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87화 (87/648)

제87장: 군주의 슬픔

내기를 하루로 단축한 이유는?

첫째, 두변이 어려서 치기를 다스릴 줄 몰랐고, 옥진 군주는 너무나 단호해서 조금도 기다리려고 하지 않았으니, 둘 다를 고려하면 하루가 가장 적합했다.

둘째, 두변은 꿈의 세계에 모든 것을 걸었는데, 만약 하룻밤 만에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사흘을 준비한다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이 없었다.

어쨌든 궁술은 차근차근 배워나가는 것보다는 깨달음이 필요한 무도라서, 한 번 해서 안 되면 끝까지 안되는 것이다.

영종오는 두변과 옥진 군주의 내기를 지켜보더니 가볍게 탄식을 하며 두변의 어깨를 두드렸다.

“너무 충동적이었구나. 옥진 군주는 한다면 정말 하는 사람이니 너는 태형 100대를 면치 못할 것이야.”

이 말을 풀어보자면 영종오는 두변이 질 거라 확신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지금까지 두변이 많은 기적을 만들어 냈지만, 이번에는 너무 가망이 없어 보였다.

두변은 궁술에서 재능이 너무 부족해서 5년이 걸려도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워 보였는데, 갑자기 하루 만에 해내겠다고 하니 현실성이 모자라도 너무 모자란 게 아닌가 말이다.

가볍게 한숨을 내쉰 영종오는 내실로 들어와 노복에게 명령했다.

“짐을 정리해 놓거라. 내일 해가 떨어지면 떠나야 할 것 같구나.”

노복이 대답했다.

“어디로 가십니까? 두변을 지도하는 데만 몇 개월은 걸린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럴 기회도 없게 생겼구나. 여기까지다.

제아무리 천재라 한들 모든 방면에서 뛰어날 수 없는 법이겠지. 우리는 국가를 위해 충성해야 하니 군에 합류해 전쟁에 참여하도록 한다.”

그동안 두변에게 여러 차례 당하긴 했지만 알게 모르게 사제 간의 정이 솟기라도 했는지 영종오는 진심으로 슬퍼했다.

두변을 지도하는 요 며칠이 영종오가 근 몇 년 동안 보낸 시간 중 가장 유쾌한 나날들이었다.

그때 옥진 군주가 들어오며 말했다.

“대종사, 저와 같이 군에 합류하기 꺼려지신다면 말씀해주세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건 아니다. 결과에 승복해야 맞는 법이지. 나는 그저 두변의 재능이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에 슬픔을 느끼는 중이란다.”

“제 아버지께서 모든 일은 자신 스스로 헤쳐나가야 한다고 가르쳐 주신 적이 있으세요. 세상에 구세자(救世者)는 없다고 하시면서요.”

“모든 사람이 너희 부녀처럼 강인하지는 않지.”

영종오는 대답을 하더니 이내 손사래를 치면서 이 얘기는 그만하고 싶다는 의중을 내비쳤다.

“너희 부친이 십만 군대를 출병해서 안남국의 반란을 진압하려면 군비로 적어도 몇백만 냥의 은자가 필요할 텐데, 폐하께서 이를 마련해 주셨느냐? 이 거금을 어떻게 마련하신 거지?”

옥진 군주가 대답했다.

“폐하께서 요대를 졸라매고 하루 두 끼만 드시면서 아낀 이백만 냥을 제 부친께 내어주셨습니다.”

영종오가 탄식했다.

“역사를 돌이켜보더라도 지금 황제 폐하보다 더 검소한 분은 찾기 힘들 거다.”

사실이 그러했다. 대녕 왕조의 황제는 불필요한 지출은 일절 하지 않았으며 그 누구보다 검소한 생활을 유지한 끝에 진남공 송결에게 이백만 냥을 쥐어짜서 준 것이다.

영종오가 다시 물었다.

“남은 몇백만 냥의 군비는 어떻게 충당할 생각인 거냐?”

“이렇게 부친의 의자와 의녀들이 돈을 구하러 다니고 있잖아요.”

말이 좋아 돈을 구하러 다니는 것이지, 정확히 말하면 강탈에 가까웠다.

송결은 자신의 의자와 의녀들에게 밀수꾼들을 약탈하라고 명령했고, 각 주부에서는 보호비를 걷고 있었는데 이는 이미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제국의 공작이 전쟁을 치르려 해도 군비는 밀수와 약탈에 의지해야 했으니 이는 제국으로서는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제국은 남쪽, 북쪽, 서쪽 모두에서 돈을 요구하고 있지 않으냐.

폐하께서는 관원들의 녹봉도 제대로 주지 못해 대신 화초(花椒: 산초나무 열매)로 맞춰주고 계시지 않으냐. 그런데 일부 부유한 자들은 그 사치가 도에 지나치니, 대녕 왕조도 오래 버티진 못하겠구나.”

옥진 군주의 예쁜 두 눈이 붉어졌다.

“저도 알고 부친도 알고 계세요. 하지만 그저 힘이 닿는 데까지는 해봐야죠. 안남국으로의 출병이 대녕 왕조의 마지막 업적이 된다 해도 저는 받아들이겠어요.”

말을 마친 옥진 군주는 눈을 위로 올려 뜨며 촉촉해진 눈가를 감추려 했다.

“대종사, 구세자는 없으니 인제 그만 이 모든 상황을 만회할 인물이 나타나기만을 바라지 마세요. 더욱이 두변은 그런 천재가 아니에요. 내일이면 누구보다 잘 아시게 되겠죠. 저와 함께 제국의 영광을 위해서 전장으로 나가주셨으면 해요.”

“나도 두변이 해내지 못할 거라 보고 있단다.

그래서 너와 한 가지 상의하고 싶은 일이 있구나. 두변이 내일까지 은자 오만 냥을 마련하지 못할 테니 두변이 지더라도 태형 100대는 면해다오.”

“그럴 순 없어요.

군의 기강은 엄격해야죠. 그렇게 호언장담하며 저랑 내기했으니 그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져야죠. 내일 해가 지고 두변의 패배가 확실해지면 두변에게 태형을 100대 내리고 곧장 염주부로 떠나야 해요. 대종사도 더 이상 그에게 시간 낭비 그만 하세요.”

두변은 적들을 상대할 때는 교활하고 악독하지만, 호감 있는 여인 앞에서는 젊은 패기만 앞서서 상대방이 자신을 무시하는 걸 조금도 참을 수 없었다.

두변은 이번에 옥진 군주가 틀렸다는 걸 반드시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꿈의 세계야! 제발 날 실망하게 하지 말아라!’

두변은 깊게 숨을 들이쉰 후 저녁도 먹지 않은 채로 곧장 침상에 누웠다.

다행히 곧장 꿈의 세계로 진입했다.

주변은 별로 특별한 게 없었다. 두변은 끝없는 초원에 서 있었고 앞에는 90미터 거리에 과녁 하나가 놓여 있을 뿐이었다.

이것이 꿈의 세계에서 궁술을 연마하기 위해 마련한 환경이었다.

석궁을 집어 든 두변은 영종오의 가르침에 따라 연습을 시작했다.

두변은 현실에서 한 번에 화살 열 번을 쏘면 팔이 시큰거리기 때문에, 하루에 기껏해야 활시위를 몇백 번 정도만 당길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근맥이 손상될 수 있었다. 더욱이 아무리 노련한 궁수라 할지라도 활시위를 하루에 천 번 당기는 게 한계였다.

하지만 꿈의 세계에서는 팔과 근맥에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고, 시간만 충분히 있다면 몇천 번이고 몇만 번이고 무한정으로 활시위를 당길 수 있었다.

모름지기 신궁이란 모두 몇만 번, 몇십만 번의 반복된 훈련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슉! 슉! 슉!

한 시간, 세 시간, 다섯 시간, 열 시간…….

두변은 지칠 줄 모르고 궁술 연습에 열을 올렸다.

두변은 꿈의 세계에서 십여 일간의 시간 동안 정신없이 수련에 몰두할 수 있었다. 게다가 꿈의 세계에서의 뇌 사용량 또한 현실의 십여 배인 만큼, 연습 효율도 현실에서의 몇 배는 되었다.

조건이 이렇다 보니 꿈의 세계에서 궁술을 하루 연습하면 현실에서 두세 달 연습하는 양과 맞먹었다.

꿈의 세계 첫날.

두변은 첫날에만 만 번 이상 활시위를 당겼다.

훈련 효과도 매우 좋아서 이전에는 열 발을 쏘면 과녁에 맞는 게 네 발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여덟 발 이상을 과녁에 맞힐 수 있게 되었으니 실력이 두 배나 는 셈이었다.

꿈의 세계 둘째 날.

두변은 이튿날에도 다시 만 번 이상 활시위를 당겼다.

이제는 한 발도 빠짐없이 열 발 모두를 과녁에 맞혔다.

꿈의 세계에서의 훈련 효과가 정말 끝내주는구나. 현실 세계와는 차원이 달라!

다만, 두변의 점수는 여전히 0점이었다.

많은 발전이 있었음에도 과녁의 원을 맞힌 화살이 하나도 없었고, 과녁의 정중앙은 말할 것도 없었다.

꿈의 세계 셋째 날.

두변은 역시 만 번 활시위를 당겼고, 마침내 점수권에 화살을 맞혀 5점을 얻을 수 있었다.

90점과는 아직 요원한 5점이었지만, 0점에서 벗어났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점수였다.

네 번째 날에도 역시 만 번을 쏘았고, 점수권에 두 발을 쏘는 쾌거를 이뤄냈다.

그렇게 다섯 번째 날, 여섯 번째 날, 일곱 번째 날…….

두변은 쉬는 시간도 없이 매일 만 번의 궁술을 완수했다.

꼬끼오!

밖에서는 수탉이 힘차게 소리 내어 울었고, 두변은 꿈의 세계에서 깨어났다.

꿈의 세계에서는 15일 간 훈련을 했지만, 현실에서는 하룻밤만 지났을 뿐이다.

하룻밤 동안 두변은 꿈의 세계에서 훈련을 마쳤다.

두변은 침상에서 일어나 깨끗이 씻은 후 아침밥을 먹으러 가는데, 영종오가 몇 상자나 되는 짐을 싸 놓은 걸 발견했다.

“대종사, 뭐 하시는 겁니까?”

두변이 묻자, 영종오가 답했다.

“해가 떨어지면 허둥대지 않고 바로 떠나야 하니 미리 준비를 해놓는 거지.”

역시나 대종사는 두변에게 일말의 희망도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두변은 원망하지 않고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

아침을 먹은 후 두변이 영종오에게 말했다.

“대종사, 비록 오늘이 마지막 무도 수업이 되더라도 오늘까지는 저를 가르쳐 주셔야 합니다. ”

영종오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잠시 후 두변과 영종오는 연화사에서 멀리 떨어진 공터로 자리를 옮겼다.

두변은 과녁을 잘 배치하고 충분한 화살도 준비했다.

“대종사, 제가 어젯밤에 잠자리에서 궁술에 대해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그러니 한번 지켜봐 주셨으면 합니다.”

“좋다.”

영종오가 말했다.

과녁과 90미터 떨어진 지점에 선 두변은 활을 들고 화살을 활시위에 올려놓으며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두변은 이미 ‘정심결’, ‘근맥이완결’, ‘정신결’ 등을 체내에 완벽히 습득하였기에 의식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없었다.

두변은 과녁에 조준한 후 활시위를 당겼다.

슉! 슉! 슉!

두변은 어제보다 두 배 빠른 속도로 연속으로 열 발을 쐈다. 채 1분도 걸리지 않은 시간이었다.

푹! 푹! 푹!

화살이 과녁에 박히는 소리가 계속 들려오더니 결국 열 발 모두 과녁을 맞혔다.

영종오의 두 눈이 번쩍 뜨이더니,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하룻밤 만에 이렇게 성장할 수 있는 거지?’

두변은 과녁 앞으로 다가섰다.

꿈의 세계에서 수련한 결과를 검증할 시간이었다.

결과가 곧 나왔다.

열 발 모두 과녁을 맞혔고, 그중 네 발은 과녁의 큰 원을 맞혔다.

하지만 과녁의 정중앙에 맞은 화살은 하나도 없어서, 점수는 20점이었다.

영종오가 과녁판을 바라보며 놀라워했다.

“두변, 네가 정말 해낼 줄 몰랐구나. 하룻밤 만에 깨달음을 얻어 이토록 많은 성장을 이뤄내다니 정말 대단하구나.”

어제 계속 0점만 받으며 과녁에 세 발을 맞춘 게 가장 좋은 성적이던 두변이 하룻밤 만에 두세 배를 훨씬 웃도는 엄청난 성장을 이뤄낸 것이다.

하지만 영종오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이걸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확실히 목표인 90점과는 상당한 차이가 나는 점수였다.

두변은 어제 마지막까지 훈련하면서 꿈의 세계에서의 훈련이 매우 효율적이긴 하지만 일부 기예는 하루아침에 완성할 수 없다는 걸 절감했다.

외우거나 모사하는 종류는 꿈의 세계에서 단 하루 만에 완벽히 끝낼 수 있겠지만 금 연주, 바둑, 궁술처럼 장기간 연습이 필요한 기예들은 많은 실전 경험이 필요했다.

예전에 3대 학부 대회에서 두변이 금 연주 경연에서 승리를 한 것은, <광릉산>이라는 곡 덕분이었지 그의 연주 실력 덕분이 아니었다. 바둑도 마찬가지로 대국의 기보를 외운 후 그대로 두었기에 상대방을 이길 수 있었다.

또한 두변은 어제 꿈의 세계에서 훈련할 때 처음 5~6일 동안은 빠르게 실력이 향상되었지만 갈수록 그 폭이 줄어들어 마지막 며칠 동안은 실력 향상이 거의 없었음을 깨달았다.

그러니 두변에게 앞으로 사흘, 닷새, 열흘의 시간이 더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90점을 넘는 건 불가능했다.

90점이라는 점수를 달성하려면 올림픽에서 우승할 정도의 실력이 필요했으니 애초에 무리한 목표였다.

두변이 곰곰이 생각해보니, 꿈의 세계에서 매일 훈련한다고 하더라도 최소 두 달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래서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두변은 이번 내기에서 질 게 분명했다.

꿈의 세계는 만능인 것처럼 보였지만 궁술 훈련 같은 영역에서는 한계가 명확히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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