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장: 현장을 압도하다.
세 시간만에 최부는 자신의 <명월추향도>를 완성시켰다. 그는 그렇게 몇 분 동안 자기 작품에 심취해서는 모든 사람의 감탄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최부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두변의 작품으로 향했다는 걸 알아차렸고 그의 눈빛도 자연스럽게 두변의 작품으로 향했다.
이어서, 최부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최부는 아직 관원은 아니지만 명문가 자제 출신으로 식견과 포부가 매우 높았다. 평소에도 가장 좋아하는 일은 지도 앞에 서서 강산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지도의 모든 주부, 군, 현을 자신이 철저하게 연구해보고 싶었고, 모든 산과 모든 강줄기를 제 뇌리에 똑똑히 기억하고 싶어했다.
이는 문인 사대부와 무장들의 가장 큰 취미이자 가슴속에 천하의 뜻을 품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는 후세의 고위급 장교와 고위급 관원, 그리고 국가 지도자들이 서재의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지도를 걸어놓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지 않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까지의 대녕 왕조의 지도는 너무 조잡했다. 성의 영토는 그렇다 하더라도 주부나 현은 영토의 경계가 너무 모호하고 엉망진창인데다, 지도에 표기된 각종 도로는 백 년 동안 바뀌지도 않았다.
매번 수천, 수만 명의 인력을 동원해서 몇 년의 시간을 투자해야지만 지도를 그릴 수 있었기 때문에 대녕 왕조 시기에 전국 지도를 그리는 일은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한 번 지도를 그리면 최소 백 년은 사용했고 이 기간 동안 농촌과 도로 등에서 일어나는 많은 변화는 지도에 담길 수 없었다.
헌데 지금 두변이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처럼 정교한 지도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도, 도대체 어떻게 한 거지? 대녕 왕조의 전국 지도는 백여 년 전에 태조가 13,000명을 동원해 3년의 시간을 들여 완성한 것인데, 지금 두변이 그리고 있는 지도는 기존의 것보다 훨씬 정교하잖아!
두변이 그린 지도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는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웠지만, 최부는 두변의 지도가 틀림없이 정확할 것임을 직감했다.
대녕 왕조의 국경까지 완성됐으니, 모두 두변의 그림이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변은 뜻밖에도 계속해서 북방의 몽고와 주변국을 그리기 시작했다.
모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렇게 하늘을 거스른다고? 혼자서 대녕 왕조의 전체 지도도 모자라 이민족의 지도도 그려 넣는다고?
현장에 있던 많은 사람은 그동안 계속 신경 쓰였던 건로의 세력이 얼마나 큰지, 그리고 몽고의 세력이 어디에 있는지 오늘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이어서 두변은 안남 왕국과 면전(미얀마) 왕국 등도 그렸고, 대녕 왕조의 주변 국가들까지 다 그린 뒤에는 또 바다를 그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일반인들은 보다가 지루해서 하품을 하려다가, 모든 고위급 관원들이 숨을 죽이며 눈도 깜빡이지 않고 지켜보는 것을 보고는 ‘두변이 또 큰일을 벌였구나.’ 싶어서 그들도 숨소리를 죽이고 지켜보기 시작했다.
현장에 있는 수많은 관리들은 두변이 그린 지도를 보고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게 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두변은 원래 이 지도가 진남공 같은 인물만 선호하는 작품일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스스로 높은 식견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자들도 천하를 논하는 데 사용하는 지도에 대해 본능적으로 집중하기 시작했다.
두변이 그린 대녕 왕조 지도가 가져온 파급력은 기대 이상이었고 심지어 그 강력함은 <난정집서>와 <광릉산>을 뛰어넘었다.
구양담이 낮은 목소리로 옆에 있는 축무애에게 말했다.
“축 형, 변군 최고 사령관으로서, 두변이 그린 지도가 정확하다고 보십니까?”
“정확하네.”
축무애는 사령관의 본능으로 그렇게 판단을 내렸다.
“이 지도의 가치는 엄청나겠지요?”
구양담의 물음에 축무애가 대답했다.
“엄청난 가치를 지녔네. 이런 데서 선보일 만한 작품이 아니야. 만약 내가 저 지도를 가졌다면 폐하께 드리고 작위를 받았겠지. 두변이 우리와 대결하겠다고 저런 지도를 들고나온 이상 우린 가망이 없네.”
구양담의 안색이 점점 굳어졌다.
“두변이 어떻게 저런 지도를 그릴 수 있는 겁니까? 이런 인재가 왜 엄당에 있는 겁니까? 상황이 불리하게 흘러간다 하더라도 오늘은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황제 폐하께 질책을 당한다 하더라도 엄벌에 처해지지는 않을 터이니 억지를 부려서라도 판을 뒤집어 놓아야 합니다.”
그가 뱉은 이 말이야말로 천하의 문무 집단이 황제를 대하는 진실된 모습이지 않을까.
축무애가 말했다.
“우리는 다른 선택지가 없네. 이건 우리 둘만의 일이 아니라 문관 집단과 무관 집단의 공통된 뜻이기도 해.”
다섯 시간에 걸쳐 동해와 남해 그리고 위쪽의 섬들까지 전부 그려낸 후 두변은 그림을 마무리 지었다.
사람들은 모두 긴 한숨을 내뱉었다.
오늘은 국가의 이기이자 전략적 가치가 풍부한 지도의 탄생을 목격한 위대한 날이었다. 3대 학부 대회의 마지막 날에 두변은 다시 한번 엄청난 작품을 선보였고 모두가 이에 압도되었다.
그 순간 이문회는 사명감까지 느낄 정도로 온몸의 피가 뜨겁게 끓어올랐다.
두변은 엄당과 제국을 부흥시키고 형세를 바로잡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준 천재로구나!
이제 작품을 평가하고 점수를 매길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쉽게 나서지 못했으며 광서 순무 낙문과 전 태자소부 계동앙은 다시 한번 고통스러운 시간을 맞이했다.
이번에도 이치에 맞지 않는 억지를 부려야 했다. 그들은 역사적으로 오명을 쓰겠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광서 순무 낙문이 후배인지라 먼저 일어나 말을 꺼냈다.
“두변, 어떻게 이런 지도를 그릴 수 있는 거지? 어째서 대녕 왕조의 지리에 이토록 밝은 것이냐?”
이 말은 자칫하면 두변을 반란을 도모하는 대역 죄인으로 몰 수도 있는 말이었다.
두변이 대답했다.
“꿈속에서 신선이 알려주셨습니다.”
두변은 조심스럽게 진실을 말했고, 게다가 현장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그 말을 절대적으로 믿었다.
고대에서는 누군가 꿈속에서 신선을 보았고 그 신선으로부터 귀중한 보물을 받았다는 얘기를 매우 신기한 일이라 생각하면서도 믿었다.
한나라의 명재상인 장랑(張良)도 꿈속에서 신선의 가르침을 받고 유방을 도와 천하를 제패했다고 하지 않은가. 이 일은 신화가 아닌 역사로 자리 잡았고 후대의 모든 사람은 이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두변의 답변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이렇게 대단한 지도는 신선이 하사해야지만 얻을 수 있는 것이지, 속인이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두변은 이 지도에 신선이라는 형상을 덧씌워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 지도를 부정한다면 신선과 맞서는 것인데, 신선에게 맞서는 것은 곧 하늘에 맞서는 것이 아니겠는가.
낙문도 별다른 선택이 없었기에 끝까지 밀어붙이기로 했다.
“이 지도는 국가의 이기인 만큼, 마땅히 황제 폐하게 드려야 하거늘 어찌 수많은 관중 앞에서 이를 선보였느냐? 게다가 오늘은 회화 경연인데 이 지도가 회화라고 볼 수 있느냐?”
낙문이 거세게 몰아붙였다.
두변이 답했다.
“어제저녁에 신선께서 제 꿈속에 찾아와서 오늘 이 지도를 그리라고 했기 때문에 저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지도는 회화의 한 종류입니다.”
“두변, 말장난하지 말거라.”
낙문이 흥분하며 말을 이었다.
“회화 경연에 이런 그림을 가져오다니 대회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 0점을 주고 싶지만 신선의 체면을 생각해 너에게 50점을 주겠다. 이에 반해 최부의 <명월추향도>는 회화의 보배며 광서성의 자랑이구나. 예술성이 매우 풍부하며 기교가 화려해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이니 98점을 주겠다.”
낙문이 말을 마치자 온 장내가 술렁거렸다. 모든 사람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낙문을 쳐다봤다. 어찌 광서의 순무라는 자가, 올곧은 봉강대리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정말이지, 어찌 이토록 뻔뻔하게 염치없는 행동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낙문이 말을 마치자 전 태자 소부 계동앙이 뒤이어 일어났다.
“이 지도는 확실히 대단하지만 예술이 아니며 더욱이 회화가 아니기 때문에 나도 낙문처럼 두변에게 50점을 주겠습니다. 최부의 <명월추향도>는 몇십 년 만에 한번 볼까 말까 한 작품이므로 구양담 산장께 이 작품을 서원의 보물로 소장하기를 권해드립니다. 그래서 모든 이강 서원의 학생들이 이 작품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최부의 <명월추향도>에 98점을 주겠습니다.”
하하, 장양명이 웃었다.
“가소롭고 파렴치하며 황당하기 그지없군. 어쨌든 오늘을 마지막으로 나는 은둔생활을 하는 위패가 될 테지만 해야 할 말은 꼭 해야겠소이다. 회화라는 종목이 예술성도 중요하지만, 지도는 국가의 이기이며 제국과 만백성의 이익에 부합하는 전략적 가치가 있는 그림이라 할 수 있지요. 그래서 나는 두변이 그린 대녕 왕조 지도에 99점을 주겠소이다. 1점을 깎은 것은 이 지도가 얼마나 정확한지 판단이 안 서기 때문이지만, 이 만리강산이 담겨있는 지도가 정확할 것이라는 건 직감으로 알 것 같군요.”
장양명이 다른 쪽을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최부, 자네가 그린 <명월추향도>는 자네 손을 거치면서 저속해진 감이 없지 않아 있네. 아, 물론 여전히 걸작이지. 하지만 이 그림은 자네가 창작한 것이 아니라 모사한 것이며 나쁘게 말하면 도용이라고 할 수 있지. 원작자는 회화 종사(宗師) 두소창이지. 이 그림은 그가 먼저 떠나버린 정혼자를 기리기 위해 만든 작품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공개된 적이 없어. 하지만 난 이 작품을 볼 기회가 있었네. 최씨 가문에서 어떤 방법으로 두소창의 그림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모르나 모사는 결국 모사일 뿐이지. 게다가 이 사실을 숨겼으니 표절이라고 봐도 무방할 걸세.”
이 말을 들은 최부의 표정이 굳어졌다.
장양명의 말대로 이 그림은 남파의 회화 종사 두소창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공개된 적이 없었고 두소창 본인도 작품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최부는 대담하게 그 작품을 표절한 것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오늘 장양명에게 이 사실을 들키고 말았다.
하지만 최부는 재빨리 평정심을 되찾았다.
장양명이 이 사실을 알고 있다 한들 증거가 없지 않은가?
최부가 말했다.
“양명 공,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제가 두소창 선생의 작품을 표절했다고 하셨는데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저는 오히려 양명 공께서 왜 이렇게 엄당과 사이가 좋은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매번 엄당을 감싸고 도시니 모종의 거래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됩니다.”
최부가 적반하장으로 되레 자극적인 말들을 쏟아내자, 장양명이 분노로 몸을 떨기 시작했다.
“낯짝이 두껍구나! 남의 작품을 표절하고도 인정하지 않다니, 50점을 주겠다!”
심사위원 네 명이 완전히 첨예하게 맞서게 된 셈이었다.
이제 사람들의 시선은 마지막 심사위원인 봉오후 유무환에게로 향했다. 유무환은 어제 정의의 편에 서서 <난정집서>의 가치를 인정해주었으니, 오늘도 자신의 신념을 지킨다면 승리는 두변에게 돌아갈 수 있게 된다.
게다가 현장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속으로 두변의 승리를 응원하고 있었다. 두변이 기적을 쓰기 시작했으니 그 기적이 마지막까지 이어지기를 바라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
유무환은 일어서서 두변에게 허리 숙여 절을 하고는 처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타락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남의 가족까지 건드리다니! 네놈들은 언젠간 천벌을 받을 것이다!”
봉오후 유무환은 눈을 감더니 괴로운 듯 말을 이었다.
“심사를 포기하겠다.”
이 말을 듣고 장내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유무환이 심사를 포기하면 두변이 지게 되는 게 아닌가! 게다가 유무환이 했던 말의 뜻은 너무나 분명하지 않은가. 누군가가 그의 가족들을 인질로 삼아 자신의 소신을 지키지 못하게 협박한 것이 아닌가!
너무나도 비열하구나! 너무나 파렴치하구나!
줄곧 엄당과 동창이 비열과 파렴치의 대명사가 아니었던가? 문관 집단이 공정과 광명을 대표하지 않았던가? 무장 집단은 제국의 강철 장성으로 정직과 위용을 상징하지 않았던가?
계동앙과 낙문이 흑백전도와 지록위마를 일삼으며 사람들을 놀라게 하더니, 지금은 누군가 유무환의 가족을 납치까지 했으니 이건 파렴치하다 못해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가치관을 흔들어 놓는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