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74화 (74/648)

제74장: 최병정이 벌벌 떨다.

그 시각 최씨 가문의 장원(莊園) 내부.

백옥경이 무릎을 꿇고서 두변이 최연을 데려갔으며 여경사 관원을 살해한 일을 최씨 가문 가주에게 하나도 빠짐없이 고했다.

최씨 가문 가주는 분노하면서도 차라리 잘된 일이라 생각했다.

“두변, 그 어리석은 놈이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구나.”

최씨 가문 가주가 사납게 소리쳤다.

“여봐라. 순무 대인을 만나러 갈 터이니 채비를 해라! 아니다, 먼저 광서 여경사 진무사 대인을 만나 뵈러 가야겠구나.”

한바탕 태풍이 빠르게 몰려오고 있었다. 물론 그 태풍의 핵은 두변이었다.

두변은 지금 동창의 일부만을 이끌고 광서 최대의 세력들에 대항하려 하고 있었다.

광서 여경사의 진무사 임진교는 올해 쉰셋의 나이로, 제국 2품 무도 고수였다. 그는 30년 전에 여경사에 들어온 후 나중에 남경에서 광서로 근무지를 옮기게 되었고, 마침내 여경사의 실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오늘날 그는 광서의 거두 몇 명 중 한 명이었으며, 이문회의 가장 막강한 적수이기도 했다.

임진교는 매우 엄숙한 성정의 인물로, 절대로 함부로 말하지도 않고 함부로 웃지도 않으며 항상 위엄을 풍기고 있었다.

백옥경의 하소연을 들은 그의 얼굴은 여전히 바위같이 무표정할 뿐이었다. 다만 입가가 미세하게 살짝 떨렸을 뿐.

자신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런 반응도 없다는 걸 확인한 백옥경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더 소리 높여 외쳤다.

“대인! 두변이란 환관놈 하나가 여경사의 백호 하나와 총기 하나를 죽였습니다. 이를 복수하지 않는다면 우리 여경사의 체면이 어찌 바로 서겠습니까? 만약 이 몹쓸 놈을 죽이지 않는다면 우리 여경사는 동창 앞에서 고개도 들고 다닐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여경사 진무사 임진교가 눈을 찡그리고는 백옥경을 발로 걷어찼다.

퍽!

천호 백옥경의 몸이 붕 뜨더니 그대로 뒤로 날아가면서 공중에서 비명을 지르며 선혈을 토했다.

바닥에 내리꽂힌 백옥경은 또다시 선혈을 토하고는 즉시 땅에 바짝 몸을 엎드리며 옴짝달싹을 하지 못했다.

“왜 그때 반격하지 않았느냐? 그때 왜 직접 두변을 죽이지 않았느냔 말이다.”

임진교가 묻자 백옥경이 머리를 조아렸다.

“소인이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만약 여경사와 동창이 전면전이라도 벌이게 되면 소인이 만 번 죽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네놈은 단지 책임지기 싫었을 뿐이다. 희생되는 게 두려웠던 게지. 그래서 문제를 나에게 떠넘기게 된 것이고.”

임진교는 백옥경의 속셈이 거울 보듯 훤히 보였다. 그의 행동이 매우 실망스러웠다.

옆에 있던 최씨 가주 최현은 백옥경의 상처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조용하게 말했다.

“임 형, 너무 화내지 마시지요. 아랫놈들이 일을 못 하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잖습니까.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니, 잘 마무리 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일은 잘 마무리 지어야겠지.

당장 사람을 보내 두변과 현장에 있었던 모든 동창을 전부 잡아들여라. 두변의 사지와 근맥을 못 쓰게 만들고 두 눈은 파버려! 남은 동창 사람들은 반은 죽이고 반은 옥에 가둬라.”

임진교의 말에 최현이 물었다.

“어떤 명분으로 일을 진행하면 좋겠습니까?”

“두변이 다른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며 고문을 통해 무고한 사람들에게 거짓 자백을 받아냈다. 게다가 불법으로 형벌을 자행했으니 이 정도면 두변을 잡아들이기에 충분하다.”

“임 형, 고맙습니다.”

이렇게 되면 최씨 가문이 과거 부정행위 사건에 가담한 의혹은 말끔히 씻기게 된다. 최현은 한숨을 돌렸다.

임진교가 말했다.

“두변을 잡아들이는 죄명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세력이 힘을 모으느냐이지. 동창의 왕인을 포함해서 말이다. 이렇게 되면 동창과 여경사 두 세력의 전면전을 피할 수 있고 이문회가 경성에서 돌아올 때쯤이면 이미 두변은 사람 구실도 제대로 못 하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인간이 되어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임무를 나누어 제가 이강 서원의 구양담을 만나보고 임 형께서는 남해 도장의 축무애를 만나주셨으면 합니다.”

최현이 말했다.

“그렇게 하지. 동창 진무사 왕인은 네가 만나 보아라. 은자는 많이 챙겨가면 갈수록 좋다는 걸 잊지 말고.”

“알겠습니다. 그리도 또 한 명 중요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오삼석입니다.”

“그자는 자신이 어느 편에 서야 할지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번 과거시험 부정행위가 세상에 드러나는 날에는 자신도 화를 면치 못할 테니 말이다. 그는 주임 시험관인 데다가 자신의 심복이 이번 부정행위에 가담했으니 스스로 결백하다 할지라도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 자신의 앞날과 명예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우리와 손을 잡게 될 것이다.”

“맞습니다. 오삼석 이자는 순무 대인에게 맡길까요? 아니면 계동앙 대인께 맡길까요?”

“계동앙에게 맡겨두도록 하지. 낙문은 그의 윗사람일 뿐이지만 계동앙은 그의 회시(會試) 좌사(座師: 시험관)이기도 했으니까.”

“속전속결로 진행해서 세 시진 안에 두변을 잡아 사람 구실을 못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두변을 잡는 건 여경사에서 맡아주시면 좋을 듯싶습니다.”

최현의 말에 임진교가 누군가를 불렀다.

“임원여!”

사나우면서 위풍당당한 중년 사내 하나가 나타나서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네, 의부를 뵙습니다.”

이자는 광서 여경사의 만호 두 명 중 한 명이었다.

임진교가 명령했다.

“여경사의 최정예 무사들을 팔백 명 정도 소집해 원내에 집결시켜라. 내가 명령을 내리면 그 즉시 두변을 잡아들이고, 이를 막아서는 자가 있으면 그 누구든 죽여버려라.”

“네! 명을 받들겠습니다.”

임원여가 호기롭게 대답하고는 최정예 무사를 집결시키러 물러갔다.

잠시 후 여경사 최정예 무사 팔백 명이 연무장에 집결했다. 이제 두변을 잡아 오란 한마디 명령만 있으면 바로 출동할 작정이었다.

잠시 후 임진교와 최현이 각자 광서의 주요 수령들을 설득하기 위해 여경사를 출발했다.

이제 어둠의 그물이 펼쳐졌다. 이문회가 광서에 없는 틈을 타 두변이 더 크기 전에 송두리째 파괴해야만 했다.

두변은 계림 동창 천호소의 계급이 낮은 무사 백여 명만 데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맞서야 하는 것은 광서에서 내로라하는 권세를 자랑하는 권력 집단의 연맹이었다.

두변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덤빈 모양새가 되었다.

약룡 객잔 내부.

두변은 인원들을 데리고 최병정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던 환관놈이 눈앞에 스스로 나타났으니, 최병정은 제 눈을 믿지 못할 지경이었다.

거의 동시에 최병정은 재빨리 검을 뽑았다. 하지만 검을 반쯤 뽑다 말고 멈추었다. 두변을 죽이고 싶지만, 이자는 이문회의 의자였고, 이자를 죽인다면 가문에 큰 폐를 끼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최병정이 코를 막으며 차갑게 소리쳤다.

“꺼져라! 더러운 고자 놈이 내 방에 있는 걸 보니 역겹기 그지없다.”

두변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어째서 명문가 자제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환관을 보자마자 처음으로 하는 행동이 코를 막는 것일까?

이런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자신이 얼마나 상대를 경멸하는지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내 아랫도리에서는 정말 오줌 지린내가 안 나는데? 못 믿겠으면 한번 맡아보시던지.”

두변이 웃으며 말하자, 최병정이 분노했다.

“비천한 고자 놈이 감히 나를 농락하려 들어?”

두변이 시큰둥한 눈빛으로 최병정의 얼굴과 몸매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확실히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물론 옥진 군주와 비교할 바는 못 되지만 현대 지구에서라면 충분히 여신이라 불릴 만한 미모와 몸매였다.

비록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두변도 그녀의 몸 위로 올라간 적이 있지 않던가.

게다가 그 상황으로 인해서 이 지독한 여인은 두변을 사지로 내몰았었다.

최병정이 검을 반쯤 뽑으며 소리쳤다.

“꺼지라고 했을 텐데. 이 고자 놈이 말귀를 못 알아들은 거냐?

네가 이문회의 의자라고 내가 너를 못 건드릴 거란 생각은 하지 마라. 우리 최씨 가문과 북명검파 앞에서 이문회는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거든.”

최병정은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는 엄당과의 싸움 최전선에서 직접 싸워본 적이 없었고, 명문가 규수의 특권에 익숙했다. 이문회가 얼마나 대단한지 몰랐고 알아볼 생각도 없었으며 속으로는 엄당을 깔보고 있었다.

특히 북명검파가 몇 년 동안 죽인 엄당 일원이 몇 명인지도 모를 상황이라는 것도, 최병정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 한몫했다.

두변이 자신의 뒤에 있는 진평을 가리켰다.

“이자가 바로 진평이다.”

진평은 바퀴가 달린 의자에 앉아 있었고, 줄곧 두변만 응시하고 있던 최병정은 진평의 존재를 이제야 알아차렸다.

“너, 너는 여경사에 잡혀갔어야 맞을 텐데?

그런데 어떻게 절개를 지켜야 하는 서생이 목숨을 부지하려고 고자 놈의 앞잡이로 전락한 거지?”

최병정이 놀라 묻자, 두변이 대답했다.

“진평은 나를 숭배하고 있다. 나를 위해 네 동생 최연과 내기를 하면서 ‘최병정은 남자라면 다 지아비로 섬긴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진평에게 독을 쓴 게 맞나?”

‘맞다면 어쩔 거지?’

최병정은 본능적으로 이 말을 내뱉어 버리려 했다.

워낙에 기고만장해서 진평처럼 비천한 평민 하나 죽이는 것쯤이야 개미를 죽이는 것처럼 간단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말실수를 할 정도로 멍청한 인물은 아니었다.

최병정이 예쁜 눈을 찡그리면서 냉소했다.

“물론 아니지. 진평 같은 놈은 안중에도 없거든. 그런데 사람까지 보내 저런 애를 해쳤다고? 너무 저 아이를 높이 평가하는군. 저런 비천한 신분은 내가 죽여야 할 필요도 못 느끼겠는데?”

“뭐, 인정을 안 해도 괜찮다.”

두변이 진평에게 다가가 물었다.

“너에게 독을 쓴 여자가 여기 있나? 그 여자를 알아보겠어?”

진평이 병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최병정 옆에 있는 여자입니다. 그 여자는 그때 묘강(苗疆)족 옷차림을 하고 있었습니다.”

최병정 옆에 있던 시녀 소민의 안색이 변하더니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헛소리하지 말아요. 난 저렇게 구질구질한 서생은 본 적도 없다고요. 그런데 당신을 꾀어내서 ‘고독(蠱毒)’을 썼다니요. 억지 부리지 말아요.”

저 시녀도 멍청하기 짝이 없지 않은가!

“저 시녀를 잡아라.”

두변의 말에 동창 무사 둘이 앞으로 나와 최병정의 시녀를 잡았다.

“뭐 하는 거예요? 이거 안 놔요? 나도 북명검파 사람인데 나를 건드리겠다는 거예요?”

소민이 날카롭게 소리 질렀다.

그녀는 확실히 북명검파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최병정처럼 직계 제자는 아니고 북명검파 내에서 최병정의 시중을 들면서 무공도 배우고 있는 처지였다.

소민의 무공 실력도 이삼에게 턱없이 부족해서 역시 순식간에 제압되고 말았다.

두변이 물었다.

“묘강 출신이냐?”

“쳇, 더러운 고자 놈아, 역겨우니까 좀 떨어져!”

최병정의 시녀 소민이 침을 뱉자, 두변이 가볍게 피하면서 웃었다.

“걱정 마라. 곧 진짜 역겨움을 경험하게 될 테니. 나는 여자가 나를 모욕한다고 해도 여자를 때리진 않아. 배려심이 깊으니까 말이지.”

“가져오거라.”

두변이 명했다.

동창 무사 하나가 은색 상자를 두변의 손에 올려놓았다. 상자를 열어 보니 그 안에는 통통한 고충(蠱蟲)이 놓여 있었다. 이미 잘 자라 허물을 벗은 고충은 말거머리랑 비슷한 모양으로 크기는 밥그릇 반 정도 되어 보였다.

“저년의 입을 벌려라.”

두변의 말에 동창 무사들이 다가가 시녀 소민의 입을 벌렸다.

두변이 상자를 들어 시녀의 입에 그대로 털어 넣고는, 다시 벌꿀을 가져와서는 입에 쏟아부었다.

“억……. 아악!”

처참한 울부짖음 속에 다 자라 밥그릇 반 정도 되는 크기의 고충이 시녀의 배 속까지 밀려 들어갔다.

적의 칼로, 적을 벤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두변은 그녀에게 당한 대로 갚아 준 것이다.

두변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소민이고 했나? 나는 여자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아니야. 게다가 너는 예쁘장하게 생기기도 했으니까 죽이긴 아쉽구나. 그러니 이렇게 하자. 소저 최병정의 죄목을 네가 말하는 거다. 이를테면, 과거시험의 부정행위 사건이라든지 진평을 음해한 주범이라든지 그런 내용 말이다. 그러면 네 목숨은 살려주지. 어떠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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