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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무제-20화 (20/648)

제20장: 악독한 혈관음

기절한 두변은 꿈을 꾸게 되었다.

꿈속에서 매혹적인 몸매를 지닌 여인이 한 명 나타났는데, 바로 혈관음이었다.

혈관음은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로 땅바닥에서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면서, 옥처럼 고운 손으로 미친 듯이 바닥을 내리쳤다.

쾅! 쾅! 큰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단단한 대리석이 산산이 조각났다.

그녀는 미친 듯이 소리쳤지만, 온몸의 고통을 이길 수 없는 듯했다.

그녀는 눈빛이 흐려지면서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악!”

그녀가 날카롭게 울부짖었다. 고통을 견디지 못해 온몸을 웅크렸다가 이내 뻗는 모습이 뱀처럼 보이기도 했다. 미친 듯이 양손과 발로 바닥을 내리치는데 온몸에 기이한 반흔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꿈은 2분도 채 되지 않아 끝났다.

두변이 다시 깨어났을 때 그는 이미 밀실에 매달려 있었고 앞에는 남장을 한 여인이 서 있었다.

모든 상황이 어제의 꿈과 똑같았다!

그녀는 바로 진남공의 의녀이자 혈교방의 방주인 혈관음으로, 광서성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해적의 우두머리 중 한 명이었다.

길게 뻗은 다리에 너무나 아름다운 그녀는 남장을 했음에도 고혹적인 몸매를 가릴 수는 없었다. 이런 몸매는 가꾼다고 만들 수 있는 몸매가 아니지 않겠는가. 구릿빛 피부에 독기 어린 눈빛, 그리고 매서운 표정은 그녀만의 독특한 매력을 한층 돋보이게 했다.

현대 지구에서였다면 기꺼이 반년을 들여서라도 그녀를 얻으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두변은 방금 꿈속에서 그녀가 맨몸으로 미친 듯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방금 기절했을 때 꾸었던 그 짧은 꿈은 눈요기나 하라고 두변에게 주어진 것일까. 아니, 꿈은 두변에게 그의 생명과도 직결되는, 아주 중요한 정보를 주고 있었다.

혈관음은 공중에 매달려 있는 두변을 쳐다봤다. 두변은 하얀 얼굴을 가진 곱상한 미남으로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였는데, 특히 저 뻔뻔해 보이는 눈빛이 그랬다.

“두 눈을 뽑고 근맥을 다 끊어버려.”

혈관음이 명령을 내렸다. 그녀는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는 전형적인 사람이었다.

꿈속에서는 두변이 한마디를 내뱉자마자 근맥이 끊어졌었다.

두변이 말했다.

“혈 방주, 나는 이문회 대인의 의자입니다.”

혈관음은 조금 놀랐다. 그녀가 이 사실을 미리 알더라면 이 일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두변이 이문회의 의자라 해도 도로 물릴 수는 없었다.

“보아하니 그자가 일부러 이 사실을 내게 말 안 한 것 같군. 하지만 이미 늦었으니 그냥 끊어버려.”

혈관음이 말했다.

‘과연, 이 정신 나간 혈관음은 뒷배인 진남공을 믿기에 이문회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게로군. 이문회가 환관 하나 때문에 그녀와 사이가 틀어질 리 없다고 믿는 거겠지.’

여무사 하나가 앞으로 다가오더니 손에 든 비수로 두변의 눈을 찌르려고 했다.

두변이 다급하게 외쳤다.

“혈 방주, 나랑 거래합시다. 밀매 소금 1,800섬으로 내 목숨을 사겠습니다. 나 말고 내 원수를 죽이는 겁니다. 죽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그놈이 되는 거죠!”

두변은 꿈 덕분에 이 밀매 소금 1,800섬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먼저 혈관음과 거래를 한 후 그녀의 손을 빌려 백천을 죽일 생각이었다. 악랄한 혈관음으로서는 누구랑 거래를 하든 크게 상관없지 않겠는가.

혈관음의 눈빛이 자기도 모르게 흔들렸다.

이 환관 녀석이 어떻게 밀매 소금 1,800섬의 행방을 아는 거지?

두변이 때를 놓치지 않고 말했다.

“누군가가 밀매 소금 1,800섬으로 당신을 사주해 나를 죽이려고 한다는 걸 압니다. 난 워낙 무공이 약해서 그 사람 스스로도 분명히 나를 죽일 수 있을 텐데 왜 그가 직접 나서지 않았을까요? 내가 이문회 대인의 의자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당신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려는 속셈입니다.”

“이문회는 확실히 대단한 인물이지. 하지만 나는 그가 두렵지 않아. 게다가 네놈 하나 죽인다고 해서 이문회가 내게 책임을 물으려 하진 않을 거다.”

“나를 죽이라고 사주한 놈은 백천이라고 합니다. 내 예상이 맞다면 이 밀매 소금은 최씨 가문의 것일 겁니다. 얼마 전 이문회 대인이 최씨 가문 사람을 여럿 죽였기 때문에 최씨 가문은 이 밀매 소금으로 엄당과 진남공 사이의 갈등을 부추기려는 겁니다. 이건 백천의 계략입니다. 방주는 본인이 자신뿐만 아니라 진남공부를 대표한다는 걸 알지 않습니까. 당신이 나를 죽인다면 적의 계략에 빠지는 겁니다.”

혈관음은 의외라는 눈빛으로 두변을 바라봤다. 곱상한 환관이 이처럼 많은 계책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두변이 말을 이었다.

“당신은 아직 나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백천도 아직 그 밀매 소금이 숨겨져 있는 위치를 당신에게 말해주지 않았겠죠. 거래가 아직 성립되지 않은 셈입니다. 내가 여기서 새로운 제안을 하겠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밀매 소금의 위치를 알려줄 테니 백천의 목을 대가로 주십시오.”

혈관음은 망설이며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두변은 결단을 내리고 말을 이었다.

“염주부에서 바다 남쪽으로 200리를 가면 위주도가 있습니다. 그 섬의 동쪽에 위치한 우란산에 거북이가 그려진 소나무 세 그루가 있습니다. 이 밀매 소금은 세 그루의 나무 사이에 묻혀 있습니다. 총 1,800섬입니다.”

혈관음은 두변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밀매 소금의 위치를 말해줄 줄은 생각지 못했다.

“내가 먼저 값을 지불했습니다. 상도에 따라 당신과 백천의 거래는 성립될 수 없습니다.”

혈관음이 두변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말했다.

“정말 간사한 소환관이로군.”

두변이 웃으며 대답했다.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혈관음은 두변의 말이 진실인지 알아보기 위해 방 밖을 나갔다. 백천이 멀지 않은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다시 돌아왔고, 백천이 바로 뒤따라 들어왔다.

두변은 예전 기초 무학 선생인 백천을 쳐다봤다.

정말 속 좁고 악독한 인물이로군. 아무런 원한도 없는 나를 질투심 때문에 죽이려 하다니.

백천이 두변을 쳐다보는 눈빛에는 원망과 놀라움이 가득했다.

“두변, 네가 어떻게 밀매 소금에 대해 아는 거지? 네가 알 리가 만무한데?”

두변이 밀매 소금에 대해 어떻게 알았는지 백천이 도대체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내 의부께서 이 밀매 소금을 계속 지켜보고 계셨지. 지금 혈 방주가 원하니 우리가 그것을 주려는 것일 뿐.”

두변이 혈관음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혈 방주, 내가 이미 값을 지불했습니다. 이제 당신이 약속을 지킬 차례입니다. 당신의 수하들에게 백천을 잡아두라고 명령하면 내가 직접 그의 목을 가져가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백천은 두변을 처음 봤을 때처럼 놀랐다.

백천은 두변을 죽이기 위해 최씨 가문과 결탁했다. 잔혹한 음모를 꾸민 대가로 큰 값을 지불했기에 이번에 두변은 반드시 죽은 목숨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두변이 판도를 바꾸어 활로를 찾아낼 줄이야.

아직 어린 나이에도 이렇게 대단한 두변이 나중에 커서 대권을 장악할 때가 되면 도대체 어떤 인물이 되어 있을까?

두변의 말을 들은 혈관음은 차가운 눈빛으로 백천을 쳐다봤다. 그녀가 옥처럼 고운 손으로 자신의 황금 비수를 만지작거리자 백천은 혼비백산할 뿐이었다.

백천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큰 소리로 외쳤다.

“혈 방주, 저놈의 간사한 계략에 말려들지 마십시오. 저놈을 죽이세요!”

“간사한 계략? 혈 방주가 나를 죽이는 게 간사한 계략에 말려드는 게지! 그러면 진남공부와 엄당이 서로 반목하고 원수가 될 텐데. 백천! 네가 나를 해치기 위해 최씨 가문과 결탁하는 것이 엄당을 배반한 일이니 네가 죽어 마땅하다.”

두변이 냉소를 지으며 말하자, 백천이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나는 이미 잡역 환관으로 강등되었어! 네놈을 죽이기 위해선 뭐라도 할 거다. 엄당을 배신하더라도 말이지. 어쨌든 이문회가 먼저 내게 잘못한 거다!”

“어리석은 놈!”

두변은 득의에 찬 냉소를 지었다. 백천이 외부의 세력과 결탁하고 엄당을 배신했다는 걸 인정한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그럼으로써 백천의 이간질을 증명할 수 있으니까.

혈관음이 냉소를 지었다.

“어리석은 놈! 돼지처럼 우둔한 놈이 저 교활한 놈에 한참 미치지도 못하는군. 네가 그러고도 저놈의 선생이라고 할 수 있어? 드디어 스스로 실토하는구나. 만약 이 밀매 소금이 정말 최씨 가문의 것이라면 너는 화(禍)를 내게 떠넘기려는 속셈이었구나!”

“아닙니다. 이 밀매 소금은 최씨 가문의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엄당 내부에서 얻은 정보일 뿐, 절대 당신을 음해할 생각이 없습니다.”

백천이 즉시 무릎을 꿇자, 혈관음이 냉랭하게 말했다.

“네가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백천이 머리를 계속 조아리며 말했다.

“혈 방주,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사실대로 말해라. 최씨 가문이 그 밀매 소금을 의도적으로 내게 주려고 한 거냐? 감히 거짓말을 한다면 즉시 네 목을 벨 것이다.”

백천은 거짓말을 하고 싶었지만 혈관음의 번쩍이는 칼을 보니 그럴 마음이 사라졌다.

백천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네, 그렇습니다.”

“정말 내게 화를 떠넘길 생각이었군. 나랑 이문회가 전쟁을 일으키도록 말이지?”

“하지만 그건 최씨 가문의 계략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해낸 방법이 절대 아닙니다. 저는 두변을 죽이고 싶었을 뿐입니다. 저놈을 갈기갈기 찢어 없애버리고 싶었을 뿐이에요.”

“내가 이겼군!”

두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백천이 모든 것을 털어놓았으니, 절체절명의 순간에 두변의 승리가 확정된 것이다.

이렇게 쉽게 이기다니, 제대로 된 싸움 상대가 없군.

두변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굉장히 득의양양한 것 같은데?”

혈관음이 차갑게 말하면서 검을 뽑아 두변의 목을 겨누었다.

“죽을 뻔한 놈이 오히려 자기 원수까지 죽이고 나까지 마음대로 다루다니, 아주 교활하기 그지없는 놈이야. 대단해!”

두변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그래, 백천이란 놈은 속을 알 수가 없고, 최씨 가문은 화를 떠넘기며 나와 이문회를 이간질하려 하지. 진남공부와 엄당을 이간질하고 말이야. 헌데 이를 어쩌나? 내가 거래를 하고 싶은 사람은 네가 아니라 여전히 백천인데? 다시 말하자면 내가 죽일 녀석은 백천이 아니라 네놈이거든!”

“이런 제길! 왜 이러는 거야? 제정신이야?”

두변은 자기도 모르게 욕설을 쏟아냈다.

현관음이 말했다.

“첫째, 나는 최씨 가문을 싫어해. 하지만 엄당을 더 싫어하지. 둘째, 네놈은 너무 간사해. 그래서 이 아둔한 놈이랑 거래를 하려고. 여우 같은 놈보다는 나으니까. 여우 같은 네놈을 죽이는 게 후환을 없애는 길인 것 같은데?”

이런 이유라니, 난 정말 죽었다!

얼떨떨해하던 백천은 잠시 후 미친 듯이 기뻐하며 소리쳤다.

“하하, 두변! 결국 네 꾀에 네가 넘어가는구나. 네놈은 그래도 싸다!”

혈관음이 말했다.

“백천, 네가 가서 처리해라. 저 곱상한 녀석을 죽여.”

“알겠습니다.”

백천이 기뻐하며 말했다. 백천은 무기 거치대에서 장검을 뽑아 들고는 두변의 목을 겨누며 섬뜩하게 웃었다.

“두변! 이렇게 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겠지? 결국 네놈도 내 손에 죽게 되었구나. 천재인 네놈의 목숨도 내 손 안에 있어. 안심하거라. 한 번에 죽여주진 않을 테니까. 고통을 충분히 느끼게 한 다음 죽여주마.”

말을 마친 백천은 칼끝으로 자신이 제일 싫어하는 두변의 두 눈을 찌르려 했다.

두변은 혈관음의 아름다우면서도 냉정한 얼굴을 보며 웃었다.

“혈 방주, 밤이 깊었을 때 벌거벗은 채로 땅에 누워서 미친 듯이 발버둥 치고, 움츠리고 또 바닥을 계속 치느라 매우 고통스러웠겠어.”

순식간에 혈관음의 안색이 변했다. 그 누구도 모르는 그녀만의 비밀이었기에, 혈관음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이 곱상한 환관 녀석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곧이어 혈관음의 눈에 살기가 스치더니, 백천이 손쓰기도 전에 그녀가 직접 검을 뽑아 두변을 찔러 입막음하려 했다.

“당신은 주화입마에 걸려든 게 아니라면 무언가에 중독된 겁니다. 누군가 당신을 해치고 있다는 말입니다!”

두변이 낮은 목소리로 재빨리 말했다.

스윽!

혈관음의 검이 두변의 옷과 피부를 베고는 순간 멈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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