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72화 (72/648)

제72장: 두변이 현장을 피로 물들이다.

백옥경도 검을 뽑으며 매섭게 소리쳤다.

“두변, 이문회 의자가 얼마나 대단한 신분이라고 감히 여경사의 무사들을 죽이는 거냐. 방금 이 행동이 동창과 여경사의 전면전을 뜻한다는 걸 알고 하는 행동이냐? 네놈이 사는 게 지긋지긋한가 보지?

두변을 포위하고 진평을 데려가라. 임무 수행을 막는 자는 모두 죽여라.”

백옥경이 명령했다.

여경사 무사 수십 명이 달려들어 두변과 진평을 포위했다.

“여봐라. 진평을 보호하고 누구든 진평에게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대는 놈이 있으면 모두 죽여버려라.”

두변이 손을 휘저으며 명령했다.

그러자 백 명이 넘는 동창 무사들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여경사 무사들을 겹겹이 에워쌌다.

백옥경의 안색이 급변하더니 더 매섭게 소리쳤다.

“두변, 진정 여경사와 전쟁을 하고 싶은 것이냐?”

두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히려 그 반대 아닙니까. 당신네 여경사가 감히 우리 동창과 전쟁을 하겠다는 것이잖습니까? 우린 어쩔 수 없이 맞섰을 뿐이니 나중에 여경사 진무사 앞에 서더라도 할 말이 있습니다.”

“나는 광서 과거시험의 부정행위를 조사하려는 것일 뿐이니 동창은 간섭할 권리가 없다!”

두변이 냉소했다.

“아뇨. 당신네가 지금 잡아가려는 진평은 계림 동창 천호소의 주부(主簿: 각급 관서에서 문서를 관장하는 관직명)입니다. 백옥경 당신도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감히 동창의 관리를 잡아가려 하다니요. 목숨이 두 개라도 되는 모양이군요.”

백옥경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뒷배경 하나 없는 가난한 서생 진평을 잡아가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하지만 계림 동창 천호소의 주부를 잡는 순간, 문제가 커진다. 그것은 여경사가 동창에게 선전포고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백옥경은 최씨 가문의 사돈일 뿐이며 여경사의 천호에 불과했으므로 이런 막중한 책임을 질 수 없었다.

“두변, 나를 속일 생각 말아라. 진평은 그저 가난한 서생일 뿐이다.”

백옥경이 소리쳤다.

두변은 관첩(官諜)을 백옥경의 얼굴에 던졌다. 관첩에는 진평을 계림 동창 천호소의 주부로 임명한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사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진평은 동창 천호소의 주부가 되어 있었다.

관첩을 본 백옥경은 표정이 일그러졌다.

“다음을 기약하도록 하지. 두변, 네놈은 언젠가 내 손아귀에 떨어지게 되어있으니 너무 득의양양하지 말아라.”

말을 마친 백옥경이 아랫사람들에게 명령했다.

“이만 철수하자.”

그러자 두변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어딜 가려고. 들어올 땐 마음대로라지만, 나갈 땐 아니지.

최씨 가문의 자제인 최연은 광서 원시에서 부정행위 혐의가 있으니, 최연을 잡아 동창 천호소로 데려간 후 심문한다.

당장 최연을 붙잡아라.”

두변의 명령이 떨어지자 동창 무사 둘이 최연의 팔을 붙잡았다.

삽시간 파랗게 질린 백옥경의 눈빛은 살기로 가득하고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두변, 적당히 하지. 우리가 진평을 놓아주고 동창의 체면을 세워줬다고 여경사가 너희를 두려워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최연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소리쳤다.

“두변, 너는 동창에서 아무 직위도 없는 한낱 환관에 불과하면서 어떻게 나를 잡아가겠다는 거지? 나는 최씨 가문의 적자다. 네놈이랑 다르다고!”

두변이 실눈을 뜨고는 최연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다.

백옥경도 차갑게 말했다.

“두변, 설마 최연이 누군지 모르는 건 아니겠지? 진정 여경사와 전면전을 하고 싶은 게냐? 최씨 가문이랑 전쟁하고 싶냐는 말이다.”

두변이 손가락 하나를 치켜세웠다.

“첫째, 백옥경 당신은 문관 집단의 개 발싸개에 불과하니까 아무런 결정권도 없고 전쟁을 일으킬 생각도 못 하겠죠. 하지만 나는 내 의부의 뜻을 대변할 자격이 있습니다. 그 말인즉슨 내가 저놈을 잡은 일에 대해 내가 스스로 책임질 수 있단 말이죠.”

자신을 비꼬아 조롱하는 말을 들은 백옥경이 더 많은 살기를 뿜어냈다.

하지만 두변의 말은 구구절절 옳았고 그래서 더 백옥경을 자극했다.

두변이 이어서 손가락 하나를 더 올렸다.

“둘째, 당신이 진평을 잡아가겠다는 건 아무런 증거도 없는 단지 사사로운 원한만을 위한 것이지만, 나는 최연을 잡아갈 확실한 증거가 있거든요.”

말을 마친 두변이 손을 내밀자 옆에 있던 동창 무사가 한 묶음이나 되는 진술서를 건넸다.

“이번 원시에서 최씨 가문의 관사 최야가 은자 오천 냥으로 시험감독 세 명을 매수했다는군요. 그리고 은자 이천 냥으로는 학정 대인을 모시는 가복을 매수해서 시험 문제를 빼돌리게 시켰고요. 이것은 시험관 세 명의 진술과 서명이 있는 문서입니다.”

최연은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두변이 말한 내용은 모두 사실이었다!

백옥경이 냉정하게 말했다.

“너희 동창이 가장 잘하는 게 바로 이렇게 무고한 사람들을 고문해 거짓 자백을 받아내는 거지. 우리도 누구든 여경사 감옥에 집어넣기만 하면 이런 진술서는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두변이 손짓했다.

“데려와라.”

최씨 가문에서 뇌물을 받은 시험 감독관 세 명이 끌려 들어왔다. 이들은 어제 밤을 새워 답안지를 채점한 후 아침이 밝아 집에 돌아가 잠을 청하려 했는데 돌아가는 길에 동창 무사들에게 비밀리에 체포되었다. 결국 이들은 한 시진도 버티지 못하고 최씨 가문의 관사와 최연에 관해 그들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자백했다.

게다가 이 감독관 세 명의 몸에 아무런 상처도 없는 걸 보면, 매우 고통스럽지만 아무런 외상도 남기지 않는 고문을 받았을 것이다. 예를 들면 뾰족한 바늘로 고환을 찌르거나 하는 것은 유약한 문관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일 처리에 있어 두변이 가장 중요시했던 것은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잘들 보시죠. 이번 원시 부정행위에 가담했던 사람이 지금 당신들 눈앞에 있는 최연이 맞습니까?”

두변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감독관 셋은 혼이 반쯤은 빠져나간 상태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신들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허튼소리 하지 마라. 그때 나는 현장에 있지도 않았다고!”

최연이 버럭 화를 냈다.

그 말을 들은 백옥경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미련한 녀석. 스스로 자백해 버리다니!’

두변은 옆에 있는 동창 주부에게 말했다.

“이 말을 잘 기록해 둬. 그리고 최씨 가문 관사 최야를 데리고 와라.”

잠시 후 중년 사내가 끌려 들어오는데 마찬가지로 몸에는 아무런 상처도 보이지 않는데, 두 눈은 이미 풀려 있었고 저항하겠다는 의지도 완전히 꺾인 것처럼 보였다.

동창은 이자에게 다른 형벌을 사용했는데, 바로 정신적 고문과 육체 고문을 함께 하는 것이었다.

만약 최씨 가문의 대택을 관리하는 관사였다면 분명 무공이 높았을 테니 큰 효과가 없었겠지만 최야라는 자는 별원을 관리하는 관사였기에 무공이나 정신력이나 그렇게 강한 수준이 아니었다.

최야는 다섯 시간 정도 시달리더니 결국 자백하기 시작했다.

“최야, 네 눈앞에 있는 최연을 똑똑히 보아라. 이번 원시에서 부정행위에 가담한 주범이 맞는가?”

두변이 물었다.

“예, 예, 맞습니다. 제가 최연 소야의 명을 받들어 학정 대인의 가복과 감독관 셋을 매수했을 뿐입니다.”

최연이 눈에서 불을 내뿜을 것처럼 미친 듯이 최야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너, 너, 지금 누굴 모함하는 거냐!”

최야가 방금 했던 말은 거짓이었다. 최야에게 명을 내린 건 최씨 가문의 이노야였다. 최연은 나이가 아직 어려 이런 일을 결정할 권한이 없었다.

하지만 두변은 지금 최씨 가문의 이노야를 건드릴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자칫하다간 두 집단의 전면전이 발생해 막대한 손실을 감내해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에 반해 최연은 충분히 건드려 볼 만한 대상이었다. 최연이 비록 최씨 가문에서 밀어주고 있는 천재 소년이라 할지라도 최부가 잘못될 상황에 대비하기 위함이었지, 아직 최씨 가문에서 비중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번 원시에서 수석을 차지하지 못했을뿐더러 진평에게 무릎도 꿇고 최병정을 욕보였으니 최연의 출세도 여기까지가 한계인 상황이었다. 그래서 두변은 위험부담이 비교적 적은 최씨 가문의 마지막 타협선을 노리기로 한 것이다.

두변이 말했다.

“백 천호, 인증과 물증이 모두 있는데 우리 동창의 사건처리를 방해하고 최연의 연행을 막을 셈입니까? 아무런 증거도 없이 사람을 잡아가려 했던 당신들의 일 처리가 미숙했음을 반성해야지 않을까요?”

백옥경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대로 두변이 최연을 데려가는 걸 보고만 있자니 자신과 여경사의 체면이 서질 않았다.

“여봐라. 최연을 여경사로 데려가고, 누구든 방해하는 자가 있으면 모조리 죽여버려라.”

백옥경이 명령했다.

여경사의 무사들이 최연을 데리고 철수하려 했다.

두변으로서는 벼랑 끝에 몰린 셈이었다. 만약 오늘 백옥경이 최연을 데려가도록 내버려 둔다면 자신이 동창의 체면에 먹칠하는 셈이 된다.

두변이 재빨리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다들 준비해라. 누구든 최연을 이 방에서 데려가려는 자가 있거든 죽여라.”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한쪽은 여경사를 대표했고 다른 한쪽은 동창을 대표했으니 누구도 물러설 수 없었다.

이것은 담력과 의지력의 대결이었다.

“고작 환관 학원의 환관놈이 우리를 죽이겠다고? 과연 네놈이 그럴 배짱이 있는지 한번 봐야겠구나. 과연 동창이 네놈의 말을 듣고 우리에게 대항할까?”

백옥경이 냉소했다.

“가자!”

백옥경 입장에서는 동창이 과연 아무런 직위도 없는 소환관의 말을 듣는지 확인해 봐야 했다.

명령을 받든 여경사 무사 둘이 최연을 보호하며 방을 빠져나가려 했다. 둘은 각각 백호(百户)와 총기(總旗)로, 여경사 내에서 직위가 낮은 인물은 아니었다.

“죽여라.”

두변의 명령이 떨어지고.

슉! 슉! 슉!

동창의 궁수들이 즉시 활시위를 당겨 화살을 퍼부었다.

최연을 보호하고 있던 여경사의 백호와 총기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놀라더니 단번에 검을 뽑아 화살을 쳐냈다.

푹! 푹! 푹!

하지만 동창이 공격하지 않을 거라 확신하고 있던 둘의 반응은 너무 느린 셈이었다. 결국 가슴에 통증을 느껴 고개를 숙였더니 화살 몇 개가 몸에 박혀있었다.

“죽여!”

또 한 차례 화살 비가 쏟아지고, 둘의 온몸에 화살이 박혀 고슴도치나 다름없었다. 여경사 둘은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뻣뻣하게 굳은 채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이내 현장은 죽은 듯 조용해졌다.

여경사의 백호와 총기가 백옥경과 여경사 수십 명이 보는 앞에서 죽은 것이다!

열여섯밖에 안 된 최연은 놀란 나머지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결국 오줌을 지려 바지를 흠뻑 적셨다.

바로 조금 전에 그 날카로운 화살이 제 뺨을 스치고 날아갔었다. 자신이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단 생각엔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당장 무기를 내려놓아라. 저항하는 자는 모두 격살이다. 백옥경, 당신도 예외가 아니다!”

두변이 목소리를 높이자, 방에 있던 동창 무사 백 여명이 쇠뇌를 들어 백옥경 등을 겨냥했다.

여경사 천호 백옥경은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어 눈을 부릅뜨고 두변을 바라봤다.

이, 이거 미친 거 아니야? 정말 감히 여경사 사람을 죽여?

제대로 돌았군!

백옥경이 소리쳤다.

“두변, 너 미쳤구나!

우리 여경사 사람을 죽이는 게 전쟁을 뜻한다는 걸 모르는 거냐? 동창이 여경사에 선전포고하는 격이란 말이다. 환관 학원의 소환관놈 하나가 감당하지도 못 할 일을 벌여놓다니. 이제 네놈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두변이 말했다.

“이미 말했지 않습니까. 이 정도는 내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일이라고요.

의부인 이문회께서 광서를 떠나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충분히 생각하고 한 행동이라면 무슨 일을 벌여도 다 괜찮다고, 어떤 일이든 동창에서 책임을 지겠다고 말입니다. 내가 백호와 총기를 죽였다고 여경사에서 동창과 전쟁을 하고 싶다면,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뿐입니다.

얼마든지 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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