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35화 (35/648)

제35장: 천고 제일 서예의 위력

최부의 서예 실력은 매우 뛰어났으나 그의 모든 것은 결국 선현들로부터 옛것을 배운 것일 뿐이다. 하지만 두변의 서예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기초가 조금은 투박했지만 이미 자신만의 기풍을 확실히 갖춘 작품이었다.

물론 두변이 몇 군데 고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은 최고의 걸작이었고 글자의 아름다움이 모든 사람의 뇌리에 깊게 각인되었다.

글자 하나하나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이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서예 작품은 이 세계의 어느 선현의 것도 모방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누구든 이 작품을 보는 순간 그대로 숨이 막힐 지경일 텐데, 문인 사대부의 눈에 이 작품은 ‘절세가인’이라 할 수 있었다. 아직은 조금 앳되지만 엄청난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연지나 분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미인과는 전혀 차원이 달랐다.

두 눈이 제대로 달려 있는 사대부들이라면 이 작품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 작품을 보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면 맹인이거나 아니면 다른 속셈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아니겠는가.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작품인데다 누구를 모방한 것도 아닌 작품이니, 두변이 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두변이라는 자는, 정말 요괴나 마찬가지구나!

자아 세계에 빠진 두변은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고 순식간에 선지 위에 <난정집서> 400여 글자를 빼곡히 써냈다.

글을 다 쓴 두변은 책상 앞에 서서 작품을 즐기며 자부심을 감추지 못했다.

모사이긴 했으나 상당히 좋은 작품을 써냈고, 꿈속 세계에서 연습했던 것보다 훨씬 원본과 비슷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내공이 부족해서 그 운치를 잘 살리지 못했다는 것인데, 이는 상당한 시간을 들여 연습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리라.

이 같은 단점이 있었음에도 두변의 작품은 이미 현장을 압도했다.

광서 제일 인재인 최부는 원래 서예 수준이 상당히 높아서 그가 쓴 글들은 모두 감탄을 자아낼 정도인데, 그가 배운 필법은 오백 년 전의 서예 대가 안박(顏駁)의 것으로, 줄여서 안체(顏體)라고 불리는 필법이었다.

만약 두변의 <난정집서>가 아니었다면 최부의 서예 작품이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았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변의 작품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상 최부뿐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의 작품은 한없이 초라해지게 되었다.

두변은 홀로 외로이 싸우고 있는 게 아니라, 그의 뒤에는 몇천 년의 역사 문명이 함께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최부는 어린 나이에 출세한 탓인지, 자신의 서예 실력에 자부심도 강하고 자신을 표현하고 드러내려는 욕구도 강했다. 그는 어느 누구도 경쟁상대로 여기지 않았고 오직 자신만이 주연이며 타인들은 다 조연이라고 생각했다.

최부는 두변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솔직히 말하면 최부는 두변과의 서예 대결을 자기 스스로 체면을 깎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나 최부의 유일한 상대는 바로 나 자신이야! 모두 똑똑히 봐둬. 이게 서예고, 이게 인재다!’

‘내가 눈이 등 뒤에 달린 건 아니지만, 모두 나를 지켜보면서 놀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지!’

‘모든 젊은 남자들은 나를 질투하고 여자들은 나를 사모할 테니까. 어른들은 나를 아끼면서도 왜 내가 자기 집 자식으로 태어나지 않았는지 매우 아쉬워하겠지!’

이 대사들은 최부의 내면에서 진심으로 우러나온 독백이었다.

글을 다 쓴 최부는 가장 완벽한 자세로 붓을 내려놓고 모든 사람의 박수와 갈채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모든 사람이 지켜보고 있는 건 자신이 아니라 두변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두변의 작품을!

최부의 오만한 눈빛이 두변의 <난정집서>를 훑는 순간, 그는 머리카락이 곤두서며 등 뒤가 오싹했다.

‘이런 젠장. 두변 이 새끼가!’

최부도 서예 실력이 상당한 자라서, 두변의 <난정집서>가 얼마나 놀라운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기존에 없는 완전히 새로운 서예 작품은 그 누구를 따라하지도, 모방하지도 않은 온전히 자신만의 독특한 계파를 세웠다 할 수 있었다.

<난정집서>는 두변이 일전에 연주한 <광릉산>보다 더 큰 충격을 가져다준 무시무시한 작품이었다. 작품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마력에 사람들은 모두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줄곧 주연 역할을 맡아오던 최부는, 이 순간 조연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때 더 견디기 힘든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당엄이었다. 그는 이문회의 길을 막고 장약죽을 높은 자리에 앉히기 위해 시합 전날 출전을 포기했었다. 그런데 두변이 자신이 원래 맡아야 했던 역할을 본인보다 더 잘하고 있다는 사실에 오히려 놀라고 말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거지?

줄곧 꼴찌만 해왔다던 놈이 어떻게 이렇게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거지?

곧이어 심사할 시간이 되었다.

구양담은 자신의 지위가 계동앙과 낙문보다 낮음에도 매서운 눈초리로 그들을 쳐다봤다. 사실, 당파의 이익이 제일 중요하니, 누구도 구양담의 태도를 나무랄 수 없었다. 계동앙과 낙문으로서는 부정행위에 가담해 최부를 서예 시합에서 우승시켜주기로 합의를 봤으니, 판정에서 어제저녁의 약속을 지켜야 했다.

하지만 전 태자 소부 계동앙과 광서 순무 낙문 두 사람 중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못했다.

결과가 막상막하이거나 두변이 다소 우위를 점한 상황이라면 잘못된 점을 파고들어 두변의 점수를 깎을 수 있었지만, 두변이 써낸 것은 새로운 기풍을 창조해낸 서예의 경전과도 같은 작품으로, 역사에 오래 기록될 것이 분명했다. 비록 부족한 부분이 있어 보완해야 할 것이지만 엄청난 작품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었다.

그러니 오늘 <난정집서>를 부정하는 사람은 역사에 길이길이 오명으로 기록될 것이 뻔하니, 낙문과 계동앙 모두 차마 나설 수 없었다.

갑자기 나타난 환관놈이 요괴마냥 사람을 괴롭히는구나!

결국 계동앙은 전 태자 소부로서 아예 두 눈을 감고 먼저 입을 열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고, 광서 순무 낙문이 어쩔 수 없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게 어디서 온 마물이란 말이냐? 이토록 대단하다니!’

낙문은 속으로 탄식했으나, 문관 집단에 대한 배신으로 몰리지 않으려면 두변을 공격해야만 했다.

이문회란 놈은 공평무사에 고집불통이며 그 수법도 악랄한 인물이니, 이런 그가 동창에 들어간다면 낙문을 포함한 문관 집단은 모두 피투성이가 될 게 분명했다. 그러니 반드시 그를 찍어내려야 했다.

낙문이 물었다.

“두변, 일전에 자네가 연주한 <광릉산>은 자네가 작곡한 곡인가? 아니면 우연히 발견한 고보(古譜)인가?”

눈치 빠른 두변은 낙문이 이런 질문을 하는 의도를 단번에 파악했다.

“우연히 발견한 고보입니다.”

두변은 <광릉산>이 자신이 만든 곡이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믿어주는 이가 없을뿐더러 자신이 웃음거리가 될 수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 곡에는 은둔과 자신의 무력함, 그리고 고독 등의 감정이 녹아들어 있었고,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보다 더 큰 슬픔을 노래하고 있었기 때문에 두변과 같은 어린 것들이 만들 수 있는 곡이 아니었다.

“그럼 <난정집서>도 자네가 어디선가 우연히 발견한 작품인가? 그걸 오랫동안 모사해온 것이고?”

두변의 점수를 깎아내려 그가 우승하는 걸 막으려면 낙문은 반드시 두변이 이 작품을 최초로 써낸 것이 아니라 모방에 그친 수준임을 증명해야 했다.

“대인께 말씀드립니다. 이 <난정집서>는 제 작품이고, 누군가의 것을 모방한 게 아닙니다.”

낙문이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나이도 새파랗게 어린놈이 이런 걸작을 만들어 냈다? 사실대로 고하지 않는다면 나도 더 이상 너를 존중해줄 수가 없구나.”

이문회가 탁자를 세게 내려치며 벌떡 일어났다.

“낙 대인,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저 이문회가 그리 만만해 보이십니까?”

이문회가 눈을 가늘게 뜨고 살기를 뿜어내니, 현장에 자리한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문회의 입에서 나오는 말 중에 빈말은 하나도 없고, 이문회가 누군가를 죽여야겠다고 말하면 그자는 반드시 죽게 된다. 이문회가 백 명도 넘는 최씨 가문의 사람을 죽였다는 걸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이 아니겠는가.

남해 도장의 축무애가 급하게 몸을 일으키며 거칠게 외쳤다.

“지금 무력을 쓰려는 겐가? 누가 겁낼 줄 알고?”

이문회가 검을 뽑으며 소리쳤다.

“검을 뽑으시지요!”

이문회는 자신의 생사는 상관하지 않고 앞으로 나가 축무애와 공개적으로 대결을 펼치려 했다.

두변은 이런 이문회를 보며 속으로 크게 감탄했다.

‘의부 이문회는 과묵하면서도 진중한 사람이지만, 긴말 없이 바로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구나!’

축무애는 직접 나서서 이문회와 죽기 살기로 대결을 펼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음에 분노로 치가 떨리기 시작했다.

이문회란 자는 무공이 최고 수준이었다. 현기(玄氣) 수련 정도를 보면 축무애도 밀리지 않았으나 이 이문회란 놈은 살인술을 익혀왔기 때문에 자신이 이문회를 이긴다 해도 목숨을 부지하긴 어려워 보였다.

이문회는 자신의 목숨에 연연하지 않는 성격인 반면, 축무애는 자기애가 강했고 집에 아름다운 아내와 첩이 기다리고 있었으며 부귀영화를 수십 년 더 오래 누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만들 하시게. 문회, 자네도 앉게.”

장양명이 탁자를 내리치며 말했다.

이문회는 자리에 앉으면서 이미 결심했다.

오늘 누구든 감히 부정행위로 두변을 지게 만든다?

이 이문회가 직접 광서를 피바다로 물들이겠노라!

이 이문회가 낙문 족속과 사생아까지 수십 수백 명을 기필코 죽이리라!

이 세상에서 문관 가족의 일원 중에 깨끗한 사람이 누가 있더냐!

대학자 장양명이 말했다.

“순무 낙문은 계속 말해보게. 하지만 내가 노파심에 한마디 덧붙이자면 자네는 봉강대리(封疆大吏: 지방 수석 장관)이니 조정의 귀감이 돼야 할 것이야.”

낙문의 표정은 굳었지만 재빨리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두변, 방금 자네는 <난정집서>를 모사한 게 아니라 직접 만들었다고 했는데 맞는가?”

“물론입니다. 대인께서는 이런 글자체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여기 글을 오랫동안 읽으신 분들이 많은데 이분들 중에 <난정집서>를 보신 분이 계십니까?”

<난정집서>는 이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진나라 작품인데, 왕희지의 <난정집서>를 본 사람이 존재할 리가 없지!

주인이 없으면 먼저 쓰는 사람이 임자 아니겠는가!

낙문이 음험한 눈빛으로 차갑게 물었다.

“증명할 길이 있나?”

두변은 눈을 가늘게 떴다.

아니, 당신도 <난정집서>가 내 작품이 아니라는 걸 증명할 수 없으면서, 내가 어떻게 <난정집서>가 내 작품이라는 걸 증명합니까?

이걸 어떻게 증명하라고요? 뭘로 증명해요?

한 성의 순무라는 사람이 참으로 뻔뻔함의 극치를 보이는군요!

현장에 있는 관중들도 광서 순무가 이견이 있을 수 없는 작품을 두고 억지를 부리고 있는 걸 보며 얼굴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이건 마치 손오공이 다른 사람의 보물을 빼앗았는데, 빼앗긴 사람이 자신의 보물을 달라고 요구하자 ‘보물에 네 이름이 써 있는 것도 아닌데 무슨 말이냐?’고 억지를 부리는 격이 아닌가.

두변의 눈빛에서는 존경심이 사라지고 냉소가 새어 나왔다.

“<난정집서>가 제 작품인지 모사품인지를 증명하는 건 매우 간단합니다. 술 있습니까?”

두변이 크게 외쳤다.

“여기 있습니다!”

엄당 무사가 술병 하나를 들고서는 재빨리 뛰쳐나갔다. 그는 두변 앞에 도착해서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소주인, 술을 드시지요.”

이 엄당 무사는 이문회의 노복이었기 때문에 두변을 소주인이라 불렀다.

두변이 단숨에 술병에 든 절반의 술을 들이켜자, 몸에 열과 술기운이 같이 올라왔다.

“먹을 갈아주게.”

두변이 큰소리로 외쳤다.

옆에 있던 엄당 무사가 바로 다가와 먹을 갈기 시작했다.

두변은 황모필을 들고 먹물에 푹 담그더니 새하얀 선지 위에 새로운 작품을 써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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