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65화 (65/648)

제65장: 시험장에서의 전초전, 최병정 짓밟기

다음날 잠에서 깨어난 두변은 대종사를 찾아갔다.

“대종사께서 신묘한 역용술을 할 줄 아신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진평을 대신해서 아흐레 후에 열릴 원시에 참가하고 싶습니다.”

대종사가 아연실색해서 물었다.

“연유가 무엇이냐?”

“불의를 보고 정의를 실현하고 싶어졌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대종사께서 국학 수업 시간을 열흘로 정해주셨는데 제가 만약 진평을 대신해 원시에 참가해 수석을 차지한다면 국학 수업을 가장 깔끔하게 통과한 게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시간이 아흐레밖에 남지 않았다. 게다가 원시에 참가하는 서생들은 정말 하나같이 고수일 거다. 그중 최연은 가히 팔고문의 천재라고 할 수 있지.”

“만일 제가 수석을 차지한다면 최씨 가문의 음모를 좌절시키는 게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시간이 너무 부족한데…….”

“신묘한 역용술을 할 줄 아시지 않습니까?”

대종사가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역용술은 이수(異獸)의 가죽이 있어야 하고 또 두 사람의 얼굴 윤곽이 비슷해야 완전무결한 가면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런데 그 이수의 가죽은 그 값이 상상을 초월하지. 나도 서방국가에서 얻은 후 보물로 간직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토록 귀한 물건이라면 탐내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대종사는 깊은 생각에 빠지더니 무언가 결심이라도 한 듯 말했다.

“나도 최씨 가문의 도를 넘치는 행동을 보고만 있긴 어렵구나. 이렇게 하자. 닷새 후에 너에게 문제를 하나 낼 건데 네가 팔고문을 잘 짓고 진평의 필적을 그대로 흉내낼 수 있다면 네가 그 아이를 대신해 원시에 참가하는 걸 허락하마. 그리고 이수의 가죽도 너에게 주도록 하지.”

두변이 허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두변은 다시 팔고문을 한 편 한 편 외워나갔다.

사나흘이 지나자 두변은 몇천 편에 이르는 글을 완벽하게 외웠고, 약속한 닷새가 되어서는 영종오 대종사가 출제한 주제에 맞춰 답안을 팔고문으로 써냈다.

대종사가 글을 보고는 속으로 탄식했다.

“두변, 네 팔고문 실력이 참으로 많이 향상되었구나. 이 글은 상당히 잘 썼다. 하지만 이 실력으로는 원시에 급제할 가능성도 높질 않으니 수석을 차지하겠다는 건 불가능한 일 같구나.”

대종사는 조금 실망했다.

두변은 확실히 천재지만, 팔고문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실력이 향상할 수 있는 과목은 아니었다.

“됐다 됐어. 진평이 완전히 낫는다고 해도 그 아이의 얼굴은 망가질 수밖에 없다. 얼굴이 흉측하게 변하면 다시는 과거에 응시하기 힘들 게다. 그래서 이번이 마지막이자 유일한 기회라고 할 수 있지. 이번에 진평이 수재를 하지 못한다면 이 아이의 가족은 절망에 빠지게 될 게다. 비록 가망이 있는 건 아니지만 네가 그 아이를 대신해 한번 도전해 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되는구나. 오늘 저녁 내가 네 용모를 바꾸어 줄 테니 내일 바로 계림으로 출발해 원시에 참가해 보거라.

아, 그리고 진평의 필적은 독특하니 이 부분에서 실수하지 않도록 명심하거라.”

대종사가 말했다.

그때 두변이 진평의 글씨로 쓰인 글을 두 장 꺼내 들었다.

“이 두 장 중에 어느 것이 진평이 쓴 것이고 어느 것이 제가 모사한 것인지 알아보시겠습니까?”

두변이 물었다.

꿈의 세계에서 다른 능력이 얼마나 향상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모사라면 두변 자신이 최고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난정집서>도 거의 99퍼센트의 수준으로 모사를 해냈는데, 진평의 글자야 말할 것도 없었다.

대종사는 종이 둘을 받아든 다음 자세히 살펴보더니, 왼쪽에 든 종이를 들어 보였다.

“이것이 진평이 쓴 글이다.”

두변이 화들짝 놀랐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대종사가 씩 웃어 보였다.

“이 종이가 더 낡았거든. 이게 연륜이란다.”

두변이 씨익 웃었다.

“사실은 두 개 다 제가 쓴 글입니다. 하나는 일부러 낡은 종이에 썼을 뿐이지요.”

대종사가 버럭 화를 냈다.

“감히 나를 놀려? 네가 혼이 나고 싶은 게지!”

이때 밖에서 노복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종사! 소년이 깨어났습니다!”

“두변, 가자. 같이 아이를 보러 가야지.”

천재 소년 진평은 깨어났으나 얼굴에는 반점이 가득했고, 게다가 몸무게가 열 근 정도 빠져서 꽤나 야위어 보였다.

소년 옆에는 놀랍도록 예쁜 소녀가 서 있는데, 열대여섯 정도 되어 보였다. 남자인 두변을 마주하는 게 부끄러웠는지 조그만 토끼처럼 고개를 숙인 채 제 발만 쳐다보았다.

이 소녀는 진평의 누이인 진쌍쌍으로, 오라비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며칠 전 스스로 한 부잣집의 노비가 되어 오라비의 병을 치료하는 데 돈을 보탠 정 깊은 소녀였다.

소녀는 매우 조심스럽게 진평에게 꿀물을 먹이고 있던 중이었다.

몸에 기운이 없던 진평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두변을 발견하고는, 처음에는 놀라더니 곧 눈빛을 빛내며 힘들게 몸을 일으켰다.

“두변 대사, 두변 대사!”

두변은 깜짝 놀랐다.

‘이 소년은 나를 아는 건가? 왜 나를 대사라 부르지?’

소년은 두변의 추종자인 것마냥 열성적이었으나, 두변으로서는 전혀 모르는 아이였다.

“나를 알아?”

“용암 선생이 저를 3대 학부 대회에 데려가셨는데 그때 본 두변 대사의 풍모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있습니다!”

아하!

진평이 흥분하여 대답하자, 두변도 이제야 상황이 대충 이해됐다.

“최연과 왜 척을 지게 되었는지 자세하게 말해 줄 수 있나?”

두변의 물음에 진평이 대답했다.

“용암 선생이 저를 데리고 이강 서원에 책을 빌리러 갔었는데, 그때 최연이 두변 대사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온갖 욕설을 퍼붓는 걸 듣게 됐습니다. 게다가 3대 학부 대회에서 두변 대사가 부정행위를 했다는 모욕적인 언사도 내뱉으면서, 엄당에서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부터 잡아 죽여야 한다고 하더군요.

저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그와 언쟁을 벌였고 점점 강도가 심해져 위험한 내기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최연이 원시에서 수석을 차지한다면 제가 땅에 무릎 꿇고 ‘엄당은 하등 도움이 안 되는 집단이니 마땅히 죽여야 한다! 파렴치하고 쌍스러운 두변도 천벌을 받을 것이다!’라고 외치기로 말입니다. 만약 제가 수석을 차지한다면 최연이 무릎을 꿇고 ‘우리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두변을 존경한다!’라고 외치기로 했습니다.”

뭐라?

두변은 잠시 말이 없었다.

결국 이 사건은 자신과 관계된 일이었다.

이 천재 소년 진평은 제 추종자였고, 제 명예를 지키느라 화를 당한 것이다.

두변은 제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진평을 대신해 원시에 참가하겠다는 건 순전히 임무와 보상 때문이었지만, 이제는…… 책임의 문제로 바뀌고 말았다.

대종사는 진평이 새 삶을 얻게 될지라도 얼굴이 망가지게 될 거라 했다. 대녕 왕조에서는 얼굴이 평범하지 않은 자들은 과거시험에 참가할 자격도 없었다. 이번 원시는 진평이 출세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지금까지야 이기고 지는 것에 그렇게 연연하지 않았다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반드시 이겨야 했다.

밤이 되자, 대종사가 두변의 용모를 바꾸어주었다.

얼굴을 바꾸는 핵심은 바닷속에 서식하는 신묘한 이수의 가죽으로, 정말 매미 날개처럼 얇고 물처럼 부드러운 데 있었다.

대종사는 우선 진평의 얼굴을 본떠 가면의 기본 틀을 만들었다.

“다행히도 너희 둘이 얼굴 윤곽이 상당히 비슷하구나. 그렇지 않았다면 역용이 그리 쉽게 가능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대종사가 얇고 부드러운 가면을 두변의 얼굴에 붙였다.

정말 신기하게도 이 가면은 두변의 얼굴에 완전히 붙을 뿐 아니라, 피부에 스며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불편한 데가 있느냐?”

영종오가 물었다.

“처음에는 이질감이 들었으나 지금은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이 가면은 공기가 통해야 하니 솜털을 하나하나 정리해주마.”

대종사는 두변의 얼굴에 있는 솜털을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했다. 솜털의 수가 워낙 많아서 두 시진이 걸리고 나서야 정리가 끝났다.

이번에는 똑같은 모양으로 두변에게 눈썹을 그려 넣고 입매를 교정했으며, 진평의 목에 있는 모반도 그대로 옮겨 놓고 머리 모양도 비슷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피부도 조금 누르스름하게 만들고 얼굴에 반점도 몇 개 그려 넣었다. 눈에는 특수한 물약을 떨어트려 눈이 충혈되게 만들어 피곤하고 병들어 보이게 했다.

대종사가 말했다.

“가면이 있어도 완전히 똑같기는 어려우니 중병을 앓은 것처럼 보이는 게 낫다. 여기에 쉰 목소리를 내면 정말 알아차리기 쉽지 않지.

최씨 가문이 진평에게 강력한 독을 썼기에, 진평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은 걸 알고 있을 거다. 그러니 그들 앞에 너무 멀쩡한 상태로 나타난다면 분명 의심을 사게 되지 않겠냐.”

무려 세 시진이 지나고서야 역용이 끝나고, 대종사는 두변에게 거울을 비춰주었다.

두변은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고 감탄해 마지 않았다.

‘이거 완전 똑같잖아. 도저히 허점을 찾아낼 수가 없는데?’

사실 역용술이 제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사실 허점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대종사의 신묘한 붓질로 두변을 중병을 앓고 있는 환자로 만들면서 모든 허점을 제거해 버렸다.

정말 대단한 가면이 아닌가.

두변으로서는 새로운 얼굴, 새로운 신분이 생긴 셈이었다.

“사부, 이게 가면이란 걸 알아볼 사람이 있을까요?”

영종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마 없을 거다. 이건 서방 국가에서도 보기 드문 물건이지. 애초에 대녕 왕조에서 서방 국가에 가본 사람 자체가 손에 꼽을 만하니 대부분은 모른다고 봐도 무방하다.”

“진평이 저 때문에 큰 화를 입은 것이니 제게는 원시에서 수석을 차지해 진평에게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게 할 책임이 있습니다. 사부께서 다시 문제를 내주시면 제가 열심히 답안을 작성해 보겠습니다. 제 실력이 어떤지 다시 평가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영종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꾸나.”

영종오는 곧 문제를 냈고 두변은 문제에 맞춰 팔고문 형식으로 문장을 지었다.

두변은 정말 심혈을 기울여 세 시진이 넘게 머리를 싸매고 답안을 작성했다.

지난 며칠 동안 두변은 꿈의 세계에서 몇천 편의 뛰어난 글들을 외웠고 스스로 그 내용을 서로 연계시켜 문장을 작성해냈다.

대종사가 글을 한번 보고 입을 열었다.

“확실히 전보다 많이 나아졌구나. 원시를 통과할 가능성이 6할은 되겠다.”

두변이 씁쓸하게 물었다.

“수석은 가망이 없는 겁니까?”

대종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불가능하다.”

“이 정도면 환관 학원의 국학 시험에서 몇 점이나 받을 수 있습니까?”

대종사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환관 학원의 국학 시험은 원시보다야 쉬우니 80점 정도 받을 거 같구나.”

“수석은 안 되는 겁니까?”

대종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혀 불가능하다. 당엄이 짓는 팔고문은 너보다 몇 단계나 수준이 높거든.”

이제 두변은 꿈의 세계가 갖는 한계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모사나 암기 같은 것들은 얼마든지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지만, 꿈의 세계라 할지라도 작문이나 연주, 바둑 등 몇 년 혹은 몇십 년의 노력이 필요한 것들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는 게 불가능했다.

그러니 두변이 꿈의 세계를 이용해 단기간에 팔고문 절대 고수가 되어 원시에서 수석을 차지하겠다는 것은 헛된 망상에 불과했다.

바꿔 말하면 두변이 온전히 자신의 실력으로만 원시에서 수석을 차지하고 최연을 무너트리겠다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 다른 기적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대종사가 말했다.

“최선을 다했으면 그만이니 너무 애쓰지 말거라.”

다음날, 두변은 천재 소년 진평의 모습으로 원시에 참가하기 위해, 연화사를 떠나 계림으로 향했다.

사흘을 밤낮으로 길을 재촉해서야 계림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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