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장: 오히려 두변이 최연을 체포하다.
여경사, 동창, 현무위는 대녕 왕조의 3대 특무 기구로 여경사는 이전에 황제가 직접 관리했으나 몇십 년 전에 황권이 약해진 이후부터는 문관 집단이 여경사를 관리하고 있었다.
이뿐 아니라 문관 집단과 무도 문파가 결탁한 이후로 많은 무도 고수들이 여경사로 들어가 관직을 맡게 되면서, 오늘날 여경사는 문관 집단의 앞잡이로 전락하게 되었다.
물론 광서 여경사의 세력이 강소나 절강의 여경사만큼 막강하지는 못했다.
이문회의 과감한 행동과 진남공 송결이 동창을 암묵적으로 지지하면서 적어도 광서에서는 여경사의 세력이 동창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도 여경사는 여전히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특무 기구였다.
사해 객잔 내부.
이 시각 두변은 자신이 쓰고 있던 가면을 벗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천재 소년 진평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두변 대사가 원시 수석을 차지해서 제 염원을 이뤄주셨으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진평은 아직도 몸이 안 좋아서 침상에서 내려올 수조차 없었음에도 동창 마차를 타고 계림까지 왔다.
진평은 목숨을 겨우 보존하긴 했지만 얼굴의 혈반은 갈수록 많아졌고 실핏줄이 너무 많이 터진 눈은 사물을 제대로 구별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그러니 이 먼길을 오지 말았어야 했지만, 그에게 너무나 특별한 날이었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사해 객잔에는 동창 고수들이 수십 명 매복해서는 누군가 자신들의 그물에 걸려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같은 시각, 최연은 여경사 천호인 백옥경을 대동하고 진평을 잡기 위해 수십 명의 무사를 데리고 사해 객잔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군자의 복수는 10년 걸려도 서두르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 밤 최연은 조금도 참을 수 없었다.
그저 어서 진평에게 권력이 무언지 똑똑히 가르쳐 주고 싶었다.
두변이 진평을 일으켜 세웠다.
“오늘 수석으로 합격한 영광은 온전히 네가 누려야 할 몫인데 아쉽게도 너는 먼발치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겠다.”
“아닙니다. 공명(功名: 과거의 칭호나 관직의 등급)은 제 것이나, 영광은 두변 대사의 몫입니다.”
진평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번 원시 시험 문제를 듣고 저도 마음속으로 시문과 시가를 지어봤습니다. 최연보다는 괜찮은 글을 썼다고 생각해 원시의 수석을 차지하는 데 문제는 없었겠지만, 대사의 시문과 시사에 비하면 천양지차여서 한없이 부끄러워질 뿐입니다. 저는 대사에게 무한한 경배를 올립니다.”
두변은 진평이 자신의 절대적인 추종자이며, 고리타분한 성격을 가진 인물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누군가 대리 시험을 통해 원시의 수석을 차지했다면 보통의 경우에는 속으로는 아무리 기뻐하더라도, 겉으로는 그리 기분 좋은 내색을 하지 못하는 게 일반적일 것이다. 그래야만 자신의 존엄을 지키면서 기개와 절개가 있는 인물이라 내세울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진평은 자신의 실력으로도 원시의 수석을 충분히 차지했을 테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고, 자연스럽게 공명도 받아들이면서 두변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네 얼굴의 혈반이 갈수록 많아지는구나. 얼굴이 점점 흉측하게 변하고 있어서 더는 과거시험을 치르지 못하게 될 것 같은데, 앞으로 무엇을 할 생각이냐?”
두변이 묻자, 진평이 되물었다.
“엄당은 어떻습니까?”
“엄당 안에도 물고기와 용이 뒤섞여 흑백을 구별할 수가 없지. 하지만 적어도 나는 엄당이 나라와 백성을 위해 움직이는 제국의 예리한 검이라고 생각한다.”
“전 당신을 존경하고 우러러보고 있습니다. 저와 제 가족은 이미 최씨 가문의 미움을 샀기 때문에 대사의 보호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제 얼굴도 이미 흉측하게 변해 버려 더는 과거시험에 참여하기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배운 것들을 잘 활용하여 제 포부를 실현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몸이 허약한 진평은 결연하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조아린 후 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을 이었다.
“주군이 비천한 저 진평을 거둬주신다면 평생을 바쳐 주군을 보필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바로 원시에서 수석을 차지한 대가로 얻게 되는 또 다른 보상이었다. 두변은 진평의 충심을 받아 평생의 양신을 얻은 것이다.
두변이 곧 진평을 일으키려는데 아래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고, 곧이어 거친 말투로 명령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경사에서 과거시험 부정행위를 조사하기 위해 진평을 데리고 가겠다. 나머지는 다 비키거라.”
“드디어 올 게 왔군.”
두변이 기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리 비켜라. 여경사의 사건 조사를 막는 사람들은 모조리 죽는다!”
거칠고 위압적인 목소리에 사해 객잔의 사람들이 일제히 몸을 피하기 시작했다.
최연과 백옥경이 여경사 무사 수십 명을 이끌고 두변과 진평이 있는 방까지 단숨에 달려와서는 방문을 냅다 걷어찼다.
쾅!
굉음과 함께 그나마 튼튼해 보이던 나무문이 그대로 박살나고, 최연과 백옥경이 무리를 이끌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이때 방 안에는 진평 혼자 병약한 상태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최연이 그의 얼굴을 보며 차갑게 말했다.
“진평, 내가 이렇게 빨리 복수할 줄은 생각도 못 했겠지? 여경사 감옥에서 네놈을 최대한 고통스럽게 해주지.”
최연은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심해 보이지 않던 진평 얼굴이 혈반으로 뒤덮여 있어서 조금은 의아해했다.
옆에 있던 여경사 천호 백옥경은 미간을 찌푸렸다.
‘복수를 위해 온 건 사실이지만 너무 직접적으로 얘기하는 거 아니냐?’
백옥경이 물었다.
“네가 오주부의 진평이냐?”
진평이 힘없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네가 이번 광서 원시에서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혐의가 있으니 나랑 같이 여경사로 가서 조사를 받아야겠다.”
말은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일단 여경사에 들어가게 되면 누구도 다른 이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 속절없이 당하게 된다.
물론 그 점은 동창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더 잔인하기도 하고.
“죄송합니다만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시치미를 떼봐야 아무 소용 없다. 같이 여경사에 가면 모든 게 다 기억나서 순순히 불게 될 게다. 다만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는 네 운에 달렸지.”
백옥경의 말에 옆에 있던 최연도 한 수 거들었다.
“진평, 네 운은 아마 여기까지인가 보다. 다 네놈이 자초한 화이니 나를 원망하지 말아라.”
그러자 백옥경이 명령했다.
“여봐라. 진평을 데리고 가라.”
“알겠습니다!”
무사 둘이 앞으로 나와 진평을 끌고 나가려 했다.
“잠깐!”
그때 안쪽에 있단 방의 문이 열리더니 무명옷을 입은 두변이 걸어 나오더니 웃으며 말을 걸었다.
“백옥경, 당신들은 일을 굉장히 거칠게 처리하시는군요. 여경사가 황제 폐하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문관 집단의 앞잡이가 되었다고들 하는데 이제 보니 그 말이 사실인가 보군요.”
여경사를 대놓고 ‘앞잡이’라고 욕하는 사람을 처음 보는 백옥경은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저자가 누군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무명옷을 입고 있고, 싸구려 사해 객잔에 머무는 데다가 비천한 진평의 뒤를 누군가 봐줄 리가 없으니, 두변을 안중에 둘 필요도 없었다.
백옥경이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이분은 또 누구신가? 저렇게 무식한 자가 두려움도 없이 감히 나 백옥경 앞에서 여경사를 깎아내리는 말을 지껄여?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그의 얼굴이 차갑게 변하면서 냉소했다.
“너와 진평이 이처럼 서로를 아끼는 걸 보면 분명 두 놈 모두 부정행위에 가담했겠구나. 어디, 같이 여경사로 가야겠다. 여경사가 어떤 곳인지 똑똑히 알게 해주마. 방금 네가 함부로 지껄인 걸 후회하게 해주마. 너뿐만 아니라 네 가족도 화를 피하긴 어려울 거다.
여봐라. 여기 미친놈도 같이 끌고 가거라!”
“네, 알겠습니다.”
또 다른 무사 둘이 앞으로 나와 두변을 같이 데려가려고 했다.
“이봐. 내 이름은 두변이다.”
두변이 담담하게 말했다.
“두변? 듣도 보도 못한 잡놈이군.”
백옥경은 어이없어했다.
그런데 잠시 후 그의 등에 있는 잔털이 모두 곤두서기 시작했다.
뭐라고? 두변?
이문회가 그토록 아낀다던 두변?
아니지, 이제 이문회의 후계자라고 말할 수 있지.
얼마 전 3대 학부 대회에서 혼자 이강 서원과 남해 도장을 자근자근 밟아버렸다는 그 두변이란 말인가?
물론 두변이 3대 학부 대회에서 놀라운 성과를 이뤄낸 것에 대해서는 백옥경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다만…… 여경사는 두변이 절대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광서 여경사의 진무사는 모두에게 절대 두변과 부딪히지 말고, 설령 마주친다 하더라도 최대한 멀리 피하는 게 좋다는 말을 여러 번 당부했었다.
이는 무수한 사람들의 피로 학습한 교훈이었다.
이문회는 두변을 위해 수백 명을 죽였다. 그럼으로써 광서성에 있는 모든 세력은 두변이 이문회의 역린이며 그를 절대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걸 학습했다.
이문회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는 더 자세히 설명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이문회는 광서에 온 지 몇 년 만에 수많은 사람을 죽이며 광서의 땅에 머리통이 뒹굴게 하고 광서의 강을 피로 물들인 인물이었다. 여경사의 진무사도 광서 동창의 만호인 그를 가벼이 보지 못했다.
그래서 두변이란 이름을 들은 백옥경은 상황이 바뀌었음을 깨닫고는 금세 안색이 어두워졌다.
“내 이름을 들어봤겠지요?”
두변이 묻자, 백옥경이 차갑게 웃어 보였다.
“들어는 본 것 같다만.”
백옥경은 기세에서까지 밀려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네가 두변이면 뭐가 달라지나?”
옆에 있던 최연이 냉소했다.
“너는 한낱 환관 학원의 학생일 뿐이다. 3대 학부 대회에서 이름 좀 날렸고, 동창 만호의 의자라는 신분이 끝이지. 뭐 대단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거드름을 피워?”
‘어이쿠! 저놈이 세상 물정 모르고 나대는군.’
두변은 최연은 아랑곳하지 않고 백옥경만 쳐다봤다.
“그래서 지금 잡아갈 겁니까?”
백옥경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이문회의 심기를 건드리면 감당이 안 될 게 뻔하니, 당연히 두변의 심기도 건드릴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진평의 뒤에 두변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
하지만 일개 환관 학원의 학생에 불과한 두변 때문에 이렇게 물러섰다가는 백옥경 자신의 체면과 여경사 평판이 어찌 서겠는가.
결국 백옥경이 차갑게 말했다.
“여기 있는 진평은 과거시험 부정행위 혐의가 있다. 이 상황을 잘 알아봐야 하니 반드시 저자를 데리고 여경사로 가서 심문해야 하지. 그러니 너는 우리를 막지 말아라. 그렇지 않으면 국법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두변이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아직 내 이름이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런지 이름 가지고는 문제해결이 안 되는군요.”
백옥경이 속으로 냉소했다.
‘네놈이 이문회 본인도 아닌 이문회 의자에 불과하면서, 무슨 이렇게 허세를 부려?’
“여봐라, 진평을 데리고 가서 심문하거라.”
“알겠습니다!”
백옥경의 호령에 여경사 무사 두 명이 다가와 진평의 두 팔을 붙잡고 바로 데려가려고 했다.
그때 두변이 손을 슬쩍 들어올렸다.
“죽여.”
동창 고수인 이삼이 번개처럼 나타나 검을 휘둘렀다.
촤악!
그냥 가볍게 검을 휘두른 것뿐이나 여경사 무사 두 명의 팔이 잘려나갔다.
무사들은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제 팔이 잘린 부위에서 피가 솟구치는 걸 보고서야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여경사 천호이자 최연의 둘째 외숙부 백옥경은 순간 당황하여 믿을 수 없다는 듯 두변을 바라봤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온다고? 감히 먼저 여경사 무사의 팔을 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