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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무제-54화 (54/648)

제54장: 화려한 연출

그리고 방 안에 있던 영설 공주도 아름답게 빛나는 눈으로 이 불가사의한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기록은 깨졌다. 그것도 그녀가 가엾다고 여겨왔던 두변이 그 기록을 깼다.

물론 그녀가 시기하는 것은 아니다. 황실의 공주로서 그녀는 황실에 충성하는 천재들이 많이 나오기를 그 누구보다 고대했다.

하지만 너무 어처구니없는 결과에, 그녀는 자신이 천재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이는 공주가 너무 깊게 생각한 탓일 테다. 그녀는 이미 아주 대단했다. 두변이 꿈의 세계에서 ‘역근유술’을 익히는 데 들인 시간이 대략 두 달 정도였으니, 그녀의 열아흐레보다 훨씬 길게 걸린 셈이고, 사실 그녀의 기록은 깨진 건 아니었다.

단지 공주는 두변이 꿈의 세계라는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걸 알 길이 없을 뿐.

영종오가 한참 뒤에 입을 열었다.

“두변, 혹시 이전에 ‘역근유술’을 연마한 적이 있느냐? 동창의 능력이 워낙 신통방통하니 이 공법을 얻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었을 테지.”

영종오는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사흘 만에 ‘역근유술’을 완성하는 건 그의 상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결과였고, 어떻게든 합리적인 해석을 내놓으려 노력해야 했다.

두변은 대답 대신 반문했다.

“대종사께서 제게 열여드레 안에 민첩성 수업을 끝마치라고 하셨습니다. 호흡 한 번에 검을 열 번 내지르고 모든 검이 같은 곳을 찌르는 게 평가 기준이지 않았습니까?”

영종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변이 이어서 말했다.

“사흘 전에 대종사께서 저를 평가하셨을 때 저는 1초에 검을 세 번밖에 내지르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한 곳을 겨냥하지도 못했지요. 그때 제가 거짓 연기를 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지. 네가 연기를 했다면 내가 바로 알아차렸을 것이다. 네 민첩성은 보통 사람만큼도 안 되는 형편없는 수준이었지.”

“대종사께서는 제 의부랑 약조하셨습니다. 제가 열여드레 안에 민첩성 수업을 성공적으로 끝마치면 심혈을 기울여 저를 가르쳐줄 테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저를 환관 학원으로 돌려보내겠다고요.”

영종오는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고개를 끄덕이며 두변을 쳐다봤다.

도대체 무슨 속셈이냐? 설마?

“그럼 다시 한번 잘 봐주십시오.”

그리고 두변은 흰 종이를 벽에 붙이고는 일곱 자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곧게 선 다음에 손에 목검을 쥐었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쉰 후 목검을 번개처럼 내질렀다.

슉, 슉, 슉, 슉, 슉!

1초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두변은 검을 열네 번이나 내질렀고 검의 끝은 오직 한 점만을 향해 있었다!

열네 번이란 번개처럼 빠른 속도이기에 보통 사람들은 제대로 보지도 못하겠지만, 영종오는 두변이 내지르는 검의 하나하나를 똑똑히 보았다.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함이었다.

두변은 72시간의 훈련을 거쳐 화려한 검 찌르기를 선보임으로써 환상의 2분을 선사했다.

정원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고, 영종오 대종사는 계속 숨을 죽이고 있었다.

영종오는 온몸이 굳었다.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런 일이! 너무 무서운 일이다!

일반적인 환관이 민첩성 과정을 마치려면 얼마나 걸릴까? 그가 두변에게 요구한 열여드레는 민첩성 과정을 완성할 수 없는 기한임이 분명했다. 그 요구는 완전히 어린애를 괴롭히고 속일 목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소환관이 뜻밖에 이를 사흘 만에 해냈다?

단지 사흘 만에 ‘역근유술’이란 비적을 습득했을 뿐 아니라 모든 민첩성 수업을 끝마쳤다?

‘빌어먹을. 난 가르쳐준 게 아무것도 없는데 독학으로 이 모든 과정을 끝내다니. 천재에게는 상식이란 통하지 않는단 말인가? 세계가 이토록 빨리 변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눈앞에 있는 이 환관이 사람이 아니란 건가?

이게 어찌 가능할 수가 있어? 이렇게 상식을 뛰어넘는 재능을 가졌으면 다른 사람은 어떡하라고. 이건 기적이 아니라 두려움일 뿐이다!’

“젠장, 이게 사람이냐?”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영종오 대종사는 탄식을 내뱉었다.

그는 이미 2, 30년 가까이 욕을 한 적이 없었지만 이 순간만은 참기 어려웠다.

실로 대종사의 풍모와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입 밖으로 내뱉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두변은 오히려 친근하게 느껴졌다. 거드름 피우거나 세상 혼자 잘난 척하는 모습이 질색이던 터였다. 이 세계에서 허세를 부리는 사람은 자신이면 족했다. 굳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보기는 싫었다.

두변이 물었다.

“대종사, 제가 보름이나 앞당겨 민첩성 수업을 끝냈으며 완성도도 절반을 넘었습니다. 이제 여기 남아서 계속 가르침을 받아도 되겠습니까?”

이때 대종사 영종오의 마음속에는 두 가지 소리가 들려왔다.

왼쪽 목소리가 노해서 소리쳤다.

‘나의 자유, 나의 유유자적한 삶, 세계 유랑이 모든 게 신기루처럼 사라졌구나. 내가 ‘업둥이’ 하나를 더 맡게 되다니. 3년만, 3년만 하던 것이 어느덧 12년인데, 자유를 얻는 게 이토록 어려운 일이었던가?’

오른쪽 목소리는 흥분에 겨워 있었다.

‘이게 천재지. 그것도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지. 이런 제자를 거둔다면 그것이 인생의 즐거움 아니겠나? 이문회도 두변에게 모든 걸 쏟아붓고 있는데 나라고 왜 못 하겠는가? 아마 내 앞에 있는 이 아이가 엄당의 미래, 더 나아가서는 제국의 미래가 될지도 모르는데!’

‘난 자유를 원해. 방방곡곡을 떠돌면서 살고 싶다고!’

‘나 영종오, 아직 열정이 남아있지. 한번 엄당은 영원히 엄당이야.’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영종오의 얼굴에는 심란함이 엿보였다.

두변이 재차 물었다.

“대종사, 제가 남아도 되겠습니까?”

영종오는 눈빛을 번뜩이더니 두변을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정말 여기 남고 싶으냐?”

영종오의 표정이 섬뜩하게 바뀌었다.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너를 안중에 두지 않았기에 적당히 얼버무렸었다. 하지만 내가 너를 가르치기로 한 만큼 내 열과 성을 다해 지도하도록 하마. 앞으로 지옥의 시련과 악마의 수업이 펼쳐질 게다.”

두변은 온몸에 소름이 솟아올랐다.

‘지옥의 시련이라뇨? 악마의 수업이요? 꼭 이렇게 사람을 겁줘야 합니까? 그리고 위풍당당한 대종사께서 이렇게 중2스러운 말씀을 하십니까?’

“네가 천재라는 걸 다시 한번 나에게 각인시켰으니 네 재능을 끝까지 쥐어 짜내도록 하겠다. 네가 생각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가르쳐 네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려주지. 졸업시험까지 5개월의 시간이 있으니 우리 사제 간의 인연도 5개월이 전부다. 이 5개월 동안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고 모든 지혜를 쥐어짜 너를 가르치도록 하마. 나도 천재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궁금하구나.”

“감사합니다.”

“그럼 이렇게 하자꾸나. 내일 하루 휴식을 취하고 모레부터 악마의 수업을 정식으로 시작한다.”

‘왜 모레부터지? 내일부터 하면 안 되나?’

두변은 궁금증이 생겼지만, 물어보진 않았다.

하지만 영종오는 궁금한 점을 바로 물었다.

“어떻게 사흘 반 만에 민첩성 수업을 끝마쳤는지 궁금하구나. 도저히 내 상식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두변이 대답했다.

“왜인지 모르겠으나 대종사의 ‘역근유술’은 저와 인연이 있는 거 같습니다. 아마도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겠지요. 저는 ‘역근유술’의 정수를 파악했고, 곧 ‘역근유술’을 완벽하게 연마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역근유술’을 연마하고 나니 민첩성이 크게 향상되어 한 호흡에 3번 내지를 수 있던 검을 14번까지 내지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00근을 짊어지고 사흘 동안 ‘형의 검법’을 익히며 정확도를 수련했습니다.”

꿈속 세계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기에 대충 아무렇게나 둘러댄 셈이지만, 사실 누가 믿겠는가.

하지만 영종오 대종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랬군!”

두변은 대종사가 자신의 말을 믿는다는 사실에 놀랐다.

“먼저 돌아가서 쉬어라.”

“알겠습니다.”

두변이 자리를 떠난 후, 영설 공주가 방 밖으로 나와서는 말없이 대종사와 서로를 쳐다만 봤다.

“놀랍지 않습니까.”

영종오의 말에 영설 공주도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갑작스럽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가 이렇게 내 앞에 나타났군요.”

“자유는 이제 물 건너갔지만, 은근히 흥분되고 설레기도 하는군요.”

“그럼 대종사께서 수고해주셔야겠습니다.”

“아까 왜 나오지 않으셨습니까? 이런 천재는 얻기 드뭅니다.”

“보려면 처음부터 봤어야 했습니다. 천재인 걸 확인한 다음에 대면하자니 너무 기회주의자인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어쨌건 천재의 등장은 전하와 황실, 그리고 제국 전체에 좋은 일입니다.”

영설 공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당은 황실이 쥘 수 있는 유일한 직계세력이었다. 이문회가 황실과 제국에 품고 있는 충심이야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었다. 두변이 이러한 이문회의 의자라고 하니, 두변의 능력이 뛰어날수록 황실에 큰 힘이 될 게 분명했다.

영설 공주가 말했다.

“이문회 공공이 고독한 싸움을 이어나가지 않게 이러한 천재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다음날, 황제의 성지를 전하러 온 환관이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다.

연화사는 바람도 새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로 빼곡히 둘러싸였고, 외부인인 두변은 사람들 틈에 계속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황제의 성지는 간단했다.

‘영설 공주는 황제의 명을 받들어 경성으로 돌아오라.’

드디어 공주 전하가 3년간의 유배 생활을 마치고 경성으로 돌아가 자유를 누리게 되었구나!

“명을 받들겠습니다. 만세, 만세, 만만세!”

영설 공주는 무릎을 꿇고 성지를 받들었는데, 허리에서 엉덩이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곡선은 감히 똑바로 쳐다보기 힘들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 선을 제대로 감상하지는 못했다. 성지를 건네는 환관조차도 시선을 성지에만 고정할 뿐이었다.

공주를 한 번이라도 본 환관이라면 무공에 필적할 자가 없고 마음이 고우며 고귀한 성품을 지닌 공주와 어울릴 만한 사내는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제야 두변은 가운데 누각에 거처하던 인물이 바로 이 제국에서 소문난 영설 공주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공주는 제국뿐 아니라 동북아 전체에서도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공주의 절정의 미모, 무공, 의협심 등은 많은 사람이 칭송해 마지않는 것들이었다.

3년 전에 공주가 경성의 부녀자들을 학대하던 몽고 왕자를 죽여버려 곧 맺어질 맹약이 깨지면서 유배판결을 받아 자유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당시 경성의 몇십 만이나 되는 백성들이 그녀를 위해 울었고 황궁 앞에서 무릎 꿇고 선처를 호소했으니, 공주의 명성이 태자보다 높았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귀양지가 이곳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오죽하면 대종사 영종오가 울상을 지었을까. 영설 공주의 사부이자 보호자 역할을 해야 했으니, 그녀가 여기 머무는 한 그에게도 자유가 없었다.

방검지와 원정도 바로 이 공주에게 구애하기 위해 이렇게 외진 곳에서 3년이나 머물렀을 것이다. 영종오의 밑에서 무도를 배우고자 했던 게 아니라.

그렇다면 잠자는 공주를 누가 아내로 맞이할 것인가. 세상에서 가장 영예로운 사내는 누구일까.

두변은 까치발을 들고는 그 전설의 미모가 도대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얼마나 매혹적인지 확인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두변의 시야를 담장 세 개와 무사 몇백 명이 가로막고 있어서 공주의 그림자도 볼 수가 없었다.

적어도 지금의 두변은 영설 공주와 하늘과 땅만큼의 신분 차이가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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