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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무제-43화 (43/648)

제43장: 이토록 어리석다니!

염세가 두변의 발을 씻겨주려는데 방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놀랍도록 잘생긴 공자가 다급하게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그는 당엄이었다.

어찌 당엄은 매번 볼 때마다 환관이 아니라 귀족 공자 같은 기분이 들까?

당엄이 들어오자마자 본 것은, 두변의 발을 씻겨주려고 하는 염세와 얼굴이 빨갛게 부어오른 환관 여섯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었다.

당엄은 소인배 두변이 가소롭게 설친다고 결론 지었다.

“두변, 본래는 너와 서예에 대해 같이 논하고 싶었는데 이런 장면을 보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군. 모두 같은 엄당의 일원인데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겨도 되는 건가? 산장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네가 엄당 학생들의 귀감이라고 할 수 있겠어? 네놈에게 정말 실망이군.”

당엄이 싸늘하게 말했다.

두변은 눈을 가늘게 뜨고 당엄을 쳐다봤다.

문관 집단에서 온 사람답게 정의를 논하고 있군!

말끝마다 엄당의 이익을 논하면서, 어떻게 그리도 중요한 대회 시합 전날 출전하지 못하겠다고 해서 산장과 광서 환관 학원을 사지로 몰아넣은 거지? 네놈이야말로 파렴치한 배신자 아니냐?

게다가 네놈의 오만방자한 모습을 보니 나와 서예를 논해보겠다고 한 말을 믿어야 되나? 네가 일부러 내 빈틈을 찾아내 나를 억누르려는 의도로 보이는데?

너무나 어설픈 연기 실력이로군.

내가 네놈을 하염없이 비웃다 죽기라도 하면 내친김에 내 꿈의 세계를 이어받아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싶은 거냐?

당엄은 환관들의 빨갛게 부어오른 얼굴을 차마 눈 뜨고 못 봐주겠다는 듯 쳐다보자, 환관 여섯은 눈물을 글썽이며 더없이 비참한 표정을 지었다.

당엄이 염세에게 물었다.

“너는 두변의 폭력에 굴복하려는 것이냐? 너는 기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이냐?”

염세는 즉시 나무통을 바닥에 내던지고는 당엄에게 허리를 숙였다.

“내가 두변에게 굴복하지 않는다면 산장에게 내 험담을 해서, 내 앞길을 다 망쳐놓을 겁니다.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으니 당 형이 알려주십시오.”

말을 마친 염세는 더욱더 깊게 허리를 숙였다.

이미 명성이 자자한 당엄이 눈앞에 나타났으니 염세가 이 틈을 놓칠 리 없었다. 당엄처럼 하늘이 내린 인재에게 열심히 아부하는 것은 전혀 비굴한 게 아니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당엄이 두변을 보며 말했다.

“이쯤에서 그만하지. 일을 더 크게 벌이지 않고 그만두는 게 좋을 거다. 아니면 산장의 얼굴에 먹칠하는 격이니까.”

두변은 속으로 아직 부족하다고 여기던 찰나, 자신을 자극해주는 당엄이 오히려 감사할 지경이었다.

두변이 일어나서 당엄을 바라보며 거칠게 말했다.

“짜증 나게 하지 말고 남의 일에 신경 끄지? 이 멍청아!”

표정이 완전히 굳어진 당엄은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하늘이 내린 인재인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이가 있던가!

인재가 바글바글하던 문관 집단에서도 당엄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엄당에 전학 온 후에는 모든 사람이 자신을 신처럼 우러러봤고, 광동 환관 학원의 왕굉 산장도 자신과 얘기할 때 예의를 갖추거나 기분을 맞춰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두변이 이토록 무례하게 나오다니!

순간 당엄의 잘생긴 얼굴은 붉어지면서 눈빛에서는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두변을 직접 처리하지 못하면 숨을 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당엄은 재빨리 냉정을 되찾았다. 두변이 이렇게 날뛰는 것은 이미 그가 자신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이렇게 경박한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적수가 될 수 있겠는가?

“하늘은 사람을 파멸시키기 전에 먼저 미쳐 날뛰게 하는 법이지. 여기 있는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이들이 더는 두변에게 굴욕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너희들을 데리고 산장을 찾아가 정의를 구현하겠다.”

당엄이 차갑게 말했다.

염세와 나머지 환관들은 기뻐하며 당엄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당 대사, 정말 감사합니다.”

당엄에게 당 대사라는 호칭까지 붙이다니, 정말 가관이지 않은가.

염세와 나머지 환관들이 보기에 차기 엄당의 수장인 당엄이 두변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인물이었다. 당엄이 직접 나선다면 이문회도 두변을 보호하지는 못할 것임은 물론 두변을 엄벌에 처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진심으로 기뻐했다.

염세가 말했다.

“가자. 두변 네가 날뛰는 날도 오늘로 끝이지. 나와 같이 산장에게 가서 무엇이 정의인지 한번 따져보자.”

“가자. 가!”

나머지 환관 여섯에게서는 조금 전의 비굴한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들의 눈빛은 증오로 가득 찼으며 두변을 직접 잡아다가 이문회 앞에 데려갈 기세였다.

“그래. 가보자!”

두변이 몸을 일으키면서 빙긋 웃었다.

일각의 시간이 지난 뒤, 이들은 산장 이문회 앞에 도착했다.

이문회의 서재에는 이문회와 낭정 말고 수염과 머리카락이 모두 허옇게 센 대환관이 한 명 더 있었다. 은포(銀袍)를 입고 있는 그는 길게 찢어진 눈매와 하얀 피부, 그리고 날카로워 보일 정도로 얇은 입술을 가지고 있었다.

두변은 순간적으로 이 환관의 신분이 광서 동창 진무사 왕인임을 짐작했다. 광서 진수 환관의 자리가 잠시 공석이기에, 왕인이 광서 엄당에서 가장 관직이 높다 할 수 있었다.

지난번 이문회와 왕인이라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듯이, 왕인은 전형적인 엄당의 관료로, 조금이라도 손해 보는 짓은 절대 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는 문관과 무장 집단이 득세하자 이문회의 뒤에 숨어 문무의 관료들과 갈등이 생기는 걸 최대한 피해왔었다.

이문회가 말했다.

“두변, 진무사 대인께 인사드리거라.”

두변이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산장, 그리고 진무사 대인을 뵙습니다.”

두변이 이문회를 자신보다 먼저 불렀다는 사실에 왕인의 눈빛이 약간 흔들렸다.

물론 두변으로서는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속이 의뭉스러운 왕인은 공개적으로 이런 어린놈을 꾸짖을 수는 없어서 못마땅한 표정을 숨기며 웃음을 지었다.

“네가 바로 우리 광서 엄당을 위기에서 구해낸 두변이냐? 과연 훌륭한 인물이로구나.”

두변이 몸을 일으키며 대답했다.

“왕 공공의 칭찬에 감사드립니다.”

진무사 왕인이 매우 상냥하게 타이르듯 말했다.

“우리 광서 엄당에 인재가 정말 많구나. 앞으로도 너희 산장을 보며 많이 배워 학생들의 귀감이 되어라.”

“예, 진무사 대인.”

이때 당엄이 앞으로 나서면서 가볍게 공수하며 말했다.

“당엄, 진무사 대인을 뵙습니다.”

동창 진무사 왕인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그는 몸을 일으켜 당엄에게로 다가가 별로 허리를 숙이지도 않은 당엄을 직접 부축해 일으켰다.

“네가 바로 당엄이로구나. 딱 봐도 인재라는 걸 알 수 있겠다.”

왕인은 칭찬을 멈추지 않았다.

“이런 인재가 우리 엄당의 수장이 되어야지. 암. 그렇고말고! 당엄을 보게 되었으니 이번 발걸음이 헛되지 않았구나. 안남 왕국에서 급하게 돌아온 보람이 있어!”

옆에서 지켜보던 염세와 환관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두변과 이문회는 무표정으로 일관했지만 진무사 대인이 표면적으로는 환관 학원의 3대 학부 대회의 승리를 축하해주러 왔지만, 실질적으로는 당엄에게 힘을 실어 주러 왔다는 것을 일찍이 짐작하고 있었다.

낭정과 왕인이 이렇게 빨리 움직이는 걸 보니 당엄 배후의 세력이 막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뒤이어 왕인은 얼굴이 돼지처럼 빨갛게 부어오른 상태로 바닥에 꿇어앉아 있는 염세와 환관들을 발견했다.

“너희들은 어찌 된 일이냐?”

왕인이 물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염세를 포함한 일곱 명의 환관 학생들이 즉시 머리를 땅에 조아리며 말했다.

“두변이 권세를 등에 업고 저희를 업신여기니, 진무사 대인께서 도와주십시오.”

“어찌 된 일이냐?”

왕인의 물음에 염세와 환관들은 두변이 어떻게 그들을 괴롭혔는지 낱낱이 고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따귀를 때리게 된 일, 염세가 두변의 발을 씻겨준 일 등을 자세히 말하면서 기름을 붓고 불도 붙였다.

말을 마친 환관들은 눈물샘이 터진 것처럼 완전히 눈물범벅이 되어서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모습으로 땅바닥에 엎드려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곧 혼절이라도 할 것처럼 울어댔다.

왕인의 안색이 갑자기 변하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두변을 바라봤다.

그러자 부산장인 낭정이 소리쳤다.

“다들 헛소리하지 말거라. 두변은 명문가의 자제인데 어찌 이처럼 경박한 짓을 할 수 있겠느냐?”

염세가 머리를 땅에 조아리며 말했다.

“저희들이 말한 것은 전부 사실입니다. 만약 의협심이 강한 당엄 사형이 저희를 도와주지 않았다면 저희는 두변에게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굴욕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동창 진무사 왕인이 당엄을 보며 물었다.

“이게 모두 사실이냐?”

당엄이 대답했다.

“모두 사실입니다. 제가 직접 보았습니다.”

“두변 네놈이 오만방자하기 그지없구나!”

진무사 왕인이 두변을 노려보며 매섭게 꾸짖었다. 그가 손바닥으로 책상을 내리치자, 서재에 있던 모든 등불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염세 등은 주변의 공기가 얼음처럼 차가워지자, 불현듯 몸을 떨었다.

왕인의 무공이 상당한 수준임이 분명했다.

“두변, 한쪽 얘기만 듣고 판단할 수 없으니 네 얘기도 들어봐야겠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이냐?”

낭정의 질문에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부 사실입니다.”

진무사 왕인의 눈빛이 더욱 냉랭해졌다.

“이처럼 오만방자하고 경박하다니! 별로 대단하지도 않은 공을 하나 세워놓고 이처럼 제멋대로 행동해? 네놈이 높은 자리에 앉으면 하늘도 두려워하지 않겠구나! 문회, 네가 정말 좋은 학생을 두었구나!”

이문회가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나더니 왕인에게 허리를 숙이며 용서를 빌었다.

낭정이 여전히 온화한 태도를 유지하며 말했다.

“두변, 네가 왜 이런 짓을 했는지 말해 보아라. 분명 이유가 있을 것 같구나.”

“염세와 그 무리는 예전부터 저를 괴롭혀왔습니다. 진 빚이 있으면 갚는 게 인지상정이라고 배웠습니다.”

“이렇게 속이 좁아서 어떻게 큰일을 해낼 수 있겠느냐? 이런 자는 엄당의 기둥이 될 자격이 없다!”

진무사 왕인이 꾸짖었다.

낭정이 물었다.

“두변, 네가 산장에게 염세를 험담해서 그의 앞날을 망치려 했다는 게 사실인 거냐?”

“사실입니다.”

두변이 대답했다.

낭정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 덜떨어진 녀석이 자진해서 협조해주는구나!

제아무리 천재라 하더라도 이렇게 경박하면 빛을 발하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져 버릴 수밖에!

낭정의 다음 말은 의미심장할 수밖에 없었다.

“두변, 네 말을 어린아이의 투정쯤으로 받아들이겠다. 이제 왕 공공 앞에서 염세와 나머지 학우들과 안 좋았던 지난날은 모두 잊고 화해를 했으면 한다. 오늘 이후로 한마음 한뜻으로 우리 엄당을 위해 헌신해야지.”

“죄송하지만 그렇게 못하겠습니다. 저들이 먼저 저를 괴롭혔는데 왜 제가 복수하면 안 된다는 겁니까?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두변이 이렇게 말하자 낭정은 속으로 더욱 기뻐했다. 당엄도 경멸의 눈빛을 보냄과 동시에 득의양양한 웃음을 지었다.

유독 진무사 왕인만 대로하여 성난 목소리로 꾸짖었다.

“오만방자하도다. 여봐라. 두변을 끌고 오너라. 내 직접 저놈을 처리해야겠다!”

뜻밖에도 대로한 왕인이 두변을 때려죽이려 하고 있었다.

계급이 분명하게 나뉘는 엄당에서는 진무사가 소환관 하나쯤 때려죽이는 것은 파리 한 마리 잡는 것처럼 별로 대수롭지도 않은 일이었다.

무사 몇 명이 다가오더니 두변을 끌고 가 때려죽이려고 했다.

이문회가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왕 공공, 시간이 늦었습니다. 연세도 있으신데 일찍 들어가서 쉬시지요.”

현장에 있던 모두가 이 말을 듣고 놀라 안색이 변했다.

서재는 숨소리조차 내기 어려울 만큼 조용해졌다.

낭정과 당엄, 그리고 염세 등은 경악해서는 하마터면 바지에 오줌을 지릴 뻔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며 당황한 건 왕인이었다. 왕인은 이문회가 한 말을 믿기 어려워 이문회를 돌아봤다.

이문회가 내뱉은 말의 뜻은, 그가 자기 뜻에 반하겠다는 것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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