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장: 엄청난 상을 들고 복귀하다.
이문회의 말에 두변은 엄청난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엄당을 통일하고 천하를 호령하며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건 얼마나 끝내줄까!
문관, 무장 집단들이 자신의 이름만 듣고도 벌벌 떨며 천하의 모든 무도 문파들이 혼비백산하는 건 두변도 바라 왔던 일이고 생각만으로도 짜릿하지 않은가.
특히 양기가 100에 다다르고 정상적인 남자가 된다면 천하의 모든 미녀를 마음대로 품으며 신선 노릇도 할 수 있지 않은가.
대녕 왕조의 중흥이란 과업이 조금 버겁게도 느껴졌지만, 이문회의 뜨겁고도 강렬한 눈빛을 본 두변은 뭐라 형용하기 힘든 묘한 사명감에 휩싸였다.
“가자. 이 의부와 함께 술잔을 기울여야겠다.”
이문회가 임시로 묵고 있는 남해 도장의 거처 안.
“데려오너라!”
이문회가 명령했다.
원래 대회에 참가했어야 할 서생 환관 넷이 끌려 들어왔다. 이들은 다급한 시기에 이문회를 몰아세웠으며 기회를 틈타 당엄의 허벅지를 껴안은 파렴치한 배신자들이었다.
“두변, 이 반역자 넷은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겠느냐? 살리든 죽이든 네 마음대로 하거라.”
이문회의 말에 서생 환관 넷은 즉시 무릎을 꿇고 필사적으로 땅에 머리를 박으며 눈물로 호소했다.
“산장 대인,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이때 약삭빠른 한 명이 두변에게 기어가 그의 다리를 감싸 안았다.
“두 사형, 살려주게. 그럼 내 한평생 두 사형이 시키는 일을 하며 살게. 소가 되라면 소가 되고 말이 되라면 말이 되고, 돼지도 좋고 개도 좋고.”
서생 환관 넷은 사리사욕을 취하려고 하긴 했지만 그래도 서생 특유의 기개는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나흘 동안 이어졌던 두변의 놀라운 업적들을 본 이후 그들이 몇 년 동안 쌓아왔던 서생으로서의 자부심은 깔끔히 사라졌고 다시 엄당 특유의 죽음을 두려워하고 권세에 아부하는 특성이 되살아났다.
그들은 목숨을 구걸할 뿐 아니라 이 기회에 두변에게 아부해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을 심산이었다.
두변은 이 네 사람을 보면서 난감해했다. 이 네 명을 수족으로 부리자니 내키지 않았다. 더욱이 이들은 그간 책만 잔뜩 봐왔던 터라 금기서화만 할 줄 아는 무용지물이었다.
이들을 죽이자니 그럴 필요까진 없어 보였지만 살려두자니 나중에 자신을 저주하진 않을까 괜히 찝찝해 그것도 내키지 않았다.
두변이 물었다.
“그럼, 그냥 죽일까요?”
동창 무사 넷이 두변의 말을 듣자마자 서생 환관 넷을 제압한 후 칼을 휘둘렀다.
촤락!
비명조차 지를 새도 없이, 머리 네 개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잘했다. 엄당의 배신자들은 죽어 마땅하지. 자. 같이 술잔을 기울이게 이리 오너라. 오늘 밤은 마음껏 기뻐하고 마음껏 축하하자. 하지만 내일 아침부터 새로운 여정이 시작된다는 걸 잊지 말아라.”
이날 밤 두변은 만취할 때까지 마셨고. 이문회도 이 순간을 한껏 즐겼다.
그렇게 두변은 곯아떨어졌고 이날 꿈은 꾸지 않았다.
하지만 의식의 깊은 곳에서 기이한 불빛이 나타났다.
- ‘위험한 도박’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쳤군!
- 두변의 엄당에 대한 공헌도가 5점 증가했다. 10점 달성 시 총기(總旗 : 총기總旗는 50 명의 군사를, 소기小旗는 10 명의 군사를 관장)로 진급할 수 있다.
- 이문회의 엄당에 대한 공헌도가 20점 증가해 70점이 되었으므로 곧 진급할 예정이다.
- 두변의 정신력이 영구적으로 10점 증가해 40점이 되었다.
다음날 깨어나 보니 두변은 왜인지 기운이 더욱 왕성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주변 기운과 기척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 보니 실력이 한 단계 향상되었음이 분명했고 문제를 사고하는 속도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아마도 이것들은 정신력 향상이 가져다주는 이점일 것이나, 정신력이 가지는 묘미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무학 수련을 시작하면 강인한 정신력이 가진 힘이 빛을 발할 것이다.
이문회는 무리를 이끌고 계림부로 돌아오면서 은자 10만 냥과 학전 6,000묘, 그리고 비철 광산에 대한 증서까지 함께 가지고 왔다. 진남공에게 준 은자 5만 냥을 제외하더라도 이번에 환관 학원은 은자 30만 냥 이상의 재물을 얻은 셈이었다.
이 천문학적인 재물은 환관 학원의 몇 년 동안의 경비를 합친 것보다 더 큰 금액이었다.
이문회는 이미 이 돈을 사용해서 엄당의 무장세력을 어떻게 확장시킬지 야심 차게 계획하고 있었다.
환관 학원의 무사들과 동창의 무사들을 확대 편성해야 하고, 동창 아래에 있는 군현 세력도 확장해야 했으며, 특히 토사의 영지까지 세력을 뻗쳐야 했다. 그래야만 토사들이 다시 대녕 왕조의 통치에서 벗어나려고 반란을 일으키는 걸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문회의 앞날에 비한다면, 이 은자 30만 냥의 수확도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저들은 이문회가 웃음거리가 되고, 광서 환관 학원에서 그의 미래가 좌절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문회는 이겼다. 단순히 이긴 게 아니라 엄청난 대승을 거두었기에 엄당 전체를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이문회의 명망은 이미 장야죽과 같은 그의 경쟁상대보다 훨씬 드높게 되었으니, 동창 수장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진 셈이었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의 공은 두변에게 있었다!
이문회를 포함한 모든 사람은 이번 경연에서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으나 두변이 혼자만의 힘으로 판도를 바꾸며 대승을 거두어 내며 이문회를 구해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이문회의 공로도 있었다. 만약 이문회가 두변을 보호해주지 않았더라면 두변이 제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제 목숨조차 부지하기 힘들지 않았겠는가.
“산장, 이번에 경성에서 어떤 상을 하사할 것 같습니까?”
“아마 나를 광서 동창의 진무사(鎮撫使)로 승격시켜주겠지.”
진무사는 광서 동창의 최고 장관직이다. 진무사 밑으로는 만호 둘이 있는데 그중 한 명이 이문회였다. 직위를 논하자면 진무사와 총병관은 부성(副省)급에 해당하며, 고대 중국에 기록된 등급보다 조금 더 높았다.
현재 광서 동창 진무사의 이름은 왕인으로 교활하고 처세에 능한 동창의 원로였다. 그는 보통 배후에 있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문관, 무장 집단과 갈등을 일으키진 않았다.
광서 동창의 원로가 이번 3대 학부 대회를 비롯한 엄당의 대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데에는 물론 표면적인 이유가 있었다. 몇 달 전 안남국의 반란을 평정하는 데 대한 지원을 협의하러 안남국을 방문하러 갔다는 것이다.
“고작 일급 진급한 진무사입니까?”
두변이 묻자, 이문회가 웃었다.
“녀석, 만호에서 진무사로 승급하기는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3년 만에 이 고비를 넘었으니 나는 충분히 만족한다.”
“왕 진무사 대인과 의부께서 잘 맞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만.”
다른 사람이었으면 이문회는 본인의 소식을 캐묻고 다녔다는 사실에 불쾌감을 느껴 이런 질문을 한 사람을 크게 꾸짖었을 것이다. 하지만 질문자가 두변이었기에 이문회는 진지하게 생각한 후 최대한 정확한 표현을 골라 설명했다.
“왕 공공은 보수적인 인물로 생각은 많지만 행동은 적은 편이지. 우리 광서 엄당의 세력이 약해졌기 때문에 그도 문관, 무장 집단과 갈등을 빚으려 하지는 않지만, 내가 앞장서서 그들과 대립하는 걸 막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인지 알 거 같습니다. 위험한 일은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며 책임지려 하지 않는 인물이군요.”
“까칠한 녀석이로군. 전체적인 느낌은 비슷하나 너무 부정적으로 보지는 말아라. 진무사 왕 공공은 처세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을 뿐이다. 다만 네가 그것을 배우지 않았으면 하는구나.”
이문회가 웃으며 대답했다.
두변과 이문회가 한담을 나누고 있을 때 갑자기 동창 무사가 다가와 보고했다.
“대인, 당엄이 뵙기를 청합니다.”
이문회는 별로 달갑지 않아 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엄당의 이익은 뒷전으로 미루고 이문회 본인의 앞길을 망치려 한 것은 차치하고, 광서 엄당이 문관, 무장 집단에게 무참히 짓밟히도록 방관한 것은 용서할 수 없었다. 만약 두변이 이 위기에서 엄당을 구하지 않았더라면 엄당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했다.
“두변, 당엄이 왜 나를 찾으러 왔는지 그리고 무엇을 원하는지 짐작이 가느냐?”
“광서 환관 학원으로 전학을 와서 저를 견제하려는 것 같습니다.”
“총명하구나. 3대 학부 대회를 승리로 이끈 후 네가 얻은 명성이 당엄을 뛰어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에 그들은 모든 방법을 강구해 너를 견제하며 억누를 것이다. 그래서 당엄이 직접 나서기를 마다하지 않은 게지.”
잠시 후 당엄은 이문회 앞으로 다가와 허리 숙여 절했다.
“산장 대인, 저 당엄은 광서 환관 학원으로 전학을 가서 산장이 뜻을 이루시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부디 저의 청을 받아 주십시오.”
당엄은 말하면서 땅을 쳐다보는 듯했으나 시선은 계속 두변 주위를 맴돌았다.
두변은 속으로 화가 났다.
당엄, 이 새끼는 왜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못하는 거야?
가뜩이나 졸업시험에서 수석으로 졸업해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천재라고 불리는 저 녀석이 엄당을 오게 된다면 수석 졸업 임무의 난도는 더욱 올라가게 되잖아!
난 수석으로 졸업하지 못하게 되면 죽임을 당하게 된다고!
당엄은 광서 환관 학원의 상위권들과도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인물이지 않은가!
물론 두변이 3대 학부 대회에서 이겼기 때문에 졸업시험에서 추가점수 50점을 받게 되지만 만약 50점의 추가점수로 인해 수석을 하게 된다면 비록 이겼을지라도 엄당의 거물들은 두변을 인정해주지 않을 것이며, 두변의 기세를 꺾기 위해 그리고 두변의 앞날을 막기 위해 상대방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이문회는 당엄의 질문에 직접 답을 해주지 않고 두변에게 물었다.
“두변,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가 당엄의 뜻을 받아들여야 할까?”
이문회는 다시 한번 결정권을 두변에게 넘겼다.
‘싫습니다. 당장 저놈에게 광동으로 꺼지라고 해주십시오. 제가 실력을 쌓은 후 직접 저자를 처단하겠습니다.’
두변은 이렇게 대답하고 싶었지만, 이 말을 결코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만약 두변이 당엄의 도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엄당 내부에서 패배 그 이상의 치욕을 겪게 될 수도 있었다. 당엄과의 대결을 피한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그와 경쟁한단 말인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친 두변은 마음속으로 분노가 일었지만, 얼굴에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좋지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습니다.”
이문회가 기뻐하며 말했다.
“그래, 역시 내 의자답게 호기롭다! 그럼 당엄이 광서 환관 학원에 들어오는 걸 받아들이도록 하겠다.”
이문회는 두변이 졸업시험에서 당엄에게 밀리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개의치 않았지만, 혹시나 두변이 당엄과의 도전 자체를 두려워하진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어쨌든 당엄의 출현으로 인해 두변의 졸업시험 임무는 난도가 훨씬 올라가게 된 셈이었다.
두변은 당엄의 잘생긴 얼굴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누구든 내 앞길을 막는 자는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사흘 후, 이문회와 일행은 계림으로 복귀했다.
그들이 환관 학원에 도착했을 때, 두변은 난생처음으로 엄청난 환대를 받았다.
일전에 당엄이 받았던 환대를 이번에는 두변이 받게 된 것이다. 천 명에 이르는 인원들이 징과 북을 울리며 폭죽을 올렸고 오색깃발을 뒤흔들며 그들을 맞이했다.
앞선 환영식에서는 지나가는 행인 한 명 정도였던 두변이 이번에는 그 주인공이 된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부러움에 가득 찬 눈빛으로 두변을 바라봤다.
줄곧 엄당의 수치이며 폐물로 여겨졌던 두변이 이제 하늘로 날아오르게 생겼구나!
두변이 당엄을 대신해 3대 학부 대회에서 엄청난 성과를 거두며 광서 엄당을 위기에서 구해낼 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는가?
성격이 괴팍한 두변이 금기서화에 이처럼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어찌 됐든, 두변은 광서 환관 학원을 구한 영웅이고, 앞으로 출세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문회는 이런 환대를 보고 표정이 굳었지만 당장 화내며 중지하지는 않았다. 이문회는 당엄을 외부인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앞서 그를 환영하는 의식을 성대하게 열었을 뿐, 자신의 의자인 두변을 다른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에서 보호하고 싶었고 이렇게 떠받드는 식의 환영식은 피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