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80화 (80/648)

제80장: 여경사의 절망

이때 밖에서는 임진교의 사자가 달려오고 있었다.

임원여가 물었다.

“의부께서 다른 명령을 내리셨나? 곧 동창 감옥을 함락하고 두변을 생포할 수 있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게.”

임진교의 사자가 말했다.

“상황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진무사 대인께서 반 시진 내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두변을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반 시진을 넘긴다면 그 즉시 철수하고 돌아가 처벌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임원여는 반 시진이라는 말에 놀랐다.

모든 방법을 총동원한다고 해고 감옥의 외벽을 뚫는 데만 적어도 이각의 시간이 걸릴 것이고, 외벽을 뚫었다 하더라도 상대들은 필사적으로 두변을 보호하며 지하 감옥까지 후퇴하여 저항할 것이 분명하기에 반 시진 안에 두변을 죽이라는 것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완수할 수 없는 임무였다.

임원여의 눈빛이 갑자기 험악하게 빛났다.

“어떤 방법을 써도 다 괜찮다는 말이냐?”

사자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셔도 됩니다.”

“그 말은 동창 감독에 있는 인질들의 생사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임원여가 잔혹한 눈빛을 빛냈다.

“알겠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여경사의 모든 무사는 30보 후퇴해서 동창 감옥을 포위하라.”

명령을 들은 여경사 무사 칠백 명은 거의 다 뚫은 방어선을 놓고 다시 후퇴하라는 명령에 의아했다. 이러면 그간의 노력이 모두 수포가 되는 것이 아닌가?

지리적 우세를 점하고 있더라도 자신들의 열 배에 해당하는 병력과 맞서 싸우며 언제 무너질까 불안해하던 동창의 무사들도 여경사 무사들이 뜻밖에 뒤로 물러나자 일제히 환호를 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변은 오히려 안색이 굳어졌다.

“아니, 저들은 지금 최연, 최병정을 버리고서라도 우리를 전멸시키겠다는 생각이다.”

낙문, 최씨 가문, 축무애, 구양담 등 모두가 포기한 상황에서 여경사 임진교가 계속 맞서 싸우길 선택하며 끝장을 보겠다는 생각이라면, 두변과 그를 지키는 모든 동창 무사들을 죽이려고 마음먹은 상태일 것이다.

두변도 급하게 명령을 내렸다.

“적군은 불과 독을 사용해 우리를 전멸시키는 전술을 쓸 것이다. 적들이 잠시 후퇴한 틈을 타 즉시 최연과 최병정 등 인질들을 데리고 비밀 통로를 따라 대피해라.

이번 전투는 우리가 이미 이겼다. 여경사와 이 전투에 목숨을 건 임원여와 굳이 필사적으로 싸울 필요가 없으니 적들이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시간 동안 우리는 전부 퇴각한다.”

“전부 퇴각합니까?”

이삼이 물었다.

“그래. 전부 퇴각한다. 다친 형제들 먼저 이동시켜라. 너와 나, 그리고 이사 우리 셋은 가장 나중에 빠져나간다.”

두변이 말했다.

이삼의 안색이 바뀌었다.

“소주인 먼저 퇴각하십시오. 자칫하단 죽을 수도 있습니다.”

광활한 전쟁터라면 여경사가 불기름을 퍼붓든 독이 든 포탄을 던지든 어찌어찌 대항해 볼 수 있겠으나 동창 감옥같이 협소한 건물 안에서는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이삼, 이사, 그리고 이 백호 세 명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제발 소주인이 먼저 나가십시오. 만에 하나 소주인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저희가 저승에서라도 주인을 뵐 낯이 없습니다.”

두변이 말했다.

“이건 명령이다. 그대로 따라라. 이 백호는 즉시 형제들을 데리고 비밀 통로를 통해 퇴각해라.”

“존명!”

여경사가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틈을 타 이백호는 상처를 입은 수십 명의 동창 무사들을 인솔하여 비밀 통로를 통해 철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밀 통로가 너무 좁아서 퇴각 속도가 매우 느릴 수밖에 없었다.

일분일초가 긴박한 상황에서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밖에서는 여경사 무사 칠백 여 명이 동창 감옥을 빼곡히 포위하고 있었다.

이들은 상자를 하나둘씩 열어 그 안에 있는 독화살, 불화살, 화유탄(火油彈)과 독유탄(毒油彈)을 꺼내기 시작했다.

“모든 궁수는 불화살로 교체하고 모든 투석기에 독유탄을 가득 싣는다.”

임원여는 자신의 명령이 얼마나 위험한 결정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온몸을 떨고 있었다.

이런 파괴적인 무기는 외국과의 전쟁에서나 사용하는 것들로, 만약 동창과의 내전에서 사용하게 된다면 비난을 면치 못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감옥의 외벽을 뚫는다고 하더라도 두변이 지하 감옥으로 몸을 피할 것이 분명하기에, 임원여 입장에서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시간 안에 두변을 죽이는 건 불가능하니 부득이하게 전원사살이라는 치명적인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반 각이 지난 후 소형 투석기 열 구가 모두 준비가 되었고, 몇백 명에 이르는 궁수들은 불을 이용해 공격할 준비를 마쳤다.

“점화하라.”

명령이 떨어졌다.

몇백 명의 궁수들이 불화살에 불을 붙였다.

이제 명령이 떨어지면 동창 감옥에 치명적인 공세가 퍼부어질 것이다!

그 시각, 동창 감옥의 내부 비밀 통로를 통해 철수하는 행렬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3분의 1에 해당하는 인원들은 아직도 빠져나가지 못한 상태였다.

여경사가 공격할 태세를 취하는 걸 보니 시간이 다소 촉박해 보였는데, 갑자기 이 백호가 두변의 앞으로 다가왔다.

두변이 물었다.

“여기서 뭐 하는 거지? 내가 형제들을 데리고 철수하라고 하지 않았나?”

이 백호가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제가 목 총기에게 형제들을 데리고 철수하라고 말해 놓았습니다. 저는 여기서 소주인과 함께 후미에서 인원들을 엄호하도록 하겠습니다. 소주인께서 가시지 않는다면, 저 또한 가지 않겠습니다.”

두변은 감동했다.

“좋다.”

잠시 후 두변이 상자 하나를 꺼냈는데 그 안에는 약을 머금고 있어 흥건하게 젖은 복면이 있었다.

약을 머금은 복면은 저들의 화공과 독공에 대비해 준비한 것들이었다. 두변 입장에서는 단지 유비무환이었을 뿐, 정말 사용하게 될 줄은 예상치 못했었다.

두변은 약을 머금은 복면 다섯 개를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안심해라. 우린 아직 죽지 않는다. 적들의 불과 독 연기에 맞설 준비를 해라. 마지막 한 명까지 안전하게 철수할 수 있도록 우리는 자리를 지킨다.”

“존명!”

이삼, 이사, 이 백호 세 명이 두변을 바라보는 시선이 뜨거웠다.

이런 소주인이야말로 따를 가치가 있지 않은가!

이래야 향후에 동창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지 않은가!

“준비!”

임원여가 왼쪽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러자 모든 활시위가 당겨지고, 투석기의 장력도 극에 달했다.

이제 임원여가 손을 내리기만 하면 동창 감옥에 대한 대대적인 파괴가 진행될 것이다.

“발…….”

슈욱!

임원여가 한마디를 내뱉기도 전에 먼 곳에서 날카로운 화살이 날아왔고, 그는 재빨리 몸을 피했다.

이어서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뜻밖에도 다섯 번째 화살까지 연이어 날라왔다.

푹!

결국 마지막 화살이 임원여의 팔을 관통했다.

잠시 후 그렇게 멀지 않은 어둠 속에서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며 번개 같은 속도로 거리를 좁혀왔다.

인물의 정체는 바로 옥진 군주였다.

비록 거리가 있어서 제대로 얼굴을 확인하긴 어려웠지만, 말 위에 올라타 있는 그녀의 매혹적인 곡선만 보더라도 군주임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잠시 후 그녀의 뒤를 바짝 쫓아오고 있는 기마병 수백 명도 시야에 들어왔다.

학정 관아를 떠날 때는 그녀의 곁에 겨우 백 명도 되지 않는 친위대밖에 없었지만, 여경사에서 무사 팔백 명을 동원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즉시 가장 가까운 위병소로 가서 병력을 모은 다음 이곳으로 길을 재촉했고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모로, 누구보다 악을 가장 증오하는 옥진 군주는 뒤따르는 기병 부대를 기다리지도 않고 혼자서 여경사 무사 팔백 명에게 돌진하고 있었다.

임원여가 매섭게 소리쳤다.

“너는 누구냐? 나는 여경사 진무사 임 대인의 의자다. 여경사에 무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반역을 꾀하겠다는 뜻임을 아느냐?”

임원여는 자신의 신분을 밝힘으로써 상대방이 지레 겁먹고 물러서기를 바랐다.

하지만 옥진 군주는 전혀 개의치 않고 검을 뽑아 들었다.

매혹적인 몸매가 옥진 군주의 가장 큰 특징이었지만, 임원여는 군주를 실제로 본 적이 없었기에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다.

결국 그는 바로 사격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백여 명이 넘는 궁수들이 옥진 군주를 겨냥해 일제히 화살을 쏘았다.

슉! 슉! 슉!

화살이 비오 듯 쏟아졌다.

옥진 군주가 검을 휘두르며 모든 화살을 쳐냈고, 어느 화살도 그녀의 근처에 다가오지 못한 채 모두 부러졌다.

옥진 군주는 아버지에게 무도의 기초 지식을 전수받았고 그 후에 영설 공주와 같이 영종오 밑에서 10년간 무도를 연마했었다. 그녀의 무공은 그야말로 대단한 경지라고 할 만했다.

이를 본 임원여가 적지 않게 당황했다.

저자는 누구이길래 이토록 대단한 거지?

게다가 옥진 군주가 너무 빠르게 거리를 좁혀 와서 두 번째 화살을 쏠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진영을 제대로 갖추고 저자를 막아라!.”

임원여가 명령했다.

이백 명의 여경사 무사들이 두꺼운 방패로 방어벽을 만들었다.

척! 척! 척!

방패 사이의 틈으로 장창을 내밀어 고슴도치 형태의 진영이 갖추어졌다.

이는 기마병에게 가장 효과적인 진영임과 동시에 기마병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진영이기도 했다.

하지만 옥진 군주는 여전히 속도를 늦추지 않고 홀로 번개 같은 속도로 돌격해왔다.

콰쾅!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옥진 군주가 손에 든 검을 힘차게 내리치며 검강을 펼쳤다.

타고 있던 군마가 있는 힘껏 걷어찼다.

그러자 그토록 공고해 보이던 방패진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먼저 공격을 받은 여경사 무사들이 힘없이 날아갔고, 날카로운 장창 몇십 개가 모두 부서지며 사방으로 날아갔다.

옥진 군주가 홀로 여경사 진영으로 파고들며 검을 유려하게 휘둘렀다.

십여 명의 무사들이 시시각각 옥진 군주를 에워쌌지만, 군주의 반합도 견디지 못했다. 그녀가 지나가는 곳마다 뼈가 부러지거나 팔다리가 잘린 무사가 볏짚처럼 날아다녔다.

여경사 무사들의 진법은 그녀에게 무참히 깨졌다.

임원여는 마침내 이 여자가 그 유명한 옥진 군주라는 걸 알아차렸다. 비록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외모와 몸매, 그 용맹한 살기를 보면 충분히 추측이 가능하지 않겠나.

임원여가 등골이 오싹해져서는 소리쳤다.

“군주 전하! 여경사에게 이토록 모질게 행동하는 연유가 무엇입니까?”

전투 중에는 말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옥진 군주는 임원여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그저 참살만 계속할 뿐이었다.

잠시 후 기마병 오백 명이 물밀 듯이 들이닥쳤다.

여경사 진영은 무공도 높고 신분도 고귀한 옥진 군주에게 속절없이 무너졌다.

게다가 정예 기마병 오백 명도 합세했으니 여경사의 팔백여 명의 무사들은 철저히 짓밟힐 수밖에 없었고 진영은 완전히 와해되었다.

“죽여라! 죽여!”

오백 명의 기마병들이 전장을 누비며 여경사를 진압하기 시작하자, 형세는 일방적으로 기울었다.

물론 옥진 군주는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여경사는 적군이 아니라 적수일 뿐이며, 이는 전쟁이 아니라 진압이니 상대 진영을 와해시키는 선에서 멈추고 죽이는 건 최대한 자제하라고 명령해 두었다.

밖의 상황이 이렇다 보니 두변과 그 형제들은 도망칠 필요도, 힘들게 대항할 필요도 없이 그저 동창 감옥 담벼락 앞에서 전투를 관전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물론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옥진 군주의 매혹적인 몸매와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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