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장: 원시에 참가해 최씨 가문을 파멸시켜라!
이때 밖에서 한 여인이 처량하게 울부짖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사! 살려주십시오. 제 아들 좀 구해주세요!”
대종사 영종오는 지금 밖에서 울부짖는 여인의 집에서 잠시 묵었던 적이 있었기에 바로 누군지 알아차렸다. 여인에게는 매우 영특한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아이를 공부시키기 위해 여인은 허리끈을 졸라매며 집안의 모든 재산을 아이에게 투자했고, 아이가 과거시험에 붙어서 가족의 운명을 바꿔주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소년 또한 영리해서, 어렸을 때부터 줄곧 공부를 잘 해왔다.
“사람 먼저 구하자꾸나.”
대종사가 곧장 밖으로 달려 나갔다.
바깥 정원에서 남루한 행색의 부부가 대종사 앞에 무릎을 꿇고 오열하고 있었다.
“대사, 제 아들놈 좀 구해주세요. 제 아들이 열흘 뒤에 성도로 가서 원시(院試)를 쳐야 합니다. 현시(縣試)와 부시(府試)에서 수석을 했기에, 성도의 학정(學政: 각 성의 교육 행정 장관급) 대인이 제 아들이 원시에서 수석을 노려볼 만하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하필 지금 시기에 갑자기 괴질에 걸려서 생사를 오가고 있습니다. 이 아이가 저희 집안의 전부입니다.”
두변이 들것에 실려 있는 가난한 소년을 쳐다보니, 얼굴은 이미 퍼렇게 질려있고 숨은 간들간들하니 곧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소년은 자신과 외모도 비슷하고 골격까지 비슷해서 정말 인연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대종사가 소년에게로 다가가 눈꺼풀을 뒤집어 보고 입을 벌려보았으며 맥박을 짚고 나서는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두변, 너도 기초 연단과 중급 연단 이론을 공부했으니 소년이 어떤 증상을 보이는지 알아보겠느냐?”
두변도 가까이 다가가 소년의 눈꺼풀을 젖혔는데 눈의 흰자위가 없고 온통 검기만 했다. 다시 자세히 살펴보니 검은색은 아주 가느다란 검은 선이 엉켜져 있는 것으로, 계속해서 움직이기까지 했다.
“대종사, 이 소년은 병에 걸린 게 아니라 독충에 중독된 거 같습니다. 누군가 이 소년을 해친 것이로군요.”
대종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독충에 중독된 사실을 한눈에 알아차리다니 과연 두변다웠다.
이때 소년의 어머니가 말했다.
“분명 제 아들의 성적을 질투하는 사람일 겁니다! 제 아들이 곧 원시에서 1등을 할 것 같으니까, 그자가 제 아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자기가 1등을 하려는 게 분명합니다!”
“그 사람이 누군가요?”
두변이 물었다.
“계림성의 최 공자입니다! 분명 그자가 틀림없어요! 제 아들이 줄곧 최 공자가 가장 위협적인 경쟁상대라고 말해왔거든요. 게다가 이 둘이 말다툼도 있었고 홧김에 원시에서 누가 수석을 차지할 수 있을지 내기까지 했답니다. 내기에서 진 사람이 상대방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를 하자는 약속도 했고요.”
소년의 어머니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제 아들이 집에 돌아와서는 그 내기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하더군요.”
최 공자요?
이변이 없는 한 그때 두변을 모함했던 최씨 가문의 공자일 것이다.
정말,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던가.
방금 언급한 최 공자가 원시에 참가할 예정이라고 한 걸 보면, 최부와 최병정의 동생으로 광서에서 소문난 수재 최연(崔年)일 것이다.
독충에 중독된 소년의 어머니가 말했다.
“그다음 날 어떤 사람이 집에 은자를 가져오면서 제 아들에게 원시에서 기량을 적당히 감추라고 하더군요. 물론 저희가 거절했지요. 그러자 그자가 냉소를 짓더니 후회하지 말란 말을 남기고 갔어요. 그리고 사흘 뒤 오늘 이 일이 터진 거예요. 분명 그들이 해친 겁니다!”
최씨 가문은 정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종자들이로구나!
대종사가 눈살을 찌푸렸다.
“자네 아들이 중독된 독을 치료하려면 최소 보름의 시간이 걸리오. 하지만 그때가 되면 이미 원시는 끝나있겠군.”
이 말을 들은 아들의 어미가 대성통곡했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올해 원시에 응시하지 못하면 내년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아들을 교육하고 병을 고치는 데 이미 많은 빚을 져서 내년까지 버틸 수가 없어요. 만약 제 아들이 올해 수재(秀才)가 되지 못한다면 제 가엾은 딸은 팔려나가 그 더러운 늙은이의 소첩이 되어야 합니다.”
바로 이튿날 이삼은 이 천재 소년 진평(陳平)과 관련된 모든 일을 문자로 기록해 두변 앞에 갖다 놓았다.
최씨 가문은 광서성의 제1 사족(士族)이 되기 위해 정말 모든 것을 바쳤다고 할 만했다.
그들은 20년 전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 천재 소년 최암을 만들어냈다. 이 천재 소년은 지금 양주 지부가 되었고, 게다가 현 수보(首輔)의 학생이었기에 아마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는 15년 안에 내각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최씨 가문은 최암을 이을 차세대 후계자를 양성했는데 그가 바로 최부였다.
원래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최부는 스무 살도 채 되기 전에 광서 향시 해원(解元: 향시의 수석)이 되었고, 그가 천재 소년이란 명성은 남방 전체에 널리 퍼졌다.
최부도 마찬가지로 별 탈이 없었다면 2년 뒤에 회시(會試)에 응시할 것이고 일갑(一甲) 진사(進士)로 한림원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았다.
이렇게 된다면 최씨 가문의 차세대 지도자를 성공적으로 배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빌어먹을 두변이 등장했다. 두변은 3대 학부 대회에서 최부가 가장 자신 있던 서예와 회화에서 그를 처참하게 짓밟았다.
이뿐이 아니라 장양명은 최부가 두소창의 작품을 표절한 것 같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상황이 이쯤 되니 천재 소년이란 최부의 명성에도 흠이 가고 말았다. 비록 사람들에게 외면받지는 않을 테지만 문관 집단에서는 이렇게 명성에 오점이 있는 자를 밀어주려 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 최부는 향후 더 높은 직급으로 승진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그러자 최씨 가문은 또 다른 천재, 최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최연은 재능이 워낙 뛰어나서 최부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고, 고작 열여섯의 나이에도 팔고문에 능했다.
최씨 가문은 자원을 전부 최연에게 집중해 단 몇 개월 만에 최연의 명성을 광서성 전체에 퍼뜨렸다. 수많은 명사와 관리들이 최연을 찬양했고 청루의 화괴까지 모두 그의 시가를 노래했다.
최연도 현시와 부시에서 연달아 수석을 차지했기 때문에, 만약 이어지는 원시에서도 수석을 차지한다면 소삼원(小三元)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2년 후 향시에 응시하게 되면 최씨 가문은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해 최연을 반드시 광서의 해원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최씨 가문은 또 한 명의 훌륭한 후계자를 배출해내는 셈이었다.
그래서 이번 광서성의 원시에서 최연이 수석을 차지하도록 하는 게 최씨 가문의 목표였다.
최연도 자신의 실력만으로 충분히 원시 수석을 노려볼 만했으나, 뜻밖에도 한 농가에서 자란 진평이라는 천재 소년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최연이 지금까지 이뤄낸 성취는 6할이 재능, 4할이 가문의 지원이겠지만, 진평은 온전히 재능만으로 지금까지 성장한 천재였다.
진평은 공부를 시작한 지 고작 4년이 지난 올해 현시와 부시에 참가해 어렵지 않게 수석을 차지했다. 학정 대인조차도 진평의 글을 보고 감탄해 마지않았으며 광서성에서 특출난 영재가 나왔다며, 10년 뒤에는 장양명의 뒤를 이을 인재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진평은 최씨 가문의 걸림돌이 된 것이다.
원시에서 최연이 수석을 차지하도록 하는 게 최씨 가문의 목표이니만큼 과거시험의 주임 시험관을 매수할 생각을 안 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 주임 시험관은 최씨 가문과 문관 집단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진남공 송결의 사촌 동생이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천재 소년인 진평에게 잔인한 방법을 쓴 것이다.
하지만 최씨 가문이 이 소년에게 손을 썼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아직 찾을 수 없었다.
“이토록 비겁하고 잔인한 수까지 쓰다니, 정말 부끄러움을 모르는 졸렬한 가문이구나.”
대종사 영종오가 발끈 분노했다.
진평은 기가 많이 쇠약해서 겨우 숨만 고르고 있었고, 이미 독기가 얼굴 부위까지 퍼지면서 얼굴 전체 혈반이 많이 생겼다.
진평의 부모와 누이는 온 가족의 희망인 진평을 보며 대성통곡했다.
대종사도 탄식하며 말했다.
“내가 반년 전쯤에 이 집에서 묵은 적이 있었는데 집에 먹을 게 없었는데도 오히려 닭을 잡고 쌀을 꾸어 나를 대접해 주었단다. 이렇게 큰 빚을 졌는데 어찌 모른 척할 수 있겠느냐?”
“이 소년을 구할 방도가 있으신 겁니까?”
두변이 물었다.
“내 모든 걸 쏟아부으면 구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이 아이가 정신을 차리려면 적어도 보름의 시간이 걸릴 것이고 완전히 몸을 회복하려면 반년 이상은 걸릴 테지. 게다가 이 독은 정말 강해서 아마 이 독을 완전히 제거하는 과정에서 이 소년이 생기와 원기를 절반쯤을 잃게 될 게다.
다시 말해서, 이 아이는 이번 원시에 응시하는 게 절대 불가능하다.”
결과적으로 보면 최씨 가문의 음모는 성공하게 되고, 최연의 명성은 원시 수석을 시작으로 널리 퍼져나간다는 의미였다.
두변은 진평이라는 천재 소년이 가여웠지만, 쓸데없는 일에 참견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은 열흘 내로 몇백 년 동안 누적된 모든 장원, 방안, 탐화랑의 과거시험의 모든 글을 외워야 했다. 그 수를 모두 합치면 몇백 편이나 되는 양을 말이다.
게다가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에 대종사가 팔고문으로 지은 글을 무더기로 가져왔는데, 그 수가 무려 천 편에 이르렀다.
“일갑(一甲)만 보는 건 부족하니 이갑(二甲) 진사와 다른 성의 향시 해원의 글까지 보도록 하여라. 환관 학원의 졸업시험에는 아마 향시 해원의 글이 더 유용할 수도 있다. 이것들을 모조리 외우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최대한으로 외워야 한다.”
대종사가 말했다.
두변이 서재를 둘러보는데, 이 글을 모두 합치면 몇천 편은 되어 보였고 쌓아 놓으면 제 키보다 더 높을 듯했다.
“이것들은 죄다 어디서 난 겁니까?”
두변이 놀라 물었다.
“너희 동창이 못 구하는 물건이 어디 있겠느냐.”
결국 두변은 입을 다물고 이 수많은 팔고문에 파묻혀 미친 듯이 글을 읽어나갔다.
깨어있는 시간으로는 외우기는커녕 다 읽을 수도 없기에 속독으로 읽은 후 꿈의 세계에서 내용을 외울 계획이었다.
하지만 두변은 한나절 동안 고작 천 편의 글밖에 보지 못했다.
두변은 곧바로 바닥에 누워 수많은 팔고문을 끌어안은 채 잠을 청했고, 곧 꿈의 세계로 진입했다!
하지만 꿈의 세계에서 두변은 팔고문을 공부하거나 외울 수 없었다. 그 기이한 불빛이 다시 나타났다.
- 원시 수석 임무 시작: 천재 소년 진평을 대신해 원시에 참가하여 최연을 제치고 수석을 차지하라.
- 임무 보상 하나: 두변은 천재 소년의 충성과 일생 최고의 충성스러운 신하를 얻게 된다.
- 임무 보상 둘: 대종사로부터 최고 수준의 역용술(易容術: 변장술)을 전수 받는다.
- 임무를 받아들이겠는가?
광서성 원시까지 고작 아흐레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는데, 팔고문 햇병아리인 내가 원시에서 수석을 차지한다고?
두변은 황당했지만, 보상 내용에는 참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평생의 충신을 얻게 되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는 알 수 없어도, 최고 수준의 역용술을 전수 받는다는 건 진심 너무 좋은 보상이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두변이 대답했다.
기이한 불빛이 말했다.
“원시 수석 임무가 시작됐다.”
잠시 후, 두변은 양질의 팔고문을 암기하는 꿈의 세계로 들어갔다.
그리고 팔고문을 한 편, 또 한 편 계속 외워나갔다.
꿈의 세계에서 보름이 넘는 시간 동안, 두변은 팔고문 800편을 외웠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