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장: 승자가 곧 정의다.
일각 만에 전투는 끝이 났고, 여경사 무사들은 모두 땅바닥에 널브러졌다.
옥진 군주가 임원여를 흘겨보며 말했다.
“여경사가 동창을 치는 데 투석기까지 동원하다니, 너희들이야말로 반역을 꾀하는 것 아니냐?”
임원여는 자신이 무슨 일을 벌였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대꾸를 하지 못했다.
옥진 군주가 차갑게 말했다.
“나는 너희들을 처벌할 권리는 없으나 이번 일을 폐하께 상세히 아뢸 테니, 이번 일에 대해서는 네가 폐하께 잘 아뢰거라. 그리고 이만 썩 꺼져라.”
임원여는 분노와 감탄, 그리고 놀라움이 뒤섞인 눈빛으로 옥진 군주를 쳐다봤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돌아가는 것이 너무 분한 나머지 담장 위에 올라서 있는 두변을 쳐다봤다.
“참으로 개탄스럽구나. 내게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저놈을 죽일 수 있었을 텐데.”
임원여는 매우 고통스러워했다.
두변을 죽이는 것은 이문회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없애는 것이니 여경사 입장에서도 목숨을 걸고 도박해 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이전에 동창을 공격했을 때는 최연과 최병정 등의 무고한 인질들을 구한다는 명분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투석기와 독유탄까지 사용한 지금,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졌고 황제가 책봉한 군주가 그 장면을 직접 목격하기까지 했으니 이 사건을 묻어두기란 불가능했다.
그래서 임원여의 절망은 그의 의부인 임진교의 절망이기도 했다.
옥진 군주를 바라보는 임원여의 마음은 복잡했지만, 그녀를 원망할 수는 없었다.
“군주께서 이토록 용맹하니 과연 명불허전임을 확인했습니다. 소관이 진심으로 탄복했습니다.”
임원여가 옥진 군주를 향해 예를 갖췄으나 옥진 군주는 고개를 돌리며 그를 무시했다.
그녀도 속으로는 임원여라는 용장이 왜 전쟁터에 있지 않고 이런 내부 전투에 휘말리게 되었는지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임원여는 다시 동창 감옥 담장 위에 올라가 있는 두변을 쳐다보고는, 다시 눈을 감으며 마음속 고통을 감내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며 크게 소리쳤다.
“두변, 먼저 저승에서 기다리고 있겠다.”
두변이 공수하며 대답했다.
“잘 가시오, 임 형.”
“이만 가자.”
임원여의 명령에 살아남은 여경사 무사 삼백여 명이 부상자를 끌고 쓸쓸히 퇴각했다.
이들이 돌아가면 광서 여경사는 패배의 열매가 얼마나 쓴지 직접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 열매는 참으로 쓰고 또 독할 것이 분명했다.
아름다운 외모와 매혹적인 몸매를 지닌 옥진 군주를 다시 보게 된 두변은 자신의 아랫도리가 본능적으로 꿈틀대는 느낌을 받았다.
두변은 이미 영설 공주에게 첫눈에 반했지만, 양기를 회복하려면 옥진 군주를 찾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까 싶기도 했다.
저 미모며 몸매며 성격까지, 그녀의 모든 것들이 남성 호르몬 분비를 촉진하는 살아 있는 폭탄이라 할 만했다.
게다가 이토록 용맹스러운 옥진 군주를 보고 있자니, 어느 사내가 그녀와 보내는 첫날 밤에 저런 몸매와 외모를 온전히 감당할 수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두변이 앞으로 나와 예를 갖췄다.
“군주께서 도와주신 것에 매우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옥진 군주는 두변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중에서 누가 가장 관직이 높은가? 앞으로 나와라.”
이 백호가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계림 동창의 백호 이연수, 군주를 뵙습니다.”
옥진 군주가 말했다.
“과거시험 부정행위 사건의 주범들은 중요한 증인들인데, 모두 무사하겠지?”
이 백호가 대답했다.
“모두 무사합니다.”
“다행이군.”
그녀는 이 격렬한 전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여경사와 문관 집단, 그리고 무장 집단이 이문회가 없는 틈을 타 동창, 그중에서도 특히 이문회의 의자를 목표로 대대적인 공세를 퍼부었다. 이는 한마디로 추악한 내부 권력투쟁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국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부정행위 사건 외에 다른 일은 아무것도 언급하지 않았다.
“소 천호!”
“부르셨습니까.”
옥진 군주가 부르자, 그녀 뒤에서 기마병 천호가 앞으로 나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옥진 군주가 명령했다.
“군사 삼백 명을 거느리고 이곳에 주둔하여 과거시험 부정행위 사건에 연루된 주범과 증인들을 보호하라. 공식적으로 인계 요청할 때까지 기다리고, 이 모든 일에 그 어떤 실수도 있어선 안 된다.”
“존명!”
소 천호가 대답했다.
이어 옥진 군주가 동창 쪽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들은 스스로 알아서 잘 처신하라!”
말을 마친 그녀는 말머리를 돌려 친위대를 거느리고 북서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이렇게 떠나는 것은 오주부로 가서 영종오를 찾아봬야 할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원래도 매우 촉박한 시간이었지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 탓에 하루 가까이 시간을 지체했으니 밤을 새워서라도 길을 재촉해야 했다.
옥진 군주는 이번 전투의 장본인이 두변이며, 그가 전반적인 판을 짜고 승리까지 거두었음을 알았지만, 만남부터 헤어짐까지 두변과 말을 섞기는커녕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몇만 명의 사람을 선동해 순무 관아를 포위 공격하고, 최씨 가문의 장원을 불태웠으며, 민심을 이용해 낙문을 꼼짝 못 하게 만들었으니, 정말 감탄을 금치 못하는 계략이라 할 만했다.
게다가 이 계략을 세운 두변은 올해 고작 열여덟의 나이에 불과했다.
옥진 군주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바로 두변처럼 권모술수에 능하고 음모를 꾸미는 자였고, 반대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정직하고 용감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처럼 진정한 용기를 가진 사람들을 좋아하고 또 존중했다.
두변은 옥진 군주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토록 아름답고 매혹적인 몸매를 가진 옥진 군주는 두변에게 전혀 호의를 갖지 않았다.
두변은 하늘을 우러러 길게 숨을 내쉰 후 낮은 목소리로 탄식했다.
“드디어 모든 게 끝났구나. 정말 기나긴 하루였다.”
짧고도 긴박하게 돌아가던 전투가 드디어 막을 내렸다.
두변은 최고 관직이 겨우 백호인 무사 두 명과 백 명도 안 되는 동창 무사를 이끌고서, 광서 최대 세력 집단인 문관, 무장, 사대부 가문, 심지어 엄당 일부가 연합한 무리에 맞서 싸웠고, 결국 대승을 거두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멋진 계략으로 승리를 끌어냈으니, 이제는 승리의 과실을 만끽할 시간이었다.
물론 패배자들에게는 패배자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처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첫 단추는, 여경사의 임진교와 동창 진무사 왕인이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참혹하게 죽어 나가게 될 상황이었다.
이날의 광서 동창 진무사 관아는 유난히 엄숙했다.
두 시진 전.
계림 동창 인원 이천 명이 연무장에 집결해 있었고, 목청이 큰 환관 한 명이 황제 폐하의 글을 소리 내어 읽고 있었다.
이는 계림 동창의 모든 일원이 진무사 관아에 모여 황제 폐하의 새로운 지시를 받들기 위해 거행되는 신성한 행사로, 그 누구도 불참하거나 외출할 수 없었다.
황제의 글은 아주 길어서 읽는 데 반 시진이나 걸리고, 또 이를 학습하는 데 두 시진이 걸리니, 모든 것이 끝날 때쯤이면 이미 두변의 시체는 차갑게 변해 있을 게 분명했다.
진무사 왕인은 자신의 서재에서 차를 마시며 두변을 잡거나 두변을 죽였다는 소식이 들려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왕인은 이번에 이문회의 심기를 건드리게 된다는 걸 알았으나, 그는 아무것도 직접 행동을 한 게 없었다. 여경사에서 두변을 처리하기 수월하도록 동창의 인원들을 집결시켜 두변을 돕지 않았을 뿐.
이문회는 분명 복수를 할 것이긴 하나 가장 먼저 여경사를 노릴 것이고 그다음으로 낙문, 최씨 가문, 축무애, 계동앙 순으로 나아갈 것이 분명했다.
왕인은 이번에 두변을 죽이는 과정에서 가장 미미한 역할을 맡았을 뿐이다.
이문회가 대단하긴 하지만, 임진교와 최씨 가문에게 복수를 하는 데 세력과 자원을 거의 다 소진할 것이고, 왕인 차례가 될 때쯤이면 이미 세력이 많이 약해져 별다른 위협이 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계산 때문에 왕인은 당엄의 지위를 확실히 다지기 위해 여경사를 도와 두변을 제거하겠다는 도박을 한 것이다.
당엄의 배후 세력과 장약죽의 세력에게 이는 더할 나위 없이 큰 은혜였으며, 여경사의 힘을 빌려 두변을 죽이는 것은 실보다 득이 훨씬 컸다.
게다가 왕인도 이제 은퇴할 시기가 되었기에 더 많은 것을 살필 겨를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 왕인의 의자인 왕맹이 급히 뛰어 들어왔다.
“의부!”
왕맹은 문에 들어서자마자 무릎을 꿇은 후 그 상태로 왕인의 앞까지 기어 오며 통곡했다.
“제가 의부 얼굴에 먹칠했습니다. 제가 의부의 명령을 그대로 전했는데도 계림의 이 백호와 장 백호가 밖으로 나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제게 화살을 쏘며 의부는 전혀 안중에도 두지 않았습니다.”
“뭣이라?”
왕인이 발끈했다.
동창의 규율은 매우 엄격해서, 명령을 어기는 것은 곧 반역이었다. 명령을 어긴 자들은 모두 사지가 부러진 채로 동창에서 쫓겨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지금 계림 동창의 백호 두 명이 그의 명령에 불복종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의자에게 화살을 쏘아 상처를 입혔으니, 이는 왕인을 철저히 무시하는 행동이었다.
왕인이 매섭게 소리쳤다.
“반역이다! 이문회의 심복인 이삼과 이사가 명령에 불복종했고, 계림 천호소도 이에 동조하며 내 측근을 죽이려 했으니 이건 명백한 반역이다!
두변은 차치하고라고 내가 고작 계림 천호소에 있는 백호 둘을 못 죽일까 보냐?”
왕인이 손에 들고 있던 값비싼 찻잔을 바닥에 세게 내던졌다.
그리고 매섭게 소리쳤다.
“여봐라. 당장 친위대를 불러 반역자들을 처단하러 갈 준비를 해라.”
“알겠습니다.”
잠시 후 왕인의 친위 오백 명이 모두 집결했다.
여경사 쪽이 전투를 끝마치면 두변은 이미 생포되거나 살해당했을 테니, 왕인은 친위대를 이끌고 반역자인 계림 천호소의 이 백호와 장 백호를 잡으러 출격할 생각이었다. 그것도 그 두 머저리가 아직 살아 있어야만 잡는 게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왕인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두변 그 머저리 같은 놈은 시사가부에나 능했지, 권모술수에는 전혀 소질이 없군.
고작 환관 학원의 환관 놈 하나가 여경사의 백호를 죽이다니. 자기 자신뿐 아니라 반룡부봉(攀龍附鳳: 권세 있는 사람에게 아첨하여 달라붙다.)하는 놈들까지 사지로 몰아넣은 셈이로군.
사람을 보내 전투가 끝났는지, 그리고 두변이 죽었는지 알아봐라.”
왕인은 더는 기다릴 수 없어 자신의 심복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이때 누군가가 급하게 뛰어 들어왔다.
왕인에게 충성하는 동창의 밀정인 그는 무릎 꿇을 시간도 없이 다급하게 외쳤다.
“왕 공공, 큰일 났습니다. 오삼석이 서생 수천 명을 인솔하고 만 명이 넘는 민중을 동원하여 순무 관아를 포위한 후 과거시험 부정행위 사건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통제가 안 되는 일부 민중이 최씨 가문의 장원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왕인의 표정이 급히 굳었다.
“좋지 않아.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다니…….”
왕인이 탄식했다.
왕인은 본능적으로 동창의 무사들을 향해 계림 동창 감옥으로 가서 사태를 수습하라는 명령을 내리려 했다.
하지만 그는 죽을힘을 다해 참았다.
그는 누구보다도 두변이 죽기를 바랐다. 낙문이 사태를 수습하거나 여경사가 확실히 일을 끝마칠 수 있게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싶었다.
하지만 곧이어 더 끔찍한 소식이 들려왔다.
“광서 순무 낙문이 부정행위 사전을 철저히 조사하기로 약속했고 최씨 가문을 희생양으로 삼았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진무사 왕인은 온몸이 싸늘하게 식으면서 두려움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낙문, 이 빌어먹을 놈을 봤나. 모두가 네놈 하나 때문에 망하게 생겼구나!”
왕인은 원래 한 발짝 뒤로 물러난 상태에서 상황을 조율하며 전면에 나서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갑자기 낙문, 축무애, 계동앙, 구양담 등이 전부 뒤로 물러나면서 최현만 희생양이 되었다.
게다가 지금 이문회와 대적한 모양새가 왕인과 임진교 둘밖에 남지 않은 상태로 변하면서 이문회의 주요 보복대상은 이 둘로 한정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