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4장: 평아 누이, 그만!
“물건을 들여오기 전에 아래위로 다 매수한 게 아니더냐? 그런데 어찌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야?”
오 부인이 묻자, 중년 사내가 답했다.
“저도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저희가 시박사에 잘 보이기 위해 광서, 광동 수군에 찔러주는 돈이 매년 만 냥 가까이 되지 않습니까. 지금껏 줄곧 밀수를 눈감아주던 저들이 이번에 선박을 압수해 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바로 이때 끝내주는 몸매에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소부인이 뛰어 들어오면서 소리쳤다.
“어머니, 아버지와 염명이 잡혔다면서요? 우리 해선도 압류당한 건 아니겠죠?”
오염명은 두평아의 남편 이름인데, 그녀는 오염명을 부군이라 부르지 않고 이름을 불렀다.
안으로 들어온 두평아는 두변을 보더니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놀라 물었다.
“두변이니? 언제 오주에 온 거야. 정말 나를 보러 온 거니?”
그리고는 그대로 달려들어 곧바로 두변을 끌어안았다. 평아의 힘이 어찌나 세던지 두변은 휘청거리기까지 했다.
‘누이, 시어머니 앞에서 이렇게 껴안아도 되는 거야? 그만 좀 하지?’
“아버지랑 어머니는 잘 계시지? 다들 내가 보고 싶었겠구나. 너는 무슨 일로 오주부까지 온 거야? 집에 있는 은자가 다 떨어진 거니?”
평아의 질문이 폭죽처럼 쉴새 없이 터지는 것이, 자신의 남편과 시아버지가 붙잡힌 사실을 모두 잊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오 부인이 기분이 언짢아서 차갑게 말했다.
“남녀가 유별한데 어찌 그리 행동하는 것이냐? 평아, 네 안중에는 이 집안이 없는 것이냐? 이 시어미와 네 부군은 까맣게 잊은 것이야?”
두평아는 얼른 두변에게서 떨어져서는 멋쩍은 듯 혀를 내밀고는 오 부인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 죄송해요. 동생을 보자 너무 기뻐서 그랬어요.”
오 부인이 계속해서 꾸짖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오씨 가문이 지금 무너질 판이 아니냐. 우리 가문이 망하면 너도 더는 친정집에 은자를 가져다줄 수 없을 테니, 네 친정 사람들도 아사를 면치 못할 거다.
먼저 노야와 소야를 어떻게 구해낼지 생각한 다음에 선박도 가져오도록 빨리 방법을 강구해야겠다. 그 몇십만 냥 은자를 찾지 못하면, 우리 가문도 끝장나는 거다.”
화려한 복장을 한 중년 사내는 오정도의 동생으로, 오부의 이노야인 오정융이었다.
“먼저 허(許) 대인을 찾으러 오주부로 가야 합니다. 그분은 오주부의 순검(巡檢)이자 시박사 손임 공공의 의자이기도 하니까요.
문제는 돈이겠지만 허 대인을 찾으면 형님과 조카를 구해낼 수 있을 겁니다.”
순검의 관직은 높지 않지만, 오히려 오주부의 토호(土豪)였다.
그는 오씨 가문의 뒷배를 봐주는 인물 중 한 명으로 가문에서는 그에게 매년 천 냥이 넘는 은자를 바쳐왔다.
오 부인이 말했다.
“돈은 얼마를 써도 좋으니 반드시 사람을 구해내야 한다.
은표 만 냥을 가지고 가서 이천 냥을 먼저 주고 나중에 몸값으로 팔천 냥을 주거라. 여기까지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뒤탈이 없도록 다시 만 냥을 내어 관련된 사람들에게 쥐여주거라.”
두평아의 시어머니는 결단력이 있는 사람으로 이만 냥 은자를 융통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오 부인과 이노야 오정융은 은자를 가지고 오주부에 있는 순검 허창전에게 도움을 청하러 길을 나서려 했다.
두평아가 말했다.
“어머니, 제 동생이 엄당에 아는 사람이 있으니 동생에게 도움을 부탁해보는 건 어떨까요?”
“저 아이는…….” 오 부인이 멸시의 눈빛을 보냈다.
“집안에 일이 생겨 신경 쓸 겨를이 없으니 은자 백 냥을 쥐여주고 계림으로 돌려보내라.”
그녀는 두변 자체를 무시한 것보다는 두변이 입고 있는 더러운 무명옷과 깔끔하지 못한 몰골, 그리고 굶어 죽은 귀신이 들러붙은 것처럼 허겁지겁 간식을 주워 먹던 모습을 보고 내린 결론이었다.
할 줄 아는 건 허풍 떠는 것밖에 없는 무뢰한이 오주로 온 이유가 돈 때문임을 그녀는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오 부인은 두변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사람을 불러 오주부로 갈 채비를 하라고 명했다.
오 부인이 떠나자 두평아가 두변에게 말했다.
“두변, 이번 일 좀 도와줄 수 있어?”
“그럴게.”
두변이 답했다.
충분히 도와줄 수는 있었다. 물론 천리마를 되찾는 게 급선무지만, 저들에게 사람을 잘못 건드린 걸 후회하게 해주는 것도 잊을 생각이 없었다.
두평아가 말했다.
“그럼 우리도 출발하자.”
두평아와 두변도 마차를 타고 오주부로 향했다.
오주부에서 밤새 달려 겨우 도착한 몽산현에 얼마 머물지도 못하고, 다시 삼백 리나 되는 길을 되돌아가야 하니 두변은 고생을 사서 한 꼴이 되었다.
하지만 자신의 천리마를 가져간 곳은 광서 시박사이고 자신의 추측이 음모론에 그쳤다는 걸 알게 된 소득도 있었다. 시박사가 대해상 오정도를 작정하고 공격할 생각에 선박을 압류한 것이었는데, 두변의 천리마가 뜬금없이 이 과정에서 같이 연루된 것뿐이었다.
이번 사건은 두변이 오주 동창 천호소로 가서 종정 공공에게 부탁해서 시박사에게 천리마를 돌려받으면 해결되는 일이었다.
오주부의 동창 천호 종정은 올해 서른아홉 살로 이문회의 절대적인 심복 중 한 명이라서 두변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줄 게 분명했다.
광서 시박사를 관장하는 환관 손임은 동창 천호인 종정의 눈치를 보는 인물이었다.
게다가 얼마 전 두변이 계림에서 여경사 임진교와 동창 진무사 왕인을 짓밟은 사실은 다른 사람은 모른다고 하더라도 광서 시박사를 관장하는 환관 손임은 누구보다 자세히 알고 있을 게 분명했다.
다시 열 몇 시간을 달린 끝에 해가 거의 다 저물었을 무렵에야 삼백 리나 떨어진 오주부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성문에 막 들어서는데 말을 탄 오부의 이노야 오정융이 다가왔다.
“마침 잘됐다. 집으로 가서 질부를 데리고 갈 참이었다.”
두평아가 놀라 물었다.
“저를 데리고 가요? 왜요?”
오정융이 대답했다.
“자세한 건 묻지 말고 형수께서 찾으시니 일단 나랑 같이 가자.”
두변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이삼을 불러 명령했다.
“동창 천호소로 사람을 보내 종정 공공을 모셔와라.”
“알겠습니다.”
이삼은 대답을 마치고는 곧장 동창 천호소로 유능한 부하를 보냈고 자신은 두변을 따라 행동했다.
오정융은 앞장서서 두평아를 데리고 오 부인이 있는 곳으로 향했고, 두변도 이들을 바짝 쫓았다.
한참을 걷다가 두평아가 물었다.
“숙부, 지금 어디로 가는 거죠?”
“표묘루다.”
오정융이 말했다.
표묘루는 오주부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주루였다. 주루 전체가 호화롭고 안에서 먹고 마시면서 즐길 수 있는 시설이 모두 갖춰져 있었다. 이곳에서 밥을 한 끼 먹으려면 적어도 몇십 냥의 은자가 필요했다.
두평아는 표묘루라는 말을 듣자마자 안색이 변했다. 이곳은 밥만 먹는 곳이 아니라 아무 여자나 끼고 놀 수 있는 곳으로, 기루보다 더 기루 같은 곳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호화로운 유흥지에는 반드시 배후가 있기 마련인데, 그곳의 배후는 봉오후였다.
봉오후 유무환은 계림에 있을 때 낙문과 계동앙에게 멸시당했지만, 오주부에서는 아직 조정의 후작인 그의 비위를 거스를 만한 자가 없었다.
표묘루에 들어가자 두변조차도 내부의 화려함에 두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내부는 화려했으며 넘쳐나는 등불들로 대낮보다 밝게 빛났고 기녀들은 제각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안에는 능라주단과 금의옥식, 그리고 좋은 술과 안주가 가득 차 있어 주지육림(酒池肉林)만 없을 뿐이지 혼을 쏙 빼놓기에 충분했다. 현대 지구의 고급 주점은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표묘루에 있는 여인들은 모두 괜찮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는데 여기에 화장을 더하고 농염하게 꾸미기까지 하니 사내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두변, 남자들은 이런 곳을 좋아하지?”
평아는 손가락을 두변의 허리춤에 갖다 대며 자신이 기대했던 대답이 아니면 세게 꼬집어 주겠다는 눈치를 줬다.
두변은 당연히 이런 장소를 좋아할뿐더러 이 세계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매일같이 이런 곳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살았지만, 정색하며 아닌 척했다.
“나는 딱히 끌리지 않는데? 어쨌든 나는 완전한 남자가 아니니까.”
“잘 빠져나가는구나.”
두평아는 한 번 봐주겠다는 듯 두변을 놓아주었다.
하지만 두변이 이들을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소용없는 것이, 여인들이 먼저 그를 피했다. 그녀들은 두변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아양을 떠는 게 아니라 오히려 멀리 피하며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두변이 입고 있는 더러운 무명옷 때문이 아닐까. 아무래도 돈 많고 권세 있는 사내를 좋아하는 그들에게 돈도 권세도 없는 가난뱅이에 무뢰한처럼 보이는 사내가 눈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이노야 오정융이 두변에게 말했다.
“이런 곳에 처음 오는 것 같은데 그렇게 눈을 휘둥그렇게 뜨지 말고 돌아가서 원래대로 대충 만두나 먹으며 사시오. 헛된 기대는 일찌감치 접어두고, 이게 자신의 운명이라 여기며 살란 말이오.”
‘참나. 하나같이 나를 우습게 보고 있군.’
두변은 속으로 분노했다.
오정융은 두평아를 데리고 계단을 올라가 2층에 도착했다. 2층은 오히려 그나마 소박해 보였지만 하나하나 자세히 보면 자기와 가구들이 제법 예술성이 있고 값이 상당한 것들임을 알 수 있었다. 1층처럼 화려함을 뽐내는 물건들은 아니었으나 마찬가지로 고급스러운 물건들이었다.
오정융은 사람들을 데리고 계속 위로 향해 3층을 지나 4층에 도착했다.
4층이 표묘루의 최고층으로 주변은 매우 조용했고 기녀들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곳에서 술 시중을 드는 여인들은 하나같이 미모가 뛰어났지만 단정한 옷차림을 한 것이, 명문가 규수 같은 느낌을 주었다. 여인들은 걸을 때마다 발소리를 죽이며 발끝으로만 걸었다.
또한 모든 탁자와 의자는 모두 값비싼 홍목이었고, 모든 자기는 경덕진(景德鎮)에서 만든 최고급 청화자기였다.
이곳 4층에서 밥을 먹으려면 음식과 술은 제외하고라고 방 한 칸을 차지하는 데만 해도 은자 백 냥이 필요했다.
오 부인은 바로 이곳 4층 능운각에서 오주 순검 허창전에게 음식 대접을 하느라 적잖은 지출을 하는 것이 분명했다.
오정융이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며 아첨하듯 말했다.
“허 대인, 저희 집안의 질부가 도착했습니다.”
그러자 능운각 문이 열리면서 안에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체격이 건장한 중년 사내가 노골적으로 두평아의 몸매를 감상하며 말했다.
“우리 낭자가 여전히 아름답군. 저번에 봤을 때부터 눈에 밟혔다고. 그래. 어서 내 옆으로 와서 앉아라. 술이나 한잔 들어야지.”
두평아를 희롱하는 말을 들은 두변은 미간을 찌푸렸다.
몸집이 우람하고 얼굴은 음흉한 이 사내는 아마 광서 시박사 손임 공공의 의자인 오주부 순검 허창전일 것이다.
순검 9품은 매우 특수한 관직이었다.
첫째, 순검은 대대로 세습되었다.
둘째, 이 관직을 맡은 자는 영원히 진급할 수 없었다.
비록 9품이지만, 주부의 순검이라면 막강한 권세를 누릴 수밖에 없었다. 순검은 7품 현령은 고사하고 지부조차도 이들을 함부로 건드리려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순검이야말로 진짜 이 지역 토박이 뱀으로, 주부의 이원(吏員: 하급 관리)과 아역(衙役: 관아에서 부리던 하인)의 절대적인 상관이기 때문이었다.
세습이라는 특징 때문에 순검은 주부에서 몇십 년부터 백 년이 넘는 기간 관직을 이어오면서 돈이면 돈, 사람이면 사람 뭐 하나 부족함 없이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눈앞에 보이는 허창전이란 인물은 오주부의 통판(通判)이나 추관(推官) 등 5품이나 7품 관직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오주부 전체에서 관직으로는 내세울 게 없지만 가진 권력으로는 손에 꼽히는 인물이었다.
그는 합법과 불법적인 수단을 통해 수중에 무법천지로 날뛰는 흉악범 몇백 명을 거느리고 있었다.