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26화 (26/648)

제26장: 사람을 죽이다.

물론 이번 대회는 이문회의 미래와 직결될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다.

이문회의 능력이 아무리 특출난다고 해도 그의 경쟁자가 너무 많았다. 이번 3대 학부 대회에서 지는 것도 모자라서 학전 1,500묘를 잃게 되면, 엄당의 명성이 실추된다. 그렇게 되면 동창 대도독 후보자인 이문회로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타격이 될 것이다.

전임 산장도 3대 학부 대회에서 진 연유로 바로 좌천되어 황릉이나 지키다가 그곳의 고독한 혼귀들의 동반자가 되지 않았는가.

전임 산장이 그렇게 좌천된 직후로 엄당 내부에서는 산장 직위를 맡으려는 사람이 없었다.

광서 환관 학원이 더는 소외되지 않도록, 그리고 광서성에서 엄당의 세력을 공고히 다지기 위해 이문회가 나서서 그 뜨거운 감자를 이어받게 되자 일각에서는 이를 비웃기도 했다.

예를 들면 장약죽이라는 인물도 그중 한 명이었다. 당시 장약죽은 미리 사람들을 이끌고 바다 건너 왕국을 방문하면서 그 시기를 잘 피해 갔고, 이문회가 광서 환관 학원의 산장이 된 후에야 다시 돌아와 양주 진수 환관을 맡게 되었다.

고결한 인품을 지닌 사람들은 항상 손해를 보곤 하는데, 엄당 내부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일찍이 이런 이치를 깨달은 두변은 자신은 고상한 미련둥이가 되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하지만 두변의 인품이 정의와 불의, 그 사이 어딘가에서 표류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와 별개로 이문회 같은 사람들을 존경하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두변은 대회 참가에 대한 얘기는 잠시 미뤄두고 다른 얘기를 꺼냈다.

“산장, 백천이 죽었습니다.”

이어서 두변은 백천의 죽음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을 이문회에게 자세하게 설명했다. 혈관음과 관련된 일부 이야기도 같이 꺼내며 밀매 소금에 관한 일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적당히 얼버무렸다. 두변은 단지 혈관음과 거래를 했고, 자신이 우연히 알고 있던 지식으로 그녀의 희귀병을 치료해주었다고만 설명했다.

물론, 이문회는 아무도 모르는 혈관음의 그 희귀병을 하필이면 두변이 알고 있는 데다, 두변이 뭔가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음에도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세상 사람 누구나 각자의 비밀이 있을 텐데 속마음을 전부 얘기하라는 것은 매우 미련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 알겠다. 잠시 기다려라. 밥을 마저 먹고 나와 갈 곳이 있다.”

한 시진이 좀 더 지난 후 이문회는 두변을 데리고 계림부 동창의 어느 지하 감옥으로 갔다.

이곳에는 몇십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구금되어 있었는데 모두 백천과 모의해 두변을 해치려던 자들이었다. 그중 신분이 가장 높은 사람은 최씨 가문의 자제이자 염호(鹽號)를 관리하는 최붕원이었다.

“최붕원을 제외하고는 전부 죽여라.”

이문회가 차갑게 말했다.

그러자 동창 무사 몇 명이 감방에 들어가 칼을 뽑아 사람을 죽이기 시작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저는…….”

“장궤 어른, 제발 저 좀 구해주십시오. 이렇게 죽기 싫습니다.”

칼을 몇 번 휘두르니 몇십 명의 최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죽어 나갔고 순식간에 감방 안은 조용해졌다.

이어서 얼굴이 창백해진 최붕원이 끌려 나왔는데, 그는 당황해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력 간의 다툼이 있다 하더라도, 죽는 자는 대부분 아랫것이기 때문이다. 이문회의 자작극인 암살 사건에서도 백 명이 넘는 최씨 가문 사람들이 죽었지만 최씨 본가 사람들은 한 명도 없었다. 이는 불문율이었고 만약 이를 어길 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므로, 상대방의 핵심 인물은 웬만하면 건드리지 않았다.

“이 대인, 원하는 게 있으면 말씀하시지요. 가주께서 어떤 조건이든 다 받아들일 겁니다. 저는 장사가 너무 바빠서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으니 당장 이곳에서 나가야 합니다.”

최붕원의 말에 이문회가 물었다.

“백천과 공모하고 밀매 소금 1,800섬으로 혈관음을 사주해서 두변을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 게 자네들인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저는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밀매 소금 때문에 저희를 잡아둔 게 아닙니까?”

“허허, 저자를 죽이고 이 일을 마무리 짓자.”

이문회가 더 이상 묻지 않고 두변을 보며 말했다.

두변은 다소 놀랐지만 날카로운 검을 받아들고 최붕원의 앞으로 다가갔다. 최붕원은 서른을 바라보는 남자로, 건장한 체격에 온몸에 기품이 가득한 것이, 전형적인 명문가의 자제였다.

최붕원이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 대인, 저를 겁주시다뇨. 장난이 짓궂습니다. 다 아시는 분들끼리 이러시면 안 되죠.”

“겁주는 게 아니라 진정 너를 죽이려는 거다.”

최붕원의 얼굴색이 변했다.

“정말 고작 환관 학원의 소환관 때문에 이러시는 겁니까? 어차피 미래라곤 없는 버러지 하나 때문에 최씨 가문과 척지시려는 거라고요? 저희 가주와 셋째 숙부께서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최씨 가주의 셋째 동생인 최암은 양주 지부를 맡고 있었다.

이문회가 손을 휘저었다.

두변의 검이 최붕원의 심장을 관통했고, 그는 한 차례 몸을 부르르 떨더니 땅에 쓰러져 죽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이문회가 소환관 놈을 위해 ‘정말 자신을 죽이기라도 할까?’ 하며 전혀 믿지 못하는 눈빛이었다.

이문회는 두변이 쥐고 있던 검을 다시 가져와 직접 최붕원의 머리를 다시 베어 옆에 있던 동창 무사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가서 이 머리들을 최씨 가문에게 전해주고 그들에게 똑똑히 일러라. 두변은 내 의자이니 누구든 다시 이런 시도를 한다면 그때는 최씨 가문의 적자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알겠습니다!”

동창 무사가 말했다.

오늘 이후로 최씨 가문은 큰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두변에게 손을 대려 하지 못할 것이다.

“이만 돌아가자.”

두 사람은 동창 감옥을 빠져나왔다.

“내일이 칠석날이구나. 집에 들를 생각이냐?”

이문회가 물었다.

방금 몇십 명의 사람을 죽여 놓고, 태연하게 칠석날에 집에 들를 거냐고 묻는 이문회에게 두변은 조금은 위화감을 느꼈다.

“들를 거 같습니다.”

“그럼 지금 너를 집에 데려다주마. <연단학 기초 이론>도 챙겨왔다.”

이문회는 두변을 집에 바래다준 후, 자신은 마차를 타고 환관 학원으로 돌아갔다.

두변이 혼자 집으로 들어서자, 향기로운 바람이 부는 듯하더니 한 여인이 그를 껴안았다.

이 여인은 바로 유모의 딸이자 당찬 성격을 가진 평아 누이였다. 오주부로 멀리 시집간 그녀는 매년 명절마다 어떤 이유를 대서든 꼭 집으로 돌아왔다.

“두변, 너무 보고 싶었어.”

두평아는 자기 이마를 두변의 이마에 맞대며 꼭 끌어안더니, 한참 동안 두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몸집이 커지진 않았네? 그래도 인물은 훤칠하구나. 환관이 아니었다면 내가 너한테 시집갔을 텐데.”

가까이에서 본 두평아의 얼굴은 두변의 기억 속 모습과 조금 차이가 있었다.

그녀는 혈관음처럼 빼어나게 아름답진 않았지만, 얼굴에 몇 개 귀여운 주근깨가 있는 상당한 미인이었으며 탄탄한 몸매가 특히 눈길을 사로잡았다. 또 하나 그녀만의 특별한 점이 있었는데 바로 현숙하면서도 억척스러운 성품을 모두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듣자 하니 이문회 대인의 의자가 됐다면서?”

두평아가 두변의 손을 잡고 매우 기뻐하며 물었다.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잘됐네. 우리 집도 이제 너와 대인의 덕 좀 보겠는걸?”

두평아가 두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네가 좀만 더 일찍 철들었으면 얼마나 좋았어. 그럼 다른 사람한테 시집가지도 않았을 텐데.”

당시에는 거주할 집도 없을 정도로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두평아가 부잣집 아들에게 시집갈 수밖에 없었다. 시집간 후 그녀가 부모와 두변에게 집을 마련해준 덕에 남은 식구가 비교적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두변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그 사람이 누이한테 잘해주지 않아?”

두변이 말하는 그 사람은 당연히 그녀의 남편이었다.

“오, 이렇게 누이를 아껴주는구나. 만약 그이가 나한테 잘해주지 않는다면 어떡하게?”

“죽여야지.”

“우와, 우리 동생 정말 대단한데. 듣는 사람 무섭게 그게 무슨 말이야.”

두평아는 익살스럽게 겁에 질린 척을 하더니 두변을 꼬집으며 말을 이었다.

“장난친 거야. 그이가 나한테 잘못하면 네가 손쓰기도 전에 내가 가만있지 않았겠지. 네가 그이에게 손을 쓸 필요가 뭐 있겠어?”

그녀는 어릴 때부터 이런 식이었다. 주의력 결핍 장애라도 있는 것처럼 장난치는 게 일상이고, 두변을 가만두지를 않았다.

“그만하면 됐다. 와서 밥들 먹어라.”

유모가 말했다.

한 식탁에 모여 밥을 먹기 시작했지만, 언변이 뛰어나지 못한 두충은 그저 딸을 바라보며 웃기만 했다. 두평아는 두충의 친딸이 아니었지만 그는 누구보다 두평아를 아꼈다. 물론 두변에 대해서는 아끼기보다 존중했으니, 두충에게 두변은 언제나 상전이었다.

“이것 좀 더 먹어요.”

유모가 닭 다리 두 개를 모두 두변의 그릇에 올려놓았다.

이를 본 두평아가 바로 투덜거렸다.

“어머니, 남존여비가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그래도 내가 친딸인데?”

두평아가 두변의 입으로 들어가려던 닭 다리를 빼앗아 자기 입으로 바로 넣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늘 이랬다. 분명히 제 그릇에도 닭 다리 하나가 더 있건만, 두변이 먹던 음식을 뺏어 먹기를 좋아했다.

유모도 이런 광경이 익숙했다.

가혹한 운명이 아니었으면 이 둘이 가정을 꾸려 자식을 낳고 잘 살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만약 그럴 수만 있었다면, 자신의 생에 더 이상의 여한이 없을 것이다.

밥을 다 먹은 두평아는 늘 그래왔듯 능숙하게 수건을 가져와서 두변의 얼굴을 닦아주려 했다.

“내가 할게.”

두변이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하지만 곧바로 두평아의 향기로운 수건이 두변의 얼굴을 덮었다.

“아야! 벽을 닦는 것도 아니고 얼굴 닦는데 왜 이렇게 힘을 주는 거야. 이렇게 힘이 좋으면 농사일이나 좀 거들면 되겠네.”

“흥. 네 피부가 약한 거거든? 남자가 이렇게 곱상하게 생겼으니 질투 나서 그런다. 아주 네 얼굴을 엉망으로 만들고 싶을 지경이야.”

두평아는 더 힘을 주어 얼굴을 닦으면서 두변의 얼굴로 이런저런 모양을 만들며 장난쳤다.

얼굴을 다 닦은 그녀는 따듯한 물을 가져와 두변의 발도 씻겨주었다.

비록 친가족에게는 버림받은 두변이지만, 어려서부터 발 씻는 것 하나까지 이들이 모두 대신해 줬다. 처음에는 유모가 직접 두변의 발을 씻겨주었고 나중에는 유모가 두평아에게 이 일을 시켰다. 처음에는 두평아도 두변의 발을 씻겨주기 싫다고 해서 유모에게 몇 번 맞기도 했다. 물론 맞은 매를 다시 두변에게 갚아줬으니 그녀도 억울할 건 없겠지만.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니, 두평아도 두변의 발을 씻겨주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이번엔 진짜로 내가 씻을게.”

두변이 두평아를 말리면서 말했다.

“가만히 있어. 나도 이 못생긴 발이 너무 그리웠거든.”

두평아가 두변의 발바닥을 때리며 말했다.

족히 10분 동안 발을 씻겨준 평아는 두변의 발을 요리조리 살펴보며 말했다.

“정말 곱네. 웬만한 여자들 발보다 더 고운 거 같아. 너무 깨끗해서 신발 신기기 아까워.”

그후 두평아와 두변은 시간 가는지 모르고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부분 평아가 말했고 두변은 들었다.

사실 평아는 밖에서는 말을 많이 하지 않고 오히려 과묵한 편이지만, 신기하게도 두변 앞에서는 수다쟁이로 변해 아주 사소한 일들까지도 다 얘기하곤 했다. 유모는 등불 아래서 평아가 가져온 비단으로 두변에게 줄 옷에 수를 놓고 있었다.

“평아, 이제 수다 그만 떨어라. 소야도 잠을 자야지.”

유모가 재촉하자, 두평아가 두변을 보며 말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두변, 나랑 같이 자자.”

사실 두변의 마음속이야 엉큼한 늑대라지만, 이런 말에는 얼굴이 붉어질 수밖에 없었다. 평아의 막무가내는 정말 당해낼 방법이 없었다.

“헤헤, 얼굴까지 빨개졌어. 몇 년 전에 내가 자고 있을 때 몰래 와서 내 엉덩이 만졌잖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평아가 두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리고는 두변의 허리를 세게 꼬집고는 제비처럼 자기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비록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영원히 사나운 소녀가 살고 있는 모양이었다.

한편 두변은 아픔을 참느라 오만상을 찌푸렸다.

누구보다 살갑게 굴다가도 갑자기 돌변해서 두변을 때리기도 하는 등,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늘 이런 식이었다.

잠이 든 두변은 다시 꿈을 꾸었다. 하지만 이번에 꿈에 나타난 장면은 공부나 수련과는 상관이 없는, 어렸을 때 두평아와 같이 보낸 시간들이었다. 이 기억들은 원래 몸 주인의 기억이겠지만, 두변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 장면들을 받아들였다.

평아는 고작 몇 시간 만에 두변의 마음속으로 들어와 그의 가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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