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장: 훈련 첫날
방검지와 원정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광서까지 온 이유는 바로 제국의 가장 찬란한 보물인 영설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서였으니, 어찌 두변 같은 별 볼 일 없는 인물에게 신경을 쓰며 자기 체면을 깎겠는가?
“그리고 대종사가 적당한 이유를 찾아 그를 내쫓으실 거니까 두변도 여기 오래 머무르지 못할 거다. 부황께서 부르시면 나는 바로 경성으로 돌아가야 해. 그러면 대종사도 자유롭게 천하를 돌아다니실 수 있게 되는데, 굳이 제자를 거둬서 자신을 옭아맬 필요가 없겠지.”
“와, 저 소환관 너무 가엾네요. 계속 버려지기만 하다니.”
귀여운 시녀가 말했다.
“저 사람이 가여워? 그럼 네가 저 사람에게 시집가면 되겠네.”
“그건 싫어요. 두변은 소환관이잖아요. 가엾긴 해도 그를 위해 희생하긴 싫어요”
정원.
“두변 사제, 어서 와라.”
영종오의 세 제자 중 평범하게 생긴 청년만이 두변에게 미소를 지으며 예를 갖췄다. 그는 온화한 얼굴에 부드러운 눈빛이었다.
“사형께서는…….”
두변도 답례를 하며 조심스럽게 그의 이름을 물었다.
“영충요.”
평범하게 생긴 청년이 대답했다
이름을 들은 두변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이름은 황족인 계왕(桂王)의 세자 이름이었다. 계왕과 이문회의 관계는 매우 가까우니 이 세자도 두변과 같은 편인 셈이었다.
‘대종사 영종오의 제자가 총 네 명이라지 않았나?
지금 겨우 세 명인데, 셋 다 하나같이 존귀한 신분인 걸 보면 나머지 한 명도 신분이 어마어마하겠군.’
영종오는 방검지와 원정이 두변을 어떻게 대하든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나머지 한 명은 지금 만나보기 곤란하니 나중에 볼 기회가 되면 그때 보도록 해라. 일단 가서 지낼 방을 하나 고르거라. 가운데 있는 누각과 가깝지만 않으면 된다.”
두변이 주변을 둘러보니 연화사 안에 처소가 꽤 많은데, 가운데 있는 누각이 유독 화려하고 웅장했다. 물론 그 안에 누가 살고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두변은 가장 외진 곳에 있는 거처에서 지내기로 했다.
두변은 영종오가 처세에 능한 인물이 아니며, 제자들이 서로 어떻게 지내는지 전혀 신경 안 쓴다는 점을 깨달았다.
방검지와 원정은 둘이 붙어 다니지만 서로를 무시하기도 했고 또 서로를 경쟁 상대로 여기기도 했다.
계왕 세자인 영충요는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고 방검지와 원정과는 인사만 하는 사이였기에 저들과 친분도 두텁지 않았다. 하지만 영충요가 황족 신분인 만큼, 방검지와 원정도 그에 대해 적당한 수준에서 경의를 표하고 있었다.
두변은 이들에게 있어 철저한 외부인이었기에 누구도 그를 안중에 두지 않았고, 방검지와 원정은 두변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걸 불쾌하게 여기면서 하루빨리 두변을 내쫓고 싶어 했다.
가운데 있는 누각의 신비한 제자는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누구와도 친분을 맺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하지만 두변은 그 안에서 울려 퍼지는 금 소리를 듣게 되었다. 매우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오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상당한 연주 실력을 갖추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날 저녁, 대종사 영종오가 두변의 처소로 찾아왔고 첫날밤부터 바로 수업을 시작했다.
“민첩성 수업을 시작하겠다. 첫째는 검을 재빨리 뽑는 것이다!
가장 빠른 속도로 손에 쥔 목검을 내질러라. 최대한 빠르게 움직이고 검끝이 같은 지점을 찌르게 신경 써라.”
두변은 깊게 숨을 들이쉰 다음 빠른 속도로 목검을 내질렀다.
슉. 슉. 슉.
벽에 걸린 흰 종이에 점 세 개가 나타났다.
굉장히 처참한 결과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1초에 검을 세 번밖에 내지르지 못했고, 그나마 그것도 같은 지점을 겨냥하지 못했다는 의미니까.
“자. 날 따라 외쳐라. 응취정신(凝聚精神: 정신을 한 곳에 모으다)!”
구호를 세 번 외친 후, 두변은 시선과 정신을 검끝에 모았다.
“다시 찔러! 더 빠르게 한 곳만 찌르는 거다!”
두변은 정신을 집중해서 흰 종이 위의 한 지점을 겨냥해 목검을 내질렀다.
슉. 슉. 슉.
이번에도 1초에 세 번을 내질렀지만 종이 위에는 점 두 개만 남았다. 최소한 두변이 같은 지점을 두 번 명중했다는 의미였다.
구호 몇 구절만으로 실력을 향상시키다니, 과연 대종사는 대단하다 할 만했다.
영종오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정신력이 너무 낮아서인지 결과가 처참하군.
이 정도의 정신력이면 정말 가망이 없는 거다. 게다가 선천적인 민첩성도 너무 낮아. 보통 사람들도 호흡 한 번에 검을 여섯 번은 내지를 수 있다.
민첩성과 정신력이 환관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인데도 너는 이 두 가지 능력이 형편없구나. 괜히 시간 낭비하지 말고 이만 돌아가거라.”
두변의 민첩성이 고작 5밖에 되지 않으니 터무니없이 낮은 셈이고, 정신력도 한 번 능력치가 향상되었음에도 고작 40이니 영종오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이렇게 하자. 네게 민첩성을 집중적으로 향상할 수 있는 <역근유술(易筋柔術)>이란 책을 주겠다. 이걸 연마하면서 모르는 게 있으면 나를 찾아오도록 해라.
닷새 후에 네 능력을 다시 확인하겠다. 그때 한 호흡에 검을 열 번 내지른다면 합격으로 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여기서 떠나야 할 게다.”
대종사는 정말 두변을 내쫓고만 싶었다.
“알겠습니다.
‘역근유술’이라는 책을 완전히 연마한다면 대종사가 말씀하신 기준치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까?”
“이 ‘역근유술’은 딱 열 수로 이루어져 있다. 만약 네가 이 모든 것을 제대로 연마한다면 민첩성은 내가 말한 기준치 혹은 그 이상에도 도달할 것이야.”
두변은 고작 열 수만으로 민첩성을 대폭 향상할 수 있다는 그 공법(功法)에 감탄했다.
영종오는 별다른 말 없이 돌아갔다.
두변은 ‘역근유술’을 펼쳐보았는데 편찬자가 영종오라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공법을 찬찬히 살펴본 두변은 이것이 격렬하면서도 속도감이 있는 요가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공법을 통해 근맥을 극한으로 끌어 올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근육과 골격의 탄력도 같이 단련할 수 있었다.
요컨대, 두변이 아주 잠시 살핀 것이지만, 이 공법은 민첩성 향상에 매우 유용하고 제격이라고 할 수 있었다. 기초 공법의 비적(秘籍)일수록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을 만한데, 그러니 대종사가 성질은 더러워도 그 능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책을 몇 번 살펴본 후 두변은 공법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두변은 ‘역근유술’의 첫 수를 연마하기 시작했다. 두변은 이 공법이 보기에는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로 해보면 난이도가 상당하다는 것을 바로 깨달았다. 이는 근맥과 역학의 균형을 극한까지 밀어붙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실수가 있으면 모든 것이 무너지게 되는데, 만약 이 상태로 훈련을 강행한다면 근맥에 심한 손상을 초래하게 된다.
두변은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계속해서 연습했다.
그렇게 몇십 번을 반복하고 나니 온몸이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서, 온몸의 근맥이 다 끊어진 것 같아 더는 연습을 이어가지 못할 수준이 되었다.
한 수도 제대로 연마하지 못했으니 첫날은 실패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세 시간 후, 밤은 이미 깊었다.
노복 한 명이 들어와서는 자기병 하나를 건넸는데, 그 안에는 근맥과 상처 회복을 돕는 표태유가 들어있었다.
노복은 두변과 눈 한 번 마주치지 않고 연고를 책상에 놓고는 나가버렸고 그길로 대종사를 찾아갔다.
“그래, 어떤가?”
대종사 영종오가 물었다.
“한 수도 제대로 연마하지 못했는데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저런.”
영종오는 슬픔인지 기쁨인지 모를 한숨부터 내쉬었다.
닷새 후에 두변이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그대로 쫓아낼 수 있으므로 새로운 제자를 거둘 필요도 없고 자유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지는 셈이었다. 그러니 충분히 기쁜 일이 아닌가. 하지만 이문회가 결코 대단한 인재가 아닌 두변에게 모든 희망을 걸었다면 실망할 수밖에 없을 테니 동시에 슬퍼할 수밖에 없었다.
“잘된 일 아닙니까? 소환관을 내쫓으면 자유가 더 가까워지십니다. 공주 전하가 경성으로 돌아가면 원정과 방검지도 떠날 겁니다. 그렇게 제자 넷이 모두 떠나면 대종사께서도 한적한 삶을 누리실 수 있고요. 줄곧 북변의 몽고와 서역, 동영, 과와(瓜哇: 인도네시아 자바섬)에 가고 싶어 하시지 않았습니까?”
노복이 물었다.
“그렇지. 닷새 후에 두변을 내보내고 나면 모든 걸 내려놓을 준비를 해야겠다.”
말을 마친 대종사는 조금은 자책감을 느꼈다.
“두변이 닷새 안에 ‘역근유술’의 열 수를 모두 해낼 가능성이 있다고 보느냐?”
“불가능하죠. 이 공법은 간단한 듯 보이나 근맥의 균형을 잡아야 하며 기도 잘 운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간단한 기초일수록 더욱더 어렵지 않습니까. 어르신의 가장 뛰어난 제자도 열아흐레가 지나고 나서야 이 ‘역근유술’을 완성하지 않았습니까. 더욱이 그 제자는 당시 열네 살이었기에 지금 열여덟인 두변보다 훨씬 유연했습니다. 두변은 근맥과 골격이 이미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이 공법을 익히기 가장 좋은 시기를 놓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영설 공주도 열아흐레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역근유술’을 완성했던 것만큼, 두변이 닷새 만에 이를 해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같은 시각. 두변은 다시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꿈의 세계로 들어갔다.
“지금쯤 이문회가 경성으로 들어가 왕회수를 구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고 있을 텐데, 나는 그의 의자를 내쫓을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이게 맞는 건가?”
영종오의 물음에 노복이 대답했다.
“어르신께서 이문회에게 가르침을 베푸셨으니 그가 보답하는 것도 당연한 겁니다. 게다가 예전엔 정의와 의리를 지킬 열정이 있으셨지만, 현실에 계속 실망하면서 열정을 잃으신 거 아닙니까.”
“그래. 난 이미 열정을 잃었지. 이젠 모든 짐을 벗어 던지고 멀리 떠나고 싶구나.”
영종오는 술병을 집어 들고 한 모금 들이키더니 고통스러운 듯 말을 이었다.
“대녕 왕조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오늘내일하고 있다. 길어야 몇십 년이야. 사실 진작에 끝났어야 하지.”
연화사의 가장 가운데 있는 누각 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모든 방면에 뛰어난 여인이 욕통에 안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여인이 어떻게 이 지경에 이를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지 의아해하곤 한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뛰어넘은 터라 그녀를 본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눈을 의심할 정도지만 뒤돌아서면 그녀의 얼굴을 기억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 여인이 바로 제국의 보물이라고 칭송받는 영설 공주였다.
욕통에는 싱싱한 꽃잎들이 떠 있고 주변은 물안개로 자욱하게 피어올라 고혹적인 향기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욕통에만 몇십 가지의 여러 약물이 들어가 있었다.
시녀가 말했다.
“전하, 대종사가 두변에게 ‘역근유술’을 수련하라 했답니다.”
“그래.”
영설은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에효, 대종사가 또 사람을 괴롭히시네요. 남다른 재능을 지닌 전하께서도 열아흐레가 지나고 나서야 ‘역근유술’을 완성하셨잖아요. 보통 사람이라면 한 달이란 시간도 부족할 텐데요. 방금 물어보니 대종사가 두변에게 닷새 만에 ‘역근유술’을 완성하라고 하셨대요. 너무 하신 거 아니에요?”
귀여운 시녀는 계속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갔다.
‘역근유술’의 최단기간 완성기록은 바로 영설 공주가 달성한 열아흐레란 기록이었다.
영종오 대종사도 말했듯이 그가 가르쳤던 모든 사람 중 영설을 능가할 무도 천재는 없었다.
그녀는 모락모락 피어오른 물안개를 바라보며 옥처럼 고운 입술을 벌려 숨을 한번 들이쉬어 물안개를 들이마신 후 가볍게 토해냈다.
주변이 온통 향기로 가득 찼다!
쾅!
그녀가 날숨으로 뱉은 향기로운 기전(氣箭)이 십여 미터 떨어진 목재 벽에 구멍을 뚫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