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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무제-59화 (59/648)

제59장: 이별

두변은 황금설을 들고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허리를 숙여 영설 공주께 예를 올렸다.

“전하,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영설 공주는 자리에 앉지 않고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부황께서 내가 서둘러 경성에 돌아오길 바라니, 밤이 깊었지만 본 공주도 여기서 작별을 고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말을 마친 영설 공주는 곧장 밖으로 걸어 나갔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성지를 전달한 환관과 호송군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계동앙과 낙문 등의 인물들은 급하게 몸을 일으켜 예를 갖췄다.

“공주 전하, 살펴 가십시오.”

영설 공주가 두변을 향해 손짓했다.

“두변, 날 배웅하거라.”

이 말을 들은 방검지와 원정, 그리고 당엄의 표정이 일제히 일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두변과 영설 공주는 길을 따라 산에서 내려가고 있었고 몇 보 뒤에서 수많은 호송군이 뒤따르고 있었다.

두 사람의 거리가 워낙 가까워 두변은 영설 공주의 몸에서 나는 은은한 향기까지 맡을 수 있을 정도였다. 신비롭고도 긴 여운을 남기는 향은 두변을 취하게 했다.

달빛 아래 보이는 영설 공주의 살결은 눈처럼 하얘 마치 달빛조차 반사시킬 듯했다. 얼굴이 정교하고 고상함이 느껴지는 것이, 가히 창조주의 걸작이라 할 만했다.

“두변, 방금 시들은 직접 지은 것이냐?”

영설 공주가 정색을 하고 물었다.

두변은 잠시 망설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부담 갖지 말고 말해거라.”

“꿈속에서 누군가가 낮은 목소리로 이 시들을 제게 읊어주는 느낌을 받았는데, 사실 저도 헷갈립니다.”

영설 공주가 환하게 웃었다.

두변의 머리 깊은 곳에서 다시 한번 빛이 반짝거렸다.

- 영설 공주의 호감도가 5 증가해 25가 되었다.

영설 공주가 말했다.

“사실 난, 시사가부(詩詞歌賦)를 좋아하진 않는다.”

“저도 그렇습니다. 물론 위대한 시인들은 존경합니다. 오늘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쩔 수 없었으나 앞으로는 시를 짓는 대결은 피하고 싶습니다. 그보다 좀 더 의미 있는 일에 몰두하고 싶거든요.”

“그래. 시사가부는 소도(小道)라고 할 수 있지. 이처럼 혼란스러운 시기에는 문치무공(文治武功)이 정도(定道)다. 다음에 만났을 때는 네 무공이 내가 놀랄 만큼 향상되어 있으면 좋겠구나.”

“알겠습니다.”

“다음에 또 보자.”

“다음에 또 뵐 수 있길 바라겠습니다.”

두변이 대답했다.

영설 공주는 백마에 올라타 달빛을 받으며 빠르게 산을 내려갔다. 천 명에 이르는 황궁 호위병들도 속도를 내어 영설 공주가 경성으로 돌아가는 길을 보필했다.

아름다운 여인은 떠나고 여운만 남았다.

두변은 심장이 쿵쾅거리면서도 마음이 심란했다.

공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두변은 입맞춤을 날려 보냈다.

“영설 공주 전하, 다시 뵙겠습니다. 다음에 만날 땐 반드시 당신을 놀라게 할게요.”

영설 공주가 떠나자 방검지와 원정, 최부, 당엄도 모두 떠났다.

광서 동창 진무사는 떠나기 전에 영종오를 찾아왔다.

“대종사, 두변의 무도 실력은 어떻습니까?”

“엉망이네.”

대종사가 대답했다.

대종사는 거짓말을 한 게 아니었다. 두변이 미칠 듯이 잘해서 자신이 또 묶여 있는 신세가 엉망이라는 것일 수도, 두변이 정말 부족해서 엉망이라고 표현할 수 있으니까.

왕인은 자신이 듣고 싶은 대답을 들은 후 다시 물었다.

“대종사께서는 두변을 제자로 거두실 생각입니까? 이문회가 대종사를 위해 어떤 일을 대신 처리해주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저런 학생은 내가 정말 감당할 수가 없네만…….”

말을 마친 대종사 영종오는 자리를 떠났고, 왕인도 안심하며 자리를 떴다.

두변이 각종 금기서화와 시사가부에 모두 능하고, 심지어 기함할 지경이기까지 하자 왕인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학원 졸업시험과는 전혀 무관한 것들이기에 제아무리 이런 것에 뛰어나다 한들 정작 중요한 것은 무도였다.

이문회는 왜 두변을 영종오에게로 보냈을까? 두변의 무도 실력이 워낙 형편없기에 영종오 밑에 들여보내 기적이라도 일어나길 바라는 건가? 영종오가 과연 두변을 단기간에 무도 강자로 만들 수 있을까?

하지만 방금 영종오가 이 질문에 답을 해주지 않았나, 엉망이라고.

그러니 두변은 다섯 달 뒤에 있을 졸업시험에서 전혀 가망이 없다!

제아무리 천재라도 하룻밤 사이에 무도 실력을 대폭 향상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

게다가 왕인은 연화사에 있는 승려에게 사람을 보내 이것저것 캐물었는데, 영종오 대종사는 두변을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으며 철저히 방임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두변은 연습에 진전이 전혀 없어서, 승려 말에 따르면 세 살배기 아이보다 못해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는 수준이라고 했다.

두변의 무도 실력을 한 글자로 표현하면 ‘똥’이고, 네 글자로 표현하면 ‘똥 덩어리’라나.

이 시각 당엄의 표정은 매우 굳어 있었다. 영설 공주의 황금설이 본래 자신의 차지였는데 마지막에 두변에게 빼앗겼으니 얼마나 타격이 심할까.

왕인이 말했다.

“당엄, 그리 억울해하지 말아라. 황금설은 네 손에 쥐어져야만 위상을 드높이는 물건이 될 수 있는데 두변에게 넘어간 이상 이제 아무런 가치도 없는 물건이 되었다. 졸업시험이 끝나면 두변은 자기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게 될 게다. 이문회는 반드시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니 두변은 똥오줌을 비우는 환관이 돼서라도 좋은 세월을 보내길 힘들 것이야.”

당엄은 말이 없었다. 솔직히 당엄은 졸업시험에서 두변을 경쟁 상대로 여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한편 왕인은 두변이 스스로 화를 자초했다고 생각했다. 원래 두변이 세운 공적이었으면 졸업시험에서의 성적이 아무리 처참할지라도 충분히 좋은 직위를 얻을 수 있었는데 굳이 염세와 이런 내기를 벌였으니 스스로 제 무덤을 판 격이니 말이다.

당엄이 입을 열었다.

“두변이 문관 집단이 아닌 게 아쉽습니다. 그의 시사가부와 문예 실력이었으면 앞길이 창창했을 텐데 말입니다.”

왕인이 말했다.

“누가 아니라더냐? 엄당에서 가장 중시하는 건 아직도 무공인데, 지금 실력만 보자면 두변은 네 발끝도 따라오기 힘들겠구나.”

확실히 순수 무도만 놓고 보면 지금의 두변은 당엄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실력이었다. 당엄도 이를 알기에 더 이상 이런 대화를 잇고 싶지 않았다. 얘기를 할수록 자신의 명예만 더럽히는 결과일 테니.

연화사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떠났고 이제 남은 사람은 영종오와 두변, 그리고 노복뿐이었다.

“사람도 다 갔고, 공주도 갔구나. 남은 다섯 달 동안, 나는 이제 너의 것이다.”

두변은 소름이 돋아서 흠칫 놀랐다. 그는 속에서 나오는 말을 애써 삼켰다.

‘연세도 있으신 분이 남들이 오해할 법한 말은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영종오가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다섯 달 동안 진행할 지옥의 시련과 악마의 수업을 정식으로 시작하겠다. 후회해도 이미 늦었으니 부디 후회하지 않기를 바란다.”

대종사의 입에서 지옥의 시련이니, 악마의 수업이니 이런 말이 나올 때마다 위화감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이어서 대종사 영종오의 말투는 매우 빠르며 강렬해졌다.

“네가 가지고 있는 문예와 시사가부의 실력은 완전히 잊어버려라. 졸업시험에서는 그런 과목이 없다. 엄당에서는 이런 것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우리 목표는 졸업시험이므로 시험과 관련된 것들만 가르치겠다!

너는 평균적으로 열흘에 소과(小科) 한 과목을 마쳐야 하니, 다른 사람보다 10배나 빠른 속도로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모의시험을 진행할 텐데 90점을 넘기지 못한다면 서로 시간 낭비하지 않게 그 즉시 너를 내쫓을 것이다.

그리고 너도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주야를 가리지 않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학습에 임해야 할 것이야. 나도 너에게 전례 없던 교육방식으로 가르쳐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을 선사하겠다.

반드시 기억해라. 열흘마다 시험을 본다. 그리고 90점을 못 넘기면 바로 내쫓을 것이다. 알아들었나?”

“알겠습니다!”

두변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두변은 스파르타식 대입 학원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자신은 어느새 시험 기계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좋다. 그럼 첫 번째 수업부터 시작하지. ‘기초 연단 이론’은 공부하였느냐?”

두변이 선택한 연단학은 50점 만점으로 그 중 이론시험이 20점 실기시험이 30점이었다.

두변이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완벽하게 습득했습니다.”

“확실해?”

영종오의 눈빛에서는 불안함이 느껴졌다.

“네가 완벽히 습득했다 하니 바로 내일 시험을 보도록 하지.”

기초 연단 이론은 두꺼운 책 몇 권으로 이뤄졌지만 두변은 이미 모든 내용을 섭렵했고 이론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적도 있었다.

두변은 조금 긴장되긴 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합니다.”

“좋다. 내일 ‘기초 연단 이론’ 시험을 보도록 하겠다. 만점은 100점이다. 60점을 받을 수 있다면 졸업시험에서는 만점을 받을 수 있을 테지만 나는 네게 90점을 요구하겠다. 90점을 받는다면 시간 절약을 위해 바로 다음 진도로 넘어가도록 한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90점을 받지 못한다면 벌로 사찰의 모든 변소를 청소해야 할 것이야.”

연화사는 예전에 승려 몇백 명이 지낼 수 있을 만큼 규모가 큰 사찰이었기에 크고 작은 변소를 다 합치면 아마 8개 정도일 것이다.

두변은 당황했다.

“제가 90점을 넘으면 어떻게 됩니까?”

“하하, 그렇다면 내가 연화사에 있는 모든 변소를 청소하마.”

“알겠습니다!”

영종오는 두변에게 두꺼운 책 한 권을 던져줬다.

“내일 시험을 치를 것이니 오늘 저녁에 잘 봐두거라. 내일 보자꾸나.”

대종사는 속으로 득의양양하게 웃고 있었다. 내일 시험 볼 기초 연단 이론은 환관 학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 책은 대종사 본인이 엮은 교재로 환관 학원의 교재에 비하면 상당히 어려웠기에 ‘중급 연단 이론’이라 봐도 무방했다. 두변이 이런 것을 배운 적도 없으니, 내일 시험을 망칠 게 분명하지 않은가!

‘두변. 이 어린놈이 하늘 무서운 줄도 모르고! 내가 반드시 네게 교훈을 새겨줄 것이다. 본분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알려주마!’

대종사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뛰어난 학생은 초반에 기선을 제압해서 원래 가지고 있던 자만과 오만을 꺾어놓을 필요가 있으니까. 이는 선생의 위엄을 높이는 작업이니 선생이라면 죄다 알고 있는 점이었다. 물론 영종오도 그러하고.

“두변, 내일 연화사의 모든 변소를 청소할 채비를 해 두어라. 얼마나 오래 묵은 똥들이 있던지. 하하하.”

두변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서 영종오가 건네준 <기초 연단 이론>을 펼쳐보았다.

젠장, 무슨 말인지 알아볼 수가 없잖아!

영종오 이 노인네가 또 나를 골탕 먹이려 들다니!

이게 뭔 ‘기초 연단 이론’이냐. 왜 환관 학원의 교재랑 하나도 똑같은 부분이 없는 거야?

책에 적혀 있는 모든 식물, 동물, 약물은 본 적도 없는 완전히 새로운 것들이었다. 심지어 광갱에나 들어가야 얻을 수 있는 가상의 능원체(能源體)도 있고 뭔지 모를 허무맹랑한 낯선 기체들도 있는데, 이런 게 기초 연단학이란 말인가?

‘내가 배운 게 없다고 이렇게 속이려 들다니!’

그러다 두변은 책의 틈새 사이로 글씨 한 줄을 보게 되었다.

‘본 책은 <중급 연단 이론>이지만 <기초 연단 이론>이라는 잘못된 겉표지를 달게 되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빌어먹을. 정말 음흉한 노인네가 아닌가.

하지만 두변은 내일 변소 청소를 하지 않으려면 그저 목숨을 걸고라도 공부해야 했다. 이런 것으로 입씨름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두변은 빠른 속도로 ‘중급 연단 이론’을 읽기 시작했다. 6~7초마다 한쪽을 넘겼음에도 두 시간이 지난 뒤에야 이 두꺼운 책을 다 볼 수 있었다.

책은 1,000쪽에 달하는 분량이었고 글씨 반 그림 반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두 시간 동안 책을 다 읽은 후 두변은 등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대종사는 줄곧 두변의 방을 지켜보고 있다가 등불이 꺼진 것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한 시진 공부하고 포기했으니 고작 2~3쪽을 공부했겠군. 역시 내 중급 연단 이론은 꽤 어렵단 말이지. 아마 내일 기껏해야 30점을 받겠구먼. 겸손이란 걸 가르쳐줄 좋은 기회가 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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