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4장: 최병정의 죽음
최병정은 충격을 견디지 못해 땅에 엎드려 통곡하기 시작했다.
어찌 일이 이토록 혹독하게 흘러간단 말인가?
만약 이번 일의 원흉이었던 최병정이 백옥경에게 진평을 잡으러 가라고 부탁하지만 않았다면 일이 이 지경까지 오진 않았을 것이다. 만약 최병정이 두변을 그토록 증오하지 않았더라면 진평을 음해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모든 근원은 최병정이 두변을 증오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두변이 그녀에게 잘못한 일도 없는 상황에서 그녀 혼자 계속 두변을 사지로 몰려고 했으니 사실 이 복수에는 어떠한 명분도 없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될 줄 알았다면 저는 절대 두변에게 복수하지 않았을 거예요.”
최병정은 울부짖으며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었다. 지금 그녀를 집어삼킨 공포와 후회는 두변에 대한 원한을 압도했다.
“후회할 것도 없다. 그저 우리가 두변이란 놈을 너무 얕잡아 봤던 게 화근이구나.
그리고 우리 최씨 가문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그저 얼마간 칩거에 들어갈 뿐이다. 이번에 두변이 날카로운 이를 드러냈으니 광서의 모든 수령들의 심기를 건드렸을 것이다. 아마 모든 사람이 두변을 죽이고 싶어 하겠지. 두변이 뭔가 빈틈이라도 보이면 그 즉시 두변을 철저히 파멸시키려 들 거다.”
최병정이 울며 소리 질렀다.
“참고 견디며 두변이 갈기갈기 찢겨 죽임을 당할 그 날만 기다리겠어요.”
“두변은 아마 1년도 못 가 죽을지도 모른다. 제아무리 대단하다고 한들 증오가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는 몇천 명을 상대할 수 있을까? 하지만 네가 그날을 보진 못할 것 같구나.”
최병정이 놀라 물었다.
“왜죠? 저는 참감후에 처해졌을 뿐이니 죽진 않아요.”
최현이 말했다.
“네가 희생해야 할 것 같다. 대중의 분노를 잠재울 만한 희생양이 필요하다. 최가의 명예가 더럽혀지는 걸 두고 볼 수만은 없지 않으냐. 아무래도 여자가 죽으면 더 많은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고 말이다.”
최병정의 아름다운 얼굴이 순식간에 굳으면서 온몸이 심하게 떨려왔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아버지 최현을 바라봤다.
“저, 저는 아버지가 가장 아끼는 딸이에요.”
최현도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다. 그렇지만 가문을 위해선 누구나 희생해야 할 때가 오는 법이란다. 너도 예외는 아니지.”
다음날 최병정의 사망 소식이 여기저기로 퍼져나갔다.
물론 두변이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본 것은 아니었다.
이미 승리가 확정된 후라 두변은 이삼과 이사의 호위를 받으며 서둘러 오주부로 돌아갔고, 계림에서 뒤이어 벌어지는 사건들이 얼마나 참혹한지는 두변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이제 두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백일 후에 있을 졸업 시험이었다.
이번에 거둔 완벽한 승리는 광서의 여러 세력을 놀라게 했지만, 동시에 많은 수령들의 원한을 사게 된 사건이기도 했다.
빈틈을 보이는 순간 적들은 두변을 물고 늘어지며 잔인하게 죽일 것이 분명했다.
그러므로 두변은 무엇보다 스스로 강해져야 했다. 백일 후에 있을 졸업 시험에서도 절대로 실수가 있어선 안 됐다.
두변은 계림에서 며칠의 시간을 더 보낸 관계로 빨리 돌아와 공부를 계속해야 했다.
오주부, 연화사.
옥진 군주는 밤낮으로 쉬지 않고 길을 재촉한 끝에 다음날 날이 지기 전에 오주부 연화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제자 송옥진, 대종사를 뵙습니다.”
옥진 군주가 여전히 숨 막히는 몸매를 자랑하며 영종오에게 예를 갖췄다.
영종오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옥진, 이 늙은이를 잊지 못해 다시 온 것이냐?”
용감하고 정직하며 무공 실력이 뛰어난 아름다운 옥진 군주는 남자들에게도 뒤지지 않는 기백을 지닌, 영종오가 가장 아끼는 제자였다.
옥진 군주가 말했다.
“제자가 중요한 일이 있어 대종사를 찾아왔습니다.”
영종오가 물었다.
“무슨 일이길래 이토록 급하게 나를 찾아온 것이냐?”
“폐하께서 제 부친에게 십만 대군을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가 안남 국왕의 반란을 무마할 수 있도록 도우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녀가 자연스럽게 내뱉은 이 사건은 대녕 제국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정세를 뒤흔들지도 모를 사건이었다.
“폐하께서 드디어 출병을 결정하셨다고? 드디어 제국의 존엄을 되찾으시려는 게로구나. 내 이날을 기다린 지 벌써 몇 년이나 되었는지 모르겠구나.”
영종오는 흥분한 나머지 두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안남 왕국의 내전은 몇 년 전에 발발했다. 이 세계의 안남 왕국은 대녕 제국과 가장 관계가 좋은 국가 중 하나로, 두 나라의 왕실은 대대로 혼인 관계를 맺어온 사이였다. 또 다른 지구의 역사에서처럼 안남 왕국과 대명 왕조 간의 원수지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안남 국왕은 계속해서 사절을 파견해 대녕 황제에게 지원을 요청했는데, 그 서신의 내용이 눈물 없인 보기 힘들 정도로 간절했다.
하지만 대녕 제국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먼저 광서와 운남의 토사들의 반란과 북달, 건로와의 전쟁이 그것이었다. 게다가 전세가 밀리고 있어서 변경의 상황은 말이 아니었다. 그동안 힘겹게 상황을 안정시켜왔으니, 안남 왕국이 반란을 진압하도록 도울 힘이 어디 있겠는가.
이러한 틈을 타 반란군은 계속 승리를 거두었고 안남국의 영토를 절반 이상 장악하게 되었다. 머지않아 반란군이 안남 왕국의 경성까지 진격하게 생겼으니 대녕 제국도 안남 왕국의 왕조가 전복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지원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만약 상황이 그렇게 된다면 동남쪽 전체, 더 나아가서는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대녕 제국의 세력이 점차 약해지고 그 명성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게다가 동남아에서의 대녕 제국의 이익도 송두리째 위협받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녕 제국 황제가 마침내 안남 왕국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병력을 보내기로 했으니 영종오가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실 영종오뿐 아니라 대녕 제국의 애국지사들은 모두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었다.
옥진 군주가 말했다.
“대종사께서 이 소식을 들으면 흥분하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3년 전에 안남 국왕이 폐하께 지원을 요청했는데 제국에서도 저들을 도울 여력이 없어 제국의 존엄이 실추되지 않았습니까.”
“잘됐군. 참으로 잘된 일이야.”
영종오는 감격해서는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다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여기 은자 몇천 냥이 있으니 이걸 군비에 보태거라.”
이 은자는 영종오가 한평생 모은 자산이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제가 오늘 온 것은 대종사께 이 소식을 알려드리기 위함도 있지만 중요한 임무가 따로 있습니다.”
“무엇이냐?”
“대종사께서는 무공도 최고시지만 충심과 애국심도 누구 못지않으십니다. 부친께서는 대종사께서 군영으로 들어와 이번 전투에 참여해주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영종오는 순간 화색이 돌았다가 금방 복잡한 심경의 얼굴로 변했다.
옥진 군주가 말했다.
“저는 대종사께서 기꺼이 응해 주실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요. 무슨 연유로 고민하시는 겁니까?”
영종오가 대답했다.
“당연히 가야 하지만 지금은 나도 해야 할 일이 있구나.”
“나라의 부름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나요? 이건 우리 대녕 왕조의 국운을 결정짓는 중요한 전투입니다.”
영종오가 말했다.
“천재를 가르치는 중이란다. 10년 뒤에 제국을 놀라게 할 뿐 아니라 제국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는 천재지.”
“그게 누굽니까?”
옥진 군주가 물었다.
“두변이란다. 이문회의 의자이다.”
“두변이요? 그자가 그럴 만한 인재인가요?”
간사한 소환관 말인가요?”
옥진 군주가 묻자, 영종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옥진 군주가 실망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자는 권모술수에 능할 뿐인데 어찌 천재라고 하시는 거죠? 저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제일 싫습니다.”
영종오가 놀라 물었다.
“옥진, 너는 두변을 만난 적도 없지 않으냐? 그런데 어찌 이런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냐?”
옥진 군주가 냉소하며 대답했다.
“그자를 만나봤을 뿐 아니라 이미 이용까지 당했습니다.
대종사께서는 아직 모르시는 것 같네요. 요 며칠 동안 두변이 계림부를 발칵 뒤집어 놓았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두변 때문에 죽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광서의 중요 인물들을 자기 손에 놓고 마음껏 주무르는데 그 계략이 너무 뛰어나 감탄을 금치 못할 지경이었어요.”
영종오는 군주의 말에 의아할 뿐이었다. 두변은 자신의 명령에 따라 진평을 대신해 원시에 참가하러 갔을 뿐인데, 옥진 군주가 왜 이런 말들을 늘여놓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옥진 군주가 말을 이었다.
“대녕 왕조에 가장 필요한 영웅은 지금 형세를 바로잡을 수 있는 강력한 인물이지 두변처럼 권모술수에만 능한 사람이 아니에요. 두변 같은 사람은 대녕 왕조를 더 깊은 늪에 빠져들게 할 뿐이라고요. 대종사께서 두변이라는 자 때문에 제 부친의 부탁을 거절하신다니 정말 믿을 수 없습니다.”
옥진 군주는 매우 직설적이며 조금의 꾸밈도 없는 솔직한 인물이었다.
영종오가 말했다.
“두변 그 아이가 똑똑하면서도 교활한 면이 있기는 하나 꽤 괜찮은 아이란다. 애국심과 정의감도 있으니 옥진 네가 말하는 것처럼 아주 간사한 인물은 아닌 것 같다.
게다가 내가 칭찬한 그의 천재성은 권모술수가 아니라 무도와 학술 방면의 능력을 일컫는 것이란다.”
“학문에서의 천재성은 모르겠으나 두변의 무도 실력이 형편없다는 사실은 저도 알아요.
부친께서 사람을 보내 특별히 광서 환관 학원을 조사한 적이 있으세요. 두변이 근력도 없고 학원에서 꼴등만 하는 인물이라는 걸 뻔히 아는데, 어찌 대종사께서는 두변을 무도 천재라고 칭찬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영종오가 되물었다.
“설마 내가 거짓말이라도 하고 있다는 것이냐?
두변은 일반적인 무도 천재가 아니라 백 년에 한 번 나타날까 말까 한 그런 천재다.”
“그럼 저와 영설과 비교해 보면요?”
옥진 군주가 묻자, 영종오가 웃으며 말했다.
“아마 내가 하는 말을 네가 믿지 못할 것 같지만, 두변의 무도 재능은 너나 영설보다 더 뛰어나다.”
“말도 안 됩니다. 말도 안 된다고요.”
옥진 군주가 아름다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내키지 않는다는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제가 인정하기 싫은 부분도 있겠지만 이 세상에 영설의 무도 재능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갖춘 사람은 없습니다. 대종사께서 제국에 대해 실망한 나머지 모든 걸 내려놓고 유유자적하고 싶어 한다는 걸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말들로 제 부탁을 대충 넘기려고 하지 말아주세요.”
영종오가 웃으며 말했다.
“두변이 돌아오면 그 아이가 얼마나 많은 잠재력을 가졌는지 알 수 있을 거다.”
“며칠 후면 부친을 따라 남쪽으로 떠나야 하기에 기다릴 시간이 없습니다.”
“최대한 이곳에 얼마나 머무를 수 있는 것이냐?”
“나흘이에요. 나흘 뒤면 염주부로 돌아가야 해요.”
“나흘? 시간이 그렇게도 촉박하단 말이냐?”
“나흘이 최대고 그 이상은 반나절도 지체할 수가 없습니다. 닷새 후면 출정식이 거행되거든요.”
“그럼 나흘로 하자꾸나.
두변이 내 밑에서 무도를 배우는 것은 모두 환관 학원의 졸업 시험을 위해서란다. 다섯 달도 안 되는 시간에 꼴찌에서 일등이 되기 위함이지.”
“더 터무니없는 소리군요. 환관 학원 졸업 시험에서 안정적으로 수석을 차지하려면 7품 무사 혹은 6품 무사 정도의 실력은 갖춰야 해요. 영설 같은 천재라 할지라도 적어도 3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텐데 다섯 달로는 불가능하다고 봐야죠.”
“두변을 만나기 전에는 나도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두변의 천재성을 확인하고는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구나.
국학 수업이 끝났으니 이제 궁술 수업을 진행할 차례구나. 그건 그렇고 이번 과거 원시에서 진평이 합격을 했더냐?”
옥진 군주는 영사가 두변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진평을 물어보니 순간 당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