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63화 (63/648)

제63장: 놀라움을 금치 못한 대종사

“대종사, 정말 너무하십니다!”

두변이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아하하하, 악독하지 않고서는 대장부가 될 수 없지(無毒不丈夫)!”

대종사가 웃으며 대답했다.

대종사는 ‘도량이 좁으면 대장부가 되지 못한다는 말(無度量不丈夫)’을 뻔히 알면서도 이렇게 돌려쓰는 것일 테다. 게다가 자신도 환관이면서 무슨 대장부란 말인가.

대종사가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시험을 치르기 전에 내가 호의를 베풀었을 때 감사히 생각했어야지. 이젠 후회해도 늦었다. 하하하.”

요 꼬마 녀석에게 드디어 복수할 시간이 찾아왔구나!

“지금 당장 답안지를 제출할 것이냐? 아니면 남은 시간 동안 계속 버틸 것이냐? 아직 30분이 남긴 했다.”

“무력하게 패배를 인정하진 않을 겁니다. 마지막 1분까지 계속 물고 늘어질 겁니다.”

“그래그래, 좋다. 나도 굳이 여기서 너를 지켜보고 있지 않으마. 모든 방법을 동원해 마지막 문제를 풀어보도록 하여라. 네 녀석의 얼빠진 모습이 보기 좋지만은 않구나. 시간이 되면 고분고분하게 똥이나 나르도록 하여라.”

대종사가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문밖에 있던 노복이 얼른 다가와서 물었다.

“대종사, 어떻게 되었습니까?”

“대충 결과가 나온 듯하구나. 저 아이는 이길 수 없다.”

“다행입니다. 역시 어르신은 대단하십니다. 저 꼬맹이가 울상 쓰는 모습을 오랫동안 기다려왔습니다. 소인은 이제 모든 승려를 불러내 두변이 똥오줌을 잘 지고 잘 나르는지 감독하라고 시키겠습니다. 물론 아무도 도와주면 안 된다고도 일러 놓겠습니다.”

이어서 노복이 연화사를 돌아다니며 소리쳤다.

“모든 승려는 들으십시오! 모두 나와서 두변이 똥오줌을 지고 나르는 걸 감독하십시오. 두변이 곧 똥 이만 근을 산 아래로 지고 내려가 몇백 묘나 되는 땅에 거름으로 준답니다!”

순식간에 승려들이 죄다 쏟아져 나와서는 연화사의 넓은 정원에 자리를 잡고 섰다.

이제, 두변이 고생하는 모습을 지켜볼 차례였다.

하지만 이때 두변의 얼굴에 교활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만약 난이도가 극악인 문제라면 두변이 풀지 못할 수도 있고, 설령 문제를 풀 수 있다 할지라도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골드바흐의 추측이라면?

현대 지구의 수많은 선현들이 이 난제를 풀기 위해 몇십 년간 노력을 쏟아부었고, 노르웨이 수학자 브라운과 소비에트의 부허스가로(Byxwrao), 중국의 화나경(華羅庚), 진경윤(陳景潤) 등이 조금씩 수학의 정상에 근접해가고 있었다.

두변은 완벽한 답을 적어낼 수는 없었지만, 굳이 완벽한 답을 써낼 필요도 없었다.

두변에게 필요한 점수는 100점이 아니라 90점이면 충분했다.

두변은 이들 수학 거장들의 성과를 종합, 정리하는 식으로 마지막 문제에 대한 답을 답안지에 빼곡하게 적기 시작했다.

비록 문제에 대한 완벽한 답을 적는 건 아니지만, 이 답은 이 세계의 수학계에는 이미 경천동지 수준의 파장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심지어 위대한 금자탑이었다.

이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사고를 녹여낸 훌륭한 답안이기에, 90점은 물론 95점도 충분히 노려볼 만했다.

어느새 모래시계의 모래가 전부 떨어졌다.

대종사가 다가오면서 크게 웃었다.

“시간이 되었다. 밖에서 모두가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나가 똥을 나르도록 해라. 마지막 문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라는 걸 너도 눈치챘을 거다. 이 세계의 그 누구도 풀 수 없는 문제지. 나는 선생으로서 네가 산술의 위대함을 알고 겸손한 태도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문제를 냈을 뿐이다.”

하지만 잠시 후 두변의 답안지를 집어 든 대종사는 온몸이 조각상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두변이 앞의 아홉 문제는 무조건 맞추었을 것이라 생각한 대종사는 앞부분은 살펴보지도 않고 바로 마지막 문제의 답안지를 펼쳤다.

대종사는 속으로 두변이 마지막 문제의 답안지를 공백으로 비워 놓았거나 쓸모없는 내용으로 가득 채웠을 것이라 생각했다.

멘데소로스의 추측은 지난 50여 년간 대종사 본인을 포함한 동·서방의 학술 대가들이 심혈을 쏟아부었음에도 그 답을 찾지 못한 난제였다.

증명을 해냈다고 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었지만 전부 엉터리였다.

서방 세계에서 간혹 삼류, 사류의 수학자들이 자신이 이 문제를 증명해 낼 수 있다고 큰소리쳤지만, 그들이 말하는 소위 ‘증명’이라는 걸 보면 억측이 난무하는 허점투성이였기 때문에 수학적 엄밀성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었다.

진정한 대가 중에는 이 문제를 증명해 낼 수 있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영종오를 포함한 대종사들은 이 문제를 증명해 내기 위해 20여 년간 심혈을 기울여 연구했지만, 오늘날까지 아무런 수확도 얻지 못했다.

그래서 영종오는 두변이 빼곡히 적어낸 답변을 처음에는 수학적 증명이 아닌 억측이라고 여겨 시큰둥해했다. 그 짧은 30분 동안 이를 증명해 내기란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다른 대사들이 몇십 년 동안 연구했음에도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는데, 아무리 두변이 천재라고 해도 30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답안지의 다섯 번째 줄로 시선을 옮기는 순간, 대종사는 놀라기 시작했고 이어서 몸이 굳고 말았다.

두변의 답은, 정말로 어두운 하늘에 빛을 내며 지나가는 혜성과도 같았다!

대종사는 놀라움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옆에 있던 두변은 대종사가 큰 충격을 견딜 수 있을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혹시 무슨 일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

대종사는 오직 눈동자만 움직이면서 몸은 여전히 돌처럼 굳어있었다.

대종사의 시선이 계속해서 답안지의 아래쪽을 살펴 나갔다.

족히 몇 분 동안 대종사는 두변이 써낸 답안지를 전부 살펴봤다.

그후에도 대종사는 여전히 미동도 없었다. 옆에 있던 두변은 진심으로 대종사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두변은 대종사와의 이러한 경쟁을 정말 재미로만 생각했지, 그가 화를 이기지 못해 몸을 상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갑자기, 대종사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두변은 놀란 나머지 재빨리 허리를 숙였다.

“대종사, 제가 잘못했습니다. 대종사와 경쟁을 벌여선 안 되는 것인데……. 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지금 나가서 똥을 옮기겠습니다.”

그런데 대종사는 뜻밖에 두변을 꾹 눌러 앉히더니 오히려 두변에게 허리를 굽혔다.

두변은 더 어리둥절해졌다.

대종사가 화를 못 이겨 머리가 이상해진 건 아니겠지?

“얘야, 이건 기쁨이다.”

대종사가 두 눈에 눈물을 머금으며 말했다.

“얼마나 많은 산술 대가가 이 추측을 증명하기 위해 피땀을 흘렸는지 모르겠구나. 벌써 몇십 년이나 지났음에도 아무런 소득이 없었지. 천재가 나타나 이 어둠을 걷어내고 도저히 풀 수 없는 이 문제에 대해 한 줄기 빛을 선사해주었으면 하고 내가 얼마나 바랐는지 넌 모를 게다. 꿈에서도 그런 천재가 나타나기만을 바랐다. 그런데 바로 오늘! 꿈에도 생각지 못했지만 내 제자가 이렇게 직접 소원을 이뤄주고 내게 돌파구를 열어주었구나. 내 기쁨이 얼마나 큰지, 넌 알겠느냐?

그래서, 고맙다. 모든 산술 대가들과 멘데소로스를 대신해 내가 너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마.”

대종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두변을 향해 허리를 숙여 절을 했다.

두변은 대종사에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종사의 품격이요, 종사의 드넓은 도량이로구나.

하지만 자신이 이런 영예를 안을 자격은 없었다.

두변은 즉시 의자에서 일어나 옆으로 물러났다.

“대종사,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 답은 제가 생각해 낸 것이 아닙니다. 신선께서 제 꿈속으로 찾아와 일러주신 겁니다.”

이번에도 꿈에 신선이 찾아왔다는 핑계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뭐 어떻다는 것이냐?

신선이 네 꿈속에 찾아간 것은, 네가 재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또 네가 앞길이 창창한 천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네가 어떻게 답을 작성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네 덕분에 내가 죽기 전에라도 희망의 빛을 보았고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으니 너에게 고마운 것이지.”

“하지만 제가 적은 답안들은 일부분만 완성한 것이기 때문에 이 추측을 완전히 증명하진 못합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다뤘고 또 더 멀리 내다봤으니 모든 학술 종사들에게 방향을 제시해 준 셈이지.”

말을 마친 대종사는 붓을 들어 두변의 시험지를 채점하기 시작했다.

그는 매우 진지하게 점수를 매기다가, 마지막 문제에 대해서는 잠시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영종오 대종사는 눈을 감고 3분 정도를 고민하더니 결국 100점을 주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100점이었다.

두변이 놀라 물었다.

“대종사, 마지막 문제는 제가 완벽히 증명해 내지 못했는데요?”

“내겐 충분했다. 내가 100점을 주고 싶으니 100점을 주는 것이다.”

두변은 감격해서 그를 향해 예를 갖췄다.

“두변, 축하한다. 산술 과정도 성공적으로 마쳤구나.”

대종사는 다시 붓을 들어 네 번째 목패에 통과 표시를 했다.

“두변, 천재는 그 어떤 억압과 속박도 받아선 안 되니 오늘부터 네 능력을 마음껏 펼쳐 보이거라.”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종사.”

두변은 다시 한번 예를 갖췄다.

“그럼 나는 이제 똥을 나르러 가야겠구나. 하하하!”

대종사는 한바탕 호탕하게 웃더니 기쁜 마음으로 똥을 나르러 갔다.

두변이 똥을 나르는 모습을 지켜보려 밖에서 대기 중이던 노복과 승려들은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맙소사. 대종사가 또 진 거야?

게다가 스스로 화를 이기지 못해 정신이 나가신 거 같은데?

잠시 후 대종사는 똥을 한 통 짊어지더니 기분 좋게 산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 그러자 승려들도 부랴부랴 똥을 한 통씩 짊어지고는 거름을 주러 달려 내려갔다.

다음날.

영종오가 말했다.

“두변, 환관 학원 졸업 시험에서 네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 말해보려무나.”

두변이 대답했다.

“수석으로 졸업하는 겁니다. 1등이 아니면 아무 의미도 없을뿐더러 이는 제 목숨과도 직결되어 있는 문제입니다.”

영종오가 미간을 찌푸렸다.

“알겠다. 그러면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엄격하게 너를 대할 텐데 괜찮겠느냐?”

“괜찮습니다.”

“앞으로 남은 과목에서 모두 90점 이상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1등은 다른 사람의 차지가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열흘에 한 과목씩 마치되 모든 과목에서 95점 이상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게도 별 의미가 없으니까요.”

“오늘부터 새로운 과목인 국학을 공부하도록 하겠다.”

소위 국학이라는 수업은 서생들이 치르는 과거시험과 비슷했다. 이 세계는 아직도 과거시험에서 팔고문(八股文: 중국 명·청대의 과거에 관한 특별한 형식의 문장)으로 답안을 작성했고, 환관 학원도 이에 맞춰 팔고문 형식으로 국학 시험을 치러야 했다.

두변은 대학 다닐 때 팔고문에 흥미를 느끼고는 직접 팔고문을 써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저 취미 수준이었고, 명·청 시대에 과거시험을 치르던 서생들과 비교해보면 하늘과 땅 차이만큼의 실력 차이가 났다.

하지만 팔고문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라서, 십여 년 혹은 이십여 년의 고된 노력이 없으면 아예 팔고문 글을 써낼 수가 없을 정도였다.

환관 학원 학생들은 팔고문에 대한 조예가 이강 서원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고수는 존재했다. 특히 당엄은 광동 해원인 만큼 팔고문의 고수인지라, 두변을 처참히 짓밟을 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두변은 국학이란 과목에서 합격점을 받기는 어렵지 않겠으나 고득점을 얻기란 상당히 어려웠고 특히 당엄을 이기겠다는 생각은 터무니없는 망상에 가까웠다.

하지만 1등을 하려면 모든 과목에서 고득점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두변에게 국학을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열흘이 전부였다.

두변이 기초 연단 이론과 산술 과목에서 20일 정도 시간을 벌긴 했지만, 대종사는 국학 과목의 공부 시간을 열흘로 정했다.

열흘 공부해서 실력향상이 없으면 한 달 공부해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두변, 네 팔고문 실력은 어떠하냐?”

“보잘것없는 수준이라 겨우 과락을 면할 것 같습니다.”

대종사가 미간을 찌푸렸다.

“일이 성가시게 됐구나. 팔고문 실력을 올리는 건 하루아침에 가능한 일이 아니다. 최소 3~5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고 길게는 8~9년이 걸리기도 하지. 단 열흘 만에 성과를 보일 수 있을지 걱정되는구나.

이렇게 하자. 앞으로 며칠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과거 몇백 년 동안 과거시험에서 해원, 장원, 방안, 탐화랑을 했던 자들의 팔고문을 전부 외우거라. 외울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외우는 거다. 가장 우수한 팔고문을 외운다면 자연스럽게 팔고문을 잘 쓰는 법도 익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도 최고점을 받기는 힘들어 보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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