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장: 이번에도 100점이다!
빠르게 책을 훑은 두변은 바로 누워 잠을 청했고 재빨리 꿈의 세계로 들어갔다. 꿈의 세계라는 특수한 능력을 갖춘 두변일지라도 일분일초가 급했다.
꿈의 세계에 진입하자 두변의 뇌는 다시 한번 ‘중급 연단 이론’의 모든 내용을 슬라이드처럼 보여주었다.
영종오가 집필한 ‘중급 연단 이론’은 정말 어려웠다. 다루는 내용이 전부 낯선 변종, 신비로운 기체, 능원체 등이었으며 복잡하고 추상적이며 심오한 내용이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한 시간에 1쪽 읽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꿈의 세계였다.
두변은 1쪽씩 읽고 또 외워나갔다.
한 시간이 지났을 때 두변은 이미 10쪽을, 열 시간이 지났을 때 100쪽을 읽고 외웠으며 하루가 꼬박 지나가자 250쪽을 섭렵할 수 있었다.
나흘이 지나고 나서야 두꺼운 ‘중급 연단 이론’을 전부 외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외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했고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융합하며 연계해야 했다.
남은 시간 동안 두변은 이미 외운 이론을 심도 있게 파고들었다.
다시 꼬박 하루가 지나고, 두변은 중급 연단 이론의 1차적인 이해를 마쳤다.
모든 생물학적 종(種)이 가지고 있는 능량의 속성은 종의 끊임없는 변화로 각양각색의 형태를 띠게 되지만 결국은 십여 개의 능량 속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두변은 아직까지 피상적인 이해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같은 능량 속성을 가진 종일지라도 완전히 다른 특징을 나타낼 수 있고, 연단 사용에서도 전혀 다른 작용이나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는 것까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어서 두변은 중급 연단 이론의 내재적인 법칙을 찾는 데 열중했다.
하지만 그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이 책은 오백여 개의 종을 다루고 있는데, 변화가 무궁무진했고 능량 속성 외에도 다른 공통의 법칙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두변이 계속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머릿속에서 무언가 떠올랐다.
바로 원소 주기율표!
그리고…….
모든 것이 저절로 해결되었다!
이 세계에서의 변이물질, 그리고 제아무리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 물질이라도 원소 주기율표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능량이든 기체든 아니면 다른 변이물질이든, 모든 물질은 원소 주기율표에서 찾을 수 있었다. 다만 ‘기체 상태의 금속’ 혹은 ‘원소와 능량이 뒤섞인 특수형태’처럼 표현 방식이 조금 달라질 뿐이다.
이 세계에 특수한 능량이 침투하면서 이 세계 일부 물질에서 변이가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변이일지라도 본래의 물질 원소나 원자, 분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았다.
이 규칙과 원소 주기율표를 제대로 이해한 뒤 계속 공부를 해나가니 내용의 이해와 융합, 연계가 한층 수월해졌다.
거의 모든 반응, 그리고 모든 조제 방법과 원리들을 화학 공식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연단학의 핵심이었다. 이것만 제대로 해낸다면 앞으로 그렇게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을 것처럼 보였다.
두변은 몹시 흥분하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현대 지구의 화학 수업을 받아보지도 않았을 테고 원소 주기율표가 뭔지도 모르는 영종오가 ‘중급 연단 이론’을 써낸 것이 아닌가.
중급 연단 이론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은 후, 두변은 빠른 속도로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해 나가기 시작했다.
만약 이 모든 걸 현실 세계에서 하려 했다면 누군가의 가르침 아래 1년 정도의 세월을 투자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두변은 꿈의 세계에서 훨씬 수월하게 해낼 수 있었다.
두변은 마침내 중급 연단 이론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밖에서 수탉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두변은 잠에서 깼다.
세수를 마친 두변은 영종오, 노복과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
영종오가 득의양양하게 물었다.
“두변, 어제 책을 한 시진도 다 못 보고 불을 끄고 잠들었더구나? 한 시진이면 기껏해야 2~3쪽을 이해했겠지. 물론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겠지.”
“대종사께서 일부러 저를 함정에 빠트리신 거 아닙니까. 그 책은 겉표지에 <기초 연단 이론>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전부 환관 학원에서 배운 적도 없던 <중급 연단 이론>의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 책 또한 <기초 연단 이론>이니라. 그리고 내가 분명 오늘 시험 보는 내용이 대부분 그 책에서 나온다고 일러줬지 않느냐. 그런데 너는 자신 있게 그 책의 내용을 전부 안다고 하고 바로 시험 볼 수 있다고 직접 얘기했으니 네가 스스로 동의한 셈이지.”
영종오는 유치하게도 ‘나도 켕기는 게 있긴 하지만 그래도 어쩔 거냐?’ 하는 얄미운 표정으로 두변을 바라봤다.
“이렇게 하자꾸나. 네게 기회를 주마. 지금 패배를 인정하고 내게 다시는 오만한 태도를 보이지 않으며 내 수업을 열심히 듣는다고 약속을 하면 처벌을 반으로 줄여주겠다. 너도 시험 볼 필요가 없이 연화사에 있는 총 8개 변소 중에 4곳만 청소하면 되는 것이야.”
영종오의 양심이 자신의 학생에게 너무 모진 수를 써선 안 된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두변에게 승산이 없는 일은 빨리 포기하고 베푸는 호의를 받으라는 신호를 주었다.
하지만 두변은 이런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그냥 시험을 보겠습니다.”
“정말이냐? 90점을 넘지 못한다면 변소 8개를 청소해야 할 것이야. 그때 가서 나를 원망하지 말아라. 너는 <중급 연단 이론>을 배운 적이 없어 하룻밤에 4~5쪽을 공부하기도 벅찼을 테니 이번 시험에서 30점 받기도 힘들 게다. 이 30점도 네가 <기초 연단 이론>을 배웠기에 받는 점수지.
<중급 연단 이론>은 단지 읽고 외우는 데만 해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이해도 해야 하지. 그 안에 있는 2차적인 내재 규칙은 매우 심오한데 이 규칙을 이해하지 못하면 연단학에 정통할 수가 없다. 네가 중급 연단 이론을 열 번 반복해서 외웠다고 해도 무용지물이야.”
두변은 대종사가 자신의 학생을 괴롭히는 것 외에도 자기 자랑을 늘어놓으며 생색내는 것도 즐긴다는 걸 눈치챘다.
“원래 약속대로 하겠습니다. 저는 시험을 볼 것이고 90점을 넘지 못한다면 모든 변소를 제가 다 청소하겠습니다.”
“흥. 그래. 한번 끝까지 가보자꾸나.
여봐라. 물통과 솔, 빗자루를 준비해 놓거라. 시험을 마치면 두변이 변소를 청소하러 간단다. 사찰에 있는 모든 변소를 깨끗하게 청소한다고 하니 조금이라도 더러운 데가 있으면 내 거기에 두변을 앉혀 밥을 먹일 것이야.”
“알겠습니다.”
공주가 떠난 후라 연화사의 승려들이 모두 다시 돌아와 있었다. 재밌는 구경거리가 생겼으니 승려들도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물통과 솔, 빗자루 등 변소를 청소할 도구를 준비해두었다.
영종오와 두변은 연화사의 가장 높은 누각으로 이동했다.
두변은 자리에 앉아 종이를 펼쳐놓고 시험 볼 준비를 했다.
영종오가 말했다.
“이번 시험이 끝나고 오만과 자만 대신 겸손과 겸허가 네놈의 몸에 배었으면 좋겠구나.”
말을 마친 영종오는 두툼한 시험지 여덟 장을 두변의 앞에 놓았고 모래시계도 꺼내 뒤집었다.
모래알이 밑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시험 시간은 두 시간이다. 시작!”
두변은 연단 이론 시험지를 펼쳐보고는 당황했다.
어려울 줄은 예상했으나 이 정도 난이도일 줄은 생각지 못한 것이다.
환관 학원에서 배운 내용만이었다면 30점밖에 받을 수 없었을 것이고, 나머지 70점은 모두 중급 연단 이론을 배워야 풀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중급 연단 이론을 전부 외웠다 하더라도 80점밖에 받지 못했을 것이다.
남은 20점은 융합, 연계형 문제들이어서 연단학의 규칙을 완전히 파악해야 가능한 문제였다. 무수한 종 사이의 심층적인 규칙, 현대 세계의 화학에 해당하는 내용을 통달해야 가능한 문제들이었다.
이번 시험에서 30점을 받는다면 환관 학원 졸업시험에서 연단 기초 이론은 무조건 만점을 받을 정도라고 하니, 이 시험의 난이도는 환관 학원에서라면 상상조차 못 할 정도로 높다고 할 만했다. 올림피아드 경시대회와 초등학교 산수시험의 난도 차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기초 연단 이론과 중급 연단 이론을 둘 다 완벽하게 습득한 두변도 모든 문제를 충분한 사고를 거친 후에야 답을 적어낼 수 있었기에 굉장히 까다로웠다.
정해진 두 시간의 시험 시간 중, 두변은 한 시간 반의 시간을 쓴 후에야 답안지를 완성할 수 있었다.
답안 작성을 마친 두변은 혹시 실수가 있지는 않았는지 두 번이나 꼼꼼히 검토했다.
이전에 백천이 낸 시험은 손쉽게 풀었고 대종사의 입문 시험도 미리 답을 알았기에 어렵지 않았지만, 이번 시험은 절대 녹록지 않았다. 이번 시험은 두변이 온전히 자신의 실력으로 푼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두변은 시험지를 바로 제출하지도 않고 반복해서 검토를 진행했는데 이번에도 100점을 받을 수 있어 보였다.
“자, 시간이 됐다!”
모래시계에 있던 모래알들이 전부 밑으로 흘러내리자, 영종오가 몸을 일으켰다.
“자 이제 답안 작성을 멈추고 변소 청소할 준비를 해라.”
영종오는 직접 두변의 답안지를 집어가서는 채점을 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영종오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눈을 크게 떴다. 순간 마귀에게 목을 잡힌 것처럼 목구멍이 막히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두변의 시험지에 쓰인 글씨들은 여전히 너무 보기 좋고 정갈했다. 이번에는 미불의 글씨체가 아닌 조길(趙佶)의 수금체(瘦金體)로 썼기 때문에, 대종사 영종오는 한동안 아름다운 글씨체에 매료되어 글씨체만 보고 있었다.
‘이 쪼끄만 꼬맹이가 이토록 과시하는 걸 좋아하다니. 시험 볼 때마다 글씨체를 바꿔? 그런데도 다 보기 좋단 말이지. 서예 대가의 걸작이라 해도 손색이 없겠구나.’
영종오 대종사는 본인도 현학과 과시를 즐긴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대종사는 곧 채점에 돌입했다.
첫 번째 문제 정답. 두 번째 문제 정답. 세 번째 문제 정답.
앞의 30점은 기초 연단 이론을 배웠으면 충분히 받을 점수였기에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뒤이은 50점은 중급 연단 이론에 관한 내용이기에 두변이 정답을 맞출 리 없다고 믿었다.
그런데…….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문제까지, 중급 연단 이론에 관한 다섯 문항에 대한 답은 정답에 비견될 정도로 모두 정확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 않은가!
어제 중급 연단 이론을 고작 몇 쪽밖에 보지 못했을 텐데, 어떻게 다 맞출 수 있는 거지?
도대체 어찌 된 일이야?’
채점을 잠시 멈춘 대종사는 눈을 감고 필사적으로 안정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모든 희망이 마지막 한 문제에 달려 있었다. 당연히 제일 어려운 문항으로, 중급 연단 이론을 다 달달 외워야 할 뿐 아니라 물질 규칙에 대한 1, 2차적인 이해도 필요했다.
1차적인 이해는 능량의 속성에 관한 것이었기에 많아 봐야 8~90종을 넘지 않지만, 2차적인 물질 법칙에 대한 난이도는 극악으로 어려워서 몇십 년 연구를 거친 수많은 연단 대사들도 완전한 이해는 힘들어했다.
이 같은 이유로 마지막 문제는 전문적인 연단사라 할지라도 제대로 된 답을 써내긴 어려웠으니 두변 같은 초보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제발 틀려라. 이걸 맞추면 90점을 넘게 된단 말이야. 내가 변소 청소를 할 수도 있다고!
아니야. 괜한 걱정은 말자. 이 문제를 맞히는 건 불가능해. 환관 학원의 연단 선생이라 해도 풀지 못할 테니 이변이 일어날 확률은 없는 셈이지.’
깊게 숨을 들이쉰 대종사는 눈을 크게 뜨고 마지막 문제가 있는 마지막 장을 펼쳐보았다.
답을 보자마자 대종사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너무 놀란 나머지 목구멍에서 숨이 턱 하고 막히면서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마지막 문제는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했기에 몇십 년 된 연단사도 맞추기 힘든 문제였음에도 뜻밖에 두변이 정확한 답을 써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거지?
이건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쟨 귀신인 게야!’
대종사는 하마터면 눈물이 나올 뻔했다.
목이 메어온 대종사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그는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천재를 이렇게 함부로 내도 되는 겁니까? 도대체 이 세상에 정의란 존재하긴 하는 거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