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장: 홀로 싸워야 하는 두변
다음날, 남해 도장의 대청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렸으나 분위기는 여전히 장엄하고 엄숙했다.
남녕부 전체에서 제법 잘 알려지고 내로라하는 인물들과 남해 도장의 학생들이 모두 이번 3대 학부 대회를 보러 왔기 때문에, 자연히 인파가 북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분위기가 장엄하고 엄숙한 이유는, 완전무장한 병사 천여 명이 대청 안팎을 굳게 지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3년에 한 번 열리는 3대 학부 대회는 매우 중요한 행사인 만큼, 3대 학부 학생들에게는 더욱 큰 의미를 갖게 된다. 이곳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만 하면 과거나 무과(武舉)를 치를 때 많은 이점을 누리게 된다.
물론 이것 외에도 또 하나의 볼거리가 있으니, 그건 바로 환관 학원이 얼마나 처참하게 무너지고 완패하는가였다.
댕! 징 소리가 울려 퍼지고 진행을 맡은 관리가 크게 외쳤다.
“3대 학부의 참가 인원들이 입장하겠습니다. 먼저 이강 서원 학생 다섯 명입니다! 이강 서원의 우두머리는 우리 광서성에서 제일가는 인재인 최부(崔孚), 즉 최 공자입니다. 명문가 출신인 최 공자는 어려서부터 각종 금기서화를 접하며 자랐고 오랜 기간 영백애 대사 밑에서 서예와 회화를 익혔습니다. 태후의 생신 때 최 공자의 <천추만수>라는 그림이 우리 광서성 순무를 대표하는 축수(祝壽) 선물로 태후께 전달되었는데, 태후께서이 그림을 높이 평가해 주신 덕에 지금까지도 자녕전에 걸려 있습니다.”
순식간에 대청 전체에서 열렬한 박수 소리가 쏟아졌다.
최부는 광서성 모든 학생들의 우상이며, 그가 누리는 지위는 당엄이 광동 환관 학원에서 누리는 것과 비슷했다.
하지만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던가? 이 최부라는 자는 바로 최병정의 남동생으로, 두변을 죽이려고 한 최씨 가문의 적자였다.
최부는 금기서화에 조예가 상당히 깊었고 무학 수준도 나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꿈의 세계’라는 기능이 없었다면 두변의 수준으로는 열 몇 명이 와도 최부 한 명을 당해내기 힘들었다. 아마 당엄만이 그와 비견할 만할 것이다.
특히 서예와 회화에 있어서는 당엄조차 최부를 당해낼 수가 없었고, 게다가 최부는 작년에 광서성 향시에서 해원까지 했기 때문에 일반인이 범접할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이강 서원에는 서예와 회화에서 월등한 실력을 지닌 최부 말고도 한 명의 천재가 또 있었는데 그는 바로 최부의 뒤에 서 있는 영우였다. 영우는 영백애 대사의 아들로, 어렸을 때부터 음률에 남다른 두각을 나타내었고 세 살부터 금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영우의 선생은 바로 북명검파의 금성(琴聖) 고령(古靈)으로, 그들에게 금은 기예가 아니라 일종의 무공이었다.
몇 년 전 양주에서 최부가 혼자 열 명을 상대했는데, 금 연주로 십대(十大) 명기(名妓)를 낙화유수처럼 패배시킨 적이 있었다.
이강 서원의 학생 다섯 명이 모두 입장을 마치고는 군중에게 허리 숙여 인사한 후 자리에 앉았다.
“뒤이어 남해후부(南海侯府)의 장혁기 공자가 이끄는 남해 도장의 젊은 준걸들이 입장하겠습니다. 장 공자는 병법과 궁술에 능할 뿐 아니라 상당한 바둑 실력을 갖추고 있어 열여덟 살이 된 이후로는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다시 한번 쏟아졌다.
남해 도장 선수 다섯 명도 입장을 마치고 인사를 한 후 자리에 앉았다.
진행을 맡은 환관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제 마지막입니다. 광서 환관 학원의 선수가 입장하겠습니다.”
대청의 문발 뒤에서 이문회가 두변의 어깨를 두드렸다.
“우리는 승산이 없으니 너무 승패에 연연하지 마라. 너를 단련시키기 위해 데려온 것이니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게 어떤 느낌인지 제대로 느끼기만 해라.”
두변, 이제 문을 열고 나가라!
수천 명의 시선이 두변을 향했다.
환관이 소리높여 외쳤다.
“환관 학원에서는 이번 대회에 두변이라는 단 한 명의 선수만 참가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것들을 이뤄 왔는지 자세히 모르지만, 시험에서 5년 연속 꼴찌를 했으니 광서 환관 학원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는 건 확실하겠군요.”
대청에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곧 야유와 조롱이 쏟아졌다.
원래 대회에 참가하려 했으나 제명된 환관 학생 넷도 관중석에 앉아 열심히 두변을 비웃었다. 당엄도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미간을 찌푸리며 두변에 대한 반감과 멸시를 숨기지 않았다.
진행자가 혼자 멀뚱히 서 있는 두변을 보며 말했다.
“올해 환관 학원의 기권 방식이 조금 특별하다고 볼 수 있겠군요.”
관중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좋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3대 학부 대회를 정식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첫 번째 종목은 금 연주입니다. 시합에 참여하는 학생 중 최고점을 얻은 학생의 점수가 각 학부의 점수로 기록됩니다. 첫 번째 연주자는 남해 도장의 소별리입니다.”
소별리는 남녕 소씨 가문의 적자로 천재 검객이었으나 3년 전에 자신의 검술 실력이 정체되고 있음을 깨닫고는, 검을 내려놓고 북명검파로 들어가 금성 고령의 문하생으로 2년간 금 연주를 배웠는데 다시 돌아온 후 검술이 크게 향상되었다고 한다.
소별리가 금을 내려놓고 연주를 시작했다!
딩!
첫 음이 울리자 사람들의 심장도 따라 울렸다.
최고 심사위원인 장양명은 원래 눈을 감고 있다가, 악기 소리가 아니라 검기(劍氣)가 들리는 탓에 눈을 번쩍 뜨고 연주를 지켜봤다.
금의 현 소리 하나하나가 심장을 후벼 파더니, 검으로 변해 머릿속을 꿰뚫는 기분이었다.
곡은 <추풍낙엽>이었다.
소별리의 연주에, 대청에 가을바람이 불면서 관중들이 조용해졌다. 모든 사람이 금 소리에 빨려들어 갔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소름이 돋았다.
매우 공격적인 금 연주는 그 수준도 상당히 높아 듣는 이를 놀라게 했다.
5분 동안 이어졌던 소별리의 연주가 끝나고, 대청 안은 여전히 고요한 가운데 한참이 지난 뒤에야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다음은 심사와 채점이 이어졌다.
이번 심사와 채점을 맡은 심사위원들은 총 네 명으로 대학자 장양명, 광서 순무 낙문, 봉오후(鳳梧侯) 유무환, 전 태자 소부(少傅)이자 전 내각 대학사인 계동앙이 그들이었다. 이 넷은 모두 덕망이 높은 인물들이어서 이들을 매수하기란 사실 불가능에 가까웠다.
봉오후 유무환이 말했다.
“내가 금을 연주한 지 30년이 되었는데, 소별리의 3년만도 못하는군. 너무 큰 격차에 슬프면서도 화가 날 지경이야.”
광서 순무 낙문이 말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소별리의 가락을 듣고 있자면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군요. 연주가 끝났는데도 가락들이 내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느낌입니다. 놀랄 만한 실력을 보유하고 있군요.”
전 태자 소부 계동앙이 말했다.
“정말 좋습니다. 궁전의 금 악사들보다 나은 실력이군요.”
대학자 장양명이 물 한 모금 마시고 마지막으로 심사를 했다.
“소별리 연주를 듣고 있으니 숨을 쉴 수가 없을뿐더러 목까지 타는 느낌이군. 이렇게 살기가 느껴지는 연주를 좋아하진 않지만, 소별리의 연주는 정말 뛰어나다고 할 수밖에 없군.”
이어서 네 명의 심사원들이 점수를 매겼다.
장양명 93점, 유무환 95점, 계동앙 95점, 낙문 95점으로 평균을 낸 소별리의 최종 점수는 94.5점이었다.
관중들이 화들짝 놀랐다.
지난 3대 학부 대회 금 연주 종목에서 가장 높은 점수가 92점인 걸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점수였기 때문이다.
더 놀랄 만한 것은 소별리가 금성 고령에게 3년 동안 배운 게 고작이기에, 오늘의 연주가 그의 최대 능력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관건은 소별리가 아직 최강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더 강력한 고수는 이강 서원의 영우로, 그는 금성 고령의 입문 제자로서 연주에 대한 조예가 매우 깊었다. 영우는 금 연주로, 최부는 서예와 회화로, 각각 이강 서원을 대표하는 쌍검합벽(雙劒合璧)이었고 둘 다 가히 무적이라 할 만했다.
이 명문 자제들이 하나같이 괴물 같은 천재들이다 보니, 환관 학원이 매번 지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금 연주 경연은 계속 이어졌고, 이강 서원과 남해 도장의 학생들도 차례대로 입장했다.
소별리의 놀라운 연주로 경연의 시작을 알렸으나 이어지는 연주들은 조금 싱거웠다.
연주자들의 실력은 두변보다 월등히 뛰어났으며 심지어 현대 지구의 기준으로 봐도 상당한 실력자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까다로운 심사 탓에, 뒤이어 연주한 여덟 명의 연주자들은 87점을 최고점으로 남기고 물러났다.
다들 소별리보다 높은 수준을 갖추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은, 진정한 실력자 영우의 연주만을 기다렸고, 드디어 그가 연주할 차례가 되었다.
고수 중의 고수이자 금성 고령의 직계 계승자인 영우는 일찍이 차세대 금성(琴聖)으로 불려왔다.
영우 역시 명문가의 자제로 북방 제일 학술 대사 영백애의 적자였다. 대녕 왕조에는 남장북영(南張北寧)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바로 종사(宗師)급 대학자인 장양명과 영백애 두 명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영우가 금 앞으로 다가서자 관중들은 혹시 한 음이라도 놓치게 될까 싶어 숨을 죽이기 시작했다.
영우의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현을 가볍게 튕겨내자 아름다운 음이 사방으로 울려 퍼져나갔다. 역시 대가답게 영우는 단 한 음으로 모든 관중을 사로잡았다.
금은 매우 다루기가 어려운 악기로, 음의 높낮이와 길이를 연주자가 직접 제어해야 한다. 영우는 이런 금의 단 다섯 음만으로 듣는 이들의 온몸에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
이어서 관중들은 이 기막힌 연주를 마음껏 감상했다.
영우가 연주한 곡은 모두에게 익숙한 <강월(江月)>로, 500년 전에 금의 대가인 이옥년(李玉年)이 만들었으며 지금까지도 고전의 반열에 올라있는 아름다운 곡이었다.
관중들은 이 곡을 듣고 나서야 연주가 주는 여운과 감동, 그리고 곡에 몰입한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되었다고 할 만했다. 음악을 얼마나 이해하는지와는 별개로 모든 사람은 연주에 흠뻑 빠져 버렸다.
양주에 있을 때 영우도 십대 명기들과의 경연에서 모두 이긴 적이 있었는데, 영우는 소별리가 연주를 하면서 무공과 현기(玄氣)를 같이 뿜어낸 것과는 달리 오로지 순수하게 음악으로만 승부를 했었다.
시간이 흐르기를 멈춘 것일까. 연주 소리에 몸을 맡기니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도 같았다.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는 것일까. 아름다운 시간은 항상 너무 빨리 지나가곤 하니까.
두변도 연주에 흠뻑 빠져들고 말았다.
적어도 현대 지구에는 영우에 필적한 만한 사람을 찾긴 힘들지 않을까 싶었다.
반각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영우의 연주도 끝났다.
사람들은 여전히 조용했다. 곡의 여운을 되새기기 위해서였는지, 꼬박 3분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당엄도 금 연주에 있어서는 영우에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그도 존경의 의미를 담아 그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네 명의 심사위원이 점수를 매기기 시작했다.
봉오후 유무환이 말했다.
“나보다 수준이 너무 높아서 평가할 수가 없네. 99점! 1점을 왜 깎았느냐고 묻는다면, 흠, 왜인진 모르겠는데 그냥 1점을 깎아야 하는 느낌이 든단 말이지.”
광서 순무 낙문이 말했다.
“이 한 곡만으로도 이번 3대 학부 대회가 역사에 길이 남게 될 것입니다. 이 곡은 영우의 창작곡이 아니라 이옥년 선생의 작품이라서 만점에서 1점을 깎은 99점을 주겠습니다.”
전 태자 소부 계동앙이 말했다.
“10년 정도 지나면 새로운 금성이 탄생할지도 모르겠군요. 저도 영우의 창작곡이 아니라는 이유로 1점을 깎아 99점을 주겠습니다.”
최고 심사위원인 장양명이 말했다.
“이 세상에는 정말 천재가 존재하지. 적어도 이 금 연주에서는 영우 자네와 비견할 수 있는 사람을 찾지 못할 게야. 나도 창작곡이 아니라는 이유로 1점을 깎아서 99점을 주겠네.”
이강 서원의 영우는 금 연주에서 최고점인 99점을 받아 3대 학부 대회의 신기록을 세웠고, 모두가 이 기록은 절대 깨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영우는 관중들에게 인사를 한 후 무대에서 내려왔다.
이어서 광서 환관 학원의 두변이 연주할 차례가 되었다.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하면서 굳이 연주를 들을 필요 있냐는 듯 짜증스러운 표정을 드러냈다. 방금 천상의 소리를 들었는데, 시끄러운 소리를 굳이 왜 들어야 하냐는 것이다. 게다가 환관 학원에서 예술의 대가를 길러낸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 않은가. 이전의 대회 시합에서 엄당 학생들은 저속한 곡들을 선곡했었다. 그래야 그나마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도 하고 최소한의 점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지난 10년간 엄당 학생들은 금 연주 경연에서 80점을 넘어본 적이 없었다.
방금 영우의 환상적인 연주를 듣고 느꼈던 여운이 소음과 같은 연주에 거짓말처럼 사라질 것이 두려운 나머지, 사람들은 두변이 금 앞에 앉자 여운을 조금이라도 오래 간직하기 위해 귀를 막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