁주려는 말이 아니었다. 만약 두변이 오늘처럼 목숨을 걸고 훈련을 받는다면 근맥이 파열될 확률은 9할 9푼이었고, 비명횡사할 확률도 6할이 넘었다.

“너를 존중하고 또 네가 자랑스럽다. 하지만 네가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런 훈련을 계속하지 못하겠다. 걱정은 말아라. 산장께서도 네가 포기하는 것에 동의하셨다. 보름 후에 있을 내기에서 네가 져서 곤장 스무 대를 맞더라도 네 근골이 상할 만큼 모질지 않을 것이다. 환관 학원에서 쫓겨난 후에도 네게 엄당의 점포에서 일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주겠다. 1년 반 동안 점원 생활을 거치면 점포의 장궤가 될 것이다. 그렇게 많은 권력을쥐지는 못하겠지만 부유한 생활을 누리며 사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두변은 눈에 힘을 주더니 이에 반박하려 했다.

“이건 제안이 아니라 명령이다. 산장 대인이 내린 명령. 산장은 네가 근맥이 완전히 파열된 쓸모없는 인간으로 전락하는 걸 원치 않으신다. 두변, 산장이 네게 이런 말을 전하셨다. 네가 환관 학원을 떠나더라도 환관 학원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환관 학원 그리고 제국을 위해 크게 이바지할 수 있으며, 우리가 계속해서 너를 도와주겠다고 말이다.”

두변은 흥분을 가라앉혔다. 이게 산장의 명령이라고 하니 두변도 이에 대해 논쟁할 수가 없었다. 두변은 행동으로 자신을 증명할 수 있을 뿐, 이문회의 명령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이위가 계속해서 말했다.

“더 이상 네게 연력 수업을 가르치지 않겠다. 바로 집으로 돌아가도 좋고, 아니면 학원에 남아서 보름 후에 백천과의 내기를 끝내고 학원을 떠나도 좋다. 내기에서 진 뒤에 환관 학원을 떠나더라도, 점포로 가서 좀 지내다 보면 예상 외로 몇 년 만에 네가 그 점포의 대장궤가 될 수도 있을 거다.”

점포의 대장궤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만 두변은 그럴 수가 없었다.

두변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6개월 후의 졸업시험에서 1등을 해 동창에 들어가 그 누구보다 빨리 출세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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