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24화 (24/648)

제24장: 혈관음을 치료하다.

두변은 과학적으로 접근해 이 처방전을 연구해낸 것이다. 비록 자신은 없었지만, 그래도 핵심은 정확히 파악했으니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했다. 어쨌든 이게 첨단과학 기술도 아니니 어느 정도의 오차는 용인될 테고,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혈관음 본인의 의지였다. 두변은 약을 몇 시진이나 달인 후 도자기 병에 담았다.

약은 달이자마자 바로 먹는 게 가장 효능이 좋겠지만, 전문가가 아닌 두변으로서는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쓰지는 않았다.

아편을 끊는 약을 다 달인 후에는 <연단학 기초 이론> 제2부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두변은 저녁 12시까지 계속 책의 내용을 외웠고 꿈속에서도 공부할 준비를 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꿈의 세계로 들어갔지만 이번에는 공부가 아닌 상당히 끔찍한 장면이 펼쳐졌다.

혈관음의 아편중독 증상이 다시 도지려고 하자, 두변은 재빨리 자신이 제조한 약을 먹였다. 하지만 증상은 전혀 호전되지 않았고 혈관음의 발작은 점점 더 심해져 갔다. 결국 이성을 완전히 잃은 혈관음은 두변을 처참하고 잔인하게 죽여버렸다.

오금이 저릴 정도로 오싹한 꿈이었다. 100% 정확한 것은 아니겠지만 현대 지구에서 아편을 끊을 때 사용하는 처방전을 그때로 따라 약을 제조했는데,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 걸까?

꿈속에서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 두변은 되살아났고, 처방전을 쓰던 순간으로 되돌아갔다.

더는 건성으로 처방전을 쓰면 안 된다는 생각에, 두변은 꿈속에서 <연단학 기초 이론> 제1부와 제2부를 참고하며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건지 원인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낮에 공부했던 <연단학 기초 이론> 제2부가 한 장 한 장 눈앞에 펼쳐지면서 모든 내용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두변은 마침내 처방전에서 잘못된 부분을 찾아냈고 즉시 수정해 다시 약을 제조한 후 잘 달인 약즙을 혈관음에게 가져다줬다.

발작이 일어나기 전에 혈관음은 두변이 제조한 두 번째 약을 들이켰다.

이번에는 발작이 일어나진 않았으나 두변이 준 약을 마시고 몸의 모든 구멍에서 피를 쏟아내는 더 비참한 결과가 나타났다. 그녀는 자신이 급사하기 전에 두변을 갈기갈기 찢어 죽였다.

두변은 꿈속에서 혈관음 치료를 두 번이나 실패했다.

아니 젠장,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야?

꿈속에서 새로운 장면이 펼쳐치고, 두변은 처방전을 쓰는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갔다.

두변은 다시 한번 <연단학 기초 이론> 제1부와 제2부를 탐독하며 두 번째 처방전에서 어디가 잘못되었길래 혈관음이 피를 토하고 죽었는지 분석했다.

꿈속에서의 시간은 현실 세계보다 열 배 느리게 흘러간다. 한 시간 한 시간이 지나고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그러던 중 마침내 두 번째 처방전에서의 오류를 찾아냈고 그렇게 세 번째 처방전을 써 내려갔다. 이번에 쓴 처방전은 두변의 연단학 지식을 십분 활용한 것으로 현대 지구의 처방전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두변은 이 처방전대로 달인 약을 가지고 다시 한번 혈관음에게 갔다.

이번에 지은 약은 다행히 효과가 매우 좋아서 혈관음이 발작할 때 통제 불능의 상태로 변하진 않았지만, 어쩐지 그녀의 눈빛이 사람을 유혹할 것처럼 몽롱하게 변했다.

은근한 유혹인가 싶었는데 그녀가 갑자기 두변의 목을 감싸 안았다.

처방전에 최음제 성분이 들어간 것도 아닌데 왜 이러는 걸까?

혈관음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오니 두변도 참을 이유가 없어서, 두 사람은 바닥으로 쓰러지면서 서로의 몸을 탐했다.

반 시진이 지나 깨어난 혈관음이 두변을 보며 말했다.

“치료는 잘 된 거 같은데, 왜 나를 덮친 거지?”

“당신이 나를 덮친 겁니다.”

“그래? 그럼 이제는 너를 죽이고 싶어졌군.”

혈관음이 싸늘하게 말하고는 두변을 힘껏 내리쳤다.

“으악!”

놀라 소리치면서 잠에서 깬 두변은 기뻐할 만한 사실을 발견했다.

어제 꿈에서 <연단학 기초 이론> 제2부를 따로 공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처방전의 오류를 찾고 새로운 처방전을 써내기 위해 이 책을 몇 번이고 읽고 또 생각했기 때문에 결국 800쪽에 달하는 <연단학 기초 이론> 제2부를 달달 외우게 되었으며 응용할 줄도 알게 되었다. 아무 약초나 독물의 이름을 대도, 두변의 머릿속에서 바로 관련 자료와 그림들이 떠오를 정도였다.

뜻밖의 수확이로구나!

하지만 약 조제 실패에 대한 부분은 공포 그 자체였다.

두변은 앞서 두 차례의 약 조제가 그처럼 끔찍한 결과를 야기할지 생각지 못했다. 이치대로라면 이 약들은 처방전이 비슷비슷했고 크게 잘못된 것도 아니어서 효과가 미미할지는 몰라도 그렇게 큰 부작용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었다.

그나마 꿈속에서 미리 결과를 알았기에 망정이지 두변은 하마터면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게 죽을뻔했다.

두변이 만든 세 번째 약방은 치료 효과는 좋았지만, 알 수 없는 최음 작용이 발생하는 게 골칫거리였다. 이 약을 먹은 혈관음이 두변에게 적극적으로 들이대고는, 정신을 차린 후 두변을 바로 죽이지 않는가.

여섯 시간이 지나면 혈관음이 다시 발작을 일으키게 될 테니, 다시 꿈의 세계로 들어가 처방전을 고칠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잠을 잔다고 해서 반드시 꿈의 세계로 들어가리란 보장도 없었기 때문에 두변은 꿈속에서 쓴 세 번째 처방전대로 약을 만들기로 했다. 두변은 침상에서 일어나 세수를 한 후 꿈속에서의 세 번째 처방전에 따라 약을 짓기 시작했다.

세 시간 동안 약을 달이고 나니 시간은 오전 10시쯤이 되었다. 오후 1시 정도에 혈관음이 다시 발작을 일으킬 테니 서둘러 출발해야 했다.

두변이 이위를 찾아가 말했다.

“이 선생님, 매우 중요한 일이 있어 나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백천도 죽고 최씨 가문 종복 십여 명을 가둬두긴 했지만, 이 시기에 학원을 나가는 건 위험한 것 같구나.”

“하지만 꼭 가야 합니다.”

이위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알겠다. 그럼 동창 무사 둘과 동행하거라.”

“알겠습니다.”

세 시간 후, 두변은 혈교방의 별원(別院)에 도착했다.

이곳은 부지가 수십 묘가 넘었고 5미터 정도 높이의 담장이 둘러싸고 있었으며 방비가 워낙 삼엄해서, 수많은 활과 쇠뇌가 어두운 곳에 숨어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방주께서 혼자 들어오라고 하셨습니다.”

입구에서 혈관음의 부하인 여무사가 이렇게 말하자, 동창 무사들이 거드름을 피우며 대꾸했다.

“계림성의 그 어느 곳도 우리 동창이 들어가는 걸 막을 순 없다.”

혈관음의 부하가 말했다.

“두변 선생 말고는 누구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저를 포함한 그 누구라도 들어가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겁니다.”

“난 괜찮습니다.”

두변은 혼자서 별원의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안이 텅 비어 있는 걸 보니 혈관음은 자신이 발작을 일으키는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싫은 모양이었다.

“가운데 집으로 들어오거라.”

혈관음의 목소리가 마치 귀 안에서 들리는 것처럼 울려 퍼지는 걸 보니, 이 여자의 무공이 상당히 대단하다 싶었다.

두변은 별원의 가운데 있는 웅장하고 화려한 집으로 들어갔다. 값비싼 유리기와, 흠집 하나 없는 청석, 심지어 나무로 만든 장식 하나하나가 매우 정교한 건물이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집 안은 아무런 가구도 없이 텅 비어 있어서, 화려한 밖의 모습과는 상당해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이 별원의 주인을 죽이고 재산은 내가 다 가졌지만 화려한 가구가 마음에 들지 않고, 양탄자를 밟는 게 찜찜해서 원래 있던 것들을 다 치워버렸지.”

혈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두변은 그녀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이렇게 멋진 공간을 스산하게도 만들었군요.”

두변이 투덜거리며 혈관음이 어디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혈관음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나는 지하실에 있다. 입구는 병풍 뒤에 있으니 지하실로 내려와라.”

두변은 병풍 뒤에서 지하실로 향하는 입구를 찾았고, 계단을 따라 아래쪽으로 깊게 내려갔다.

지하실은 낡고 허름했으며, 돌침상와 책상, 그리고 의자 두 개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곳곳에 켜진 촛불들만이 지하실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혈관음은 오늘도 무사 복장을 한 채 늠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여인은 정말 너무 아름다웠다. 특히 긴 다리와 몸매가 예술이어서, 사진 보정을 거친다고 해도 이 정도의 몸매를 갖긴 힘들 듯했다.

“약은 잘 지어왔겠지?”

혈관음이 물었다.

두변이 고개를 끄덕이며 도자기 병을 건네줬다.

“처방전은?”

두변은 잠시 망설이다가, 곧 처방전도 건네줬다.

혈관음은 연단학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지식은 갖추고 있었기에 처방전의 내용을 보고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그녀가 입으로 신호를 보내자 강아지 한 마리가 바로 달려 들어왔다. 혈관음은 독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수저로 약즙을 강아지에게 조금 떠먹였다.

두변은 말리지는 않고 비웃듯 지켜보기만 했지만, 강아지가 약효를 견디지 못하고 죽기라도 하면 골치 아파지기 때문에 조금은 긴장했다.

강아지는 약즙을 마신 후 정신이 혼미해져 나른한 듯 땅바닥에 축 늘어졌지만, 발정이 나서 수컷을 찾아다니는 등의 이상징후는 다행히 나타나지 않았다.

혈관음은 강아지의 숨결과 동공을 살펴보고 맥박도 짚어본 후 약에 독이 없다고 판단했다.

두 사람은 조용히 마주 앉아 있었다. 혈관음은 두변을 투명인간 취급하면서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발작이 일어날 것 같으면 약을 마시면 되니 나는 나가 있겠습니다.”

두변이 말했다.

“안 돼. 만약 약에 문제가 있다면 너를 즉시 죽여야 하니까 여기 있어.”

혈관음이 단호하게 말했다.

대화가 오간 후 두 사람은 더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

두변이 뭔가를 생각하더니 말을 꺼냈다.

“당엄을 압니까?

“알지.”

혈관음조차 당엄을 알다니. 이 정도로 유명한 자였나?

두변은 조금 놀라면서 분하기까지 했다.

두변이 계속 물어봤다.

“만나본 적 있습니까?”

“있지.”

“서로 잘 압니까?”

혈관음이 차가운 눈길을 보냈다.

“네놈이 상관할 일이 아니다.”

반응을 보니 두 사람은 서로 잘 아는 사이인 것 같은데?

“당엄은 어떤 사람입니까?”

“고귀한 출신에 재능도 남다르고 잘생기기까지 한, 모두가 인정하는 차세대 엄당의 수장이지. ”

혈관음은 두변을 흘깃 쳐다보며 물었다.

“혹시 그를 질투하는 거냐?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가랑이가 찢어지니까 괜히 혼자 힘 빼지 마라.”

두변이 몸을 일으켰다.

“난 이제 나가 보겠습니다. 위쪽에 있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부르면 됩니다.”

혈관음은 두변의 혈을 눌러 앉은자리에서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얌전히 앉아있어.”

그렇게 두 사람은 다시 침묵을 맞이했다.

그러다 갑자기 옆에 있는 촛불이 흔들리면서 그녀의 아름다운 몸이 격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아편중독으로 인한 발작 증상이 나타나려는 듯했다.

“빨리 이 병에 든 약을 전부 마셔요!”

두변의 말에 혈관음이 병을 들더니 벌컥벌컥 들이켰다.

혈관음은 순간적으로 자신이 곧 발작을 일으킬 것이며, 두려움과 고통이 곧 자신의 온몸을 집어삼킬 것임을 확신했다.

발작이 일어나면 몸에서 맹렬한 불길이 이는 것 같고, 온몸의 뼈와 근맥에 수천수만 마리의 개미가 기어오르는 느낌이 들며, 여러 가지 환각이 나타난다.

이런 고통을 느끼면 사람들은 차라리 죽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설마 두변 저 어린놈이 만든 약이 아무런 효과도 없는 건가?

하긴, 입만 산 간사한 환관일 뿐인데. 나보다 연단학을 모르는 놈이 어떻게 연단 대사들도 고치지 못한 병을 고칠 수 있을까.

혈관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두변을 믿었다는 사실에 쓴웃음을 지었다. 두변 저놈이 그저 목숨을 부지하고 싶어 나를 속이고는, 아편중독 따위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거짓말한 것이로구나!

이 발작이 다 끝나면 반드시 살아서 네놈의 세 치 혀부터 잘라 주마.

혈관음은 속으로 독설을 퍼부었다.

아니나 다를까 익숙한 고통이 다시 엄습해왔다.

그런데 몸속에서 또 다른 기운이 솟구치더니, 몽롱한 느낌이 들면서 고통을 줄여주기 시작했다. 두변이 만든 약물이 약효를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혈관음이 막 고통스러움을 느끼기 시작하자마자 그 고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고통 대신 나른함과 몽롱함이 찾아오면서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떨림과 설렘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녀는 지금까지 자신을 여인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십여 년간 억눌러왔던 여인으로서의 본능이 순간적으로 깨어나면서 스스로 주체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혈관음은 정신이 점점 몽롱해져서는 촉촉한 눈빛으로 두변을 바라봤다. 이 소환관 나부랭이도 다시 보니 제법 잘 생겨 보였고, 교활하기 그지없다고 여겼던 눈빛에서도 경망스럽지 않고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신비한 느낌마저 들었다.

약물의 강력한 작용이 혈관음을 집어삼키자, 점차 이성을 잃어가던 그녀는 뱀처럼 두변에게 다가가 옥처럼 고운 팔로 두변의 목을 감았다.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지만 나는 당신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는다는 점은 꼭 기억하길 바랍니다.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나서 나한테 책임을 떠넘길 생각도 말고요. 보다시피 당신이 혈을 눌렀기 때문에 나는 지금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으니까요.”

두변이 진지하게 말했다.

말을 마치기도 전에 혈관음의 뜨거운 입술이 두변의 입술과 맞닿으며 입맞춤을 시작했다.

곧 바람이 일더니 지하실의 모든 촛불이 한 번에 꺼졌다.

농밀한 장면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끈적한 소리만 들려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