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29화 (29/648)

제29장: 남해로 출전하다.

계속 배우다 보니 세뇌가 되었는지, 두변은 이 곡이 정말 듣기 좋아졌다. 이 엄청난 예술성을 지닌 곡이 격조 있는 문인과 학자들의 심금을 울렸던 것처럼, 자신의 깊은 내면의 감정을 끄집어낸 게 아닌가 생각하기 시작했다.

두변은 이후에 누군가 <광릉산>이 별로라는 소리를 하면 ‘너희들이 무슨 <광릉산>을 듣는다고. 그 수준이면 그냥 <십팔모(十八摸)>(<녹정기> 수록곡)나 들어!’라고 비꼬며 쏘아붙이기로 결심했다.

어쨌든 <광릉산>은 정말 좋은 곡이었고 매우 깊이가 있는 대단한 곡이었다. 이 곡이 별로라고 생각된다면, 듣는 사람의 수준이 낮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두변은 꿈속에서 이 곡을 얼마나 연주하고 연습했는지도 잊어버렸다.

아마 며칠이 지났거나 그 이상의 시간이 지났을 것이다.

두변은 이 한 곡을 몇천 번 넘게 연습하다 보니 손이 마비되어 감각을 느낄 수 없게 되었고, 나중에는 두 손으로 연주를 하는 게 아니라 영혼으로 연주하고 있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그 이후로도 얼마나 더 연주하고 연습했을까?

마침내 흰옷의 노인이 말했다.

“이 정도면 됐다. 내 수준의 절반에도 못 미치지만 여기까지가 네 한계인 거 같구나. 더 연습해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두변은 이 말이 칭찬인지 욕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선생님, 제가 이 곡을 연주하면 이길 수 있겠습니까?”

두변이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곡을 듣는 놈들이 귀가 먹지 않는 이상 분명 다들 깜짝 놀랄 것이다.”

두변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말씀을 들으니 안심이 됩니다.”

“난 이만 가볼 테니 나머지는 알아서 잘 마무리하거라.”

노인이 손을 한번 휘젓고는 두변의 꿈속에서 사라졌다.

얼굴에 차가운 바람이 느껴지고 두변은 잠에서 깼다.

날은 이미 밝아 있었고, 그는 아홉 시간이나 숙면을 취한 뒤였다.

두변은 일어나 세수를 하고 학원 입구로 가서 집합을 마친 후 남해 도장으로 출발할 때까지 기다리기 시작했다.

이때 학원 입구에서는 젊은 환관 넷이서 고개를 내밀고 까치발을 들며 무언가를 기대하는 눈빛으로 안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물론 두변이 아니라 마음속의 우상인 당엄이었다. 당엄을 숭배하기도 하지만, 차세대 엄당의 수장이 될 사람이니, 미리 잘 보이면 좋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은 당엄이 합류하면 이번 3대 학부 대회에서 충분히 이길 수 있었다. 그들은 당엄의 뒤에 서서 조연 역할을 맡을 뿐이지만,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는 현장에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많은 기대를 했다.

하지만 기다리던 당엄은 오지 않고 뜬금없이 두변이 왔다?

“두변? 네가 여길 왜 와? 여긴 네가 올 곳이 아니야.”

환관 무리 중 한 명이 말했다.

여기 환관 네 명은 5년 전에 이미 선출되었기 때문에 금기서화에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심지어 그들은 5년 동안 금기서화에 전념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배울 필요가 없고, 졸업 후에는 좋은 일자리로 배정될 예정이기에 현대 지구로 치자면, 기업 연계 위탁 학생 정도라고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금기서화에 너무 오랫동안 심취한 나머지 자신들 스스로를 고상한 사람들이라고 여기며 환관 학원의 다른 환관들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두변이 4년 반 동안 꼴찌 자리를 줄곧 지켜왔으니, 그들이 얼마나 무시했을지 안 봐도 눈에 선하지 않은가.

두변은 그들을 대충 한번 훑어보고 말했다.

“나도 3대 학부 대회에 참가해.”

“말도 안 돼! 우리 동료는 네가 아니라 당엄이야. 네깟놈이 뭘 얼마나 안다고 여길 와! 고쟁에 줄이 몇 있는지, 바둑돌이 총 몇 개 필요한지는 알고 있는 거냐?”

그중에 우두머리로 모이는 환관이 소리쳤다.

“그러게! 이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금기서화를 접해 본 적도 없는 놈이 환관 학원을 대표해 대회에 참가하겠다고?”

다른 환관이 옆에서 거들었다.

이 환관 넷은 자기네끼리는 서로 크고 작은 충돌이 있었지만, 다른 집단과의 충돌에 있어서는 비교적 단결이 잘 되었다. 4년 이상의 시간을 들여 각종 금기서화 등 기예를 익힌 자신들의 고상함을 두변과 같은 이가 더럽히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그들은 바로 두변을 혼내줄 생각이었으나, 그때 멀리서 걸어오는 흰옷의 우아한 공자를 발견했다.

바로 당엄이었다.

환관 넷이 두변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당엄에게 달려갔다.

“당엄 사형을 뵙습니다!”

“당엄 해원을 뵙습니다!”

“당 대사를 뵙습니다!”

“당 사부를 뵙습니다!”

누가 엄당의 일원이 아니랄까 봐 아부와 아첨에는 다들 일가견이 있지 않은가!

당엄은 거만하지만 친근함을 유지하며 고개를 숙여 답례를 했고, 환관 넷은 흥분한 나머지 얼굴까지 빨개졌다.

당엄의 고상하며 고귀한 모습을 보고 두변은 속으로 비아냥댔다.

‘네 모습을 보아하니 명문가 공자의 모습만 있고 엄당 일원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구나. 환관이 환관처럼 보이지도 않는데 감히 수장이 되겠다고?’

“당 사형, 여기 두변이 자기가 사형을 대신해 3대 학부 대회에 참가하겠다고 하니 가소롭기 그지없습니다.”

서생 환관 한 명이 기다렸다는 듯이 두변을 조롱하며 말했다.

그러자 뜻밖에 당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내가 참여하지 않기로 했으니, 이분이 바로 그…….”

당엄의 눈에는 두변이 전혀 존재감 없는 인물인 게 당연하니, 방금 들었음에도 두변이라는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 두변! 여기 있는 두변이 나를 대신해서 광서 환관 학원을 대표해 3대 학부 대회에 참가하게 될 거다.”

“그게 정말입니까?”

서생 환관 넷은 순간 화가 치밀어오른 나머지, 두변에게 주먹을 휘두를 뻔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저 두변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버러지입니다. 그런 두변이 무슨 자격으로 환관 학원을 대표해 우리랑 같이 대회에 참가한다는 말입니까?”

우두머리로 보이는 서생 환관이 소리쳤다.

“두변이 출전하는 건 학원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입니다. 제가 산장께 말씀드려 결정을 철회하시도록 해야겠습니다.”

“맞습니다. 이건 저희 문인들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저희들도 학자의 품격을 지켜야 하니 산장께 이 명령을 거두어주시라고 말씀드리는 게 좋겠습니다.”

이때 특이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이문회가 모습을 드러냈다.

“누가 내 결정을 바꾸고 싶어 하는 거지?”

서생 환관 넷은 즉시 땅바닥에 납작 엎드리며 벌벌 떨기 시작했다. 이문회에게 명을 거두어달라고 청하기는커녕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

이문회가 네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차마 말 못 할 실망감이 가득했다.

이 넷을 심혈을 기울여 육성했는데, 실력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올바른 인격 형성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구나!

그들도 엄당이라는 사실은 한평생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공부를 하고 문예를 익혔다고 학자를 자처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니, 이 얼마나 가소로운가?

전쟁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전우를 무시하고 적군을 부러워하는 건 배신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이문회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는 직설적인 성격이었다. 당엄을 바라보는 눈빛은 며칠 전 애지중지하던 모습과는 전혀 딴판으로 매우 차가웠다.

“두변, 이 네 명의 동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문회의 물음에 두변이 대답했다.

“기개와 절개를 찾아볼 수 없는 자들로, 공부를 한 만큼 시야가 넓어지긴커녕 편협해졌군요.”

“맞는 말이다. 잘 대답했다.”

그제야 당엄이 처음으로 두변을 제대로 쳐다봤으나, 그마저도 그저 짧은 눈길 한 번뿐이었다.

“학생 당엄, 이 산장을 뵙습니다.”

당엄이 예를 올렸다.

이문회가 당엄을 의자로 삼기를 거부한 이상 당엄도 광서 환관 학원으로 전학 올 필요가 없고 이문회의 학생도 아니었다.

“아직 돌아가지 않았구나. 광주까지는 길이 머니 얼른 출발해라.”

이문회가 냉담한 태도로 축객령을 내렸다.

당엄이 말했다.

“3대 학부 대회는 큰 시합이니만큼, 저도 구경하고 싶습니다.”

“알겠다.”

이문회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는 화려한 마차에 올라타 출발하자고 외쳤다.

서생 환관 넷은 그제야 바닥에서 일어나 마차에 올라탔고 두변도 그들을 뒤따랐다. 네 사람이 한 줄, 두변 혼자 맞은편에 한 줄, 서로가 대립하는 모양새로 앉는 것 자체가 서로 섞이지 않겠다는 뜻이 뚜렷했다.

당엄은 매우 멋있는 모습으로 준마를 몰며 외쳤다.

“가자!”

명령이 떨어지자 일행들도 남녕부의 남해 도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마차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대회가 시작되면 어떤 시합에도 참가할 생각하지 말고 그냥 가만히 있어. 괜히 우리 학원 이름에 먹칠하지 않게.”

서생 환관 한 명이 정적을 깨고 말했다.

두변은 그저 바보인 것마냥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내가 산장의 사람인 걸 알고도 그렇게 말하는 건가?”

이 말을 듣자 상대방의 안색이 갑자기 굳어졌다.

일전에 두변이 산장의 방패가 되어 대신 화살을 맞았을 때 산장은 두변을 향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었다. 때문에 다들 두변의 운명은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당엄을 대신해 두변이 대회에 참가하게 된 걸 보면, 두변이 터무니없는 말을 했다고 볼 수는 없었다.

방금 두변을 무안하게 하던 서생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두변에게 허리를 굽혀 사과했다. 애초에 자신의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면 환관이 되지도 않았을 테니, 엄당에서 이렇듯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은 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우두머리로 보이는 서생 환관이 그를 저지하며 말했다.

“우리 학자들은 기개와 절개가 있어야 해. 어찌 권세에 빌붙어 아부할 수 있겠나?”

매우 의리 있는 말이었고 정당하다 할 수 있으나, 왜 아까 이문회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까?

사실 이 서생 환관은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당엄이 없는 이번 3대 학부 대회는 질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면 이문회의 앞날은 어두워진다. 동창 만호의 직위를 지키지 못할 뿐 아니라 학원 산장에서도 물러나게 될 수도 있다. 이는 엄당에게 있어 권세를 잃고 치욕을 당하는 일이지 않은가. 전임 산장은 대회에서 패배해 학전 1,500묘를 빼앗기고 황릉을 지키는 일이나 하지 않았느냐 말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은 이문회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고 결론 내렸다. 자, 그럼 다른 쪽 줄을 서야 할 텐데, 그것이 바로 앞길이 창창한 당엄이었다. 그곳이야말로 진정한 금빛 대로이지 않은가.

우두머리로 보이는 서생 환관이 말했다.

“당엄이 없으니 우린 이길 수 없어. 아마 남은 학전 4,000묘도 지키지 못하게 될 테지. 산장께서 왜 이러시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긴 해. 아무래도 남녕부에 도착하면 우리가 산장께 결정을 철회해달라고 무릎 꿇고 비는 방법밖에 없겠어. 당엄 해원이 우리를 이끌고 이강 서원, 남해 도장에 가서 시합을 해야 한다고 말이야.”

당엄에게 잘 보이기 위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런 무리수를 두다니, 정말 대담하다고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남녕부는 계림에서 900리 정도 떨어진 곳이어서, 길을 아무리 재촉해도 사흘이 지나고 나서야 남녕부에 도착할 수 있다.

남녕부는 성도(省都) 행정부 소재지는 아니지만, 성 규모나 번화한 정도에 있어 계림부에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 광서에는 수많은 토사 세력이 있어 여러 차례 반란이 일어났기 때문에 광동부와 광서부의 총독부가 모두 남녕부에 주둔했었다가 몇십 년 전에야 광주부로 옮길 수 있었다.

남해 도장은 남녕성 서쪽에 위치하며, 만 묘에 달하는 엄청나게 큰 부지에 마장(馬場), 병영(兵營), 무기공장 등이 모든 것이 갖춰져 있었다. 도장이라고 불리지만 사실상 무학에 편향된 고대 직업 군사 학교라고 볼 수 있었다.

광서 사람들은 용맹스러운 경향이 많아서, 남해 도장에서 양성한 제자들은 하나같이 특출났다. 제국의 군사 상당수가 남해 도장 출신이며, 그 명성 또한 주변 성들의 무학 학원을 압도했기 때문에 다른 지역의 무장 집안들은 자신들의 자제를 이곳 남해 도장으로 보내기도 했다.

남해 도장은 광서 전체에서 가장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해가 저물어갈 때가 돼서야 이문회와 일행들은 남해 도장의 문 앞에 도착했다. 남해 도장의 부산장인 주표(朱彪)가 그들을 마중 나왔다.

“이문회 대인, 죄송하게 됐습니다. 저희 장주가 이강 서원의 구양담 산장을 마중 나가셨기에 제가 대신 모시게 되었습니다. 대접이 변변치 못하더라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표가 선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