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장: 변소 닦는 대종사
그때 두변이 옆에서 조용히 소리를 내었다.
“대종사, 제 점수가 나왔습니까?”
영종오는 이를 갈며 두변을 쳐다봤고, 다시 한 번 더 이를 갈며 두변의 시험지를 쳐다봤다.
두변이 90점을 넘긴다면 이토록 위풍당당한 자신이 변소를 청소하러 가야 하니,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도 두변에게 89점을 주고 싶었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너무도 간단하게 두변의 점수를 깎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왜 답안지가 정갈하지 않으냐? 글씨체를 뽐내러 쓴 거냐? 왜 얇은 붓으로 글씨를 썼느냐? 등등 11점을 깎을 이유야 만들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영종오 대종사는 그래도 염치라는 게 있는 분이기에 분노하면서도 시험지에 100점을 적어냈다.
학생을 골통 먹이는 것도 자기 실력이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붓에 너무 힘을 과도하게 준 탓인지 시험지가 찢어져 버렸다.
그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두변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놈아. 어디 두고 보자. 산술 과목 시험에서 복수해주마. 네 녀석이 산술에 뛰어난 건 알고 있지만 그럴수록 사소한 실수에 발목을 잡히기 마련이지.
내 이미 세상에서 가장 난해한 문제를 준비해 놓았다. 다음 산술 시험에서 네놈을 굴복시키지 못하면 내 이름이 더는 영종오가 아니고, 네놈을 길들이지 못하면 내가 대종사도 아니지.
이놈! 내일은 몇만 근의 똥이 네놈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대종사의 위험하고도 득의양양한 눈빛을 본 두변은 저도 모르게 몸서리쳤다.
‘젠장. 대종사가 지금 나를 어떻게 구워삶나, 고민하고 있는 거 같은데?
대종사와 두변이 누각에서 걸어 나왔다.
마당에서는 노복이 한 무리의 승려들을 이끌고 물통, 밀대, 빗자루 등 물건들을 챙겨와서는 조심스럽게 아뢰었다.
“대종사, 준비를 다 마쳤습니다. 두변, 얼른 변소 청소하러 가야지. 모든 변소를 다 깨끗하게 청소해야 한다.”
“대종사, 변소 청소는 없던 거로 하시죠. 이번 내기는 그저 심심풀이였지 않습니까. 그냥 장난은 장난으로 넘기시는 게 어떻습니까?”
두변의 말에 노복이 말했다.
“장난이라? 꿈도 야무지구나. 남아일언 중천금이거늘. 졌으면 패배를 인정하고 변소를 청소하러 가야지, 혹시나 빠져나갈 생각은 말아라. 설마 거세당했다고 기개나 절개도 같이 거세당하진 않았겠지?”
대종사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는, 물통과 빗자루를 빼앗아 들고는 변소를 향해 걸어갔다.
모두가 놀라며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종사께서 왜 저러는 거지?’
이 물음을 던지고 난 그들은 완전히 불가능한 결과 하나를 떠올렸다.
‘설마, 대종사께서 진 건가?’
갑자기 노복과 승려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는, 바로 대종사에게로 달려갔다.
“대종사, 변소 청소라뇨. 장난은 그저 장난으로 넘기시면 됩니다. 청소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들은 어쩜 이렇게도 낯짝이 두껍단 말인가?
대종사가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지는 사람이 변소를 청소하기로 했으니 내 반드시 약속을 지킬 것이다.”
“그렇다면 소인도 돕겠습니다.”
노복이 말하자 승려 한 무리가 몰려들었고, 두변도 무리에 합류해 같이 외쳤다.
“대종사, 제가 청소를 돕겠습니다!”
대종사 영종오가 분노했다.
“필요 없다! 혼자 청소하기로 정해놓았으니 그대로 따르겠다. 누구든 일을 거드는 자가 있으면 내 가만두지 않을 것이야.”
그제야 다들 대종사를 돕겠다는 마음을 접었다.
모두가 대종사를 돕겠다고 나섰지만, 그는 단칼에 거절하며 혼자서 큰 물통을 들고 가장 큰 변소로 향했다.
잠시 후 변소에서 나온 영종오가 두변에게 말했다.
“나를 따라서 오너라.”
두변은 그를 따라 서재로 들어갔다.
서재의 벽에는 두변이 치러야 할 시험들의 소과목을 적어놓은 목패들이 주르륵 걸려 있었다. 첫 번째 목패는 근력, 두 번째는 민첩성이 적혀 있었고, 이 두 가지 목패에는 두변이 이미 통과했다는 표시가 되어 있었다.
세 번째 목패는 기초 연단 이론이었고 네 번째는 산술, 다섯 번째는 국학, 여섯 번째는 정지 고정 표적술, 일곱 번째는 기마술, 여덟 번째는 마상 궁술 등이 적혀 있었다.
이것들을 한데 모으니 목패가 11개나 되었다. 이는 두변의 졸업 시험 다섯 개 과목에 대한 소과목으로, 이들을 모두 합치면 총 점수가 500점이 된다.
“근력 과목 10점, 민첩 과목 10점, 이 두 과목은 네가 이전에 완성한 것이다. 이제 기초 연단 이론 과목의 20점도 끝마쳤다.
모두 11개의 소과목에서 지금까지 세 과목을 끝냈고 앞으로 과목 8개가 남았다. 이를 135일 이내에 완성해야 하지.”
대종사가 붓을 들어 세 번째 목패에 통과했다는 표시를 하자 두변은 숙연해졌다.
대종사는 자기과시와 학생들을 골탕 먹이는 것을 좋아했으며 기분이 변덕스럽고 민감하며 감성적이었다. 하지만 기본적인 태도는 매우 진지했다.
대종사가 이어서 말했다.
“기초 연단 이론은 본래 열흘에 걸쳐 배워야 하지만 네가 하루 만에 끝냈으니 아흐레를 아끼게 되었다. 우리는 곧바로 다음 산술 수업에 들어간다. 이것이 내가 준비한 산술 강의교재다. 내가 변소를 청소할 동안 보고 있거라. 모르는 곳이 있으면 물어보러 와도 된다.”
“알겠습니다.”
산술 강의교재는 두꺼운 교재 세 권이었다.
영종오가 말했다.
“네가 대단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산술은 매우 광범위하고 또 깊이가 있는 학문이니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굴지 말고 겸손하게 공부하도록 해라. 그렇지 않으면 사소한 실수가 네 발목을 잡을 테니 그때 가서 나를 원망해도 소용 없을 게다.”
대종사는 이미 두변에게 덫을 놓은 셈이었다.
“알겠습니다.”
두변이 대답했다.
“궁술을 익힌 후 기마술 연습에 들어갈 때 말 한 필이 필요한데 준비가 되어 있느냐?”
“이문회 대인께서 사람을 초원에 보내 천리마 한 필을 사주셨다고 합니다.”
“이문회가 네게 지극정성이로구나.”
어찌 지극정성이라는 말로밖에 표현하지 못할까. 이문회는 두변에게 말도 하지 않고 심복 다섯 명을 초원에 보내 은자 일만 오천 냥을 가지고 몽고 왕정에 찾아가 머나먼 서역에서 건너온 천리마를 사들였다.
말 한 필에 은자 일만 오천 냥이라니, 듣기만 해도 까무러칠 정도의 값이었다.
이문회는 평소에 매우 검소한 생활을 유지해 왔으며 자신에게는 은자 1냥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차와 도자기를 구매하는 데 은자 1냥을 넘기지 않았고 밥상도 매우 검소했다. 평소의 복장도 대부분 동창과 환관 학원에서 제공해주는 것들이었으며 자신의 돈으로 새 옷을 사는 데 굉장히 인색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두변에게 일만 냥이 넘은 은자를 투자했으니, 그야말로 지독한 사치라 할 만했다.
천리마는 기마술 시험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앞으로 두변과 함께 전장을 누비는 동료가 될 것이고, 전장에서 큰 활약을 하도록 두변에게 날개를 달아주게 될 것이다.
영종오가 말했다.
“그럼 너는 산술 강의교재를 보고 있거라. 나는 변소 청소를 다녀오마.”
위풍당당하던 대종사는 남은 하루 동안 정말로 혼자서 변소 청소를 했다.
연화사의 크고 작은 변소 여덟 곳에는 몇백 명의 승려들이 오랫동안 묵혀둔 분뇨가 쌓여 있었다.
이 얼마나 가엾은가! 위풍당당하던 대종사가 언제 이렇게 더러운 일을 해보겠는가냐만은, 내기는 내기였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대종사는 변소를 청소하면서 적어도 수십 번은 몇 번이고 뛰쳐나가 이 빌어먹을 두변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나는 대종사다, 나는 대종사다. 결과에 승복하자, 결과에 승복하자.’
대종사가 변소를 청소하고 있는 동안 두변은 열심히 산술 강의교재를 살펴보고 있었다.
이는 산술 강의교재이긴 했으나 사실상 대종사가 오랫동안 쌓아온 산술에 대한 깨달음이 고스란히 녹아 들어간 책이었고 여러 산술 난제에 대한 해설이 달려있었다.
이 세계에도 수학자가 있고, 산술도 하나의 학과로 존재했다. 하지만 환관 학원과 문관 서원에서 가장 높은 수준도 기껏해야 초등학생 수준에 불과했다.
현대 지구에서 중학생 수준의 산술 수준이면 대녕 왕조에서 최상위 수학 지식에 속하며, 극히 소수의 사람들끼리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렇다면 영종오의 산술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그의 지식 중 일부는 이미 대학의 고등 수학 수준까지 올라와 있었으니, 지금 세대보다 족히 몇 세대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두변은 영종오의 대단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사실 두변은 자신의 수학 실력이면 이 세계에서 대적할 자가 없다고 여겼으나, 대종사의 강의교재를 읽고는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몇 쪽을 넘길 때마다 대종사의 지식에 감탄했고 그의 사고에 탄복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해 보이기도 했지만, 지금 밖에서 분뇨를 퍼내고 있는 영종오는 확실히 대녕 왕조의 일대(一代) 종사이면서 전재(全才) 종사라 할 만했다.
이제 두변은 점점 영종오가 대종사가 되기까지 무언가 특별한 경험이 있었으리라 확신하게 되었다. 학술과 무공에 능할 뿐만 아니라 그 밖의 모든 것에 능통한 영종오의 배후에 신비한 힘이나 어떤 인물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으며, 어쩌면 그가 이 세계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이 든 것이다.
물론 대종사에게 감탄하긴 했지만 사실 두변은 산술 과목에서 공부할 게 없었다. 21세기 현대 지구에서 초등학교부터 석사 학위까지 전문적인 수학교육을 받아온 그였다. 수학 천재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는 고등학교 때 올림피아드에 참가한 적이 있었고 대학의 기말시험 수학 성적 또한 우수했다.
그래서 이 세계에서 산술은 두변이 가장 잘하는 과목이었고 따로 공부할 필요도 없었다. 대종사를 포함한 어느 누가 그에게 문제를 내더라도 다 풀어낼 자신이 있었다.
저녁이 돼서야 대종사는 변소 청소를 마쳤다.
그는 혼자서 연화사에 있는 여덟 개의 변소를 깨끗이 청소했고 분뇨를 통 백여 개에 담아 퍼내는 과정에서 무려 여덟 번이나 토했다.
역시 대종사라는 이름에 맞게 변소 청소도 누구보다 빨리 끝냈다.
그런데 그는 힘들게 퍼낸 분뇨 통 백여 개를 왜 가지런히 정렬해 놓은 것일까?
청소를 마친 대종사는 한 시진이나 목욕을 하며, 씻고 또 씻어 피부가 벗겨질 때까지 살을 문질렀다.
그런데 왜 이유 모를 냄새는 절대 씻겨지지 않는 걸까요?
하지만 대종사는 포기하지 않고 내공을 운용해 모공에 박혀있는 분뇨 냄새까지 뽑아냈다. 내공으로 독을 치유한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분뇨 냄새를 제거한다는 것은 처음 들어보는 일이었다.
대종사가 다시 두변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의 몸에서는 아무런 악취도 남아있지 않았고 선풍도골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두변, 내 산술 강의교재를 본 소감이 어떠하냐?”
영종오가 부드럽게 물었다.
“일부분만 보았습니다.”
“그래. 소감은?”
“대종사께서는 모든 이치에 통달하며 박학다식하신 것 같습니다. 산술에도 조예가 깊으시군요. 저도 더는 자만하지 않고 경외심과 겸손함을 가져야겠습니다.”
“배우고자 하는 자세가 되어 있구나. 혹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지 가르침을 청하거라.”
모처럼 사제 간에 좋은 분위기가 형성되나 싶었지만 뒤이어 들려온 두변의 말에 분위기는 무너지고 말았다.
“저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없습니다.”
이 말을 듣자마자 영종오는 마음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두변 네놈이 참으로 오만하구나!
선생이 모르는 부분이 있냐고 물어보면 설령 다 아는 내용일지라도 선생께 가르침을 청해야 하거늘, 모르는 게 없다고 하는 건 자기가 선생보다 더 잘났다고 유세 떠는 것이 아니더냐?
하지만 영종오가 원했던 것이 바로 두변의 오만이었다. 그는 이번 기회를 통해 두변에게 확실하게 사람됨을 가르쳐야겠다 다짐했다.
“네가 모르는 게 없다고 하니 내가 가르칠 것도 없겠구나. 그렇다면 내일 산술과목의 시험을 치는 게 어떻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