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30화 (30/648)

제30장: 남해 도장의 최고 심사위원.

주표는 북방 군단의 부총병 출신으로, 전투 중에 등에 부상을 당한 후 물러나 남해 도장에서 부산장을 맡게 되었다. 그가 방금 말한 장주는 남해 도장의 산장인 축무애로, 광서의 총병관을 맡아 토사들의 반란을 제압하는 데 큰 공을 세웠고 경험도 풍부했으며 위상이 꽤나 높은 인물이었다.

지금 축무애가 이강 서원의 산장인 구양담을 맞이하러 가느라 이문회를 보러오지 않았다는 건, 이문회를 경시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문관과 무장 집단은 서로 갈등이 있긴 했지만, 엄당 세력에 맞서고자 하는 공통의 이익이 있기 때문이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이강 서원과 남해 도장이 서로 손잡고 환관 학원의 학전을 얼마나 많이 빼앗아 갔던가? 자그마치 6천 묘로, 은자로 치면 20만 냥의 가치가 아닌가.

“알겠으니 길을 인도해 주시게.”

이문회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남해 도장 부산장인 주표가 말했다.

“소관이 이 대인을 위해 연회를 마련해 놓았으니 같이 가시지요.”

“괜찮으니 우리가 머물 곳으로 데려다주시게.”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주표도 애초에 연회에 초대할 생각이 별로 없었던지라, 못 이기는 체 대답했다.

이문회 일행은 남해 도장의 한 정원에 자리를 잡았다. 이 정원은 면적이 몇십 묘에 달하고 집이 백여 채여서 수백 명의 인원을 수용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당엄은 광서 환관 학원 사람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엄당의 일원이므로, 이들과 같이 묵기로 했다.

짐을 풀고 나니 환관 몇 명이 이문회의 식사를 준비했다.

이문회가 목욕을 마친 후 옷을 갈아입은 상태로 편하게 족욕을 하고 있는데, 동창 무사 하나가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대인, 장양명 선생이 뵙고자 합니다.”

이문회는 즉시 몸을 일으켜 발을 닦지도 않고 목극(木屐: 나막신)을 급히 신으며 그를 맞이하러 나갔다. 이건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장양명 선생을 존경하기에 나온 행동이었다.

장양명은 이번 3대 학부 대회의 최고 심사위원이었다. 그는 명성이 천하에 알려진 대사였으며 진정한 대학자였다. 금 연주와 바둑, 서예, 회화 등의 각종 금기서화에 정통했으며 학술 저서로 온 대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각국에서 수많은 추종자가 그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왔다.

이뿐만 아니라 그는 백 년에 한 번 나올 법한 삼원급제(三元及第)에 성공한 사람으로 해원, 회원, 장원을 연이어 이뤄냈다. 그의 본적은 광서였지만, 강소(江蘇)에까지 가서 과거시험에 참가했었다. 강소는 시험 난도가 매우 높아서, 과거시험의 지옥이라고도 불리는 곳이었다.

장양명의 인생의 전반부는 그야말로 전설이라고도 말할 수 있어서, 서른이 되기도 전에 대녕 왕조의 4품 고관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인생의 후반부는 비극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급진적으로 개혁을 이루려 하다가 문관 집단과 무장 집단의 눈 밖에 나면서 관료사회에서 곤란한 입장이 되었고, 결국 마흔에 관료직에서 물러나서 본적인 광서로 돌아와 은거하며 학문에 전념했다.

흥미로운 점은 장양명이 관직에 있을 때는 문관 집단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공격하면서 그를 악귀로 폄훼했으며 심지어 자객으로 그를 암살하려고 했지만, 그가 관직을 물러나고 나서는 그를 성인으로 떠받들며 사대부 학자의 모범 내지는 성인(聖人)으로까지 추앙한다는 점이었다.

장양명의 덕망과 훌륭한 인품 덕분에, 모든 3대 학부 대회의 승패를 그가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에 대해 어느 쪽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장 제주(祭酒)를 뵙습니다.”

이문회가 허리를 굽히며 예를 올렸다.

“아닐세. 이러지 말게.”

장양명이 이문회를 일으키며 말을 이었다.

“나는 이제 평범한 사람일 뿐이니 자네가 대례를 갖출 필요는 없네.”

이문회가 한 번 더 허리를 숙이며 절을 했다.

“저 이문회의 가슴속에 양명 선생은 언제나 등불로 남아있으며, 제 평생의 스승이십니다.”

장양명은 이문회를 일으키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도 나이가 들어 머리까지 하얘지고 있군. 자네가 북명검파의 자객들로부터 나를 구해줄 때가 아마 서른이 안 되었을 때였지.”

북명검파는 문관 집단의 가장 큰 무도 협력자 중의 하나로, 모든 성에는 그들이 주관하는 사업이 있어 그 부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상당했다. 장양명이 태주(泰州) 지부를 맡고 처음으로 강행한 임무가 바로 5천여 묘나 되는 북명검파의 불법 점유토지를 수복하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북명검파는 자객을 보내 장양명을 제거하려고 했는데, 이때 이문회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장양명은 그날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이번에 당엄이라는 인재가 합류했으니 승리는 따놓은 당상이겠군.”

장양명이 웃으며 말했다.

“차 좀 드시지요.”

이문회가 장양명에게 차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당엄은 이번 3대 학부 대회에 참가하지 않습니다.”

장양명이 놀라 물었다.

“어째서인가?”

“길을 떠나기 전에 그쪽에서 당엄을 양자로 삼으라고 제안했습니다. 그에게 엄당을 이어받게 만들 생각인 거 같아 이를 거절했습니다.”

장양명이 미간을 찌푸렸다.

“형세가 이렇게 불리한데도 엄당 내부에서는 아직도 소모전을 벌이고 있나 보군.”

“어느 세대, 어느 왕조에나 늘 이러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번에 이기기는 힘들겠군. 학전 1,500묘를 잃는 것보다 문회 자네 앞길이 막히는 게 더 큰 문제 아니겠나.”

“어쩔 수 없는 운명인가 봅니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해서는 마음의 준비를 다 해놨습니다.”

장양명이 한동안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당엄이 아무런 조건 없이 자네를 도와주도록 내가 설득해보겠네. 그도 엄당의 일원이니, 집단의 이익에 무조건 복종해야지 않겠나.”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이문회는 거절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이미 예순이 넘은 장양명이었지만, 그는 이토록 순진하고 사람을 잘 믿었다. 이문회는 차마 그의 호의를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여봐라. 가서 당엄 해원을 불러오거라.”

이문회가 명령했다.

얼마 후에 당엄이 도착했다.

그런데 당엄과 함께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서생 환관 넷도 따라왔다. 그들은 이문회 앞에 꿇어앉아 머리를 조아리며 일제히 입을 열었다.

“학원의 이익, 그리고 엄당의 이익을 위해 명령을 거두어주시고 두변의 대회 참가 자격을 박탈해 주십시오. 산장, 당엄 해원이 저희를 이끌고 참가해야 우승할 수 있고, 그래야 당엄도 환관 학원의 존엄과 이익을 지킬 수 있습니다.”

이 환관 넷은 너무 공부만 하더니 머리가 이상해져 대담해지다 못해 장양명이 여기 있는 걸 이용해 이문회를 압박하고 있었다.

지금 이문회가 느끼는 분노를 어떤 말로 표현할 수가 있을까.

이문회는 대외적으로는 잔인하고 매정했지만, 환관 학원 내에서는 줄곧 공정하다 못해 너그러웠는데 설마 여기 온 환관들이 이문회의 그 너그러움 때문에 경외심을 잊어버렸단 말인가?

이 환관들이 머리가 어떻게 되었거나, 아니면 이문회에 대한 경외심을 잃었거나, 그것도 아니면 이문회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모르는 건 아닐까.

그것도 아니면 이문회가 학원 산장을 너무 오래 맡아 사람들이 그를 서생으로 착각해서, 그의 주요 신분이 동창의 만호라는 것을 잊어버렸을 가능성도 있었다.

여기 환관들이 생각보다 더 영악하다면, 이문회가 곧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알고 벌써부터 당엄에게 아부를 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아직 떠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없는 사람 취급한다라!

분노에 휩싸인 이문회는 마음속으로 처량함을 느꼈다.

이게 엄당의 일원이란 말인가? 이들이 내가 보호하고 지켜왔던 가엾은 이들의 본 모습인가?

그는 재빨리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처럼 그들에게 아무런 분노도 표출하지 않았다. 서생 환관 넷은 모든 기운을 쏟아부어 말을 마친 것처럼 말을 끝낸 후에는 무릎을 꿇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당엄이 장양명에게 허리 숙여 예를 올렸다.

“양명 선생을 뵙습니다.”

대학자 장양명이 대답했다.

“당엄, 나는 자네가 스스로 거세하고 엄당에 들어온 것에 대한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그 행동을 매우 높게 사고 있네.”

장양명은 순진한 구석이 없지 않아서, 학문에 조예가 깊었음에도 엄당과 무장에 대해서 어떠한 편견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에게는 옳고 그름만 있지, 신분이 높거나 낮든, 고귀하든 천하든, 그런 것을 구분하지 않았다.

당엄이 다시 허리를 숙여 말했다.

“양명 선생께서 과한 평가를 해주시니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네가 엄당에 들어온 이상 득실을 따지지 말고 한마음 한뜻으로 제국, 그리고 엄당의 이익을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네가 아무런 조건 없이 광서 환관 학원을 대표해서 이번 대회에 참가했으면 하는구나. 엄당의 존엄을 바로 세울 수 있게 말이다.”

장양명이 순진하다는 소리는 들었으나 이런 요구를 꺼낼 정도로 순진한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당엄은 순간 안색이 바로 변했다.

당엄이 곧바로 단호하게 대답했다.

“양명 선생, 죄송합니다. 이번 일은 중요한 사항이기 때문에 저 혼자 결정할 수가 없으니 산장에게 보고를 하고 허락을 받아야만 참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장양명은 명색이 세상에 이름을 떨친 대학자이며 신화적 인물로 칭송받는 자신의 요구를 당엄이 이토록 단호하게 거절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가 말을 덧붙이려 하자, 이문회가 이를 제지했다.

“알겠다. 당엄은 이제 돌아가도록 해라.”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당엄이 대답을 하고 물러났다.

당엄이 떠난 후 장양명은 매우 낙심한 표정을 지으며 자조했다.

“사람들이 말로만 나를 칭송했지, 실상은 전혀 아니었군. 사람들은 나를 위패로 여기고 있었네. 어떤 말도 해서는 안 되는 위패 말이야.”

장양명의 표정은 더없이 처량했다.

이문회는 그를 위로하지 않고 그저 차를 다시 올렸다.

“선생, 차 좀 드시지요.”

이어서 이문회는 바닥에 엎드려 있는 서생 환관 넷을 보며 말했다.

“아직도 하고 싶은 말이 남아있는 것이냐?”

우두머리로 보이는 서생 환관이 용기를 끌어모아 말했다.

“학원의 이익과 엄당의 존엄이 걸린 문제인 만큼 당엄 해원이 어떤 요구를 제시했든 산장께서는 긍정적으로 검토해 주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너희들은 두변과 나란히 출전하는 게 싫은 것이냐?”

이 질문을 들은 서생 환관 넷은 겁이 나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용기 내어 대답했다.

“몇 년 동안 줄곧 꼴찌만 해온 두변은 별 쓸모가 없습니다. 두변이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것 자체가 저희의 존엄을 땅에 떨어뜨리는 겁니다. 두변이 산장을 위해 화살을 막아 방패가 되어준 적이 있다는 건 알지만,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해 주셔야 합니다.”

이 서생 환관은 이미 도박을 걸고 있었다. 책에서도 간언하다가 군주에게 중용되는 사례가 워낙에 많지 않은가. 이문회의 귀에 거슬릴지라도 윗사람에게 간언하는, 그런 위대한 역할을 맡고 싶었다.

그런데 이문회가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이들이 진심 어린 간언을 하고 있는가? 라고 물으면 답은 전혀 아니다, 일 것이다. 저들은 그저 어떻게든 기회를 잡아보려 했으며 당엄에게 잘 보이려는 수작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이문회의 비위까지 건드리고 있었다.

“너희들이 두변과 같이 출전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너희들이 물러나라. 두변 혼자서 환관 학원을 대표해 3대 학부 대회에 참가하도록 해야겠다. 너희들에 대한 처벌은 학원에 돌아간 후 다시 생각해보도록 하겠다.”

이문회가 단호하게 말했다.

환관 넷의 얼굴빛이 창백해지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지만 이문회는 환관 넷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동창 무사들을 시켜 그들을 끌어냈다.

옆에 있던 장양명이 이문회의 말에 조금 놀랐다.

“문회, 자네 너무 충동적이네. 당엄이 참가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승산이 희박할 텐데, 저들까지 내쫓는다면 아예 가망이 없어지는 게 아닌가.”

“애초에 이길 수 있다는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재능이 있다고 한들 한 사람이 금기서화 각 항목에 모두 뛰어나긴 불가능해. 이강 서원과 남해 도장에는 수많은 명문가 자제들과 각종 금기서화의 고수가 운집해있는데 한 사람으로 저들 모두를 상대하려는 건가. 그 두변이라는 아이는 도대체 어떤 애인가?”

“제 의자이자 제 후계자입니다. 하지만 학원에서 아무런 교육도 받지 않았으니 이런 금기서화에는 그다지 조예가 깊지 않을 겁니다. 며칠 전에 갑작스럽게 두변에게 이번 대회에 참가하라고 한 것은 단지 두변의 견문을 넓히기 위해서입니다. 그 아인 학원에서 금기서화를 배운 적이 없습니다.”

이번에는 장양명이 크게 당황할 차례였다. 그는 잠시 후 겨우 입을 열었다.

“문회, 자네와 내가 사적으로 친분이 두텁더라도 나는 이번 대회에 절대 공정하게 심사할 걸세. 혹시라도 내가 두변이라는 아이에 대해 편파적인 평가를 내릴 것이라 기대는 말게.”

“두변이 와서 많이 보고 느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두변에게 아무런 기대도 하고 있지 않으니까요. 저는 이미 동창 만호 직을 내려놓을 준비를 마쳤고 전말서도 써놨습니다. 게다가 두변은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 않으니, 선생께서 두변의 편의를 봐주신다고 해도 이길 가능성은 없습니다.”

장양명은 이문회를 잠시 바라보더니 말했다.

“자네는 아직도 이토록 고집스럽군. 나도 이번을 마지막으로 더는 최고 심사위원 역할을 맡지 않을 걸세. 이후로는 은둔하며 그 누구도 만나지 않고 또 상대하지도 않을 생각이야. 그저 그들의 바람대로 분수를 지키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는 위패나 되어야겠지.”

장양명이 몸을 일으키고는 휘청거리며 문 앞에 도착했을 때 다시 고개를 돌렸다.

“문회, 이 세상이 내겐 너무 벅차서 여기서 그만하려고 하지만, 자네는 아직 젊으니 계속해서 이 고난들을 이겨내야 할 것이야. 자네가 포기한다면 이 세상은 간인(奸人)들로 가득 찰 것이며 폐하의 곁에 그리고 이 제국에는 인재가 한 명도 남아있지 않게 돼.”

“네, 알겠습니다.”

이문회가 허리를 숙여 절했다.

장양명이 떠난 후에도 이문회의 가슴속은 여전히 흥분과 비장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두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가서 두변을 불러오거라.”

“알겠습니다.”

이문희의 명에 동창의 무사가 대답했다.

하지만 이문회는 곧 생각을 바꿨다.

“아니다. 시간도 늦었고 며칠 동안 긴 여정을 하느라 피곤했을 테니 이미 잠들었을 수도 있겠구나. 그냥 쉬게 내버려 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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