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58화 (58/648)

제58장: 압도하다

두변은 오만무도하다 못해 완전 막무가내인 수준이었다.

지금은 7월의 삼복 날로 가장 더울 때여서 얼음을 술에 넣는 순간 얼마 못 가 바로 녹아버릴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세계에는 삼국(三國)의 역사가 없기 때문에 관우가 술이 식기도 전에 화웅을 베고 돌아왔다는 고사는 전해지지 않았다. 만약 모두가 이러한 이야기를 알았다면 두변의 이런 제안이 더욱 돋보이지 않았을까.

얼음 한 덩이가 녹는 시간은 기껏해야 반 각, 15분이었다. 두변이 이 짧은 반 각 동안 방검지, 당엄 등을 뛰어넘는 시 네 편을 짓는다는 건 도저히 믿기 어려운 제안이었다.

방검지, 당엄, 최부, 원정 네 명이 지은 시는 모두 뛰어난 수준을 갖추고 있어서 그 어떤 시로도 쉽게 이기기 힘들었다. 그런데 두변이 이 짧은 시간에 네 편을 모두 압도하는 시를 만들겠다고 했으니 참으로 황당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두변, 잘 생각해 본 거냐?”

영설 공주가 묻자,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제가 진다면 앞으로 당엄이 어디에 나타나든 기어서 다니도록 하겠습니다.”

두변이 이렇게 엄청난 도박을 벌이니 연회장의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공주의 송별연이 엄당 차기 수령들의 경쟁으로 변질될지는 생각지도 못했다.

영설 공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잠시 후 영설 공주는 술잔을 채웠고 그 안에 얼음 한 조각을 넣고는 그 잔을 자신의 앞에 놓았다.

“능력껏 와서 이 술잔을 들이켜 보거라.”

계동앙은 두말하지 않고 바로 모래시계를 뒤집어 놓았다.

댕!

징이 울리고, 모두를 압도하는 장면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두변은 영설 공주를 바라보며 첫 번째 발걸음을 내디뎠고, 그 자리에 멈춘 후 몇 초간 생각에 잠겼다.

두변이 고개를 들었다.

“방검지, 당신이 지은 시는 부부간의 ‘금슬(琴瑟)’을 노래했으니 나 역시 금에 대한 시를 짓겠습니다. 모두 제가 방검지보다 뛰어난지 잘 들어보시지요.”

숨을 깊게 들이쉰 두변은 시명(詩名) <금슬(錦瑟)>을 낭송했다.

아름다운 슬(瑟)의 줄이 까닭 없이 오십 줄인가.

현 하나, 받침 하나에 꽃다운 시절을 떠올리네.

장자(庄子)는 새벽녘 꿈에서 나비에 미혹되고

촉나라 망제는 애달픈 춘심을 두견새에 부치었다지.

창해에 달 밝으니 흘리는 눈물 진주가 되고,

남전산에 해 따뜻하니 옥은 연기가 되었네.

이런 마음이야 세월 가면 추억이 되겠지만

다만 그때에는 마음이 너무 아팠어라.1)

첫 번째 시를 다 읊자 연회장은 다시 한번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두변의 <금슬>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휘저어놨고, 모두의 머릿속은 같은 생각뿐이었다.

‘젠장. 두변 저 죽일 놈.’

두변은 3대 학부 대회에서 <광릉산>이란 천년의 명곡과 <난정집서>라는 천년에 한 번 겨우 볼 법한 서예를 선보였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백 년에 한 번 나올 법한 시구를 읊은 것이다.

‘이건 말도 안 돼!’

연회장에 있던 모두는 최고의 지식인들로 감상 수준 역시 매우 높았다. 조금 전 두변이 지은 송별의 시가 통속적이면서 고상한 면모를 함께 갖추고 있었다면, 이번 <금슬>은 아름다움과 화려함이 넘쳐흘렀다.

이 시는 마치 밤하늘을 가르는 혜성처럼 더없이 찬란하게 빛났다.

방검지의 시도 좋았지만 두변의 <금슬>과 비교해보면 처참한 패배였다.

이상은(李商隱)의 시는 매우 아름다워서, 그와 비견할 수 있는 시가 없을 정도였다.

영설 공주는 <금슬>을 듣는 순간, 시구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했다. 그녀가 의협심이 충만하다고 해도, 문화에 대한 조예 역시 매우 깊었고 이 시의 기품과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의아했다. 경성에서 두변이란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그가 이토록 완벽한 시를 지을 수 있는지 놀라울 뿐이었다.

하지만 두변은 생각처럼 기쁘지 않았고, 3대 학부 대회처럼 승리의 쾌감을 만끽할 수도 없었다. 두변은 그 이유를 생각해 봤다.

그리고 그 이유를 금세 알 수 있었다.

3대 학부 대회에서는 <광릉산>, <난정집서> 그리고 마지막의 지도까지, 이 모든 것이 그가 노력을 통해 일궈낸 결과였다. 비록 꿈의 세계라는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 있긴 하지만, 주야를 가리지 않고 이것들을 완벽히 습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노력을 기울인 후 승리를 얻었을 때는 쾌감을 느꼈지만, 지금은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그냥 모방한 것뿐이라 쾌감을 얻기에는 부족했다.

아직 모두가 첫 번째 시에 푹 빠져 있을 때, 두변은 두 번째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문밖을 향해 허리 숙여 절하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말했다.

‘이백(李白) 어르신. 다른 세계에서도 당신의 <장진주(將進酒)>의 명성을 이어나가게 하겠습니다. 제가 시의 일부분을 차용해 눈앞의 적들을 순식간에 제압할 것이니 미리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두변은 다시 한번 허리를 깊게 숙였다.

그리고 원정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이 지은 시는 권주가가 맞습니까?”

원정이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가 지은 축배의 시, 시명 <장진주>를 감상해 보시지요.”

모두 두변이 처음으로 지은 <금슬>의 감동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사이, 두변이 다음 시를 지으려고 하자, 관중들은 재빨리 <금슬>이 선사하는 화려한 감동에서 빠져나와 두 번째 시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두변의 두 번째 시가 첫 번째 시만큼 빼어나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의 재능이란 아무리 뛰어나도 한계가 있기 마련인데 짧은 시간 내에 이토록 대단한 시를 하나 만든 것도 모자라 두 개를 만든다고 하는 건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두변이 두 번째 시를 낭송하기 시작했다.

모름지기 인생은 마음껏 즐길지니

달빛 아래의 잔을 비워두지 말게.

천하에 내 솜씨 필히 쓰일 곳이 있으니,

천금을 탕진해도 언젠가는 돌아올 터

떡 벌어진 음식상이 귀한 게 아니고,

다만 오래 취해 있어 깨지 말기를 바랄 뿐이로다.

지난날 성현들은 모두 적막하게 되었고,

오직 술 잘하던 사람만이 그 이름을 남겼네.2)

원문 전체를 읊으면 단기간에 준비했다고 도저히 믿을 수 없을뿐더러, 두변 스스로도 제 재능이 원문의 깊이를 담아내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판단해서 이백의 <장진주> 중 일부의 내용만을 차용해 읊었다.

확실히 원문만 못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놀랍고 호기로운 시였기에, 원정이 지은 권주가를 이기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원정이 지은 권주가는 감히 <장진주>와 비교할 만한 대상이 아니었다.

뭇 사람들의 가슴에 화살이 날아와 박혔다.

급작스럽게, 너무나 급작스러워서 아무것도 방비하지 못한 채.

사람들은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호기로우면서도 아름다운 시 한 편을 또 마주하게 된 것이다.

시는 사람들을 흠뻑 취하게 했는데, 아마 천하의 어떤 권주가도 이에 필적하긴 어렵지 않겠는가.

그런데 두변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표할 시간도 주지 않고 세 번째 발걸음을 내디뎠다.

두변은 문밖의 밝은 달을 바라보며 허리 숙여 절했다. 그는 또 한 번 마음속으로 말했다.

‘소동파 어르신, 당신의 <명월기시유(明月幾時有)>를 다른 세계에서 대대손손 전해지도록 만들겠습니다. 제가 시의 일부분을 차용해 눈앞의 적들을 순식간에 제압할 것이니 미리 어르신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두변은 밝은 달을 향해 허리 숙여 절한 후 최부를 쳐다봤다.

최부는 어찌된 이유인지 몸이 으스스한 것이, 3대 학부 대회에서 서예와 회화를 겨루던 장면이 다시 재연될 것만 같았다.

저 두변이 다시 자신의 머리를 밟고 좌중을 놀라게 할 것만 같았다.

두변이 웃으며 말했다.

“최부, 당신이 지은 시가 명월을 주제로 한 시가 맞습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굉장히 좋은 시였습니다. 하지만 내가 짓는 명월의 시와 비교되어 창피당하기 전에 그 시를 당장 찢어버리는 걸 권하겠습니다.”

최부는 폭발 직전까지 화가 치밀어올랐다.

‘두변 네놈이 앞서 지은 두 편의 시가 굉장한 수준임은 인정하지만, 내가 지은 명월 시도 상당한 수준이라 자부하는데, 어찌 네놈이 내 시를 깎아내릴 수 있단 말이냐?’

“두변, 아주 입만 살았구나.”

최부가 냉랭하게 말했다.

두변이 말했다.

“모두 잘 들으시지요. 명월의 시, 시명 <명월기시유>를 낭송하겠습니다.”

밝은 달은 언제부터 있었는지, 술잔 들고 푸른 하늘에 물어보네.

하늘 궁전에서도 오늘 밤이 어떤 날인지 모를 것이다.

바람 타고 하늘 궁궐로 돌아가고 싶지만,

옥으로 장식된 화려한 달 궁전은 두렵기만 하고

저 높은 곳 추울까 두려워라.

일어나 춤추며 그림자와 노니나니,

인간 세상에 어찌 이런 곳 있으랴.

인간에겐 기쁨과 슬픔이 있고,

달 또 한 어둠과 밝음, 차오름과 기움이 있으니

이 또한 완벽할 수 없는 세상사의 이치가 아니겠는가.

다만 바라건대 사랑하는 사람과 오래도록

천 리 밖에서도 저 아름다운 달빛을 함께 보고픈 것이라네.3)

두변은 완전한 <명월기시유>를 가지고 여기 사람들과 대결을 하기에는 격이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불완전한 <명월기시유>는 완전한 원작과 비교해보면 부족한 점이 많지만, 최부가 지은 명월 시를 이기는 데는 차고 넘쳤다.

<명월기시유>는 그 절반의 파괴력으로도 명월의 시가 더는 이 세계에 나오지 않게 할 수도 있을 정도로 엄청난 작품이었다. <명월기시유>는 밝은 달을 노래하는 모든 시를 처참하게 짓밟아 버린 격이었다.

두변은 작품을 표절한 것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다른 사람들이 놀라거나 감탄할 시간도 주지 않고 바로 네 번째 발걸음을 내디뎠다.

두변은 몇 초간 생각하고, 당엄을 쳐다봤다.

“당신이 지은 시는 협객을 노래한 게 맞습니까? 그리고 마치 공주 전하의 황금설처럼 짧고도 강력한 네 마디였죠.”

당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신이 지은 협객의 시가 절대적으로 1등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두변이 말했다.

“제가 지은 <협객행(俠客行)>이라는 시를 들어보시지요. 마찬가지로 네 마디입니다.”

열 걸음에 한 사람씩 죽이고,

천 리를 가도 막을 자가 없도다.

일을 마치면 훌훌 옷만 털고 갈 뿐,

몸과 이름은 깊이 감추었다.4)

협객의 시를 지은 두변은 어느덧 영설 공주의 앞까지 다가왔다. 두변은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기다리지 않고 탁자 위에 놓인 술잔을 집어 들었다.

술잔에 있는 얼음은 아직 녹지 않았을 뿐 아니라, 여전히 절반은 위에 떠서 등불에 영롱하게 빛이 났다.

계동앙이 모래시계를 쳐다보니, 아직 절반도 다 내려가지 않은 상태였다.

“이번 시 짓기 대결은 제가 이겼습니다. 혹시 이견 있으십니까?”

두변이 물었다.

연회장에 참석한 모두는 침묵을 지켰다.

두변이 술잔을 들고 단숨에 들이켰다.

“공주 전하, 이제 황금설을 제게 주시는 겁니까?”

이때 두변과 영설 공주와의 거리는 너무 가까워서, 그녀의 아름다움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지경이었다. 특히 그녀의 두 눈은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영설 공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매혹적인 몸을 일으켜 화려한 황금설을 두변에게 건네주었다.

연회장에서는 모두가 침묵을 지켰고 너무나도 자명한 결과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더욱이 오늘 밤 심판은 영설 공주였다.

두변의 시는 최부 등 네 명이 지은 모든 시를 완벽하게 압도했다. 그중에 당엄의 시만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조금 남아 있을 뿐이었다.

두변은 황금설을 받아 두 손으로 맞잡았다. 단검에는 그녀의 숨결이 깊숙이 배어있기라도 하는 것처럼 은은하게 퍼지는 아름다운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이때 두변의 머릿속에서 환한 빛이 반짝거렸다.

- 첫 만남 임무 완성. 영설 공주의 호감도가 15 증가해 20이 되었다.

- 두변의 양기가 10 증가해 15가 되었다.

왠지 모르게 두변의 심장이 가볍게 요동치면서 배 속 깊은 곳에서 어떤 힘이 솟아나는 느낌이었다.

설마 이것이 바로 전설의 그 양기란 말인가?

뭔가가 꿈틀거리는 느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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