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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무제-90화 (90/648)

제90장: 위대한 업적

꿈에 세계에 들어와 있던 두변은 잠에서 깨어났다.

“이만 돌아가자.”

어느새 다시 돌아온 영종오가 말했다.

두변이 눈을 떠 보니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영종오가 동정 어린 한숨을 내쉬며 두변에게 다시 한 번 위로의 말을 건넸다.

“선천적인 정신력은 부모님이 주시는 것이니 네가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다. 최선을 다했으면 그것으로 된 것이지. 그러면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지 않으냐.”

“옥진 군주는 어디 있습니까?”

두변이 물었다.

“옥진과 친위대는 이미 짐을 다 꾸려 놓았단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고. 네가 활을 다 쏘고 나면 우리는 그 즉시 이곳을 떠날 것이다.”

대종사가 몇 번이나 망설이더니 결국 말을 이었다.

“네게 은자 오만 냥이 없다는 걸 안다. 태형 100대를 맞게 되면 죽을 수도 있다. 내가 눈감아 줄 테니 지금 도망치거라.”

‘하지만 속으로는 저한테 실망하실 거잖아요.’

두변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지만, 곧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대종사,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죽음이 두렵진 않습니다. 어서 가시죠. 해가 다 떨어지겠습니다.”

영종오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네 생각이 그러하다면 가자꾸나. 네 상처에 바를 약은 준비해 두었으니 태형을 맞고 나면 급히 떠나지 말고 며칠간 잘 요양한 다음에 움직이도록 해라.”

두변이 연화사에 도착했을 때 옥진 군주는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연무장에는 옥진 군주 친위대 수십 명과 내기를 구경하러 나온 승려들 수십 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진평과 이삼, 이사도 무리에 섞여 있었다.

그리고 진평의 등 뒤에 숨은 수줍어하는 작은 얼굴 하나가 있었다. 진쌍쌍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두변을 바라보다가, 두변이 고개를 돌리자 그녀가 토끼처럼 황급히 두변의 시선을 피했다.

“두변이 한 달 동안 내기란 내기에서 다 이겨온 게 사실이지만 오늘이 마지막인 것 같군.”

“그러게 말이야. 저번에 두변에게 내 한평생을 모아온 은자 두 냥을 잃은 적이 있는데 오늘 되찾아올 수 있겠군.”

“내가 확신하는데, 하루 만에 고정 과녁 궁술에서 90점을 받는 건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만큼이나 말도 안 되는 일이야. 내가 진다면 내가 그냥 환속하겠네.”

“두변을 따라다니는 그 몇몇 시위도 운이 지지리 없지. 저번에 나한테 그토록 많은 은자를 따갔었는데, 오늘 다시 토해내야 하지 않은가?”

“그러게나 말일세. 두변의 패배는 확정된 거나 마찬가지니, 그 시위들만 돈을 잃게 생겼어.”

두변은 승려들이 뒤에서 수군거리는 말을 듣고서야 이삼과 이사가 연화사에서 내기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삼과 이사는 두변과 대종사가 내기할 때마다 도박판을 벌여 연화사 승려들 수백 명의 공양비를 전부 챙겨왔다.

두변이 그 두 놈을 쏘아보았다.

그 둘은 무안한 듯 웃음을 지으며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했다.

사실 이 둘은 은자로 자신들의 충심을 증명해 보인 셈이기도 했다.

“이미 꽁무니 빼고 도망친 줄 알았는데?

곧 해가 질 것 같은데 일각이 지난 후에도 도착하지 않으면 출발하려고 했다.”

옥진 군주의 말에 두변이 대답했다.

“저는 도망치는 것보다 패배가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은자는 준비됐고?”

“저한테 은자 오만 냥이 있어 보이십니까?”

옥진 군주는 거의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그녀의 시간 1분 1초가 얼마나 귀중한가!

은자 오만 냥이 아니라면 그녀가 오늘 하루를 더 기다렸을까!

오늘 하루를 이렇게 헛되이 보낸 것일까!

그저 부친의 십만 대군을 유지하는 데 얼마나 많은 은자가 필요한지 알고 있기에 하루를 기다린 것이지, 두변이 하루 만에 고수로 성장하는 걸 기대한 게 아니었다.

하루만에 고정 과녁 궁술에서 90점을 받는 고수가 된다?

그건 천재가 할 말이 아니라, 정신 나간 사람의 입에서 나올 법한 말이 아닌가!

그녀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그렇게 여길 게 분명하지 않은가!

옥진 군주가 말했다.

“태형을 준비하거라.

이자가 열 발을 다 쏘고 나면 조금의 동정심도 갖지 말고 즉시 100대를 내려치도록 해라.”

“네, 알겠습니다!”

옥진 군주의 친위대도 두변이 너무나 괘씸했다. 군주가 계림에서 이자를 도와주기도 했고, 심지어 구해주기도 했는데 이렇게 나오시겠다?

친위대 둘이 즉시 형틀을 가져와 두변이 활을 쏘는 즉시 태형을 때릴 준비를 마쳤다.

형틀 위의 가죽끈과 밧줄이 온통 피로 얼룩져, 보기만 해도 섬뜩할 지경이었다.

남자보다 키도 크고 더 우람한 체격을 지닌 여자가 손에 든 채찍으로 땅을 내려치고 있었다.

촤악! 촤악! 촤악!

뜻밖에도 단단한 석판 위에 잇따라 불똥이 튀면서 줄줄이 채찍 자국이 남았다. 만약 사람이 저 채찍으로 100대를 맞는다면 정말로 목숨을 부지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옆에서 구경하던 승려들은 비록 두변에게 공양비를 쏠쏠히 잃긴 했지만, 두변을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네가 나를 가지고 놀았으니 태형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해주지. 나중에 이문회가 나를 찾아온다 해도 이번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옥진 군주가 차갑게 말했다.

흥분해서인지 그녀의 가슴이 끊임없이 흔들렸고, 갑옷마저 곧 터질 것만 같았다.

“당연히 그러셔야지요.

하지만 제가 이기면 대종사께서는 이곳에 남아 저를 계속 가르쳐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군주 전하는 무례한 선입견으로 저를 판단했으니 모든 사람 앞에서 저와 대종사께 사과하셔야 합니다. 물론 창천검도 제 것이 되겠지요. 맞을까요?”

옥진 군주는 두변의 태도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자가 정신이 나갔나? 아직도 자신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

낯짝도 두껍군. 아니면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미쳐버린 건가?’

옥진 군주는 어제 두변의 실력을 똑똑히 봤다.

두변의 궁술 재능은 지극히 평범한 나머지 최고 대종사의 지도를 받았음에도 0점으로 훈련을 끝마쳤는데 단 하루가 지난 오늘 90점을 받겠다고?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고, 북방의 건로와 북달이 갑자기 대녕 제국에 항복하는 일이 일어난다 해도 하루 만에 90점을 넘기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지!

하지만 옥진 군주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다. 네가 지면 대종사는 너를 버리고 나를 따라 군에 합류할 것이다. 그리고 너는 태형 100대를 맞겠지. 만약 네가 이기면 모든 사람 앞에서 너와 대종사께 사과하며 내 창천검을 주마.”

“좋습니다. 그럼 시작하시죠.”

두변의 말에 옥진 군주도 말했다.

“곧 해가 지겠군. 나도 시간이 없으니 빨리 진행하지.”

태양은 이미 반 이상이 저문 상태로, 붉은 노을이 연화사의 연무장을 아름답게 비추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와는 다르게 사람들의 눈은 비장함으로 가득했다.

새로운 과녁을 걸어놓았고 두변은 90미터 거리에 자리했다.

주변에 있는 수백 명의 구경꾼은 조용히 두변만을 응시하고 있었고, 진평, 이삼, 이사는 눈을 감은 채 두변을 위해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었다.

모두가 이번 임무는 실현 불가능하다고 여길지라도, 몇몇 사람은 두변에게 무모한 기대를 걸고 있었다.

옥진 군주만이 말에 올라타 아주 냉랭한 표정으로 두변이 아닌 과녁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궁술이 끝나면 두변이 태형을 맞는 것도 지켜보지 않고 그대로 떠날 생각이었다.

영종오 대종사는 천재의 추락을 보고 싶지도, 차마 볼 수도 없어서 눈을 감은 채 정신을 가다듬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이 천재라고 생각한 두변이 사실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확인하기 싫었던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두변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송과선으로 정신을 깨워 집중한 다음 90미터 거리에 있는 과녁의 정중앙을 응시했고 목표를 정확히 고정했다.

시간도 다섯 배는 느리게 흐르고, 풍속과 중력 등 궁술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계산해서 발사 각도를 조정한 후 활시위를 당겨 활을 쏘았다.

슉! 슉! 슉!

두변은 30초 만에 화살 열 발을 전부 쏘았다. 동작은 부드럽고 또 거침없었으며 조준을 하는 것 같지도 않고 도중에 멈칫거리는 것도 없었다.

푹! 푹! 푹!

화살이 과녁에 박히는 소리가 깔끔하게 들리고, 잠시 후 과녁을 보니 열 발이 모두 과녁에 박혀 있었다.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두변은 자신의 점수를 알기에 굳이 과녁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활쏘기를 마무리한 두변은 담담하게 활을 내려놓고는 처음 모습 그대로 꼿꼿이 서 있었다.

활쏘기 결과는 모두가 경악할 만한, 95점이었다.

화살 아홉 개가 정중앙을 관통했고, 아쉽게도 단 한 발만 정중앙을 조금 빗나가 만점과 한 끗 차이인 위치에 박혀 있었다.

두변은 원래 내기인 90점보다 훨씬 뛰어난 결과를 보여준 것이다!

옥진 군주는 이번 내기에 아무런 긴장감도 느끼지 못했고, 그저 두변이 궁술을 끝내면 곧장 출발할 수 있도록 계속 고삐를 쥐고 있었다.

하지만 두변이 자신감과 확신에 찬 상태로 활시위를 당기자 옥진 군주는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챘다.

두변이 30초도 안 되는 시간에 화살 열 발을 쏘는 동안, 옥진 군주의 커다란 눈이 더 동그래졌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동자는 미동도 없을뿐더러 단 한 번도 깜빡이지 않았다.

옥진 군주는 정신법에 걸린 듯, 아름다운 조각품처럼 그대로 굳어져 있었다.

점수는 95점이었다. 단 한 발만 과녁의 정중앙에 아쉽게 빗나갔을 뿐 사실상 만점이랑 한 끗 차이였다.

‘이게 가능해?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거지?’

궁술 천재인 자신, 송옥진도 반년 넘는 기간 동안 노력한 끝에야 비로소 입문자에서 고정 과녁 궁술 90점의 실력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는데, 두변이 이를 단 하루 만에 해내며 천재를 뛰어넘어 모두를 전율케 하는 재능을 보여준 것이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옥진 군주는 그제야 숨을 내쉬며 두변을 똑바로 응시했다.

물론 이렇게 넋을 잃은 것은 비단 옥진 군주만은 아니었다.

옥진의 친위대와 승려 등 자리에 있던 모두가 놀랐고, 두변에게 태형을 가하려던 여장부는 손에 쥐고 있던 채찍마저 떨어트렸다.

승려들은 자신들이 마지막 공양비마저 다 잃게 되었다는 사실도 잊어버린 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승려들도 무도를 연마해 본 적이 있었기에 궁술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실력향상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 두변이 하루 만에 입문자에서 고수로 변모했으니, 허무맹랑한 신화 속 이야기가 현실이 되어 나타난 상황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승려 한 명이 입을 열었다.

“나는 환속하렵니다. 내 심장에 무리가 가서 더는 연화사에 있지 못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제 잘난 맛에 살았는데 인제 보니 저는 돼지만도 못한 놈이었습니다.”

“저도 다시 속세로 돌아가겠습니다. 이런 일이 있다니요. 그리고 저는 가진 은자도 전부 잃었습니다.”

마음이 여린 영종오 대종사는 두변이 태형을 맞겠다는 생각에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분명 열 발 소리를 들었는데, 연무장이 쥐 죽은 듯 조용했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뭔가를 감지한 영종오가 급하게 두 눈을 떴다.

“헉.”

대종사는 목이 턱 막혔다.

그는 자신이 환각을 본 것은 아닌지 눈을 비비며 다시 한번 결과를 확인해 봤다.

결과는 변함없이 95점이었고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의 무력함을 느꼈다.

영종오가 큰 소리로 탄식했다.

“천재는 말하는 대로 모든 걸 다 이룰 수 있단 말인가? 왜 이리도 불공평한 것이냐!”

두변이 옥진 군주의 앞으로 다가가 허리를 숙였다.

“군주, 다행히 고정 과녁 궁술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옥진 군주는 계속 두변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말을 탄 옥진 군주를 아래에서 올려다보던 두변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 외에도 사람을 숨 막히게 하는 가슴에 시선이 쏠렸다.

두변은 입맛을 다시다 말고 다시 진지하게 말을 이어갔다.

“이의가 없으시다면 군주께서는 약속을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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