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38화 (38/648)

제38장: 두변의 비밀무기!

가장 중요한 인물이 유무환이니 그가 심사를 포기하게 되는 이유를 찾아낸 후 그의 마음을 바꿔놓는 게 급선무였다.

두변은 즉시 이문회를 찾아갔다.

“산장, 저희는 유무환을 주시해야 합니다. 내일 갑자기 입장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이문회의 안색은 이미 창백해져 있었고 얼굴 근육에서는 미세한 떨림이 보였다.

“이미 늦었다. 유무환의 사생자(私生子)인 쌍둥이가 실종되었다는구나.”

동창의 반응이 느렸다고 할 수는 없었다. 이문회는 재빨리 사람을 보내 사생자를 포함해서 유무환의 가족들을 모두 보호하려고 했으나 안타깝게도 이미 늦은 후였다. 문관과 무장 집단은 일찌감치 유무환의 가족을 예의주시하고 있었고 명령이 떨어지면 바로 유무환의 사생자를 납치하라고 조치를 취해둔 상태였다.

“이미 무사 천여 명에게 유무환의 사생자를 찾아내고 낙문의 적장자를 잡아놓으라고 명령했다. 죄명은 조정과 폐하를 모욕한 죄다.”

“하지만 낙문이 쉽게 입장을 바꿀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효과가 있겠습니까?”

“맞는 말이다. 이 지경까지 되었으니 그는 어떤 희생이라도 치르려 할 게다. 더욱이 유무환처럼 아들의 생명을 끔찍이 여기지도 않고 오로지 자신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인물이니 더욱 그리하겠지.”

두변이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다.

“산장, 3대 학부 대회가 열릴 때마다 진남공 송결을 초청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오만한 진남공은 소꿉놀이에 흥미 없다며 단칼에 거절했지.”

“산장께서 은자 오만 냥을 들고 그를 찾아가 내일 최고 심사위원의 자격으로 경연을 지켜봐달라고 권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그가 온다고 하더라도 절대 우리 편을 들어주지는 않을 거다. 그의 명예는 은자 오만 냥을 훌쩍 뛰어넘으니까.”

“그가 와서 공정하게 심사해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네가 작품으로 진남공을 사로잡아야 한다. 그는 자연경관을 그린 그림에는 흥미가 없지. 사실 거의 모든 서화에 관심이 없을뿐더러 오직 무학과 병법에만 관심을 두는 인물이다.”

두변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진남공의 마음을 움직일 방법을 강구해 보겠습니다.”

이문회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러면 나도 지금 바로 염주부의 진남공부로 출발해야겠구나.”

말을 마친 이문회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바로 몇백 리나 떨어진 염주부로 길을 떠났다. 심지어 그는 두변에게 어떤 그림으로 진남공을 사로잡을 거냐고 묻지도 않았다.

두변을 향한 그의 신뢰는 무조건적이었다.

두변은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서 내일 어떤 작품으로 제국 남방의 핵심 인물인 진남공 송결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부산춘거도>는 송결이 싫어할 만한 작품이었고, <백준도>도 말이 그려져 있기는 했으나 송결의 입맛에 맞지는 않아 보였다.

송결은 예술적 성격을 띤 모든 작품을 싫어한다고 하니, 그의 입맛에 맞는 그림을 고르기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두변은 머리를 쥐어 짜내며 고민한 끝에 갑자기 기막힌 생각을 떠올렸다.

그것은 바로 매우 상세하고도 정확한 대녕 왕조와 전체 동아시아의 지도를 그리는 것이었다.

현대 지구에서야 지도는 매우 흔한 물건이지만, 고대만 하더라도 지도는 국가의 이기(利器)라고 불릴 정도로, 정확한 지도는 황제에게 선물로 바칠 만큼 값어치가 있는 물건이었다.

두변은 고대에 그려진 지도들을 본 적이 있지만, 너무 조잡한데다 어처구니없는 오류투성이여서 당황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중국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고 서양 지도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지도는 현대 지리 측량 탐사 기술이 발전된 후에야 정확도가 높아지기 시작했고, 위성 측량 방식이 도입되면서 가장 정확한 지도가 만들어졌다.

단순히 대녕 왕조의 상황만 보자면, 태조 황제가 군사 수만 명을 동원해 3년이란 시간을 들여 제법 그럴듯한 대녕 왕조 지도를 그려냈지만, 두변이 보기에 이 지도는 여전히 조잡했고 또 오류투성이였다.

만약 두변이 정확한 지도를 그려낸다면 그건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단숨에 진남공 송결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이다.

꿈의 세계로 들어간 두변은 다시 흰옷의 노인과 만나게 되었다.

두변이 말했다.

“저는 대녕 왕조의 지도를 갖고 싶습니다. 각 지방과 바다까지 더없이 정밀하게 그려진 지도 말입니다.”

흰옷의 노인이 말했다.

“그런 지도가 있긴 하지. 하지만 네가 하룻밤 만에 꿈의 세계에서 이 모든 것을 외우고 모사하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지도라는 게 예술 작품이 아니고 절대적으로 정확한 것이 생명이니, 결코 만만한 작업은 아니었다.

“완전히 똑같이 그릴 필요는 없습니다. 9할 정도만 비슷해도 충분히 현장을 압도할 수 있습니다.”

“이 지도는 국가의 이기로 황제에게 직접 바칠 만한 값어치가 나가는 물건인데 정말 내일 경연에서 사용하겠느냐? 네가 이걸 그린다면 진남공이 황제에게 그 그림을 선물로 바칠 것이다.”

“저는 황제의 관심을 받기까지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네 뜻대로 하거라.”

흰옷의 노인은 얇은 붓을 들고 거대한 선지에 대녕 왕조의 지도를 세세하게 그리기 시작했다.

매우 손이 많이 가는 복잡한 작품이었으나 흰옷의 노인은 두 시간 만에 그림을 그려냈다.

지도에는 모든 길과 산맥이 그려져 있었고, 군현(郡縣)이 빠짐없이 표시되어 있었다. 당연히 대녕 왕조가 지금 보유한 지도보다 훨씬 뛰어났고 누가 봐도 국보급임을 부인할 수 없었다.

두변도 열 배의 뇌 사용량을 활용해 필사적으로 지도를 외우기 시작했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열 배의 뇌 사용량을 활용한다고 해도 지도를 모두 외우긴 힘들었을 테지만, 두변은 현대 지구에서 왔기 때문에 머릿속에 중국 지도에 대한 기억이 어느 정도 남아있었다. 비록 대녕 왕조와 중국 지도가 완벽하게 일치하진 않았지만 상당 부분이 비슷해 외우기 수월했다.

꿈의 세계에서의 열 시간은 현실 세계에서 거의 열흘이었다.

두변은 대녕 왕조 지도의 모든 주부(州府)와 현(縣)을 필사적으로 다 외웠고 주변 국가의 모든 성 하나하나를 기억했고, 주부 경계선의 형태, 그리고 대녕 왕조의 국경선까지 세부적인 것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일반인이었다면 수천 개의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지도를 외우기란 불가능했을 것이지만, 두변은 결국 해냈다.

이어서 두변이 할 일은, 꿈의 세계에서 이 지도를 똑같이 그려내는 것이었다.

두변은 기존의 지도를 둘둘 말아 놓고 얇은 붓을 들어 다시 지도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억을 더듬으면서 그림을 그려야 하니 속도가 매우 더뎠다.

꿈속에서 지도를 처음으로 다 그리기까지 열두 시간이 걸렸는데, 이는 두변이 현실 세계로 돌아와 대녕 왕조의 그림을 그릴 때도 열두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린 터라, 두변은 두 번째 세 번째 지도를 계속 그려나갔다.

세 번째 지도를 완성했을 때 그리는 속도는 다섯 시간까지 줄었다. 여전히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으나 이 정도면 시간적으로는 큰 무리는 없어 보였다. 게다가 이미 현실 세계에서의 해가 밝아왔기 때문에 두변은 계속 연습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꿈의 세계에서 그만 돌아와야 했다.

이번에도 환관이 조심스럽게 두변을 깨웠다.

“소주인, 경연 시작까지 이 각도 남지 않았습니다.”

두변은 재빨리 일어나 세수를 하고 아침밥을 대충 먹기 시작했다. 그가 밥을 반쯤 먹었을 때 이문회가 먼 길을 달려온 모습으로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이문회는 어제 열 시간 동안 군마 몇 필을 버려 가며 팔백여 리의 거리를 이동해 염주부에 다녀왔다.

“진남공이 요구에 응하긴 했지만, 군무를 마저 마치고 온다는구나. 이제 제때 도착할 수 있을지는 하늘의 뜻에 달렸다. 게다가 그는 누구의 편도 들어주지 않을 것이고, 네 그림이 마음에 안 들면 바로 심사를 포기할 것이다.”

이문회가 말했다.

은자 오만 냥을 지불하고도 진남공의 심사 포기를 지켜봐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렇게 큰 도박판의 승패는 본래부터 대개 본인에게 삼 할, 그리고 하늘의 뜻에 칠 할을 맡기는 것이다.

두변이 그리는 대녕 왕조 지도는 자연경관을 담은 그림보다 진남공의 입맛에 맞을 테니, 그가 제때 도착하기만 한다면 두변은 충분히 승리할 수 있었다.

두변은 아침밥을 후딱 해치우고 몸을 일으켜 3대 학부 대회의 마지막 경연에 참여하기 위해 대청으로 향했다.

이문회와 두변의 운명을 결정짓는 도박이 드디어 시작되고 있었다!

“광서성 3대 학부 대회의 마지막 경연이 시작되었음을 선포합니다!”

두변과 이문회의 운명을 결정짓는 시간이 다가왔다.

두변은 자신의 위치에 자리한 후 봉오후 유무환을 한번 살펴보았는데, 창백하고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니 무슨 일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미 동창이 수백 명을 파견해 유무환의 쌍둥이 사생자를 찾는 중이었지만, 성공했는지는 현재로선 알 길이 없었다. 두변도 꿈속 세계에서조차 사생자들의 행방을 알아내지는 못했다.

그러니 두변은 진남공이 제시간에 도착하기만을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제때 도착하기만 한다면 자신이 그릴 대녕 왕조 지도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오늘도 두변은 외로이 홀로 출전했고, 남해 도장과 이강 서원에서는 모두 열 명의 선수를 오늘 회화 경연에 출전시켰다. 하지만 두변의 적수는 사실 최부 한 명뿐이었다.

오늘 경연이 서로가 사활을 건 도박이라는 소문이 남녕부 전체에 퍼진 덕에 관중석에는 유난히 많은 사람이 자리했다. 이런 기상천외한 대결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이름이 제법 알려진 사람들도 모두 구경하러 몰려들었다.

지난 사흘간 두변이 보여줬던 성과들은 전례 없던 기록이었기 때문에, 단 하루 만에 두변의 명성은 남녕부 전체에 퍼졌고 광서성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두변이 어떤 작품으로 이 난해한 상황을 타개해 나갈지 궁금한 사람들은 두변만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댕!

종소리와 함께 선수들은 모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오늘 최부는 머리에 붉은 비단을 묶고는, 어제 두변에게 받은 설욕을 반드시 갚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최부가 준비한 작품은 <명월추향도(明月秋香圖)>로, 중추명월(中秋明月)의 이강(漓江) 호숫가에 뱃놀이, 미인, 밝은 달, 맑은 물 그리고 그 물에 비친 계화(桂花)가 주된 소재였다.

그림은 뛰어난 예술적 가치를 지녔고 난도도 매우 높았다. 우선 밤에 달이 하늘에 걸려 있는데, 달빛이 너무 밝아선 안 되지만 어두운 심야의 풍경을 낱낱이 구현해야 했으니 매우 높은 수준의 내공이 필요했다. 사실 최부가 가장 자부심을 가지는 작품이었다.

최부는 이미 결과가 정해져 있고 자신의 승리가 확실함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두변에게 실력 차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최부가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그리고 있는 그림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두변의 화지로만 향하고 있었다.

숨을 깊게 들이쉰 후 두변은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매우 얇은 붓을 들고 거대한 화지 위에 빠른 속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두변의 그림을 보고는 두변이 도대체 무엇을 그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어리둥절해했다.

뭘 그리고 있는 거지? 전혀 감이 안 오는데?

두변은 대녕 왕조의 대체적인 윤곽을 잡은 후 세부 내용을 채워나가는 방식이 아니라 가장자리부터 그리기 시작해 점점 퍼져나가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일반인은 고사하고 장양명, 그리고 계동앙 등의 인물들도 두변이 도대체 무엇을 그리는지 알기 힘들었다.

족히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들도 두변이 무엇을 그리고 있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 그림은 현존하는 지도보다 백 배는 더 정교하고 세밀해서 지금껏 본 적이 없는 수준이었다.

두 시간이 지난 후, 두변의 지도는 절반쯤 완성되었는데 낙문 등은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두변의 화지를 응시했다.

한량처럼 노니는 일반인들이야 두변의 지도를 보고 무료해하며 별 볼 일 없는 그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백호 직급 이상의 무관 혹은 현령 직급 이상의 문관이라면 분명 엄청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이렇게 정확하고 세밀한 지도가 얼마나 큰 전략적 의미를 지니는지, 이런 지도를 군사기밀로 보존해야 할 정도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들은 두변이 그린 지도가 얼마나 정확한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기존의 지도보다는 훨씬 정확하고 세밀했다.

그리고 이 지도가 실제로 정확하다면 황제 폐하께 바치기에 손색이 없는, 아니 꼭 황제 폐하께 바치는 수밖에 없는 물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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