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88화 (88/648)

제88장: 최후의 발악

“운명에 맡기자꾸나.”

영종오가 가볍게 두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어떤 일은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목숨을 걸고 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지. 이게 대장부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기도 하고 말이다.

진남공 송결은 제국이 이미 기울어졌다는 걸 알면서도 안남국으로 군을 파견해 제국의 옛 영광을 되찾으려고 하고 있단다.

어떤 목표를 위해 모든 걸 쏟아부을 수 있는 건 행복한 일이란다. 설령 목표를 이루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지.”

비장한 분위기 속에서 대종사 영종오는 계속 두변을 위로했다.

“해가 떨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 연습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계림부로 돌아가거라. 너와 나의 사제 인연은 여기까지인 것 같구나. 나도 계속 너를 가르치고 싶다만 한번 한 약속은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

계림부로 돌아간 후에도 절대 낙담하지 말아라. 졸업 시험에서 1등을 못 하게 돼도 일시적인 좌절일 뿐이다. 너는 천재이니 머지않아 곧 빛을 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두변은 자신의 패배가 기정사실로 되었다지만, 결과가 정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런 위로의 말을 들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해가 떨어질 때까지 고작 여섯 시진의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다시 꿈의 세계로 들어가 훈련을 계속한다고 해도 큰 폭의 실력향상은 기대하긴 무리였다.

정말 어찌 손써볼 방법이 남아 있지 않았다.

두변은 숨을 깊게 들이쉬며 마음의 평온을 되찾은 후 말했다.

“대종사, 해가 지기까지 여섯 시진도 남지 않았습니다. 몇 년의 기간을 순식간에 뛰어넘어 궁술의 실력향상을 기대해볼 만한 방법이 없겠습니까? 고정 과녁 궁술에서 90점을 받을 방법 말입니다.”

영종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방법은 없다.”

두변의 이런 질문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두변이 말했다.

“궁술 그 자체보다 더 어려운 방법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제 기억이 맞는다면 분명 방법이 있을 겁니다. 예를 들면 정신 집중 궁술 같은 기술 말입니다. 정신을 집중시켜 활을 쏘면 백발백중에 이를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영종오가 두 눈을 부릅뜨며 되물었다.

“정신 집중 궁술? 장난치는 거냐? 정신 집중 궁술은 정신력 각성을 전제로 한다. 이건 궁술에서 90점을 받는 것보다 백배는 더 어려운 일이란 말이다!

정신력 각성은 완전 고급 무자(武者)들의 상징으로, 아무나 다다를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정신력에 타고난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정신력 각성은 5년에서 6년 이상의 시간을 수련해야 한다.”

두변의 이런 제안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는 과정에서 문제에 봉착하자 원자탄을 만드는 게 어떻냐고 물어보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원자탄은 다이너마이트를 만드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난이도였다.

하지만 궁술처럼 장기간 고된 훈련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실력향상을 보이는 것들은 꿈의 세계에 의존하는 두변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또한 정신력 각성은 뇌의 영역이기 때문에 꿈의 세계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두변이 물었다.

“정신력 각성을 하게 되면 정신 집중 궁술을 할 수 있는 겁니까?”

“그렇다.”

두변이 다시 물었다.

“정신 집중 궁술을 능숙히 다룰 수 있게 된다면 백발백중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 맞습니까?”

영종오가 말했다.

“그렇다. 정신력 각성을 하게 돼 정신 집중 궁술을 능숙히 다룬다면 신의 경지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니, 고정 과녁 궁술에서 90점을 받는 건 일도 아니게 되지.”

“대종사, 한번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정신력을 한 곳에 모아서 하는 정신 집중 궁술은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 한번 느껴보고 싶습니다.”

영종오아 두변을 빤히 쳐다보았다.

“좋다. 나를 따라오거라.”

영종오가 뒷산을 향해 걸어가자 두변도 얼른 그 뒤를 쫓아갔다.

뒷산 골짜기에 다다르니 꽤 큰 폭포가 있는데 높이가 20미터쯤 되어 보였다. 7층 건물 높이에서 떨어지는 폭포는 그 밑의 깊은 못으로 쏟아지며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었다.

귀가 먹을 정도는 아니었으나 폭포 소리가 매우 컸다.

“너는 궁술에 있어 조준이 무엇에 달렸다고 생각하느냐?”

영종오가 물었다.

주변의 폭포 소리가 매우 시끄러웠지만 영종오의 목소리는 여전히 아주 선명하게 두변의 귀에 박혔다.

‘틀림없이 눈으로 보는 건 가장 하수들이 하는 행동일 테지.’ 두변이 대답했다.

“감각입니까?”

영종오가 대답했다.

“이류는 눈에 의지하고 일류는 감에 의존하지만, 초일류는 정신력에 기대는데, 이것이 바로 네가 말한 정신 집중 궁술인 것이다. 정신 집중 궁술을 능숙하게 다룬다면 백발백중의 수준으로 올라서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초일류 신궁은 그 수가 매우 적다고 볼 수 있다.

너는 지금 무도 등급이 매우 낮으니 정신력의 중요성을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고등 무자들에게 정신력은 가장 중요한 재능이며, 무자의 수준을 결정짓는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정신력은 적에게 모든 신경을 집중해 그 빈틈이 무엇인지 바로 파악하게 해주며 적의 공격 방향을 느끼게 해주지. 아무튼 수준 높은 무도를 구사하고 싶다면 정신력은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 사실은 두변도 이미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한번 네 정신력을 측정해보도록 하자꾸나.”

영종오의 말에 두변이 놀랐다. ‘정신력도 측정할 수가 있다고? 어떻게 측정한다는 거지?’

물론 두변은 꿈의 세계 덕분에 자신의 정신력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모든 정신을 집중해 내 미간을 쳐다보도록 해라.

우리들의 미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는데 이것으로 네 정신력이 어떤 수준인지 감지할 수 있다.”

두변은 미간이 대뇌 안에 있는 송과선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지구의 현대 과학은 송과선이 존재한다는 것과, 이것이 사람의 정신력을 담당하는 부분이라는 걸 증명해 냈다.

두변은 모든 정신력을 모아 영종오의 미간을 쳐다봤다.

영종오는 눈을 감고 미동도 하지 않는 상태로 돌입했으며 심지어 호흡도 멈추어 두변의 정신력이 어느 수준인지 파악하고 있었다.

정신력은 보이지도 않고 만져볼 수도 없지만, 영종오는 두변의 정신력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30초가 지나자 영종오가 두 눈을 떴다.

“결과가 좋지는 않구나. 네 정신력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수준이다. 정신력의 최대치를 100으로 본다면 너는 40 정도인 셈이지.”

꿈의 세계가 두변에게 이 수치를 일러준 적이 있었기에 두변은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다. 3대 학부 대회에서 위험한 도박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덕에 정신력이 10 올랐기에 망정이지 이마저도 없었다면 두변의 정신력은 30이었을 것이다.

“네 정신력의 재능은 매우 평범하구나.”

영종오가 탄식하며 말했다.

“네가 정신력 각성으로 궁술 수업을 통과하겠다는 건 불가능한 것 같구나.”

두변은 별다른 말이 없었다.

“고정 과녁 궁술에서 90점을 받으려면 꾸준한 노력이 필요할 테니 아마 몇 년이 걸리겠지. 하지만 네가 정신력 각성을 이뤄내려고 한다면 아마 이번 생에는 틀린 것 같구나.”

사실이 그러했다.

“하지만 정신력 각성을 하지 못한다면 어느 분야에서나 최고가 될 수 없다.

목표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다면 영원히 이류 궁수로 머물게 될 게다. 말과 교감을 할 수 없으면 기마술에서도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없고, 검술 또한 마찬가지 이치로 최고의 반열에 결코 오를 수 없게 되지.

다른 속성들은 후천적인 노력으로 향상할 수 있지만, 정신력은 지능과 마찬가지로 선천적으로 정해져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후천적인 노력으로 바꿀 수 없다.”

영종오가 말을 마치자 두변이 물었다.

“대종사, 제 정신력으로 다섯 시진 안에 정신력 각성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까? 정신 집중 궁술이 불가능한 겁니까?”

영종오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다섯 시진이라고?

두변의 정신력은 매우 평범한 40에 불과했기 때문에 5년, 10년이 걸리더라도 정신력 각성은 불가능했다. 다섯 시진이라는 단어를 들으니 오히려 두변의 정신건강이 의심될 지경이었다.

하지만 영종오는 차마 꾸짖을 수 없었다. 이것이 두변의 마지막 희망이자 마지막 발악일 테니까. 두변은 너무 이기고 싶은 나머지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는 지경인 것뿐이니까.

두변이 평정심을 되찾고 말했다.

“대종사, 제가 하는 말이 터무니없이 들린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번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고등 무자들만 할 수 있다는 정신력 각성과 정신 집중 궁술을 제 것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영종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지더라도 여한이 없도록 선생으로서 네 최후의 발악을 도와주도록 하지.”

영종오 대종사는 비장하면서도 절망적인 심정으로 두변의 정신력 운용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먼저 정신력을 어떻게 운용하는지, 그리고 정신 집중 궁술이란 무엇인지 느끼게 해주겠다.

지금부터 시선을 폭포 속의 물방울 하나에 고정시켜라. 처음부터 끝까지 한순간도 놓쳐선 안 될 것이다.

한순간이라도 대상을 놓친다면 정신을 모으지 못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일단 정신을 모았다면 과녁은 흔들리지 않을 테니 네 궁도는 엄청난 실력향상을 거둘 것이며 사조(射雕)의 반열에 오르게 될 수도 있다. 그럼 궁술 시험을 통과하는 데 아무런 걸림돌도 없을 것이다.”

사조라는 칭호는 몽고에서 유래된 것으로, 가장 강력한 궁수만이 이런 칭호를 얻을 수 있었다. 몽고 대군에서도 만 명의 병력 중에 고작 대여섯이 사조라고 할 수 있고, 대녕 왕조는 그 수가 훨씬 적었다.

“시작! 물방울에 정신을 집중하거라.”

영종오의 명령이 떨어졌다.

두변은 숨을 깊게 들이쉰 후 물방울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물방울이 보이는 순간부터 집중해서 응시했다.

하지만 1초도 버티지 못하고 실패했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속도가 너무 빨랐고, 폭포수가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었다. 그러니 너무 혼란스러워서 정신을 집중했다가 다시 흐트러지기를 반복할 뿐, 물방울을 놓치지 않고 응시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게 두 번, 세 번, 네 번을 반복했지만…….

몇십 번의 시도를 했지만 결국 모두 실패했고, 머리와 눈이 깨질 것처럼 아팠다.

“전부 실패했느냐?”

영종오의 물음에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신력이 뛰어난 편이 아니니 실패하는 게 지극히 정상이다. 하지만 성공하고 싶다면 반드시 정신력 각성을 해내야 한다.

그러니 이것이 고급 무자가 될 수 있는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는 게지.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네가 너의 정신력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정신력을 모을 수도 없는 것이다. 먼저 눈을 감아 보아라. 내 정신력을 너에게 빌려줄 테니 한번 느껴보도록 해봐라.”

두변이 눈을 감았다.

영종오가 손가락으로 두변의 미간 정중앙을 짚는 순간, 두변은 뇌의 송과선이 번쩍, 하면서 변화가 일어났음을 감지했다.

그리고 더할 나위 없이 기묘한 일이 일어났다.

눈을 감고 있음에도 주변의 모든 것을 볼 수 있을 것 같고, 또 모든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바람과 풀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고, 다람쥐의 움직임, 그리고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영종오의 표정, 심지어는 주위의 풀들이 자라는 것을 감지할 정도였다.

“눈을 떠 보거라.”

영종오의 말에 두변이 눈을 떴다.

“다시 한번 폭포의 물방울을 잡아내 보아라.”

영종오가 말했다.

두변이 정신을 집중하자 어떤 특수한 힘이 송과선에 모여들었음이 느껴지고, 그 힘은 눈을 투과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두변은 우수수,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수많은 물방울 중 가장 평범한 물방울 하나를 포착하려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그렇게 기적이 다시 일어났다.

그가 감지하고 있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면서, 주변의 모든 것들이 마치 영화 속 슬로모션처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물방울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들은 두변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빠른 속도로 떨어지던 물방울이 점차 느리게, 느리게 떨어지면서, 두변은 손쉽게 그 물방울을 포착해 낼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네다섯 배는 느려진 기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