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89화 (89/648)

제89장: 더 큰 기적을 만들다.

영종오가 두변의 미간에서 손가락을 뗐다.

뇌의 송과선이 갑자기 어두컴컴해지면서, 그토록 신비롭던 경험도 끝나 버렸다.

“어떠하더냐?”

영종오가 물었다.

“매우 기묘했고 도무지 믿기지 않는 경험이었습니다.

모든 시야를 한 곳에 집중시킬 수 있었고, 시간도 네다섯 배는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습니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은 정신력 각성을 해낸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현상이지. 정신력을 각성하면 정신력을 집중할 수 있고 목표를 포착해 적들이 어떻게 공격할 것인지, 그리고 위기를 감지할 수 있게 된다.”

어떤 말로 정신력 각성의 중요도를 설명할 수 있을까!

오죽하면 정신력 각성이야말로 고급 무자의 상징이며, 더 뛰어난 무자가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라고 표현할까.

정신력 각성은 게임으로 치면 핵인 수준이라고나 할까.

“방금은 내 정신력으로 네 시간을 느리게 바꿔준 것이지, 네가 정신력 각성을 한 건 아니다.”

영종오가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영종오의 말대로라면 두변의 정신적 재능이 천성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일생 동안 정신력 각성은 꿈도 꾸지 말아야 했다.

“안타깝게도 네 정신력은 너무 평범해서 억지로 배우는 건 무의미하다.

하지만 네가 기왕 버티고 싶다면 기꺼이 도와주도록 하마. 하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어떤 희망도 품지 말아라. 이건 사람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몇 년의 시간을 들인다 해도 내가 너의 정신력 각성을 도와줄 수 있다는 말을 못 하겠구나.”

영종오가 비적 한 권을 꺼내며 말을 이었다.

“이것은 내가 쓴 <정신력 각성술>이다. 욕심 부리지 말고 시간이 있을 때 천천히 익혀 보아라. 하루에 한 쪽만 보더라도 충분하니 너무 조급해하지 말아라. 제아무리 천재라도 몇 년에 걸쳐서 공부해야 이 비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럼 나 먼저 가마. 사제 간에 작별 인사는 해야 하니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오거라. 물론 태형 100대를 맞기 싫거든 이곳을 몰래 빠져나가도 좋다. 난 너를 탓하지 않으마.”

말을 마친 영종오는 자리를 떠났고, 두변은 <정신력 각성술>이란 비적을 읽기 시작했다.

이 비적은 총 300쪽에 달하는 분량으로, 두변은 첫 쪽을 보자마자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너무 어렵고 복잡했으며 심오해서 완전 신선이 쓴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기존에 <기초 무도 이론>이나 <기초 연단 이론>도 매우 심오하다고 생각했으나, 지금 펼쳐보고 있는 <정신력 각성술>에 비교하면 초등학교 교과서 수준이었다.

정신력 각성술은 거시적인 것뿐 아니라 미시 세계를 동시에 다루며 우주 성신의 운행원리, 그리고 뇌의 깊은 비밀까지 아우르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비적이라고만 단순화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그야말로 정신, 뇌, 에너지, 우주에 관한 학술 저서로 노벨상을 노려볼 만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게다가 이 비적 역시 대종사 영종오가 직접 쓴 것이었다. 자신만의 새로운 형식을 구축하고 독특한 무도 학설을 제시했으니, 과연 무도 대종사라는 호칭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라 할 만했다.

그는 물론 늘 감성적이고, 툭하면 의기소침해했다가, 때로는 어린아이 같기도 하고, 게다가 선천적인 고자이면서도 지아비가 있는 여인과 끝내 이루지 못할 사랑을 나누기도 했다.

또한 태산과 같은 위엄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아 종사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정상급 무도 천재이자 진정한 대가임에 틀림없었다. 현대 지구에서 문학, 과학, 예술 분야의 대가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한 재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감정적 교류나 성격에 문제점이 조금 있을 뿐이다.

영종오의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정신력 각성술>은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과 ‘일반 상대성 이론’ 같은 이해하기 어렵고 심오한 내용을 다루고 있었고, 덕분에 하루에 한 쪽을 읽기만 해도 대단한 것이고, 3년 안에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다면 빠른 속도로 공부를 마친 셈이었다.

<정신력 각성술>만 제대로 이해한다면 정신력 각성 또한 자연스레 익히게 될 게 분명했다.

현실 세계에서 정독하려면 최소 2년의 세월이 걸릴 것이기에, 두변은 일단 한 장 한 장 빠르게 넘겨 가며 머릿속에 최소한의 장면만 남겨두기로 했다.

두 시간 정도가 지나 <정신력 각성술>을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본 두변은 곧바로 눈을 감고 잠자리에 들기 위해 노력했다.

잠시 후 그는 성공적으로 숙면에 빠져들었다.

꿈의 세계로 진입한 두변은 조금 전에 읽었던 <정신력 각성술>을 다시 머릿속에서 한 장 한 장 복습하기 시작했다.

꿈의 세계에서 열 배가 넘는 뇌 사용량을 이용해 한 쪽을 이해하는 데 한 시간 남짓이면 충분했다.

비적의 내용을 한 쪽씩 충분히 이해하고 깨달으면서, 꿈의 세계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두변의 몸이 사라지고, 정신 에너지로 바뀌었다. 비적의 첫 장에서 서술된 공간이 실제로 두변의 몸이 변하면서 구현된 것이다.

에너지의 미시적인 공간은 상상에만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 구현될 수 없으나, 꿈의 세계에서는 우주 공간이든 에너지 공간이든, 미시 세계, 혹은 대뇌 내부의 에너지 세계 등 이 모든 것이 매우 현실감 있게 구현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두변의 학습 효율도 비약적으로 상승하면서 완전히 몰입해서 절묘하고도 심오한 <정신력 각성술>을 학습할 수 있었다.

두변은 대략 두 시간마다 한 쪽 내용을 철저히 습득했다.

꿈의 세계에서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닷새…… 그리고 열흘이 지났다.

두변은 전혀 지칠 줄 모르고 <정신력 각성술>이란 비적에 완전히 심취해 있었다.

꿈의 세계에서 300여 시간이 지나자, 두변은 비적의 300쪽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 외웠으며 또 완벽히 습득했다.

천재라 할지라도 이 비적을 공부하는 데 몇 년이 걸리겠지만, 꿈의 세계에서 보름 만에(현실 세계에서는 아홉 시간 만에)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

꿈의 세계에서의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고, 두변은 오후가 돼서 눈을 떴다.

잠에서 깨어난 두변은 정신력 각성에 성공하면 정신 집중 궁술도 자연히 익히게 된다는 걸 알기에 서둘러 자신의 학습 효과를 시험해보고 싶었다.

만약 두변의 생각이 맞는다면 고정 과녁 궁술에서 90점을 받는 건 누워서 떡 먹기 수준이 되는 것이다.

이미 해가 지기 시작했고, 햇빛도 어두워져 폭포의 물방울을 잡아낸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일단 목표를 잡아내고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경지에 도달한다면, 그것이 바로 성공을 알리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두변은 숨을 깊게 들이쉰 다음 자신의 몸의 에너지 파동을 최대로 낮추었다.

그러자 주변의 모든 것이 조용해지고 무아의 지경에 이르렀다.

몸과 마음이 평온해지고 무아의 지경에 이르게 되자, 대뇌 속의 송과선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이 비적을 읽기 전까지는 다른 일반 사람들처럼 송과선의 존재를 전혀 감지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존재를 느끼고 있었다.

송과선이 반응하자, 두변은 송과선을 이용해 대뇌 속의 정신력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두변은 이 비적을 읽기 전에는 정신력이 무엇인지는 알아도 정신력의 존재를 느끼지는 못했었지만, 지금은 송과선을 이용해 정신력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두변은 정신력을 붙잡고 모두 송과선에 집중시켰다.

두변의 정신력 수치는 40 정도로 높지 않지만, 그 40을 전부 송과선에 집중시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갑자기 대뇌 속의 송과선이 번쩍이면서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매우 위대하고도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송과선이 번쩍였다는 것은 정신력 각성을 이뤄냈다는 뜻이기도 했다.

두변은 송과선에 모은 정신력을 두 눈을 통해 밖으로 뿜어내며 폭포 속 물방울 하나를 잡아냈다.

그리고 그 기묘한 장면이 다시 한번 연출됐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 두변의 시야에는 오직 물방울만 보였다.

게다가 두변의 시간도 세 배, 네 배, 다섯 배 점차 느려지기 시작했다.

눈앞에 있는 물방울은 영화 속의 장면처럼 느리게 흘러갔고 아주 천천히 떨어져 수면에서 부서지고는 깊은 물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성공이다! 성공이라고!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이 바로 정신력 각성의 성공을 알리는 지표인 만큼, 두변은 자신의 성공을 확신했다.

두변은 무자로서 거쳐야 할 가장 중요한 문턱 중 하나를 넘어선 것이다.

정신력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무자들도 몇 년 혹은 십여 년의 노력을 쏟아부어야 하는 정신력 각성을, 겨우 40 정도의 정신력을 가진 그가 10시간 만에 해낸 것이다.

영종오가 정신력 각성에 성공하기만 하면 정신 집중 궁술은 자연스레 익힐 수 있다고 말했었다. 이 말대로라면 활을 쏘는 것은 각고의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아주 손쉬운 일로 변하게 된다.

그래서 두변은 즉시 사실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두변은 단검으로 나무에 직경이 1촌인 작은 원과 직경이 2촌인 큰 원을 그렸다.

두변은 90미터까지 걸어가서 활시위를 당긴 후 숨을 골랐다.

이윽고 과녁을 조준하고, 화살을 쏘았다.

슉! 슉! 슉!

두변은 정신을 집중해 과녁의 정중앙을 겨냥한 뒤 화살 열 발을 연달아 쏘았다.

화살을 전부 쏘는 데는 30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상쾌하구나! 너무나 통쾌하구나!

두변은 잠시 눈을 감고 그 기분을 만끽했다.

잠시 후 두변은 눈을 뜨고 자신의 점수를 확인하러 갔다. 과연 정신력 각성이 얼마나 신통한가 볼까?

결과는!

결과는 열 발 중 여덟 발이 과녁의 정중앙에 맞았고, 두 발이 점수권에 들어간 90점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두변은 고정 과녁 궁술을 반나절 만에 끝낸 것이다.

이거 장난 아닌데!

어제저녁 꿈의 세계에서 몇만 번의 화살을 쏘았어도, 최고점수는 20점에 불과했다. 하지만 정신력 각성 후에 점수가 90점까지 단번에 상승했으니, 이는 4~5배 수준이 아니라 100배 그 이상의 실력향상이라 할 만했다.

정신력 각성의 힘이 너무나도 강력한 탓에 궁술 입문자가 순식간에 고수로 변모하게 되었다.

물론 정신력 각성술은 궁술보다 몇십 배는 더 어려운 것으로, 영종오 같은 대종사의 비적이 없었다면 제아무리 타고난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은 한평생을 노력하고도 정신력 각성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꿈의 세계라는 특별한 능력이 없었다면, 특히 그중에서도 뇌의 사용량이 열 배나 향상되는 능력이 없었다면 미시 세계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환경으로 바꾸지 못했을 테고, 그렇다면 두변도 영종오가 건네준 <정신력 각성술>을 배우고 익히지 못했을 것이다.

90점은 두변이 옥진 군주와의 내기에서 이기기에 충분한 점수였다. 그녀가 자신의 오만함에 얼굴이 붉어지도록 만들 수 있는 점수였다.

하지만 두변은 여기에 만족하지 못했다. 더 높은 점수를 원했다.

두변은 정신술을 이용해 다시 한번 꿈의 세계로 진입했다.

꿈의 세계에서는 얼마나 연습하든 전혀 피로를 느끼지 않으며, 풍력과 바람의 저항, 중력 등의 요소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니, 정확성을 높이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정신력을 집중한 상태에서 정확한 계산까지 더해질 테니 더 좋은 성적을 기대해 볼 만했다.

역시 예상대로 꿈의 세계에서 화살을 한 발 쏠 때마다 활성화된 뇌는 풍력과 중력 등의 변수들을 모두 계산한 다음 어떻게 방향을 조정해야 할지 계산해냈다.

두변은 이런 식으로 연습을 계속 이어 나갔다.

몇십 번, 몇백 번, 몇천 번…….

삼천 번이 조금 넘게 활을 쏘고 나니, 고정 과녁 궁술 점수가 다시 한번 크게 향상되었다.

원래 여덟 발이 과녁의 정중앙에 맞고 두 발이 점수권에 들어 총 90점을 받았으나, 이제는 아홉 발이 과녁의 정중앙에 맞고 단 한 발만 점수권에 들어와 95점의 점수를 받게 되었으니, 만점 고지가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95점이면 이미 광서 환관 학원의 신기록이었다. 하지만 두변은 만점을 목표로 계속 연습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 다음은 몇 번이고 시도해 보아도 95점을 넘어서서 만점에 도달할 수 없었다. 두변의 정신력이 40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선천적인 정신력이 향상되지 않는 한, 두변의 궁술은 5점 차이로 영원히 만점에 도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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