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92화 (92/648)

제92장: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이삼은 어제저녁 천리마에 관한 일을 알아보려 산에서 내려갔다.

한참을 푹 자고 일어난 두변은 영종오에게 기마술에 관한 이론 지식을 배우기 시작했다.

“기마술과 궁술은 비슷한 점이 있다. 보통 기수는 부지런히 배우고 열심히 연습하며, 자신들의 군마와 오랜 시간을 같이하며 교감을 쌓아갈 것이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정신적 재능이 높은 사람들은 정신력만으로 군마와 교감을 이뤄낼 수 있는데 이런 사람들만이 진정으로 말과 하나가 되어 기마술의 최고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전에도 했던 말이지만, 정신력 각성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심히 연습하고 자신들의 군마와 동고동락하며 교감을 쌓는다.

하지만 정신력이 높은 사람들은 ‘수어록(獸語錄)’을 배우기만 하면 군마의 정신 파동을 파악해서 말을 내 몸처럼 통제할 수 있게 된다.”

한마디로 정신력 각성을 한 사람은 모든 일이 너무나 순조로워진다는 말이로구나!

영종오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정신력 각성을 했다 하더라도 군마의 정신 파동을 완전히 파악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이건 군마의 정신 언어를 배우는 것과 같은 이치라서 몇 개월 혹은 몇 년의 시간이 걸리기도 하지. 그러니 너와 나처럼 정신력이 높다고 하더라도 얼마나 걸릴 줄 모른다는 얘기다.

네 천리마가 도착하지 않아서 좀 곤란하구나. 모든 말은 각자의 특성과 정신세계에 차이점이 있어서 군마와의 정신교감은 구체적인 대상이 있어야 한다. 게다가 당엄은 자신의 천리마와 몇 년이나 같이 생활했기 때문에 충분한 정신적 교감을 쌓았을 것이다. 그런데 네 천리마는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고 기마술도 처음부터 배워야 하니 출발선에서 많이 뒤처진 상태지.

그러니까 기마술에서 당엄을 꺾는다는 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명심해라.

네 천리마가 도착하지 않았다고 시간 낭비를 할 순 없으니 먼저 <수어록 기마편>을 공부하도록 하자.”

영종오가 두꺼운 비적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이 비적은 군마의 정신세계를 다룬 책으로, 군마의 정신 흐름과 정신 언어에 관한 것으로, 공부를 마치게 되면 군마와 정신교감을 이뤄내 군마를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영종오가 <수어록 기마편> 강의를 시작하려 하는데 노복이 손에 전서구와 두루마리 서신을 든 채 급하게 뛰어오고 있었다.

“주인, 남방에서 온 긴급한 밀서입니다.”

밀서를 읽은 영종오의 안색이 변했다.

두변이 물었다.

“대종사, 무슨 일입니까?”

영종오가 대답했다.

“진남공 송결이 습격당했다는구나. 암살자는 섬라국(暹羅)의 무도 종사 규일(葵一)이다. 규일은 지금 안남의 반왕을 위해 충성을 다하고 있는 것 같구나.”

규일은 동영 제국에서 태어났지만 커서는 섬라국에 정착하면서 자신의 세력을 세운 인물이었다.

“진남공은 무사한 겁니까? 생명에 지장 있는 건 아니겠지요?”

두변이 놀라서 물었다.

비록 예전에 진남공이 그의 뺨을 내리치며 경고한 적이 있었지만, 두변은 여전히 진남공에게 관심을 두고 있었다. 진남공이 진정한 영웅인지는 차치하고라도 자신의 의부인 이문회와 뜻을 같이하는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남공이 제국의 남방 전체를 잘 통제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만약 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남방 전체가 대혼란에 빠질 게 분명했다. 남방이 대혼란에 빠지면 진압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토사(土司) 세력들이 다시 득세할 것인데, 그렇게 되면 두변도 부귀영화를 누릴 기회를 잃게 된다.

“진남공의 무공도 워낙 높으니 규일과 일대일로 대결했다면 쉽게 밀리지 않았을 것이다. 상처를 입었을 순 있어도 목숨을 잃진 않았겠지.

하지만 진남공과 함께 다니는 무도 고수들이 모조리 죽었다고 하니 손실이 막심한 것 같구나.”

“진남공께서 무탈하시면 그걸로 됐습니다.”

영종오가 분노하며 말했다.

“규일이라는 자는 섬라국의 무도 종사이지만 안남국 반왕인 완씨의 명령을 따르고 있다. 대녕 제국의 공작을 암살해 대녕 제국이 군대를 파견해 안남국을 도와 반란을 진압하는 걸 방해하려는 속셈인 거지. 상황이 이러한데 보고만 있다면 우리 대녕 제국에 이렇다 할 사람이 없다는 걸 인정하게 되는 꼴인데 그러면 무도 종사인 내 체면이 어떻게 되겠느냐?”

“그럼, 다른 방법이 있으신 겁니까?”

영종오가 대답했다.

“규일은 보기 드문 종사급 자객이다. 그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진남공을 암살하려고 하니 송결이 어찌 군대를 이끌고 출전할 수 있겠느냐? 이 전쟁은 대녕의 국운이 걸린 전투이므로 반드시 이겨야 하니, 규일을 무조건 제거해야 한다.”

“진남공이 대종사에게 규일을 제거해달라고 부탁하신 겁니까?”

“그건 아니다. 진남공처럼 자존심이 센 사람은 그렇게 쉽게 도움을 요청할 성격이 아니다. 그저 사람을 보내 습격 사실을 내게 알리라고 한 것 같구나. 하지만 규일이 송결을 습격한 건 나에 대한 도발이기도 하니 관망하고 있을 수가 없구나.”

두변은 자신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대종사는 대녕 왕조는 이제 끝이니 자신은 모든 걸 내려놓고 유유자적한 삶을 즐기며 다시는 대녕 왕조의 일에 간섭하지 않겠노라고 항상 말버릇처럼 되뇌었다.

그런데 막상 일이 터지고 나니 누구보다 먼저 검을 들고 문을 박차고 나가려 하지 않은가.

도대체 대종사의 피는 뜨거운 건가, 아니면 식은 건가?

“내가 사흘 내에 규일을 죽이고 돌아오마.

네 궁술 수업이 원래 열흘 과정이었는데 하루 만에 끝냈으니 아흐레를 아낀 것이 아니더냐? 아직 천리마도 도착하지 않았으니 사흘 동안 네게 건네준 <수어록> 비적을 잘 공부하고 있으면 되겠구나. 내가 돌아오면 다시 기마술을 익히기 시작해 열흘 내에 끝내도록 하자. 어떻겠느냐?”

이토록 분노에 가득 찬 영종오에게 두변이 뭐라 말할 수 있을까.

게다가 두변도 진남공이 무사하기를 바랐다. 송결의 무공이 규일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고는 하나 그가 군의 총사령관이니만큼 매일같이 종사급 자객을 방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시간이 오래 지날수록 방비가 느슨해질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었다.

두변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진남공의 안전은 곧 사직의 안위와도 직결되니,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제 앞길과도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두변이 이어서 물었다.

“대종사, 규일이라는 자가 그렇게 대단합니까?”

영종오가 대답했다.

“십여 명의 2품 무도 고수와 1품 고수 여럿이 그에게 모두 당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럼 이번에 대종사가 가는 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무공만 놓고 보자면 내가 한 수 위다.

다만 그는 자객이라서 빈틈을 노려 암살하는 능력은 누구보다 뛰어나다. 만일 내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알아서 계림으로 돌아가거라.”

두변은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었으나, 영종오는 이미 <수어록 기마편>을 두변에게 건네준 후 검을 차고 말을 몰아 밖으로 향했다.

노복도 연화사에 내버려 둔 채 홀로였다.

두변으로서는 드디어 영종오의 대종사다운 기질을 제대로 본 셈이었다.

“대종사, 규일을 죽이고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겠습니다.”

두변은 점점 멀어지는 영종오의 뒷모습에 허리를 숙였다.

영종오는 떠났고, 두변은 홀로 기마술에 관한 이론 지식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수어록 기마편>을 펼쳐 보니 안에는 저자가 영종오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두변은 대종사의 능력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역근유술>, <정신력 각성술>을 쓴 것도 모자라 <수어록>도 편찬했으니, 영종오가 여러 방면에서 뛰어난 천재임이 틀림없었다.

의부인 이문회가 어떻게든 두변을 대종사의 문하생으로 집어넣은 것도 모두 두변의 빠른 실력향상을 위해서였다.

만약 두변이 다른 무도 고수의 밑에서 배우기 시작했다면 꿈의 세계가 있다 하더라도 7품 무사가 되기 위해선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겠지만, 영종오에게서 배운 덕에 시간을 몇 배나 단축할 수 있었다.

<수어록 기마편>의 첫 문장에는 ‘자신의 군마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싶다면 말의 정신 파동에 맞춰 교감을 이뤄낸 후 말의 정신세계로 들어가야 한다.’고 씌어 있었다.

첫 문장부터 이렇게 끝내주다니!

두변은 툴툴거리면서도 대종사에 감탄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나 그 내용이 너무 심오해서 이해하기 어려웠다.

두변은 이 책이 대략 ‘동물의 왕국’ 같은 내용으로, 군마의 습성과 외향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를 것으로 생각했으나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안에 쓰인 내용은 전부 정신파에 관한 내용으로, 오묘하고도 심오하며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에너지의 세계를 다루고 있었다.

이 책은 군마의 정신세계와 정신파를 설명하기 위해 군마의 대뇌와 신경 등을 전면적으로 해부했고, 아주 상세한 그림을 통해 설명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그림이 어찌나 생동감이 있던지, 역시나 대종사가 신통하다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대종사가 상세한 그림을 통해 최대한 쉽게 관련 내용을 풀어냈음에도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두변은 한 쪽을 읽는 데도 몇 시간을 봐야 했고, 읽은 만큼 그 내용을 이해하는 데 똑같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이 책은 무려 팔백여 쪽이나 되고 정신 파장에 관한 항목이 몇천 개나 되었다.

영종오가 몇 년은 족히 공부해야 이 책을 완전히 습득할 수 있다고 말한 만큼 난도는 상당히 높았다.

이런 엄청난 비적을 써낸 영종오는 도대체 어떤 인물이란 말인가?

몇 시간이 지나고 나서 대종사의 노복이 밥을 주러 들어왔다가 두변을 보고는 놀라 물었다.

“두변 소야, 무릎 꿇고 뭐 하시는 겁니까?”

“아.” 두변은 자기도 모르던 사이에 무릎을 꿇고 책을 보고 있다는 사실에 당황했다.

‘뛰어난 작품을 보게 되면 저절로 무릎을 꿇게 된다.’는 말이 아무래도 거짓이 아닌 모양이었다.

밥을 먹은 후 두변은 계속해서 <수어록 기마편>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비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두변은 열심히 공부할수록 자신의 천리마에 대한 기대감 또한 커져만 갔다.

현대 지구의 젊은이들이 자신의 첫차를 뽑을 때 갖는 기대감과 비슷하려나.

이때 갑자기 밖에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그는 바로 어제 산을 내려가 천리마의 소식을 알아온 이삼이었다.

“소주인, 원래 천리마가 내일 항구에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어제 광서 쪽으로 들어오던 길에 약탈당했습니다.”

“뭐라고?”

두변은 순간 이성을 잃었다.

누가 감히 내 천리마에 손을 댄 것이야?

감히 동창의 재산을 약탈해 가다니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어느 간땡이가 부은 놈이 감히 내 천리마를 훔쳐 간 것이냐?”

두변이 묻자, 이삼이 대답했다.

“지금 조사 중이니 누구의 소행인지 곧 알 수 있을 겁니다.”

이어서 이삼은 천리마를 사들이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놓았다.

“주인께서는 공개적으로 말을 사들일 수 없는 상황인 데다가 만금 가치가 있는 천리마를 다들 탐을 낼 것이기에, 동창 밀정들이 본인들도 상인으로 변장하고 천리마도 보통 말로 보이게 만들어서 상선을 타고 매우 조심스럽게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시박사는 저희 관할구역도 아니고, 당엄의 뒤를 봐주는 세력들의 구역이기 때문에 상선에 숨겨서 내려오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갔는데, 광서 해상으로 진입했을 때 갑자기 상선이 약탈당했고 천리마도 같이 빼앗겼습니다.”

당연히 음모론이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 당엄의 배후에 있는 세력들이 이문회가 사람을 몽고로 보내 말을 사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고, 그래서 바다에서 천리마를 약탈해 간 것이 아닐까?

시박사가 저들 구역인데, 광동과 광서의 경계 지역에서 일이 발생했다라.

이미 시간이 빠듯했다. 다시 실패할 수도 있는 임무에 한 달이란 시간을 투자하며 재차 몽고로 사람을 보내 천리마를 사 올 순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두변은 지금 기마술을 익히고 있는 중이었다.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있다는 걸 간과할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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