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22화 (22/648)

제22장: 의부가 위기에 빠졌다!

“지금 얼마간의 간격으로 발작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닷새에 한 번이다. 다음까지 열아홉 시진 정도 남았지.”

“내가 빨리 가서 약을 지어오겠습니다. 다음에 발작을 일으킬 때 먹으면 효과가 있을 겁니다.”

“네가 처방전을 쓰면 내가 가서 약을 짓도록 하지.”

“안 됩니다. 아직 어떻게 처방할지 더 연구하고 고민해봐야 합니다.”

혈관음이 두변을 응시하며 말했다.

“넌 여기를 떠날 수 없으니 여기서 고민해라.”

두변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내가 돌아가지 않는다면 유모가 걱정할 겁니다. 더 큰 문제는 내 의부가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나를 찾으려고 할 테고요. 만약 내가 여기 감금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엄당과 진남공부 사이에도 불화가 생기겠죠.”

“이문회로 나를 압박하려 하지 마라. 다른 모든 사람이 그를 두려워한다 해도 나는 아니야. 게다가 너는 이문회에게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 아닐 거다.”

“다음 발작이 나타날 때까지 내가 당신을 치료하지 못한다면 나를 찢어 죽여도 좋습니다.”

혈관음은 망설이며 확답을 하지 않았다.

“내가 서약서를 쓰겠습니다. 만약 내가 약속한 시각이 되었는데도 환관 학원에 숨어서 나오지 않는다면 그 서약서를 들고 이문회 대인을 찾아가면 됩니다. 당신도 잘 아시다시피 그분은 엄당의 평판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한 말은 반드시 지킵니다. 즉, 내가 환관 학원에 있다고 하더라도 내 목숨은 여전히 당신 손에 달린 겁니다.”

혈관음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좋다.”

그녀가 흰 종이 한 장을 두변의 앞에 내려놓았다.

두변은 열아홉 시진 내에 혈관음을 치료하지 못한다면 어떠한 죽음도 받아들이겠으며, 환관 학원도 이를 막거나 복수할 이유가 없다는 내용으로 서약서를 썼다.

서약서를 모두 작성한 두변은 서명과 지장 날인까지 마쳤다.

혈관음을 구하는 임무를 완성해야 양기가 3점 증가한다고 하니, 두변이 최선을 다하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하지만 미인과 달콤한 하룻밤을 보내게 해준다는 보상은 모범 환관인 두변으로서는 잘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었다.

“이제 가도 좋다.”

혈관음이 말했다.

두변은 금 원보를 집어들고 그냥 방을 나섰다가, 잠시 후 다시 돌아왔다.

“나를 배웅해줄 사람을 한 명 붙여줘야겠습니다. 내가 길을 잘 모르거든요. 게다가 이렇게 금자를 많이 가지고 있으니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만에 하나라도 약탈당하면 안 되니 반드시 나를 보호해줘야죠.”

‘이 녀석의 요구는 도대체가 끝이 없군.’

혈관음은 이를 악물고 조건에 응했다.

“십여 시진 후에 약을 보내겠습니다. 당신을 치료하지 못한다면 나를 마음대로 해도 좋습니다.”

혈관음은 이 어리숙한 환관이 과연 자신을 제대로 치료해 줄 수 있을지 못 미더웠지만, 이미 여러 연단 대사들이 그녀를 포기한 상태인지라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너를 어떻게 할 생각은 없다. 그냥 죽여버릴 거니까.”

두변은 혈관음의 마굴에서 빠져나와서야 비로소 한숨을 돌렸다. 지금은 저녁 즈음인데 그 짧은 시간 동안 생사를 넘나드는 일을 겪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자신 대신 백천이 죽었으니, 이번 위기는 별 탈 없이 잘 넘긴 셈이었다. 혈관음이라는 이 악랄한 미녀를 잘 처리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였지만 두변도 나름대로 그녀의 손에 죽지 않을 계책을 가지고 있었다.

두변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유모의 안색은 한결 좋아진 상태였다. 하지만 유모는 두변을 보자마자 걱정하며 물었다.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죠?”

“유모, 집에 빚이 전부 얼마지?”

옆에 있던 두충의 얼굴이 굳어지는 걸 보니 분명 적은 금액이 아닐 듯했다.

“소야는 학원 생활만 잘하면 됩니다. 돈 걱정은 하지 말고요.”

“내가 최씨 가문에 누명을 썼을 때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 사람들에게 뇌물로 바쳤잖아. 그리고 오늘 유모가 은모에 물렸을 때도 아저씨가 돈을 꾸어 의원들을 불렀을 테니 분명 적은 금액이 아닐 테지. 얼마인지 말해 줘.”

“소야가 신경 쓸 일이 아니에요. 평아가 곧 돌아온답니다. 그러면 평아에게 부탁해서 빚을 갚으라고 하면 됩니다.”

도대체 누가 친자식이야?

두변은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었다.

“아저씨, 다해서 빚이 얼마지?”

두충이 머뭇거리다가 입을 뗐다.

“다해서 은자 532냥입니다. 소주인의 일로 관부와 엄당, 그리고 최씨 가문에 뇌물로 준 돈이 400냥이고, 오늘 여랑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쓴 돈이 모두 5냥이거든요. 이자까지 모두 더하면 532냥이고요.”

유모가 자신의 남편에게 화를 내려는데 두변이 무게가 제법 나가는 금 원보 3개를 꺼내 보였다. 금 원보는 크기가 아주 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개당 30냥 정도의 가치는 있었다.

“여기 금자 90냥이 있어. 은자로 치면 700냥 정도 될 테고. 빚을 갚고 남은 돈은 두고두고 사용하면 돼.”

금자를 보자 유모의 표정이 변했다. 금자 90냥은 보통 사람들이라면 몇 대를 걸쳐도 모으기 힘든 금액이 아니겠는가.

“이 많은 금자는 다 어디서 난 겁니까?”

유모가 걱정스레 물었다.

“이문회 대인께서 나를 의자로 삼았어. 그리고 오늘 귀인 한 분의 병을 치료하고 금자를 받았고.”

두변은 지금까지 거짓말을 해본 적이 없는 아이라, 유모는 그의 말을 전적으로 믿었다. 유모의 얼굴이 곧 환하게 피었다.

“소야가 정말 다 컸군요.”

유모는 금 원보를 받아들면서 기특하다는 듯이 두변의 코를 살짝 비틀었다.

유모는 어릴 때부터 외모가 무척이나 귀엽고 예쁜 두변의 코를 자주 가볍게 비트는 걸 제일 좋아했다.

“일단 앉아서 두충과 얘기 좀 나누고 있어요. 내가 가서 교자를 좀 만들어올게요.”

유모가 침상에서 일어났다.

“아니야. 아직 누워 있어야 해. 나랑 아저씨한테 맡겨둬.”

두변이 말렸지만, 유모는 기어코 주방으로 들어갔다.

“두충이 음식 솜씨가 형편없어서 내가 직접 하는 게 마음이 놓이거든요.”

오전에는 독에 중독되어 생명이 위독한 지경까지 이르렀던 유모는 오후에 해독을 한 덕에 기운을 많이 회복했다. 아직 더 요양이 필요했지만 유모는 매우 능숙하게 일을 하기 시작했다.

두충은 두변 옆에 꽤나 어색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두충이 한참이 지난 후에야 입을 뗐다.

“소주인, 식사는 하셨습니까?”

당연한 질문 아니야? 내가 식사를 했으면 유모가 뭣 하러 밥상을 차리러 갔겠어?

“아니, 아직.”

두변의 대답을 끝으로 두 사람의 대화는 단절되었다.

반 시진이 지나고, 유모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교자를 가져왔다. 두변이 교자를 입에 넣으려는 순간 갑자기 문이 덜컹 열리더니 무사 한 무리가 들이닥쳤다. 누군가의 큰 손이 두변의 어깨를 붙잡았다.

“학원을 절대로 떠나지 말라고 내가 얘기했을 텐데? 하마터면 계림성 전체를 다 뒤질 뻔했구나. 만약 너한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으면 산장이 나를 가만두지 않았을 거다.”

이위가 눈에 핏발이 선 채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유모가 다가와 말했다.

“이 대인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두변은 제 병을 치료하기 위해 학원에서 나온 것이니 너무 책망하지 말아 주세요.”

두변을 찾아내 긴장이 풀린 이위도 유모를 향해 따듯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무 일도 아닙니다. 저도 두변이 걱정되어 찾아다닌 것뿐입니다. 찾았으니 됐습니다.”

“두변을 벌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아닙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 선생님, 같이 저녁 좀 드시겠어요? 유모 요리 실력이 정말 끝내줍니다.”

“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두변이 권하자 이위가 잠시 망설이더니 자리에 앉았다.

“너희들은 나가 있어라.”

이위가 무사들에게 말했다.

무사 십여 명이 방 밖으로 나갔다. 정원 밖으로는 환관 학원의 무사뿐 아니라 동창 무사 수백 명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위가 학원에 돌아온 후 두변이 없다는 걸 발견하고는 조급해진 나머지 즉시 학원의 몇십 명 무사들과 동창 만호에서 빌린 무사 몇백 명을 거느리고 계림성을 뒤지며 두변의 행방을 찾았었다.

본래 대충 먹기만 하려 했던 이위는 음식을 몇 번 씹고 나더니 눈빛이 달라졌다.

“정말 맛있습니다. 이런 맛은 정말 오랜만이네요. 모친과 같이 빚던 교자 맛이 생각나는군요. 제 아내가 미인이긴 하지만 음식에는 소질이 없어서 만드는 음식들이 모친 수준에 한참 못 미쳤거든요.”

이위의 목소리는 거의 울먹이듯 했다.

이 말을 들은 유모는 매우 기뻐했다.

“이 대인께서 맛있다 하시니 다행입니다. 음식을 더 내오도록 할게요.”

이위와 두변 둘은 교자 네 그릇을 금방 해치웠다.

음식을 다 먹은 이위가 두변에게 말했다.

“두변, 나랑 같이 학원으로 돌아가겠느냐?”

“그러겠습니다.”

두변은 무사들의 보호를 받으며 안전하게 환관 학원으로 돌아왔다.

“백천이 학원을 떠나 최씨 가문을 찾아갔다는 증거가 너무 명백해서, 나도 조급한 나머지 동창에게 백천과 왕래가 잦았던 이들을 전부 잡아 동창 감옥에 가둔 후 취조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나는 학원으로 돌아와 이 사실을 네게 알리려 했지. 그런데 네가 학원에 없더구나. 좌명에게 네가 유모를 구하러 갔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학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네가 납치된 흔적을 발견했기에 무사 수백 명들을 시켜 수색작업을 시작했다. 네가 실종된 흔적을 찾으려고 말이야. 그런데 상대도 전문가인지라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가 없더구나.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이냐?”

이위가 물었다.

“백천이 최씨 가문과 결탁해 밀매 소금 1,800섬을 대가로 혈관음에게 저를 죽이라고 사주했습니다. 일석이조를 노린 셈이죠. 저도 죽이고 엄당과 진남공 간의 갈등을 부추기며 그 화를 혈관음에게 떠넘기려는 속셈이었습니다.”

“참으로 독한 계책이구나. 그런데 혈관음의 손에 잡혔는데 어떻게 별 탈 없이 빠져나온 것이냐?”

“혈관음의 마음을 돌린 덕에 전 목숨을 건졌고 백천도 직접 죽일 수 있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을 두변이 해냈다는 말에 이위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를 쳐다봤다.

혈관음은 악랄한 데다 냉혹한 성격이지. 뒤에는 진남공부가 있기 때문에 누구라도 그 여인과 척을 지려고 하지 않고, 더욱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기어코 해내는데, 두변이 어떻게 그녀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 그리고 백천까지 죽였다고?

만약 내 생각이 맞는다면 백천과 혈관음은 오늘 같은 편이었을 테지. 이런 상황에서 판도를 바꾸어 활로를 찾아내다니!

이위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두변이 전후 사정을 자세히 이야기하려는데 이위가 말을 가로챘다.

“전후 사정을 나한테 알려줄 필요 없다. 이 일은 중요한 사항이니 먼저 산장께 보고를 하고, 산장이 허락한다면 그때 가서 나한테 알려주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산장은 언제 돌아오십니까?”

“일이 잘 풀린다면 모레쯤 돌아오실 거다. 산장이 든든한 지원군과 함께 돌아오셨으면 좋겠구나. 그렇지 않으면 학원은 정말 큰 골칫거리를 떠안게 되니 말이다.”

두변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문회는 실력이 출중한 매우 뛰어난 지도자인데, 그런 그가 관리하고 있는 학원에 대체 어떤 골칫거리가 생길 수 있다는 거지? 천 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광주로 가서 구원 요청까지 하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선생님,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제가 알아도 되는 일이라면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이 일은 네가 도울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구나. 네가 명문가 출신이긴 하지만 성장환경이 좋지만은 않았으니까.”

“무슨 일인지 알고 싶습니다. 산장과 학원을 위해 제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위가 탄식을 하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가 도당을 만들고 학원을 설립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었고 또 얼마나 많은 대가와 사람들의 희생이 필요했는지 너도 알 거다. 몇십 년 동안 대녕 왕조의 각 성(省)에서 계속해서 환관 학원을 설립했다. 하지만 광서 지방은 최남단의 외진 지역이고 황제의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데다 여러 세력이 힘겨루기까지 하고 있어 19년 전에야 비로소 환관 학원을 세울 수 있었다. 설립 초기에 몇 년 동안은 아무도 우리의 무학 성적과 국학, 그리고 산술 성적을 인정해 주지 않았다. 그 누구도 우리 환관 학원을 최고 학부로 보지 않은 거다.

전임 산장 몇 분은 이러한 걱정 때문에 머리가 하얗게 세기도 했다. 그분들은 갖은 방법을 동원해가며 이강 서원, 그리고 남해 도장과 교류를 하고 싶어 하셨다.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아 당당하게 광서성의 3대 학부 중의 하나가 되고 싶어 하셨던 거다.

그런데 이강 서원의 산장이 악랄한 계책 하나를 생각해냈지. 환관 학원이 자기들의 인정을 받고 학술교류를 하려면 3년에 한 번씩 3대 학부 학술 대회를 개최하자고 말이다. 한 번 개최할 때마다 학전(學田: 학원 등이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갖고 있는 논밭) 1,500묘(畝)를 조건으로 내세웠다. 대회의 우승 학부는 학전 1,000묘를 얻고 2등은 학전 500묘를 얻으며, 3등은 학전 1,500묘를 잃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쯤 되면, 두변도 환관 학원이 문관 집단과 무장 집단이 파놓은 함정에 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3대 학부 대회는 이미 4회까지 개최되었고 우리 학원은 학전 총 6,000묘를 잃었다.”

두변은 자기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6,000묘? 지금 강소성과 절강성의 1묘는 은자 50냥쯤 되고, 산이 많아서 밭이 적은 광서라도 1묘당 족히 25냥은 나가는데?

다시 말하자면 지난 10여 년 동안 환관 학원은 은자 15만 냥을 눈 뜨고 코 베이는 격으로 빼앗긴 것이다. 물론 환관 학원은 광서성 전체에서 인정받게 되어 3대 최고 학부 중 하나가 되었지만 이를 위해 치른 대가가 너무 컸다.

“광서성에 환관 학원을 설립할 때 황제 폐하와 엄당 고위층 인사들이 학전 10,000묘를 하사해주셨는데 지금은 겨우 4,000묘 정도만 남은 셈이지. 게다가 3년에 한 번 열리는 대회를 개최해야 할 시기가 다시 도래했는데 만약 이번에도 진다면 1,500묘를 더 잃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학전뿐만 아니라 엄당의 존엄도 잃게 되며, 가장 심각한 것은 이문회 대인의 출세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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