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장: 기적을 보고 모두가 놀랐다.
환관 학원 1학년 학생들의 근력 측정 합격선이 인상 190근, 용상 260근이었다. 그리고 두변과 백천의 내기에서도 인상 190근이 승패를 가르는 무게였다.
두변이 190이라는 숫자를 외치자 사람들은 포기와 다를 바 없는 발언이라고 여겼다. 진지하게 측정에 임한다면 최고 중량을 바로 들 게 아니라, 조금씩 무게를 올려야 했을 테니까.
그래서 모든 사람은 두변의 패배를 다시 한번 확신했다.
이곳의 석쇄는 중간 부분의 손잡이가 나무로 되어 있고 양쪽에 석쇄가 달려 있는 모양으로, 현대 지구의 바벨과 매우 비슷했다.
190근 석쇄 앞에 선 두변은 기대감에 부풀어 있으면서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감이 충만하긴 했지만 모든 훈련이 꿈의 세계에서 이루어진 만큼 아직 현실감이 들진 않았다.
만에 하나라도 꿈속에서의 수련이 다 허구였다면 어떡하지?
135근을 끝으로 더 이상 중량 측정을 하지 않아 불안할 수밖에 없었지만, 결국 깊게 숨을 들이쉰 후 허리를 숙여 석쇄의 손잡이를 잡았다.
이위가 뒤에서 긴장된 눈빛으로 두변을 보며 말했다.
“내가 한 말 기억해라.”
이위는 이미 두변에게 다시는 근맥 손상이 일어나서는 안 되니 절대 무리하지 말라고 당부했었다.
석쇄 손잡이를 잡은 두변은 힘을 쓰기 시작하더니, 190근 석쇄를 순식간에 들어 올렸다. 그때 두변의 두 발이 잠시 비틀거렸는데, 석쇄가 무거워서가 아니라 힘을 과도하게 주었기 때문이었다. 190근을 버티려는 생각에 최대한 힘을 주었는데 그 힘이 무게를 압도하다 보니 비틀거리게 된 것이다.
다리가 불안정했지만, 두변은 그대로 190근 석쇄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매우 부드러운 연결이었고 빠른 동작이었다.
모든 사람은 두변이 석쇄를 들어 올리지 못해 포기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두변이 아무런 준비 동작도 없이 순식간에 석쇄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다니!
너무 놀라운 일이라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낭정과 백천은 순간 멍해져서는 얼굴에는 그 어떤 표정도 없었다.
하지만 이문회는 번뜩이는 눈빛으로 믿을 수 없다는 듯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이위도 두변을 부축해주러 달려나올 채비를 하고 있었지만, 두변이 석쇄를 들어 올리는 걸 보고 발이 제자리에 묶인 듯 꼼짝을 못하고 얼굴에는 어리둥절한 표정만이 나타났다.
몇 초가 지나고 나서야 이위가 다급하게 말했다.
“그만하면 됐다. 어서 내려놓거라.”
이위는 두변이 석쇄를 내려놓을 때 두변이 자기 발을 찧을까 봐 얼른 석쇄를 이어받았다. 이위는 곧 놀란 표정으로 두변의 팔을 잡아 맥을 짚으며 근맥 손상은 없는지도 살펴봤다.
“두변, 너, 너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것이냐?”
이위가 잠긴 목소리로 물어봤다. 이건 정말 생각도 못 한 결과 아닌가.
“보름 동안 매일같이 열심히 훈련한 결과입니다.”
백천이 창백한 얼굴로 소리 질렀다.
“말도 안 돼. 이건 불가능하다고! 보름 동안 줄곧 침상에 누워있기만 했던 놈이, 보름 전에 45근밖에 들지 못하던 놈이, 어떻게 갑자기 190근을 들 수 있다는 거야! 이건 불가능해!”
말을 마친 백천은 이문회가 옆에 있다는 것도 잊어버린 채 190근 석쇄의 중량을 직접 확인해봤다. 부정행위를 의심한 것이다.
백천은 직접 석쇄를 들어보고는 석쇄 무게가 190근이 확실하며 부정행위는 없었음을 확인했다.
“이건 불가능해. 보름 동안 무게를 150근이나 증량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야. 뭔가 잘못된 게 분명해.”
백천이 중얼거리며 말하자, 냉정을 되찾은 부산장 낭정이 호통을 쳤다.
“백천!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것이냐? 지금 나까지 의심하는 게야?”
낭정은 곧바로 이문회를 향해 공손히 말했다.
“산장, 그럼 이어서 용상 260근을 측정할까요?”
두변이 190근 석쇄를 들어 올린 것이 큰 충격이기는 하지만, 곧바로 냉정을 되찾은 그는 두변이 석쇄를 들어 올릴 때 무게중심이 잠시 흔들렸음을 기억해냈다.
‘여기까지가 두변의 한계인 게지. 그렇다면 260근 용상은 실패할 확률이 높게 되고, 그렇다면 백천이 이기게 돼! 두변이 자신이 천재임을 증명했다고 해도 결국 태형 스무 대를 맞고 학원에서 쫓겨나게 될 터! 그렇게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지만 어쨌든 내기에서 진 것이니, 엄당의 언행일치의 기본정신에 따라 패배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럼, 계속해야지.”
이문회가 말했다. 그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두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위가 직접 260근 석쇄를 확인해보니 문제는 없었다. 이위는 두변 앞으로 와서 힘껏 두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잘했다. 네가 이렇게까지 해낼 줄 몰랐다. 역시 날 실망시키지 않았어. 덕분에 산장도 나도 한시름 놓았다.”
두변은 260근 석쇄 앞에 서서 눈을 지그시 감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백천은 이 내기에 자신의 운명이 걸렸음을 다시 한 번 상기했다. 만약 두변이 이기면 자신은 교사직에서 제명되고 잡역 환관으로 강등될 것이다. 게다가 천재를 시기 질투한다는 오명을 쓰고 평생을 살아야 하며 두변의 출세에 디딤돌이 되는 꼴이니, 그것은 죽음보다 견디기 힘들었다.
이제 백천에게 두변이 천재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운명이 걱정될 뿐이었다. 마음속으로는 그때 왜 두변을 끌고 이문회 앞에 가서 이 화를 자초했는지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 사건만 아니었으면 오늘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
“실패해라. 제발 실패해라. 조상님들과 천지신명이 보우하사…….”
하루가 1년 같이 느껴진 백천은 마음속으로 빌던 말을 입 밖으로 내뱉어 버렸다.
하지만 이문회는 백천의 추태를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두변만 응시했다. 이문회는 백천보다 더 긴장하며 두변이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두변은 허리를 굽히고 260근 석쇄 손잡이를 잡았다. 바로 다음 순간, 그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재빠르게 석쇄를 들어 올렸다.
성공했다!
그것도 아주 쉽게!
순간 주위가 조용해졌다. 오직 눈을 부릅뜬 백천의 목에서만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낭정은 안색이 하얗게 질려서는, 평점심을 유지하려 했지만 도저히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두변은 260근 석쇄를 매우 쉽게 들어 올렸는데 그것도 용상이 아닌 인상으로 들어 올린 것이다.
모두 알다시피 인상이 용상보다는 들기가 좀더 어렵다. 인상을 200근 들어 올릴 수 있으면 용상은 300근을 들어 올릴 수 있다고 보면 된다. 용상은 석쇄 손잡이를 가슴에 대고 완충시킨 후 다시 머리 위로 들어 올리기 때문이다.
지금 두변이 인상으로 260근을 쉽게 들어 올렸다는 건, 두변의 용상 중량이 350근 이상이라는 얘기였다.
정말 놀라운 일이지 않은가!
짧디짧은 보름 동안 몇백 근이나 되는 무게를 더 들어 올리게 된 것이다. 이는 다른 사람들이 3개월 혹은 6개월의 시간을 쏟아부어야 얻을 수 있는 결과였다.
도대체 두변은 어떻게 해낸 것일까? 이건 해가 서쪽에서 뜬다 해도, 그 어떤 꿈속에서라도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오늘 같은 일은 환관 학원이 개설된 이후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건이었다.
보름 만에 해내다니!
이때 두변이 더 거대한 석쇄 앞으로 다가갔다.
백천은 눈을 더 크게 뜨고 두변을 바라봤다.
저, 저 녀석이 도대체 뭘 하려는 거야? 저건 400근이나 되는 석쇄라고!
사실 400근이란 무게는 교관인 백천의 수준에나 맞는 무게였다. 하지만 백천도 몇 년간의 수련을 거친 후에야 근력을 그 정도로 향상시킬 수 있었다.
심지어 곧 졸업 예정인 학생들 중에 순수 근력으로만 400근을 용상으로 들어 올리는 이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보름 전에 고작 40근 들어 올릴 근력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400근 석쇄를 들어 올리려 하고 있다니, 두변이 제정신이 아닌 게 틀림없지 않은가!
이위가 소리쳤다.
“두변, 이미 네가 이겼다. 경거망동하지 말아라. 근맥을 다치면 더 손해야.”
젊은 환관들에게 400근은 실로 엄청난 무게였다.
“한번 도전해 보겠습니다.”
두변은 숨을 깊이 들이쉬더니 400근 석쇄를 잡은 후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으라차차!”
두변은 힘찬 기합과 함께 순식간에 400근 석쇄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동작은 흔들림 없이 매끄러웠다.
모든 사람의 입이 떡 벌어져 도저히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엄청난 일이었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여서 오히려 현실이 아닌 것만 같았다.
백천은 온몸이 굳으면서 그의 머릿속에는 몇 가지 생각만 떠올랐다.
‘이 세상에는 미친놈들이 정말 많구나. 도저히 상상도 못 할 정도의 천재야.’
보름 동안 근력이 열 배가 늘었다? 이건 제아무리 신이더라도 불가능해 보이는 결과가 아닌가!
낭정은 엄청난 놀라움에 오히려 완전히 평정심을 되찾았다. 낭정은 더 이상 백천의 운명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오직 한 가지만 신경 쓰였다.
‘두변은 천재다. 그것도 불세출의 천재. 이런 천재가 곧 이문회의 사람이 되는데, 그러면 상황이 내게 너무 안 좋게 흘러간다.’
엄당에서 출세의 길은 매우 좁고도 치열했다. 출세를 할 수 있을지 없을지에 관해서는 자신의 능력만큼이나 후계자의 능력도 중요했다.
그래서 지금 속으로 가장 기뻐하는 사람은 사실 두변이 아닌 이문회였다!
이문회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두변을 바라봤다. 이문회도 이번 내기의 승패나 백천의 생사 따위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본 것은 천재가 아니라 자신의 후계자이자 전체 엄당 수령의 제3대 후계자였다.
2대가 이문회, 그리고 3대는 두변.
하나의 세력 집단, 하나의 당파가 강대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단결력을 가질 수 있는지는 그 당파의 지도자가 얼마나 위대한지에 따라 달렸다. 엄당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문회는 자신이 엄당을 잘 이끌어 대녕 왕조의 투쟁에서 살아남을 뿐 아니라 엄당의 위상을 더 드높일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이문회는 자신의 목숨에 연연하지 않고 항상 자신의 목숨값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했으며, 엄당의 미래 그리고 대녕 왕조의 미래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무장들은 막강한 무력을 장악했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당파를 만들어 자신들의 체계를 이뤄나갔다.
문관 사대부들은 거대한 경제권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권세가 하늘을 찔렀고, 무력이 약하다는 단점은 수많은 무도 문파들이 보완해주고 있었다.
과거 몇백 년 동안 무장 당파와 문관 사대부 당파는 황실을 위협하는 세력들이었다. 게다가 이 두 집단은 탐욕에 눈먼 자들처럼 제국의 자원을 집어삼키며 자신들의 세력을 키웠고 제국의 힘을 계속 약화시켰다.
북쪽의 황금씨족과 동북쪽의 만족(蠻族)이 득세하면서 제국의 북방 변경을 계속해서 침입했다.
남쪽의 안남 왕국도 몇십 년 전에 제국의 통치에서 벗어났다가 지금은 내전이 발발했다. 하지만 제국은 변경을 지키는 데 급급할 뿐, 안남을 도와주러 병력을 파견할 여력이 못되었다. 운남성과 광서성 등 각 지역 토사(土司: 지역의 소수 세습 족장)들의 반란도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대녕 왕조는 겉으로 보기에 아직 강성했지만 나라 안팎으로 여러 문제가 있었다.
그나마 황제가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엄당 집단이었으나, 엄당 내부의 상황도 매우 복잡했다. 대부분의 엄당 구성원들은 권세에 아부하고 각박하며 탐욕적인 저열한 습성을 갖게 되기 때문에 반드시 절대적인 힘을 갖는 수령이 나타나 엄당 내부의 모든 당파를 정리하고 통합해야 했다. 그래야 엄당이 비로소 대녕 왕조 안팎의 문제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엄당이 황제 폐하의 ‘마지막 장성(長城)’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에게 우스갯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이문회에게는 한평생을 바칠 사명이자 이상이었다.
이문회는 지금 두변에게서 자신의 뒤를 이을 엄당 수장의 후광과 엄당이 향후 몇십 년간 더 강대해질 것이라는 희망을 보았다.
두변은 석쇄를 내려놓으면서 260근을 인상으로 가볍게 들어 올렸으니, 아마 더 많은 무게를 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