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49화 (49/648)

제49장: 이번에도 100점!

두변은 노인의 사악한 미소가 눈앞에 선하게 보일 정도였으나,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열 문제의 정답을 빠른 속도로 암기하기 시작했다. 계속 반복하며 열 번 정도를 외우자 어느 정도 머릿속에 정답이 각인되었다.

이때 수탉의 울음소리가 두변의 귀에 파고들면서, 그는 잠에서 깼다.

밖은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이문회가 다그쳤다.

“준비해 놓은 아침밥을 먹을 시간이 없겠구나. 시간이 30분밖에 남지 않았다.”

두변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 만두 몇 개를 집어 들고는 연화사로 달려갔다.

20분 뒤, 두변은 영종오 대종사 앞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는 두변이 사찰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고 밖에 있는 돌 탁자 위에서 시험을 치도록 했다.

“열 문제다. 한 문제당 10점으로 만점은 100점이다. 80점을 넘는다면 여기 남아 내 제자가 될 테지만, 80점을 넘지 못한다면 그대로 돌아가야 한다. 시험 시간은 한 시진을 주겠다. 그럼 바로 시작해라!”

말을 마친 영종오는 돌 탁자 위에 모래시계를 뒤집어 놓으며 시간을 재기 시작했다.

영종오는 필요한 말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두변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어쨌든 저 아이가 절대 시험을 통과하지 못할 테니 시험이 끝나면 그냥 쫓아내면 그만이었다.

이 장면이 어디선가 본 장면 같지 않은가? 대종사라는 자가 어찌 백천과 같은 꼬락서니일까? 단지 대종사로서 무공과 학문이 백천보다 천 배 이상 뛰어날 뿐.

이문회는 가까이 다가가서 문제를 한 번 살펴보고는 얼굴이 새파래졌다.

‘대종사, 이게 지금 무슨 의미입니까? 애초에 두변을 제자로 받을 생각이 아예 없는 겁니까? 이게 대놓고 거절하는 거랑 뭐가 다른 겁니까?’

이 문제들을 풀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대종사, 당신이 일전에 기연을 만나 모든 방면에 출중한 대종사가 된 것은 모두가 아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 누가 이 난이도의 문제를 여덟 개나 맞출 수 있단 말입니까?’

두변이 천재이긴 하지만 천재도 학습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한 법인데, 이 문제들은 천재라도 풀기 어려워 보였다.

결국 이문회는 희망을 버렸다. 대신 그는 속으로 영종오를 압박해 두변을 그의 제자로 만들 다른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종오는 옆에서 눈을 감고 한 시진이 빨리 지나 두변을 돌려보내기만을 기다렸다.

반대로 이때 두변은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시험지를 집어 들고는 또다른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80점을 받아야 하는 건가, 아니면 100점을 받아야 하는 건가. 이것도 아니라면 중용의 90점으로 가야 하나?

환관이 된 후로 이미 평범과는 거리가 멀어졌다고 판단한 두변은 30초 만에 결정을 내렸다.

황제를 쥐락펴락했던 십상시(十常侍)가 중용을 알았던가? 문무관을 처참히 짓밟았던 위충현이 평범했나?

그런데 고작 소환관 놈이 무슨 자격으로 평범한 척 저자세를 유지해야 하는가? 거인(舉人)이나 진사(進士)에 든 것도 아닌데 무슨 공명을 얻겠다고! 그건 가난뱅이가 부를 과시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어처구니없는 말이지!

마음을 정한 두변은 거침없이 답을 써 내려갔다.

한없이 어려운 문제 하나하나가 그의 필치 아래 풀리기 시작했고, 그 답들은 대종사가 미리 정해놓은 정답보다 더 뛰어났다.

정해진 시간은 한 시진이었으나 두변은 30분도 되지 않아 모든 답을 써냈다. 이번에는 답안 검토도 필요하지 않기에 곧장 붓을 내려놓았다.

“대종사, 문제를 다 풀었습니다.”

그는 답안을 검사할 필요도 없이 만점임을 알고 있었다.

눈을 감고 명상중이던 영종오 대종사가 잠에서 깼고, 깊은 시름에 잠겨 있던 이문회는 정신을 차렸다.

영종오 대종사가 모래시계를 보니, 고작 4분의 1 정도만 시간이 흐른 뒤였다.

하지만 이것도 의외는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문제의 난이도가 대부분의 사람은 건드리지도 못할 정도로 높았으니, 한 시진은커녕 열흘을 준다 해도 답안지를 작성하지 못할 것이지 않은가. 일찍이 포기하고 시간을 아끼는 것도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영종오는 백천처럼 천박한 인물이 아닌지라, 최소한 두변의 답안지를 집어 든 다음 평가를 해주고 나서 그를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답안지를 본 순간 영종오는 두변의 정갈한 글씨체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두변은 3대 학부 대회에 참가했을 때 꿈의 세계에서 서예를 익혔고 그것을 이번 답안지 잘 활용했다. 두변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미불의 글씨체로 답을 썼다.

영종오가 이를 보고 감탄했다.

“좋은 글씨체로구나.”

영종오 대종사가 말했다.

하지만 대종사 영종오는 두변의 글씨체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그에게 추가점수를 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대종사는 첫 번째 문제의 정답을 보는 순간, 좋은 글씨체 따위에 대한 관심이 모두 사라졌다.

말도 안 돼!

영종오가 ‘달이 지구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란 문제를 첫 번째 문제에 배치한 이유는 가장 쉬워서가 아니라 가장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두변의 기를 꺾기 위함이었다. 문제 자체만 놓고 보자면 가장 야심 차게 낸 문제였다.

사실 이 문제는 대녕 왕조의 학문도 아니었고 순전히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 낸 문제라서, 누군가 정답을 써낼 수 있으리라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는 나중에 자신이 죽기 직전에나 유언에다가 풀이를 써 놓아 자신의 명성을 후대에 알림과 동시에 백세에 길이 남을 유산을 베풀 생각이었다.

그런데 뜻밖에 두변이 정답을 써낸 것이다. 두변은 정확한 답을 써냈을 뿐 아니라 전반적인 계산 과정도 매우 상세하게 적었다.

두변의 답은 자신보다 더 정확하고 상세했다.

영종오의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도저히 믿기지 않아. 이건 미친 짓이야!

눈앞에 있는 사내는 엄당 소속의 소환관일 뿐이었다. 시험을 위한 교육만 받아왔던 그가 어떻게 이렇게 깊이 있는 천문학과 수학을 익힐 수 있었단 말인가!

두 번째 문제를 봤는데 이 문제도 역시나 정답이었고 마찬가지로 영종오 자신의 정답보다 더 정확했다. 게다가 두변은 완전 색다른 방식을 사용해서 더 진보적인 방식으로 답을 구해냈다. 영종오가 그 답을 보고 깨닫고 익힐 수 있게끔 답이 적혀 있었다.

이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지금 누가 누굴 시험하고 있는 건가!

세 번째 역사 문제도 역시 정답이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제자 세 명 모두 정답을 써냈기 때문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이어서 두변은 네 번째 문제도 정확한 답을 적어냈다.

지금까지의 성적만으로도 이미 자신의 제자들을 뛰어넘은 상태였다. 영종오는 점차 숨이 거칠어지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

대종사 영종오는 갈수록 답안을 자세히 살펴보게 되었지만, 이제 목구멍에서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정말 놀랍고도 두렵도다!

온몸이 굳기 시작했으며 머리가 마비되는 것 같았으며 시험 결과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두변이 써낸 열 문제의 답을 전부 살펴보았는데, 믿기지 않게도 백 점이었다!

입이 바짝 타기 시작한 대종사 영종오는 얼떨떨해하면서 현 사태를 부정하기 시작했다.

‘내가 낸 문제가 너무 쉬웠나? 아니야. 이건 내가 최선을 다해 낸 문제라고.’

‘아니면 내가 그렇게 뛰어난 인물이 아니었단 말인가?’

이 문제들은 영종오의 평생에 걸친 배움을 녹여낸 문제들이었다. 그런데 소환관 놈이 백 점을 맞았으니, 영종오는 지금 이 세상이 제대로 된 것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두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영종오는 한참이 지나서야 평정심을 되찾았다.

몇천, 많게는 몇만 명에 이르는 제국의 준걸들이 영종오를 사부로 모시고 싶어 찾아왔고, 이 뛰어난 젊은이들은 그가 낸 문제에서 60점만 받으면 제자가 될 수 있었고, 지금까지 단 세 명만이 60점을 넘었다. 나머지 제자 한 명은 어쩔 수 없는 이유로 거둬들이게 된 것이고.

이번에 두변에게 낸 열 문제는 이전 문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것인데, 뜻밖에 두변이 만점을 받았다? 이는 결국 이문회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과, 눈앞에 있는 이 소환관이 백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가 맞다는 것을 증명했다.

하지만 영종오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 것이 있었는데, 비록 천재라고는 하나 이토록 어린 두변이 어떻게 몇 개의 학과를 연계해서 낸 문제를 모두 맞혔냐는 것이었다. 심지어 개중에 몇 문제는 아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개념도 있었단 말이다!

“어떻습니까?”

이문회가 물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으나 자네의 의자는 만점을 받았네. 내가 이 세계를 의심하기까지 했어.”

이문회는 눈을 부릅뜨고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두변을 바라봤다. 방금 이문회 자신도 보긴 했지만, 도저히 못 풀 문제처럼 어려웠었다.

‘아무리 뛰어난 준걸이라도 세 문제 풀기도 벅차 보였는데, 두변이 다 맞췄다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문회는 이 일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고 다음 말을 꺼냈다.

“그럼 대종사께서 제 의자를 제자로 거둬주시는 겁니까?”

영종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연하지. 내 했던 말은 꼭 지킴세.”

이문회는 이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영종오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탄식했다.

“내 자유와 한적한 삶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영종오는 매우 고통스러웠다. 이 세계에 몇십 년을 갇혀 살면서 자유로운 삶을 동경해왔다가 어렵사리 자유를 얻은 듯했는데, 다시 천재 제자에게 발목을 잡히고야 말다니!

내키지 않았으나 결과에 승복할 수밖에.

영종오가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문회가 여러 차례 두변의 이름을 언급했음에도 대종사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게 분명했다.

“두변입니다.”

“두변, 너는 이제 내 제자가 될 것이니 그전에 묻고 싶은 게 있다. 이 문제들을 어떻게 푼 것이냐? 내 생각에 이 세계에서 그 문제들을 풀기란 불가능한데 말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듣지 못하면 인생에 회의를 느끼게 될 판이었다.

“제 지식으로는 세 문제에서 다섯 문제 정도밖에 못 맞추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젯밤에 신선이 제 꿈에 찾아와 문제들에 대한 답을 알려주셨습니다.”

영종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신선이 꿈에 찾아온 것이라면 이 세계를 의심하거나 인생에 회의를 느끼지 않아도 되겠지.

신선이 꿈에 찾아왔다는 것은 이 세계에 유행하는 고상한 이야기며, 대표적으로 한나라의 제일 승상인 장량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영종오가 두변을 보는 눈빛이 조금은 살가워졌다.

“두변, 네가 자신의 능력으로 세 문제를 풀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대단한 거다. 인재라는 걸 확인했으니 너를 제자로 받아들이마.”

두변이 허리를 숙여 절했다.

“제자 두변이 사부를 뵙습니다.”

“잠시 주변의 숲을 거닐고 있거라. 나는 네 의부와 할 말이 있다.”

두변은 즉시 수십 보 뒤로 물러났다.

“이미 두변을 제자로 받아들이기로 약속했으니 이제 속 얘기를 꺼내 보게.”

영종오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대종사.”

“저 아이를 키워 이루고 싶은 게 무엇인가? 자네 엄당은 공리적이지 않은가. 두변을 내게로 보낸 이유를 솔직히 말해 보게.”

“제 의자는 줄곧 무지몽매하게 살아왔으나 한 달 전 어느 날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후로 많은 것을 깨우친 모양입니다. 그때부터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습니다.”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영종오도 비슷한 상황을 본 적이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영종오가 듣고 싶었던 건 이런 대답이 아니었다.

그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보게. 무엇 때문인가? 내 밑에서 몇 년 동안의 수련을 거쳐 몇 품의 고수로 만들려는 것인가?”

“두변은 다섯 달 후에 학원의 졸업시험에 참가해야 합니다. 저는 두변이 10등, 조금 욕심내서 5등 안에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두변은 1등을 해야 했지만 이문회는 이 사실을 몰랐고, 그저 염세보다 뛰어난 성적을 거두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두변의 성적은 어떠한가?”

“기마술, 무도, 연단학은 기초 이론만 익혔을 뿐입니다. 최근에 본 시험에서는 꼴찌를 했고요. 처음부터 다시 배운다고 봐야 하지만, 저는 다섯 달 동안 두변을 꼴찌에서 5등까지 끌어올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XX, 뭐라고?!”

영종오는 믿기 어렵다는 듯 경악했다.

당황한 나머지 대종사는 하남(河南) 사투리로 욕을 내뱉고 말았다.

만약 이 세계에 영어가 있었더라면 영종오의 지금 심정은 ‘Are you killing me?’ 정도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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