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16화 (16/648)

제16장: 희망이 보였다.

이문회가 두변에게 다가와 어깨에 손을 올렸다.

“두변, 우리 둘은 운명을 같이해야만 하겠다.”

이 말은 이문회가 두변을 후계자로 삼겠다는 뜻이었다. 앞으로 이문회는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 두변을 인재로 길러낼 것이다. 이문회의 또 다른 의자인 이명기(李鳴岐)가 서른 살이 채 되기도 전에 계왕부의 환관 부총관이 된 것처럼 말이다.

이문회가 한 말을 들은 낭정은 또 한 번 안색이 변하면서, 더는 안색이 창백해지지 않도록 무척이나 애를 썼다. 낭정이 웃으며 이문회에게 절을 했다.

“산장, 경축드립니다. 또 한 필의 천리마를 얻으셨군요.”

백천은 이미 존재감이 없어져 아무도 그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신경 쓰지 않았다. 백천은 진심으로 두변을 질투했지만, 자신의 운명이 더 신경 쓰였다. 그는 잡역 환관이 되긴 싫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산장께 감히 청합니다. 넓은 아량을 베푸시어 제가 공을 세워 속죄하게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잡역 환관으로의 강등은 너무 가혹합니다.”

기초 무학 교관이라는 자리가 큰 권력을 갖지는 못하기 때문에 백천도 속으로 불만이 많았다. 하지만 어쨌든 학원 내에서 학생 수백 명의 존경을 받기에 어느 정도의 지위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잡역 환관이 된다면 모든 사람의 무시와 경멸을 받을 것이며 비천한 노비의 신세가 되니 이번 생에 출세란 더는 없게 된다.

이문회가 그제야 백천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교관 옷을 벗어라. 잡역 환관은 비단옷을 입을 자격이 없지. 무명옷으로 갈아입고 완의처(浣衣處)로 가거라. 가서 옷을 빨면서 네 더러운 마음도 같이 씻어내도록 해라.”

백천은 말을 듣는 순간, 벼락을 맞은 것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잡역 환관은 가장 낮은 계급이지만 그 안에서 또 계급이 세분된다. 화부(夥夫) 환관은 취사와 물건 구매를 담당한다. 제의처(制衣處) 환관은 학원들의 옷을 재단하며 적절한 이득을 취할 수 있다. 원예(園藝) 환관은 학원의 자연경관을 관리하는 낮은 직급이다.

완의처는 빨아도 끝이 없을 정도로 옷이 쌓이기 때문에 가장 비천한 직급이라고 볼 수 있었다. 빗자루를 들고 땅을 쓰는 환관보다 못하며 똥오줌을 비워내는 환관들보다 조금 나은 정도였다. 백천은 기초 무학 교관에서 한순간에 옷을 빠는 환관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졌으니, 백천에게는 종말이 다가온 셈이었다.

“으아악!”

백천도 더는 체면을 생각하지 않고 땅에 주저앉아 울부짖기 시작했다.

잘나갈 때는 세상을 가진 듯이 설쳐대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고 좌절하는 게 대부분 엄당 사람들이 가진 특성이었다.

이문회는 가증스럽다는 듯 그를 흘겨보고는 탄식했다.

“할 일은 많은데, 갈 길은 멀구나.”

엄당이 진정한 영재 집단이 되기 위해서는 몇 대에 걸쳐 인재 양성이 필요했다.

“두변, 며칠 동안 연단학의 기초 이론을 복습하도록 해라. 가장 좋은 선생을 골라서 너를 가르치도록 하겠다. 네가 졸업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게 말이다.”

이문회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두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건 어린아이에게 친근함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평소에는 잘 하지 않는 행동이었다.

그러고는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이때 두변이 말했다.

“산장, 더 무거운 무게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름 동안 제 근력이 정말 많이 강해졌습니다.”

사실 두변에게 400근은 거의 최대 중량이었다. 두변이 400근을 단번에 들어 올리긴 했지만, 온몸의 근맥은 이미 상당한 압박을 받았다.

“하하하, 알겠다. 다음에 한 번 보도록 하자꾸나.”

이문회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문회는 자리를 떠났다. 최근 들어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오늘 오전에 반 시진이 안 되는 시간도 겨우 쥐어 짜낸 것이다. 오늘 두변의 놀라운 성장은 이문회의 심적 부담을 말끔히 덜어주어 아주 기분 좋게 학원을 떠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문회는 문관, 무장 당파의 투쟁 속에서 자신이 감당해야 할 거대한 위기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했다.

이제 두변은 승리의 과실을 맛볼 시간이었다.

백천을 처리하는 일이 남았다!

백천의 일은 낭정이 처리하게 되었다.

이위는 더없이 속이 후련해져서, 백천을 향해 냉소를 보이며 말했다.

“자네, 무언가 잊은 게 하나 있지 않나?”

부산장 낭정이 이위의 말을 이어받아서 말했다.

“그래. 백천, 너는 두변의 재능을 시기 질투하다 못해 무고까지 했다. 하마터면 엄당이 귀중한 인재를 잃을 뻔했어. 어서 두변에게 사과하지 않고 무엇 하느냐?”

백천은 두변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었다. 선생이 학생에게 사과하게 되다니, 선생의 존엄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낭정이 냉정하게 말했다.

“너는 이미 학원의 선생이 아니다. 완의처의 가장 비천한 잡역 환관일 뿐이지.”

이 말을 들은 백천은 기세가 한풀 꺾여서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두변에게 허리 숙여 사과했다.

“두변 학생, 정말 미안하게 됐다. 속 좁은 내가 자네의 재능을 시기 질투했어.”

비록 백천의 진심 어린 사과는 아니었지만, 두변은 매우 흡족했다.

“이만하면 됐다. 가자. 우리는 나가서 이야기나 하자꾸나. 잡역인 백천은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겠지.”

이위가 두변에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위처럼 짙은 눈썹과 부리부리한 눈의 사내가 이런 비아냥 섞인 독설을 내뱉을 줄이야.

이위와 두변이 떠나자, 역실에는 낭정과 백천 두 사람만 남았다.

“선생님, 살려주십시오.”

백천이 무릎을 꿇고, 쿵쿵 소리가 날 정도로 이마를 땅에 박았다.

낭정은 복잡한 눈빛으로 백천을 바라보았다.

“너를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불가능해.”

백천은 이마를 땅에 댄 채 분노로 치를 떨었다. 마음속에서는 증오심이 불타올랐다.

밖으로 나온 이위는 드디어 흥분을 감추지 않고 마음껏 표출했다.

“불가사의, 전대미문, 금시초문!”

이위는 감탄사를 연발하더니 두변을 보고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북방의 관녕 무도원을 졸업했다. 거기에는 단연 고수들이 운집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때도 너 같은 경우는 정말 듣도 보도 못했다. 보름 만에 3~400근의 무게를 더 들어 올리다니! 아직도 믿을 수 없구나. 게다가 네가 어떻게 이걸 해냈는지도 모르겠다. 도저히 불가능한 일처럼 보이니 말이다.”

두변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선생님은 얼마나 걸리셨나요?”

“나는 천성적으로 힘이 좋았지. 그런데도 2년 가까이 수련한 다음에야 390근이나 끌어올릴 수 있게 되었다. 너는 네가 한 일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아직 잘 모를 거다.”

두변은 굳이 겸손해지려 애쓰지 않고 헤헤, 하고 웃었다.

이위가 탄식하며 말했다.

“백천은 말할 것도 없고 나조차도 질투심이 생기는 것 같다. 아마 산장만이 아무런 질투심 없이 진심으로 좋아하실 거다. 산장은 개인의 득실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엄당과 제국의 이익만 바라보시니까.”

두변은 조금 난처했다. 이위가 자신에게 이렇게 잘 대해주는데, 자신도 이위에게 비밀이 없어야 하지 않겠나. 하지만 아직 ‘꿈의 세계’에 대해서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너에게 비밀이 있는 거 같지만 내게 말하지 않아도 된다. 모든 천재는 다 말 못 할 비밀이 있지. 그러니 그 비밀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거라.”

두변이 고개를 끄덕인 후 물었다.

“선생님, 최근에 산장께 처리하기 까다로운 일이 생겼습니까?”

“그래. 정말 까다롭지. 오랜 세월 이어온 문제란다. 이강 서원과 남해 도장이 함께 모의해 우리의 살점을 떼가려 하고 있지. 아주 큰 살덩어리를 말이야. 오늘 일 때문에 산장이 어제 밤새도록 달려서 남녕부에서 돌아오셨다. 방금 네가 깔끔히 내기에서 이기고 나서는 눈을 붙일 틈도 없이 다시 광주부로 떠나셨고. 지금 상황을 만회해보려고 말이지.”

이강 서원과 남해 도장은 광서성의 문관 집단과 무장 집단의 최고 학부였다. 광서성의 환관 학원은 큰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이 두 곳과 함께 광서의 3대 학부로 불리게 되었다.

“어떤 일인가요?”

“이 일은 전임 산장들과 관계되어 있어서 내가 말하기 조심스럽구나. 산장께서 돌아오시면 그때 네가 직접 물어보아라.”

“알겠습니다.”

“나는 이제 수업하러 가야겠다. 숙소로 돌아가도 되고 지금까지 있던 방으로 돌아가도 된다. 하지만 이미 상처도 다 나았으니 숙소로 들어가는 게 좋겠구나. 계속된 특별대우는 곤란하니까 말이다.”

“알겠습니다.”

이위는 두변의 ‘알겠습니다’란 말이 너무 듣기 좋아서, 그에게 좀 더 호감이 갔다.

“한 가지가 더 있다. 백천이 너를 어떻게 하지는 못할 것이나, 혹여 다른 수를 쓰지는 않는지 계속 지켜봐야 할 것이다. 남을 해칠 마음을 가져선 안 되지만, 타인에 대한 경계심은 가져야 하니까.”

“예. 감사합니다, 선생님.”

두변이 대답하면서 마음속으로 이위의 말을 살짝 고쳤다.

남을 해칠 마음을 갖더라도, 타인에 대한 경계심은 더욱이 잊으면 안 된다고.

누추한 숙소로 돌아온 후 두변은 딱딱한 침상 위로 편하게 누웠다.

다음 며칠 동안은 연단학 기초 이론을 공부해야 했다.

<연단학 기초 이론>은 총 다섯 권으로, 각 권이 모두 600쪽이 넘었다. 무학과 비교해 봤을 때 연단학은 이론적 지식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이 다섯 권의 책을 모조리 외우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연단학은 잡학(雜學)으로 졸업시험에서 50점이 만점이었다. 현대 지구에 비유하자면 부전공 과목에 해당하며, 이 다섯 권의 책만 외운 후 어느 정도 실전연습만 하면 졸업시험에서 합격점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연단이든 연금이든 수천 수백 번의 경험이 쌓여야 하기에 고득점을 받기란 상당히 어려웠다.

두변은 네 시진 동안 공부하다 침상에 누워 잠이 들면서, 꿈의 세계에서 <연단학 기초 이론>의 첫 번째 책을 공부하고 외울 준비를 했다.

하지만 잠에 든 두변은 <연단학 기초 이론>이 아닌, 놀랄 만한 다른 꿈을 꿨다.

꿈속에서 두변은 비밀의 방 안에 있었는데, 사지가 묶여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그의 앞에는 한 여인이 서 있었는데, 도도한 그녀는 남장을 한 여인이었다.

여인은 큰 키에 매우 아름다웠고 보기 드문 구릿빛 피부에 예술적인 몸매를 지녔지만, 눈빛은 너무도 차가웠다.

여인이 두변을 잠시 보더니 천천히 명령을 내렸다.

“눈은 뽑고 사지의 근맥을 다 끊어버려라.”

두변이 놀라서 물었다.

“왜 그러지? 내가 낭자한테 뭐 잘못한 게 있나?”

여인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원래 이유를 말해줄 생각이었는데 나한테 낭자라니. 이거, 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그녀는 앞으로 다가와 비수를 꺼내 빠르게 휘둘렀다.

두변의 손과 발이 마비되었다. 사지의 근맥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잠시 후 눈에서 통증이 느껴지더니 시야가 깜깜해졌다. 두변은 그렇게 시력을 잃었다.

여인은 두변에게 아무런 기회도 주지 않고 그대로 손을 써버릴 만큼 과감하고 잔인했다.

비록 꿈이었지만 감각은 현실과 똑같았다. 눈을 뽑히고 근맥이 끊어진 두변은 바닥을 뒹굴면서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러다 발걸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자는 두변 옆에 웅크리고 앉아 원한에 사무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두변, 넌 천재잖아. 능력이 되잖아? 그런데 지금은 뭐야. 내 손에서 죽어가고 있네?”

목소리는 조금 변형되었지만, 백천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백천은 두변의 얼굴을 때리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나 백천의 비위를 건드린 자는 살고 죽는 것도 제 맘대로 못 한다. 두변, 너는 그저 개미에 불과해. 밟으면 그대로 죽는 개미 말이다.”

“부탁대로 사람도 처리해줬으니, 밀매 소금 1,800섬이 어디 있는지 말해.”

여자가 백천을 아랫사람으로 대하듯 차갑게 말했다.

백천이 대답했다.

“염주부(廉州府)에서 바다 남쪽으로 200리를 가면 위주도(潿洲島)가 있습니다. 그 섬의 동쪽에 위치한 우란산에 거북이가 그려진 소나무가 세 그루가 있습니다. 세 그루 나무 사이에 밀매 소금이 묻혀 있습니다. 총 1,800섬입니다.”

1,800섬이면 28만 근에 해당하니, 이 정도면 엄청난 재물이었다. 대녕 왕조의 소금 가격은 최근 몇 년간 계속해서 올랐다. 강남의 경우 이미 소금 1근의 가격이 4푼까지 치솟았으니, 밀매 소금의 가격을 다 합치면 은자 만 냥에 해당했다.

백천이 만 냥 은자를 대가로 두변의 목숨을 취하려고 하는 건데, 과연 두변의 목숨이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 걸까.

“가서 소금들을 다 가져와라.”

“알겠습니다.”

여자의 명령에 바깥에 있는 한 건장한 사내가 대답했다.

여자가 백천을 보며 말했다.

“만약 네가 알려준 정보가 거짓이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너도 잘 알 거다. 너뿐만 아니라 네 부모와 가족이 모두 죽는 거다.”

“당연히 압니다. 제가 아무리 간이 크다 한들 어찌 당신을 속이겠습니까.”

백천이 아첨하며 말했다.

“됐다. 이제 꺼져.”

말을 마친 여자는 칼을 휘둘러 두변의 목을 그었다.

두변은 깊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잠시 후 꿈속의 깊은 곳에서 그 기이한 불빛이 다시 반짝거렸다.

“특별 임무를 시작한다. 악을 처단하고 혈관음(血觀音)을 구해라.

임무를 성공하면 미녀와 하룻밤을 보내게 되며 양기가 3점 증가한다.

실패시, 네겐 죽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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