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장: 진짜 천재란 이런 겁니다!
지금 모인 제자 셋은 자타가 공인하는 수재로, 수많은 청년 준걸 중에서 십만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발탁된 인물들이었다.
영종오는 총 네 명의 제자가 있었는데 나머지 한 명은 신분이 특수한 탓에 마음대로 시험을 보게 할 수가 없었다.
제자 셋은 시험지를 집어 들자 곧바로 절망에 가득 차 슬피 울부짖었다.
“사부, 혹시 학생들을 학대하면서 쾌감을 얻으십니까? 이걸 어찌 저희더러 풀라고 하시는 겁니까?”
“사부, 이전의 문제들은 그래도 어찌어찌 풀어볼 만했는데 이번 시험지는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저도 재능이 있다고 자부하는 편인데, 이 문제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암울하고 고통스러운 한 시진을 보내고 나서 제자 셋이 답안지를 제출했고, 대종사 영종오는 채점을 시작했다.
잠시 후 최종 점수가 나왔다.
최고점은 고작 35점이었고 최저점은 20점이었다.
영종오는 제자 셋에게 욕을 한 바가지씩 쏟아부으며 일각 동안 훈계했다. 하지만 몸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서는 슬쩍 웃으며 굉장히 만족해했다.
이 천재 제자들을 괴롭히고 났더니 짜릿하고 상쾌하기까지 했다. 그만큼 이번 시험 문제는 절망적인 난제였다.
이문회가 데려온 의자도 당연히 엄당이겠지?
영종오가 엄당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 엄당의 아이들은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서 이렇게 깊이 있는 학문을 접해 볼 기회가 없었다.
이문회가 데려온 소환관도 50점을 넘기기란 불가능하고 나름 선방하는 것이 10점을 넘기는 수준일 것이다.
이문회의 의자란 놈의 안색이 창백해져서는 절망이 가득한 표정을 짓는 걸 보고 싶구만!
영종오는 갑자기 내일 일어날 일들이 기대가 되었다.
이미 예순이 넘은 나이건만, 여전히 아이 같은 면이 있던 영종오는 이런 데서 즐거움을 찾았다.
이문회와 두변은 연화산 밑에 있는 민가를 찾아서 집주인에게 은자 2냥을 건넸다. 민가의 온 가족이 기뻐하며 자리를 비켜주었고, 둘은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을 계획이었다.
두변은 간단한 재료로 식사를 준비한 후, 이문회에게 차를 끓여다 주었다.
“일찍 잠자리에 들도록 해라. 내일 대종사의 시험은 매우 어려워서 80점을 받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한두 문제만이라도 놀랄 만한 답을 적어내면 대종사는 충분히 기뻐할 게다. 물론 네가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방법을 생각해 둔 게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두변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산장, 영종오를 꼭 사부로 모셔야 합니까?”
“물론이다. 무엇보다 그의 연기(煉氣) 공법은 세계 제일이란다. 게다가 대종사의 강력한 현기가 네 몸을 뚫어준다면, 근맥에 기를 운용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몇 배는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대종사는 정신(精神) 공법에 대한 조예도 남다르기 때문에 너의 연단학과 기마술, 그리고 궁도에도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모든 방면에서 몇 배의 효율을 얻는 거지.”
두변은 영종오의 이름이 허명이 아님과, 자신이 영종오 대종사의 문하에 들어가면 확실히 많은 부분이 이득임을 깨달았다.
두변은 어떻게든 대종사의 밑으로 들어가겠다고 결심했고,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내일 있을 시험을 잘 치르는 것이 급선무였다.
허름한 침상에 누워 잠을 청한 두변은 곧 꿈의 세계로 들어갔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는 영종오 대종사의 시험 문제에 관한 꿈을 꾸게 되었다.
시험지를 집어 들어보니 총 열 문제가 있었는데 한번 훑어보자마자 바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니 이게 무슨 문제야. 지금 이걸 나더러 풀라는 거야?
시험 문제는 총 열 문제였지만 천문지리, 산술, 무도, 연단, 시 등의 영역을 포괄하고 있으며 그중 세 문제는 각 분야를 통합한 문제였다.
젠장. 피 토할 정도로 어렵잖아!
완전히 사람을 괴롭히려고 만든 문제 아니야?
이제 두변은 영종오가 모든 방면에 뛰어난 대종사임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되었다. 그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반인은 도무지 접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지식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준 집단이 있을 것이다.
두변은 영종오가 내는 문제들이 원주율이나 피타고라스의 정리 같은 것들일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이런 문제들은 이 세계의 사람들에게야 어렵겠지만 두변에게는 사실 식은 죽 먹기였다.
하지만 뜻밖에 그 첫 번째 문제가 달이 지구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구체적인 연산 과정을 기술하라는 것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답은 38만 4천 킬로미터로, 대학생이라면 99% 이상이 문제의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대충 30만 킬로미터라고 말해도 정답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이 답을 어떻게 산출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50% 이상의 대학생이 답을 하지 못할 것이다.
이 세계에는 전자파나 레이저 측량이 불가능하니 이런 것들은 논외로 하자.
하지만 두변은 운 좋게 답을 아는 50%에 속해 있었다. 두변은 지구와 달의 거리를 어떻게 구하는지 알고 있었고, 심지어 고대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풀 수 있었다.
내가 허세를 부리고 싶은 게 아니라 너희들이 시킨 거야!
어쨌든 문제는 풀어야 하니까!
계산 과정이 복잡하긴 하지만 지구와 달의 거리를 구하는 방법은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사용한 월식(月食)에 삼각형을 활용한 방법을 따르면 된다.
첫 번째 단계, 지구와 달이 모두 원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인데 이건 별로 어렵지 않다.
두 번째 단계, 직선거리가 2,000리(약 785킬로미터)가 되는, 지면에 수직인 우물 두 개를 찾는다. 동시에 태양광선이 두 개의 우물에 비치는 각도의 차이를 관찰한다. 서로 다른 지점이기 때문에 태양광이 비치는 각도도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 각도의 차이와 두 지점 간의 거리가 2,000리라는 것, 그리고 원주율, 이 세 가지를 활용하면 지구의 둘레와 지름을 구할 수 있다.
세 번째 단계, 월식이 시작되어 완전히 가려지기까지의 시간을 기록한다. 그리고 달이 완전히 가려졌을 때부터 다시 보름달이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의 시간을 기록하고, 이 두 시간의 차이를 활용하면 달의 지름이 대략 지구의 1/3.5라는 것을 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동전을 준비해 달을 정확히 겨냥하고는 동전이 완전히 달을 가리게 한다. 눈과 동전과의 거리를 계산해보면 동전 지름의 110배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달의 지름에 이 110을 곱하면 달과 지구의 거리가 70만 리쯤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렇게 계산해낸 결괏값은 정확도가 조금 떨어지긴 하나 영종오를 설득시키기에는 충분했다. 게다가 새로운 수학 공식을 사용할 필요도 없이 이 세계에서 이미 존재하는 원주율만 있으면 됐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몇십 년의 시간을 들여 달과 지구와의 거리를 구해냈지만 두변은 그들의 몇십 년의 노고를 가져와 단 몇 분 만에 영종오를 놀라게 하는 천재로 둔갑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 역시 어려웠다. 이 문제는 삼원이차방정식을 써야 풀 수 있기 때문에 이 세계의 사람들에게는 최악의 문제였을 것이다.
이 세계에서의 수학적 성취는 중국 고대와 별반 다르지 않거나 오히려 조금 뒤처져 있어서, 보통 지식인들은 사칙연산을 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여길 정도였다. 그런데 영종오는 삼원이차방정식 문제를 냈으니, 이게 사람을 괴롭히는 게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두 번째 문제도 명문대 석사학위까지 받은 두변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다.
세 번째 문제는 역사에 관한 문제였는데 매우 지엽적인 역사 문제였다.
<사기>의 <봉선서(封禪書)>에 기록된 내용에 따르면, ‘진시황이 봉선(封禪: 제왕이 천지를 제사 지낸 의례)을 행한 후 12년 후에 진나라가 멸망했다. 진시황이 시와 서를 불태운 것에 여러 유생이 분노했고 백성들 또한 이 사실을 전해 듣고 원성이 높아졌으며 결국 천하가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느 군왕부터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으며 그 증거는 무엇인가?
문제가 너무 어려워서 도저히 풀지 못할 수준이었다.
하지만 운 좋게도 두변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알고 있었다. 답은 바로 주공(周公) 희단(姬旦: 주나라 인물. 문왕의 넷째 아들이며, 둘째 형이 무왕)이다. <주공과산하간서(周公與山河簡書)>에 따르면 무왕(武王)의 신체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나타나 동생 희단으로 하여금 대신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내라고 하였고, 그 후로 제사를 지낼 수 있는 권리는 군왕 혹은 군왕 계승자들만 가지게 되었다.
세 문제도 두변이 자신의 실력으로 풀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나머지 일곱 문제는 도무지 어떻게 풀어야 할지 전혀 감도 잡지 못했다. 특히 마지막 세 문제는 현기, 성신(星辰), 무도, 연단학 등 네 과목을 연계해 출제했기 때문에 두변으로서는 도저히 풀 엄두도 나지 않았다.
다시 말해 두변은 자신의 실력으로만 문제를 풀면 30점밖에 못 받는다는 말이었다. 이 점수도 아주 대단하긴 했지만, 영종오가 요구한 80점에는 한참 못 미쳤기 때문에 두변은 결국 시험에 통과하지 못할 것이고 영종오를 사부로 섬길 수 없게 되며 빈손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고대인인 영종오가 이런 문제를 열 개나 냈다는 건, 그의 지식이 뛰어나다는 정도가 아니라 괴물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의미였다.
바로 이때 꿈속에서 흰옷의 노인이 다시 한번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얼굴빛이 전에 없이 매우 엄숙했다.
“영종오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그로부터 이 세계에서 가장 심오한 비밀을 얻어 내야 한다. 그 비밀은 네가 이 세계로 오게 된 최후의 사명과 관련돼 있다.”
두변은 경악했다.
두변이 그를 사부로 모시려고 했던 것은 영종오 밑에서 자신의 연단학, 무도, 기마술 등의 능력을 단기간에 향상해 졸업시험에서 1등을 받기 위해서일 뿐이다. 이 세계로 오게 된 최후의 사명에 대해서는 솔직히 별로 달갑지 않았다.
“물론, 이건 지금의 너에겐 먼일이기 때문에 애써 그에게서 비밀을 캐내려 할 필요는 없다. 일단 그의 자랑스러운 제자가 되는 게 급선무다.”
노인의 말에 두변이 대답했다.
“영종오는 저를 제자로 받을 생각이 없어서 문제를 이토록 어렵게 냈습니다. 제 능력으로는 세 문제 푸는 게 고작이니 빈손으로 돌아가게 생겼습니다. 남은 일곱 문제의 답 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두변이 문제를 흰옷의 노인 앞에 놓으며 말했다.
“안 되지. 네 힘으로 풀어야지. 다만 내가 너에게 책 몇 권을 주도록 하마. 책을 참조하면 답을 얻을 수 있을 게다.”
“알겠습니다.”
대답을 마친 두변은 눈앞에 책들이 무려 1미터가 넘는 높이로 쌓인 걸 보고는 할 말을 잃었다.
이, 이게 다 몇 권이야!
일반 사람들은 이 책들을 다 읽으려면 몇 년의 시간이 걸릴 것이며, 꿈의 세계라는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 두변도 10분의 1 정도밖에 읽지 못할 것이다.
“첫째, 위험한 도박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정신력이 향상되었을 테고 네 뇌 사용량도 많이 증가했을 것이다. 게다가 꿈의 세계에서는 현실에서보다 시간이 훨씬 느리게 흐르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지. 하지만 하룻밤 만에 이 많은 책을 완전히 네 것으로 만들진 못할 테니 선택적으로 독서 할 필요가 있다. 네가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지는 운에 달렸다고 봐야겠구나.”
말을 마친 흰옷의 노인은 모습을 감췄고, 두변은 더할 나위 없이 괴로운 독서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몇십 권이나 되는 책을 다 읽기란 불가능하기에 선택적으로 독서를 한 후, 사고를 확장시켜 부족한 내용을 채워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두변은 그렇게 독서에 몰입했고 몇천 자를 읽은 후 사색에 잠기기를 반복했다.
현실에서의 열 시간이 꿈속에서는 보름의 시간과 맞먹었지만, 시간은 여전히 빠듯했다.
두변은 꿈의 세계에서 닷새 동안 독서를 한 끝에 네 번째 문제에 대한 해답을 구해냈다.
다시 나흘의 시간이 지나고 다섯 번째 문제에 대한 해답을 구했다.
다시 사흘의 시간이 지나고 여섯 번째 문제에 대한 해답을 구했다.
거기에 다시 사흘의 시간이 지나고 일곱 번째 문제에 대한 해답을 구했다.
꿈의 세계가 끝날 시간이 다가왔음에도 두변은 일곱 문제밖에 풀지 못했다.
영종오가 요구한 점수는 80점이니, 70점밖에 받지 못한다면 시험을 통과할 수 없을 것이다.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두변은 남은 책들의 마지막 장까지 빠르게 넘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한 책의 마지막 장에 열 문제에 대한 정답이 차곡차곡 정갈하게 적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 진짜 욕 나오네!
‘가르쳐줄 수 없다, 네 실력으로 해라.’라고 말해 놓고는, 정답을 맨 마지막 장에 숨겨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