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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무제-17화 (17/648)

제17장: 악랄하면서도 아름다운 혈관음.

“아!”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깬 두변의 온몸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두변은 손을 뻗어 자신의 팔과 다리, 그리고 목을 만져봤다. 다행히 꿈이었고 모든 것은 그대로였다.

그러나 두변은 어찌 된 일인지 바로 감이 왔다.

이건 단순한 꿈이 아니다. 자신이 뭔가를 바꾸지 않는다면 이 꿈은 현실이 될 것이고 그건 아마 내일일 것이다.

두변은 백천이 오늘 결과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자신을 해칠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렇게도 빨리, 바로 내일 손을 쓸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제 두변은 이문회의 내정 후계자가 되었으니, 두변을 해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백천도 직접 손 쓸 수가 없어 28만 근 밀매 소금을 대가로 한 여인의 손을 빌려 두변을 죽이려 하는 것이고.

그 남장 여인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아무 망설임 없이 이 거래를 승낙한 걸 보면, 그 여인은 두변이 엄당의 사람이라는 걸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불현듯 뭔가 기억이 났다. 꿈속에서 그 여자에게 죽임을 당한 직후, 기이한 불빛이 말했었다.

악을 처단하고 혈관음을 구해라?

악을 처단하라는 말은 백천을 가리키는 것 같은데, 혈관음을 구하라는 건 도대체 무슨 뜻이지?

나를 죽인 그 여자가 혈관음인가? 나를 죽인 그 여자를 구해야 한다고?

두변은 혈관음을 구하면 보상이 주어진다는 말이 어렴풋하게 떠올랐다.

미녀와 하룻밤을 보내게 되고 양기가 3점 증가한다고?

두변은 흥분한 나머지 벌떡 일어났다. 양기는 그가 남자의 위풍을 되찾게 해주는 것 아닌가! 또한, 졸업시험에서 1등을 하게 되면 양기가 15점이나 증가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혈관음을 구하는 3점까지 합치면 18점이었다.

두변은 자신이 남자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다!

두변은 꿈의 세계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봤다.

이 혈관음은 도대체 어떤 인물이길래 이토록 악랄하면서, 엄당은 안중에도 없는 걸까?

28만 근 밀매 소금이 전 재산이 은자 300냥밖에 안 되는 백천의 것일 리가 없다. 그럼 이 밀매 소금은 도대체 누구의 것일까.

낭정? 최씨 가문? 아니면 북명검파?

낭정은 아니야. 동기는 충분하지만, 산장과 같이 엄당에 몸을 담고 있으니까. 만약 그가 28만 근 밀매 소금을 가지고 있었다면 산장을 속이기는 어려웠겠지. 그렇다면 최씨 가문이나 북명검파일 가능성이 더 큰데.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두변이 자신의 목숨을 지키고 반격을 할 수 있느냐였다.

백천이 두변을 모해하려고 한 이상, 두변도 이번 기회에 악을 철저히 뿌리 뽑기로 마음먹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이문회에게 알리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일을 이문회에게 알릴 수는 없었다. 두변이 꿈에서 내일 일어날 일을 알 수 있다고 말하는 순간, 자신이 목숨을 걸고 이문회를 지키려고 했던 것이 계산된 행동이었다는 게 들통이 나지 않겠는가.

더욱이 이문회는 지금 광주부로 가는 길이니, 이곳 계림부에 없었다.

가능성이 있는 자구책은 두 가지였다. 첫째, 지피지기라고 남장 여인이 어떤 인물인지 파악하는 것이다. 둘째, 당분간 환관 학원에 머무르는 것이다. 환관 학원 안은 안전하니, 백천뿐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자신에게 감히 손을 쓸 수 없을 테니까.

날이 밝기까지 시간이 꽤 남았기 때문에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된 두변은 계속해서 잠을 잤다.

두변은 다시 꿈을 꿨다. 꿈에서는 오늘 공부했던 <연단학 기초 이론>의 제1부 내용이 다시 나타났다. 꿈속 세계에서는 여전히 현실보다 시간이 열 배 느리게 흘렀고, 뇌의 사용량도 열 배 상승했다.

두변은 600쪽에 달하고 글자와 그림이 반반씩 구성되어있는 <연단학 기초 이론> 제1부를 여섯 시간 자는 동안 모두 외웠다.

꿈의 세계는 정말 최고였다.

다음날 두변은 잠에서 깨어나 바로 꿈속에서 공부했던 내용을 시험해 봤는데, 역시 <연단학 기초 이론> 제1부를 막힘없이 줄줄 외울 수 있었다. 한 글자도 빠짐없이 모든 내용을 외웠을 뿐 아니라 임의로 지정한 그림도 똑같이 그려냈다. 공부한 모든 것들이 뇌에 그대로 각인된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 두변은 오늘 일어날 일을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제 꾼 꿈에 따르면 백천은 오늘 두변을 해치기 위해 손을 쓸 게 분명했다.

먼저 꿈속에서 자신을 죽인 그 여인이 누구인지 분명히 해야 했다.

그녀가 혈관음인가?

28만 근 밀매 소금을 제공해주는 막후 인물이 누군지도 중요했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그 여인의 정체를 알아내는 것이다.

두변은 탄필을 손에 쥐고 기억을 더듬으면서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면서 남장 여인의 형태를 조금씩 잡아갔다.

현대 지구에서 두변은 정력이 왕성인 젊은이였고 모든 일에 호기심이 넘쳤기에 뭐든 조금씩 할 줄 알았다. 칵테일 제조, 피아노 연주, 그림 그리기 등, 조예가 깊진 않았으나 뭐든지 빨리 배웠고 꽤 괜찮은 수준까지 올라갔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종이 위에 악랄하면서도 아름다운 여자가 드러났고 실물과 매우 비슷했다.

두변은 그림을 돌돌 말았다. 자신을 도와줄 사람에게 이 그림을 보여주며 이 여인을 아는지 물어볼 생각이었다. 두변의 생각이 맞다면, 그녀는 꽤 유명한 인물일 것이다.

두변이 찾을 수 있는 사람이라곤 이위뿐이었다.

“선생님 혹시 이 여인을 아십니까?”

두변이 그림을 펼쳐 보였다.

이위가 그림을 보더니 놀라는 듯 보였다. 그림 속의 여인이 예뻐서가 아니라 두변의 그림 실력에 놀란 것이다.

“네가 그린 것이냐?”

“그렇습니다.”

“정말 살아있는 인물 같구나. 실제 인물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아. 대단해! 그림 실력만으로도 산장께 충분한 도움이 되겠구나. 대충 붓질 몇 번으로 그려놓은 지명수배자들의 초상들은 도무지 알아볼 수가 없는데, 네가 그린 그림은 다르구나. 이 정도로 인물들을 잘 담아낸다면 못 잡아낼 범인이 없겠어.”

“선생님, 과찬이십니다. 혹시 이 인물이 누군지 아십니까?”

이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다마다. 혈관음이 아니더냐?”

잘못 지어진 이름은 있어도, 잘못 불리는 별호(別號)는 없다던가! 혈관음이라는 이 여자는 틀림없이 별호만큼 악랄하겠구나.

“어떤 여인입니까?”

“무공이 상당한 혈교방(血蛟幫)의 방주다. 광서성에서 가장 대단한 해적이자 밀수꾼 중에 하나지. 계림부에서 가장 큰 지하 세력의 우두머리 중 하나고 말이다. 수많은 사람을 죽여 악명을 떨치고 있지.”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규모가 큰 해적단과 흑방(黑幫)의 우두머리라니. 어쩐지 육감적인 구릿빛 피부를 가지고 있더라니. 생각한 것보다는 대단한 인물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환관 학원의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고 나를 죽일 수 있는 걸까? 이문회의 분노가 전혀 두렵지 않은 걸까?’

“이 여인이 악명을 떨친다고 하지만, 이 정도의 인물은 엄당에게 큰 위협은 아니지 않습니까?”

“꼭 그렇다고는 볼 수 없다. 우리 엄당도 이 여인과 문제가 생기는 걸 원치 않으니까.”

두변이 놀라 물었다.

“그럴 리가요. 해적이든 흑방의 우두머리든, 우리 엄당을 봤다 하면 모두 몸을 피하기 바쁘지 않습니까? 이런 부류들은 당연히 동창에 아첨할 텐데요?”

“이 여자는 진남공의 의녀(義女)이자 진남공부(府)의 해결사지. 1대 진남공은 태조 황제의 의자였다. 그래서 진남공이 엄당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지. 혈관음이 돈을 버는 이유도 진남공의 군대가 안남 변경에 주둔할 군비를 충당하기 위해서다. 너도 알다시피 안남국에서는 지금 치열하게 내전을 벌이고 있으니까.”

“진남공은 어떤 사람입니까?”

“충신이지. 피도 눈물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충신이다. 제국의 1품 무도 강자로서 손에 꼽는 고수지.”

그제야 두변은 엄당이 왜 혈관음을 건드리지 못하는지 이해했다. 그녀도 방법이 좀 거칠다뿐이지 제국을 위해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고, 진남공은 제국의 남쪽에서 누구도 쉽게 건드릴 수 없는 거물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대녕 왕조의 재정은 매우 빠듯했기 때문에 군대의 군비는 자급자족해야 했다. 28만 근 밀매 소금은 거부하기 힘든 금액일 테니, 진남공의 군대에 군비를 대주기 위해서라도 혈관음은 환관 학원의 미움을 사면서까지 두변을 죽여야 했으리라.

“너는 어떻게 이 여인을 알게 되었느냐?”

“이전에 우연히 거리에서 이 여인을 본 적이 있습니다. 수법도 매우 잔인했고 저를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보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이 여인을 다시 만나게 된다 해도 다시는 눈도 마주치지 말아라. 그녀는 자신이 여인이라는 사실을 매우 싫어하는 데다 감정 기복도 심하지. 그녀는 전에 자신의 얼굴과 가슴을 쳐다보는 사람의 눈을 그대로 뽑아버린 적도 있었다.”

이런 여인은 정말 골치 아프지 않은가. 수법도 잔인하고 무공도 뛰어나며 뒤를 봐주는 사람까지 있으니, 모두 그녀를 최대한 피할 수밖에!

하지만 두변은 꿈속에서 혈관음을 구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렇게 대단한 인물을 나보고 어떻게 구하라고?

만약 일반적인 암흑가의 인물이었다면 방법을 강구해 그녀를 처리한 다음 후환을 없앴을 것이다. 하지만 이 특별한 여인은 이위도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광서성 엄당의 세력을 이용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긴 하겠지만,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컸고 두변도 자기 자신이 그 정도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문회가 돌아오기 전에, 그리고 백천을 처리하기 전에 두변이 자신의 목숨을 지킬 방법은 단 하나만 남은 셈이었다.

환관 학원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는 것. 혈관음이 제아무리 대단하더라도 환관 학원에 들어와 제멋대로 사람을 잡아가진 못할 테니까.

“궁금증이 해결되었으면 나는 수업을 하러 가마. 무슨 일이 있으면 수업이 끝나고 다시 찾아오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선생님 혹시 백천이 학원을 나가진 않는지 확인해 줄 수 있으신가요? 어제 말씀하신 대로 백천이 다른 수를 써서 저를 해칠 가능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알겠다. 내가 지켜보도록 하마.”

두변은 이위에게 인사를 한 후 자신의 숙소로 돌아와 <연단학 기초 이론>의 제2부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이위가 두변의 숙소로 찾아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백천이 학원에 없구나. 오늘 아침에 학원을 떠났단다. 너는 계속 학원에 있어야 한다. 학원에 있으면 그 누구도 네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다.”

“알겠습니다. 선생님.”

이위는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급하게 문을 나섰다. 그는 몸을 돌려 다시 한번 두변에게 소리쳤다.

“절대 학원에서 한 발짝도 나가선 안 돼!”

두변은 마음의 동요 없이 숙소에서 계속 공부를 했다.

그렇게 반 시진이 지난 후, 유모의 남편인 두충(杜忠)이 두변을 찾아와 두려움에 질린 얼굴로 머리를 조아렸다.

“소주인(小主人)을 뵙습니다.”

두변은 이제 두씨 가문의 자제가 아니건만, 두충은 두변을 만날 때마다 소주인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이럴 필요 없어. 난 이제 두씨 가문과는 관계가 없으니까. 더욱이 아저씨와 유모가 나를 친자식처럼 대해주었으니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

두변이 그를 일으키며 말했다.

유모는 이 세계에서 두변과 가장 친한 사람이기에, 두변은 자신의 앞에 있는 유모의 남편에게도 친근감을 느꼈다.

“소주인, 어서 여랑을 보러 집으로 가셔야 해요. 아침부터 병이 난 거 같더니 지금은 숨이 간당간당한 것으로 보아 오늘을 넘기기 힘들 것 같습니다!”

두충이 머리를 바닥에 찧으면서 통곡했다.

“뭐라고?”

두변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과연 올 것이 왔구나!

상대방이 어떻게든 두변을 학원 밖으로 나오게 할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상황이 돌아가는 걸 보니 악을 처단하라는 임무는 반드시 완성해야만 할 듯했다. 그렇다면 기필코 백천을 없앨 방법을 생각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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